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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3.4.2. 종려주일

 

성경본문 : 누가복음 23:32-43

제목 : 오늘! 주님께로 돌이킨 한 강도

 

꽤 오래전에 탄광에서 사고가 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탄광에 굴이 있는데 굴 한가운데가 무너져서 양쪽 사람들이 갇히게 되었습니다. 구조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열흘뒤에 다행히 사람들을 구조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하여 조사해보았습니다. 물이나 공기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사 결과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살아있는 한쪽 사람들에게는 탄광선에 전화선이 연결되어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전화선이 끊어져 있었던것입니다. 전화선이 연결된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위에서 정보를 주었습니다.

걱정마라 지금 작업하고 있고, 5m 파고 들어갔다, 조그만 참으라 하면서 계속적으로 서로 공유를 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소망이 있었던것입니다. 비롯 보이지않고 먹을것없고, 마실 물도없지만 살수있다는 소망이 있었던것입니다. 그러나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들은 전화선이 끊겨서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함으로써 물이없어 공기가 없어 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살 소망이 없어 낙심하여 삶을 포기했던것입니다.

어둠 컴컴한 깊은 땅속에서도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던 사람들이 살았던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산다는 것입니다. 희망이없고, 소망이 없는것처럼 보이더라도 우리가 하나님과 삶에서 연결되어 있으면 우리는 살아날수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면 이 힘든세상에 소망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그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내일부터 토요일까지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앞두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메시아로 개선하는 왕처럼 오시는 예수님을 무리들이 환영하는 뜻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데 유래한것을 기념하는 날이 종려주일입니다.

이번주 목요일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성만찬을 제정한 날로서 최후의 만찬일입니다. 그리고 금요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날로 성금요일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다음주 주일이 바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이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멘 고난이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앞에두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한강도의 사건과

죽음을 앞에두고 거짓이 없는 회개를 통하여 자신의 마지막 운명이 바뀌는 한 행악자의 모습을 묵상해 봅니다

누가복음 2332-43절 본문은 3가지를 조명해봅니다.

첫째. [부정적인 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으로 말하는 땅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둘째. [회개] 몇시간 후에 죽음을 앞두고 한 강도에게 변화된 허락된 시간

셋째. [용서.구원] 한 강도의 급박한 회개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구원을 허락하신 장면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갈보리 골로다언덕의 세 개의 십자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모습을 보여주는 자아상 있습니다.

 

양편으로 갈라서는 십자가

누가복음 23장 본문은 갈보리 골고다 언덕에 예수님과 두행악자와 함께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져있습니다.

이 세 개의 십자가에는 가운데는 예수님이시고, 양 옆으로는 두 강도가 달려있습니다. 세 개의 십자가는 곧 있을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우리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두 행악자는 사형을 받을만큼 심각한 죄를 지어 십자가에 달려있지만 예수님은 죽을 죄를 짓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통해 사형판결을 내리는 로마 빌라도 총독은 대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앞에서 너희가 고발한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3번이나 말합니다.

23: 4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22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죄가없다고 빌라도는 인정하는데 왜! 유대인의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등 모두가 예수님을 죽일려고 할까요? 첫째는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스가랴,,예레미야에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예언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산헤드린공회원의 기득권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증거할려고 마을과 지역을 다닐때마다 가난한자와 불쌍한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눈먼자,병든자,죽은자를 고치시고 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고 권위있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것이 싫은것입니다. 백성들이 자신들을 칭송해야하는데 예수님을 칭송하는 것이 싫은것입니다. 그래서 관리들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본문에 중요한 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한 강도는 마음이 변화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받아 낙원에 이르는 은혜를 입었고. 다른 한 강도는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 가운데 은혜를 얻지 못하고 죄중에 영원한 심판의 형벌을 받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한사람의 운명이 갈라서게되는 가장 이유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영생과 심판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한 강도는 자신의 죽음앞에서 마음이 변화하여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달라는 말을 합니다. 마음의 변화는 회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날 세상은 두 양면으로 갈라서게 되어 구원을 받는 자리구원을 잃어버리는 자리에 서게되고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여 천국문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 : 즐길것 즐기고, 나중에 믿으면 되지?

본문은 성경이 기록하는 이 강도의 구원은 그렇게 간단하게 보아 넘길 만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강도에게 허락한 한정된 시간과 예수님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주변의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진실한 회개와 믿음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는 인생을 마음껏 살다가 죽기 직전에 운좋게 회개하여 구원받는 사람으로 제시된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도를 하면서 보면 이런 저런 핑계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분들을 만납니다. 어떤분은 자신앞에 당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것이 아니라,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눈앞에 보이기 때문에 이것이 먼저이고 나중에 시간이 나는대로 예수님을 믿게하는 사람이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식들을 다 키워 장가가고 시집보내고고 난후 나중에 예수를 믿어보겠다는 분이있습니다. // 어떤분은 이 세상에서 즐길 것은 다 즐기고 늙어서 힘이 없을 때 믿어보겠다고 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 또 어떤분은 내인생에 성공하여 어느정도 다 이룬후에 나중에 믿겠다

하신분들도 있습니다. ///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것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자신이 죽음이후에 있을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세상 사람들에게 결코 값싼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강도가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잘 잡아 구원을 받았듯이 자신의 인생도 그럴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 잘못된 생각일까요?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자기가 원하는 때에 맞출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이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한 강도처럼 진심으로 회개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구원의 기회를 놓치 말고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앞에두고 땅에 있는자들에 모습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첫째 [부정적인 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땅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

35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땅에 있는 주변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관리들 대제사장,서기관,바리새인들 그리고 로마의 군인들 심지어 사형을 앞두고 있는 두 행악자들도 예수님을 비웃고 있습니다. 그들의 비웃음은 저가 남을 구원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신도 구원하라고 말합니다 “ ”너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고 하면서 비웃습니다.

