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5.
채인기 목사
성경 : 디모데전서 6:12-14절
말씀 :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라
본문은 바울은 사랑하는 에베소교회 목회자인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향해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고 부르면서 교회와 성도를 위하여 피할것과 지키것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만큼 주님의 사역을 힘겹게 감당하는 디모데를 향한 위로와 애틋함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이땅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성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에게 피할것과 지킬 것을 구분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피할 것 :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3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피할 것은 멸망의 요소들인데 무엇을 피하는가? 그것은 6:3-10절까지 당시 거짓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행위를 말합니다. 거짓교사들은 예수님의 진리의 복음이 아닌 다른 교훈를 가르치고, 신자들이 말씀을 따르지 않도록,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고, 투기와 분재와 비방과 악한 생각을 가득차게하고, 또 해로운 욕심에 떨어져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보다 맘몬인 돈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므로써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고 많은 근심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그리고 오늘 거룩한 신자들에게 강력하게 전합니다. 이것들을 피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제는 지킬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2. 따를 것 (지킬 것) :
바울은 이제는 지킬것에 대한 덕목을 말합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지키고 따를것에대한 덕목은 먼저 의,경건,믿음,사랑,인내,온유둥 신앙의 덕목들을 추구하라고 명령합니다
(11절). 여기서 의’는 “‘공의로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진리에 부합하는 올바른 삶을 의미합니다.///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에 걸맞는 삶을 힘쓰라는 것입니다. /// 왜! 경건에 힘써야 하냐면 돈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사랑보다 더하기 때문임을 바울이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전적 신뢰가 믿음이라는것입니다.
‘사랑’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신 무조건적인 사랑// 자기중심적 사고나 탐심이 배제된 희생
과 봉사의 실천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
‘인내’는 인생의 어떠한 불행과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도망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한다.
‘온유’ 인내가 힘든 상황을 참아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온유는 더 나아가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사람에
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과 태도를 말합니다.
바울이 살았던 세상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믿음의 선한싸움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올바르게 사는 것을 방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과 성도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나의 환경과 시련을 인내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온유함을 잃어버려 결국 사랑하지 못하고 믿음의 선한싸움을 포기해 버리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영생을 취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실때까지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왜! 지켜야 하는가? 13절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 앞에서
죽음을 구걸하지 않고 자신이 유대인의 왕으로써 믿음으로써 담대하게 전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신것처럼 디모데 너 역시 주님오실때까지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우면서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란? 바울은 믿음의 선한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덕목중 하나인 ‘믿음’을 지키라고 할까?
외부와 내부에 의한 로마정부의 핍박과 거짓교사들의 유혹이 득세한 시대에 믿음을 지켜야 함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문제가 있어서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하며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머물게했습니다. 디모데 사역할 당시에는 외부적으로는 로마정부로부터 예수님을 믿는다는것 때문에 핍박을 받아 신앙생활을 지장이 없도록 해야했고, 내부적으로는 율법이 구원이라는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과 이단들이 득세하여 예수님이 아닌 다른 복음을 가지고 에베소 교회를 무너뜨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너무나 힘든 상황이 있을 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교회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환경과 상황가운데 핍박과 유혹등 어려움이 올때에 바울은 어린 디모데에게 강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이길려면 강한 믿음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것이고,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의 기초를 나를 삼아서는 안됩니다. 나로부터 시작된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신념이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신념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나의 생각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념을 믿음이라고 착각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대상의 문제입니다. 첫째. 무엇을 믿는가 그리고 둘째. 내가 믿는분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내안에서 성립할려면 내가 믿는 분이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이심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고, 예수님이 이세상에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분명하게 알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절대로 성립할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어떤분인신지를 여러분의 입술로 고백할수 있습니까? 왜! 그분을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까? 우리의 구원과 영생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예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먼훗날 여러분이 주님이 계신 천국문에 이르느냐? 이르지 못하느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올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하는 의이고 경건입니다.
하나니의 사람들이 이땅에서 보이지않는 영적세계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의미 : 환경과 상황을 말씀과 일치시키라는 것입니다. .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세상끝날이 가까이 올수록 세상에는 가짜믿음이 득세하고 참 믿음은 보기 힘들게 된다는 예수님은 엄밀하게 진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믿음이 너를 구원하겠느냐고 묻습니다. 마9:22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워야하는 당위성에 말하는 것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는 법을 많은 증인들 앞에서 증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믿음을 지키고 싸워서 승리하는법을 가르쳐주라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너를 불렀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환경과 상황을 말씀을 일치시킬려고 할때에 방해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안에 있는 적입니
다. 이적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안에 있는 적인데 그것은 두려움과 염려입니다.
