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30-56절 - 벳새다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심을 보여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사역에 지쳐있는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서 잠깐 쉬라고 말씀합니다. 음식먹을 시간도 없을만큼 바쁘시게 사역을 하십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한적한 곳에 가지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구약 성경에서 광야는 때로는 시련과 연단의 장소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휴식을 주는 장소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광야는 그들이 노예로서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한 장소였습니다
그들의 양식인 만나를 제공받은 휴식의 장소였다. 또한 선지자 이사야와 예레미야도 광야를 안식의 장소로 예시하고 있다(사 63: 14; 렘 31: 2).
본문에서 예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한적한곳에서 잠깐 쉬라고 하신 것은 일차적으로는 사람들과 격리된 장소로 가서 휴식을 취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변에는 구약에서 이미 경험되었으며 상징적 의미의 안식의 장소인 광야로 인도하심으로써,진정한
안식을 가져다 주는 목자로서의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안식을 줌과 동시에 영적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그들을 광야로 보내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이 벳세다로 가고 있는 것을 아시고 육로로 걸어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많은 무리들을 보시고 “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하신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후 말씀을 가르칩니다. (막6:34)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요? (마가는 드러내지않지만 누가는 말씀합니다
눅9:10-11 예수님께서는 목자없는 양처럼 유린당하고 방화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가르치고, 육적으로 질병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써 신적인 능력을 이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한자들을 남자오천명을 포함, 여자와 어린아들까지 빈들에 벳새다에 있는 무리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고 알게 하십니다.
본문에서 갈릴리 밧새다는 이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나라가 어떤 곳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요10;7, 11절)
양을치는 목자의 생활은 양을 보호하고 안전한곳으로 인도하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목자라고 말씀합니다. 나의 양의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선한 목자와 삯군목자의 차이는 삯군목자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율법에 매여 백성들에게 관심도 없고 권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율법보다 조상들의 전통을 더 중요시하는 것을 보면서 양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목자라고 하셨고,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삯군목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만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하지는 못하지만 죄를 깨닫게 합니다. 서기관들은 율법학자로써 죄를 깨닫게 해야하는데 오히려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고 바리새인들과 같이 조상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강조하고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에 주인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십니다. (31절)
셋째. 하나님은 아이의 한끼식사를 통해 작은 것을 드러냈을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일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풍요롭게 합니다.
마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세례요한이 주의 사라로써 메시야와 그의 나라가 임함을 선포하여 주의길을 예비하였다는 이유로 이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오심을 알리고 예비한것처럼 , 오늘 벳새다에서 예수님을 통해 어린아이 의 한끼식사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게 해주는 만족을 준것처럼 이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작은것이라도 심는자에게는 섬기는자에게 반드시 값진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여기십니다. (6:34)
많은 무리들이 육로로 예수님이 배를 타고 도착하신 벳새다에 먼저 도착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을 보고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무리들이 오는 것을 보면서 목자없는 양같이 유린당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시면서 불쌍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능력이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37절 이백데나리온)
-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돈으로 계산을 합니다. (37절)- 이백 데나리온
- 제자들은 인간적인 계산을 하고, 예수님은 신적인 능력으로 5000명이 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가 남을정도가 됩니다 ( 인간은 할수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부족함이 없이 풍부하게 채워줍니다. (42,43절)
35절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다보니 날이 저물어갑니다. 남자만 오천명이라는 백성들이 빈들에서 먹을 곳이 없는데 먹을 것을 해결해 주어야 했습니다ㅣ. 빈들은 갈릴리지역 벳세다입니다.
제자들은 요구 6:36: 자기들 스스로가 알아서 마을로 가든지 하여 먹을 것을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들녘에 모여 있는 무리를 대충세어 보고 그들 전체를 먹이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떡이 필요한가를 재빨
리 계산해 내었다. 37절 우리가 가서 이백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요한복음의 병행구절인 요 6:7을 보면 제자 중 빌립이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와 있다.