이렇게 죄없으신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무시를 당합니다.

관리들과 강도들과 군인들이 하나같이 비웃고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위해 오셨습니다. 구원받는 그 강도 역시 처음에는 다른 사람듣과 같이 주님을 욕하고 비웃던자입니다.

 

둘째는 본문은 한강도가 예수님앞에서 진심어린 [회개]를 통하여 곧있을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운명을 바뀌는 역사를 봅니다

예수님에 반대편에 있는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조롱하고 비웃고 욕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역시 불과 몇분전까지 예수님을 비난하고 욕합니다 그러나 잠시 시간이 지나고 그중 한 사람의 강도에게서 무엇인지 모르는 심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강도에게 일어난 변화의 원인은 성경에 기록되지않습니다. 그러나 강도중 한사람이 심적변화가 일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성령께서 이 강도의 영혼을 불쌍히 여긴 것이 분명합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버렸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나머지 제자들은 주님의 곁을 떠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때 이 강도는 예수님곁에서 당신이 하나님나라의 진정한 왕임을 고백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때에 나를 기억해 달라고고백합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믿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현장에서 강도가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고백하면서 믿는 사람은 이 강도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강도에게 일어난 변화는 무엇일까? 1.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회개와 믿음을 가짐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강도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성령님이 하셨습니다. 그는 곧있을 자신의 죽음 앞에서 옆에있는 예수님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을것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시고 죽은자를 살리셨다는 말을 들었거나 목격했던 사람이었을것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늘 가난한자와 함께했음을 보았을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했을것입니다. 이분이 구약의 메시아일 것이다. 이분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일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러면서 다른 강도를 향하여. 우리는 죽어마땅할 죄를 지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다 그분은 죄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책망합니다.

오늘날 교회안에 신자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심판자이시고. 구원자이심을 까먹고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이 예수님께 달려있음을 까먹고 있습니다. 인간에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을 주관하신분이 예수그리스도이심을 잊고 산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의 회개는 이 세상에것만 바라보고 사는것에 회개를 해야합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감각한 우리의 마음을 회개해야합니다.

 

강도에게 일어난 변화는 두 번째는 무엇일까? 예수님편에서 서서 변호한다는 것

41.우리는 우리가 행한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 강도는 처음에는 똑같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욕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강도에 대하여 예수님을 변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방하지만 단 한사람 이 강도만큼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것입니다.

이 강도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보다 용기있게 담대하게 주님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강도의 믿음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진실하고 참된 신앙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할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는분이라고 고백할수 있습니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나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습니까?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부인하고 욕하더라도 우리는 회심한 한 강도와 같은자가 되어 예수님만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앞에 진리를 선포하고 보여주는 삶을 사는 신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고난주간은 회개를 통하여 십자가를 바라보고 붙잡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셋쩨 [용서와 구원] 한 강도의 진심어린 회개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구원을 허락하신 장면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강도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이 죄인인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합니다.

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강도는 죽음이후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이땅에서 가난하고 못배우고 모든 것이 내뜻대로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삶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았던 한 강도는 이제 자신의 죽음앞에서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분별력이 없는삶을 후회했을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것을 후회했을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죽는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예수님을 본후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극심한 두려움에 있는 그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오늘과 예수님입니다. 오늘 나와 함께 너는 낙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자에게 즉각적으로 선언되어 효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도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누가복음 19:9절에 말씀하십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한 강도를 예수님께서는 오늘 생명을 주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원은 오늘이라는 시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 안타까운 일들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적극적인 부르심에 돌이키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좋아하지않습니다. 자신의 죽음이후에 대해 관심도 없습니다. 오늘 허락된 구원의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지않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곧있을 자신의 죽음앞에서도 회개하지 않는 또다른 강도처럼 말입니다. 그는 천국문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이라는 시간이 여러분에게는 너무나 중요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구원얻는 강도와 같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 있습니까? 자신은 아직 젋으니까 급한 상황에 있지않다고 생각하여 내일이나 다음주 아니면 다음해를 기약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일을 기약하는 사람은 내일이 되면 또 다른 핑계로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길것입니다.

두 강도에게서 극명하게 달라진 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겪습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이 없고, 고난이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한주간 고난주간 절제하시고 끝까지 기도로 말씀으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교회의 머리가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부하나님의 크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 예수님앞에서 한 강도의 회개를 통하여 낙원에 이르는 약속을 받은 사실처럼 오늘 성도님들위에 가정위에 어린 자녀들위에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믿는 믿음이 있기를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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