두려움과 염려와의 선한싸움을 싸워서 이겨야 말씀의 일치시킬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는 누구에게서 옵니까? 마귀입니다. 눈에보이지 않는 영적영역입니다. 왜! 두렵습니까? 왜! 염려하게 됩니까? 보이는 현실 때문입니다.
보이는 현실이 너무나 거대하고 암담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장사가 잘될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나는 건강할까? 나는 취업이 될까? 내 자식이 잘되어야 할텐데. 이런 현실을 직시한 생각으로만 잡혀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동안 두려움과 염려가 없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현실이 두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떠오르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나의 생각과 마음을 장악할수 있도록 계속 훈련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상황과 환경을 일치시켜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믿음으로써 싸울때에 우리는 환경을 통치할수 있습니다.
어떻게 싸우는 것이 믿음의 선한 싸울일까? 삼상 17장 33-37절에 소년 다윗과 이스라엘왕 사울왕을 통한 믿음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믿지않는 블레셋 나라가 전쟁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대표자는 사울왕이고, 블레셋의 대표자는 골리앗입니다.
사울왕의 믿음없는 태도 : 하나님을 믿지만 커다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두려운 사울왕의 태도입니다.
삼상17:9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블레셋 장군 골리앗은 1:1대로 붙어보자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이기면 너희 종이되고, 내가 너희를 이기면 너희가 내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군사들중 누구도 나가서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사울왕 조차도 말입니다. 사울왕은 골리앗의 어마어마한 덩치과 칼과 창에 눌려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현실이 두려운것입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엄청난 위기앞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덩치와 칼과 창을 보면서 두려워 떨어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의 믿음의 태도 :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에 거대한 문제앞에서도 하나님의이름으로 나아감
17:45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7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어린 다윗은 커다란 덩치를 가진 골리앗과 칼과 창을 가진 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자신의 담대한 입으로 선포를 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그러나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나아간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너는 칼과 창으로 전쟁을 할려고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전쟁은 칼과 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하실것이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왕과 다윗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환경과 상황을 말씀과 일치시켜 믿음으로 사느냐? 믿음으로 살지 않느냐? 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마음의 무장이 되어야하고, 나의 기도가 거대한 문제를 이겨낼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믿음이 없으니까 거인 골리앗이 두려웠고, 다윗은 하나님을 강하게 믿고 확신하니까 거인 골리앗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의 차이는 삶에서 믿음으로 살아내는 훈련을 계속 한사람만이 영적전쟁을 승리를 잘할수 있는 신자가 됩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나의 큰 적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사울왕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산이, 거대한 현실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 산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것같고, 지금 나의 현실에서 막막한 절대로 풀리지 않을것같은 생각속에서 사라가면서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과 기도는 현실에 두려움과 염려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가장 큰 적은 내안에 있는 염려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아가게 하지못하고 세상에서 믿음으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맡기라“는 원어적의미는 던지다, ~을 위에 던지다 라는 뜻입니다. 염려를 하나님께 던지라는 것입니다.
즉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자포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아시기 때문에 근심과 염려를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우라고 하시고 우리들을 영적전쟁에서 내 몰아 싸우게 하신 것은
1.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 승리의 기쁨을 맛보라는 것. 2. 신앙을 강화시킬려고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들을 강한 사자와같이 강하게 하기위해서입니다. 3.영생이라는 상급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갈때에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시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시험이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시련가운데 있을때
약1:2-3 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우리가 구별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고, 마귀는 우리에게 유혹을 줍니다. 유혹은 탐욕과 탐심을 불러일으키는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는 단 하나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위함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때로는 시련을 주실까요? 왜! 고통가운데 있을 때 놔두실까요?
야고보사도는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큰 믿음인지 작은 믿음을 가졌는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곧 믿음의 태도를 보시고자 한것입니다.
금요일날 필리핀 선교사로 있는 친구 목사님과 통화를하게 되었습니다. 대학때 같은과 친구입니다. 제는 대학때는 한국대학생선교회 CCC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지나 노회홈페이지에서 친구의 이름을 보게 되었는데 그가 선교사로 필리핀에서 태권도 선교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혹시 대학때 친구의 이름과 똑같아서 자세히 들어다보니 얼굴이 닮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제 친구목사님의 까페사이트에 들어가서 글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2-3시간에 뒤에 카톡으로 저에게 문자가 온것입니다. 자신이 김대익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카톡전화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는 필리핀에서 10년을 넘게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고, 아내와 두자녀들있습니다. 두자녀는 다 성인이되어 결혼했고,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자신이 섬기고 있는 사역지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3시간 거리를 차로 가야되고 또 1시간을 더 간다고 하더라구요. 한국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어떻게 그곳에서 태권도 선교를 통해 필리핀 많은 학생들을 복음을 전하고 전도했고 교회를 지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에 나오는 태권도를 배우는 필리핀학생들이 자신의 제자라고 합니다.