‘데나리온’ 은 당시 화폐 단위로서 은(silver) 으로 되어 있었으며, 1 데나리온은 노동자한 명이 보통 하루 일해서 버는 임금이었다(마 20:10) 따라서 200데나리온은 노동자가 200일 동안 벌어 전부를 모아야 하는 정도의 큰
액수의 돈이었다. 지금 제자들은 그 정도 가치의 많은 먹이 있어야 뱃새다 들녘의 무리들을 겨우 먹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38절 가서 보라 :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떡몇개나 있는지를 가서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서 보라는 의미는
뱃새다 들녘에 있는 무리들을 먹이기 위해 굳이 200데나리온 어치나 되는 먹을것을 살 필요없이 제자들이 지니고
있는 정도의 양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암시를 준다. 이는 곧 예수께서 그것만으로도 무리를 충분히 먹일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자 던진 오병이어 기적의 전조적 말씀이었다
제자들은 고작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뱃새다 들녘에 모인 장정만도 오천여 명에이르는 무리들(44절)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어린아이의 한 끼 식사밖에 되지 않는 적은 분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후에 주님의 능력을 통해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실제 현실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이적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아이의 한끼 식사로 인하여 배불리먹고도 12광주리가 남은 역사를 보게 됩니다
42절 배불리먹고 : 목자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베푼양식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본문의 이러한 모습들은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시 23 : 1 을 연상하게 한다.
6:30-44 : 오병이어 이적 – 예수님의 신적능력을 보여주심.
- 중요한 의미 :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가?
( 34절 목자없는 양같이 방황하고 있는 영혼들이 불쌍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리들이 다른곳으로 가지않고 예수님께 오므로써 자신의 모든 필요를 채움을 받기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고, 무리와 제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45-52 물위를 걸으신 예수
예수님은 바쁜 사역가운데서도 벳새다라는 곳으로 가서 기도하러 산으로 가십니다.
밤 사경 ( 새벽3-6시사이) 바다는 어두웠습니다. 어두움을 헤치고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있는 배로
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인지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50절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마음이 둔하여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막6:45절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의 사건을 보여주고 난후 45절 즉시 제자들을 재촉해서 가버남움으로 옮깁니다.
45절 에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고 난후 배를 타고 벳세다갑니다. 요한복음 6:17 가버나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발걸음을 재촉하였을가요?
( - 무리들이 예수님을 행하신 이적을 보고 난후 반응 :
요한복음 6:14절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 15절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왕,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예수님은 큰 무리들을 불쌍히 여겼지만 이땅에서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을 현실적인 문제만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불쌍한 영혼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이 이뤄지기를 원하는것입니다.
예수님이 무리들의 마음을 아시고 자리를 제자들과 급하게 피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영적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된 메시야관을 거부하시고 급히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셨다
물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자 제자들이 유령인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심히 놀랍니다.
제자들의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52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라.
▶ 제자들의 심각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예수께서 떡을 기적적으로 불어나게 하셨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권능을 행하셨던 그분이 바로 신성을 지니신 예수이심을 알지 못함
제자들이 예수님을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로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다는 것은 : 완악해졌다는 말씀입니다.
▶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있습니까?
마5:3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자 : 헬/ 프토코스 : 절대적 가난 /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정도의 필요가 아니라,
이것 없으면 죽는 것을 말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생명, 진리의 말씀이다.
예수님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 (절대 의존적 사람), 예수님이 공급하시지않으면 안되는 사람입니다.
그사람만이 천국인 하나님의 나라를 가질수 있고, 누릴수 있습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것이요
청결한자 : 헬 /카다로스 : 순결한 사람, 깨끗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뱃새다 들녘의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참 신성을 지니신 분으로 깨달았더라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의 기적을 이미 체험했으면서도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능력을 행하시는 주님의 실체를 바로 깨닫지 못함으로 마음이 완악해져 있는 자들은, 그 후에 벌어지는 주님의 어떤 신기한 행동들을 통해서도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