이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해외에서 선교를 하게되면 믿음밖에 없다고 말을 하더군요. 없는 믿음도 생기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으면 사역을 할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2024년에 저희 교회에 선교를 전략으로 세우고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친구가 있는 필리핀 팜팡가주로 성도들과 함께 선교를 갈려고 이제부터 기도로 준비한다고 말을 할때에 너무나 기뻐하면서 기껏이 환영한다고 말을 하면서 자신이 공항까지 귀빈처럼 대접하겠다고 말을 하더군요.
은성교회는 이제 믿음의 발을 한발짝씩 뛸려고 합니다. 2024년은 변화가 아니라 전환입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신 뜻을 이루기위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서 작은교회라고 아무것도 하지않고 구호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교회일수록 바울이 사도행전적 전도여행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나아갔던것처럼 바울의 첫 복음의 진원지가 바로 시리아 안디옥이었습니다. 시리안 안디옥은 작은 교회공동체였습니다. 이제 은성교회도 안디옥교회에서 바울을 파송했던것처럼 작은 발디딤을 할려고 선포합니다. 이제는 2024년도 틀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을 할려고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해외선교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옮기기 위해 2024년 해외선교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필리핀 따갈로그 언어로 사영리를 준비할려고 필리핀 사영리도 준비하면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할려고 합니다. 성도님들도 기도하십쇼! 내년에는 필리핀 선교를 함께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들, 장년부 함께 갈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교회와 성도들에게 지상명령인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라는 말씀앞에 이제는 필리핀 팜팡가주에서 은성교회성도님들이 복음의 첫깃발을 꽂고 그곳에서 우리를 필요로하는 곳이 될수 있도록 함께 작은 시작을 할려고 합니다.
우리가 시작할려고하면 하나님께서 끝을 맺게 하시고, 더많은 영혼들을 준비시키시고 일하실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60:22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 약속의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나는 가난해요. 몸이 아파요. 아무것도 할수 없어요. 내 직업은 변변치가 않아요. 라고 말을 할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환경에 관심을 두지않습니다.
그것이 환경과 상황을 바꾸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직업이 어부입니다. 학업수준도 낮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이고 수제자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전후서를 썼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말의 고백이고 믿음의 고백입니다.
은성교회가 현실적으로 작지요. 모든면에서도 연약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성교회를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우면 싸울수 있도록 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은성교회 성도님들은 너무나 강합니다. 힘이있습니다. 그래서 주체할수 없는 힘들을 이제는 국내에서 전도하고, 해외에서 선교를 통한 열방을 꿈꾸는 교회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선한싸움을 잘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 멈추지않고 싸워야하는데 그래서 믿음의 체질로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체질을 만들라! 우리를 믿음의 체질로 만들기위해서는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알아야 함. // 둘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
셋째. 성령안에서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 넷째. 지속적인 기도로 체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중요하지만 딱 한가지를 선택하라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나의 신분이 하늘에 속한자임을 알아야합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이땅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결국 우리는 예수님이 계신 하나님의 나라로 이동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권세를 누리게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권세는 성령께서 우리가운데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분명히 알게하시고 분명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요1:12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멘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할때에 그리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서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로써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권세는 1.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가 있고, 2. 이 땅을 다르시는 권세가 있고, 3.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3가지를 우리에게 확증하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믿고 쓰세요. 이땅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시면서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내가하고 있는 일에서 계속 쓰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질병가운데 있을 때, 가정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직 풀리지않는 문제와 상황에서도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믿음의 체질을 만들고 세워야합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올때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나쁜 생각이 올때에 자꾸 탐심과 욕심에 이끌리게 한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시라는것입니다. 말씀의 체질을 바꾸고, 믿음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러분이 이제까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자기자신을 너무나 비하합니다. 환경을 보고 상황을 보면서 너무나 낮게 보았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감히 엄두도 내지못하고 예수의 이름조차도 부르지않고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삶에서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친히 예수님께서 하신말씀입니다. 구하면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받음으로써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구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이제는 구하세요.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받을때까지 끝까지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우세요. 결국 우리는 받을것이고 승리합니다. 그리고 기쁨을 누리면서 삶을 살게 될것입니다. 이 한주간 예수이름으로 구했던 것들이 다 응답 받는 역사가 여러분의 가정가운데 일터에서 일어났음을 감사하며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