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3-35절 제자가 되는 길을 가르치신 예수님
4복음서의 독특한 관점은 마태는 예수님을 – 왕의 모습을 드러냄 / 마가 – 종의 모습 / 누가- 인자의 모습
요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종의 모습으로 섬김을 받는것보다 섬기러 오셨음 증거합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의 이 부분(8:22-10:52)에 나오는 세 주기중 두 번째다. 1. 각 주기에서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신다. -> 2. 그 다음에 제자들의 교만이나 이기심에서 나온 어떤 행동이 나온다. -> 3.그리고 그 다음에는 참된 제자의 겸손하고, 자기 희생적인 역할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온다.
첫 번째 1.수난예고(8:31) 2.다음에는 베드로의 항변(8:3)과 3. 십자가를 지는 제자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8:33-38)이 나왔다.
이 두 번째 1. 수난 예고(9:31) 2. 다음에는 제자들끼리 누가 크냐는 것에 대한 제자들의 논쟁(33-34절)이 나오고, 3. 그다음에는 참된 위대함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35-37절)과 제자도에 대한 또 다른 가르침(38-50절)이 나온다.
세 번째 1. 수난 예고(10:32-34) 2.다음에는 하나님 나라에서 요직에 앉혀달라는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10:35-37)과 3. 섬기는 지도력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10:38-45)이 나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제자들끼리 서로 간에 갈등을 야기합니다. 34절 서로 누가 크냐하고 쟁론하니라.
제자들의 온통 생각은 ”높은 자리(지위)와 큰 것에 대한 문제에 사로잡혀있습니다. - 현실적인 문제를 봅니다.
막10:35-37절에서는 야고와 요한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달라고 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제까지 제자들에게 보여주고자했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제자들은 왜! 영적 맹인이 되어버렸을까요? 35절 이유는 제자들은 첫째만 될려고 하지 끝은 되고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을려고만 하지 도저히 섬기지 않을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관심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 눈에보이는 현실이라는 세계를 우린 무시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 예수님과 계속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47절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이리라. 라는 말씀처럼 눈은 사람이 보는 것을 나타냅니다. 내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꾸 내가 세상의 두 눈으로만 바라보게 되면 내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 영생을 잃어버리고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두눈을 빼라는 것은 진짜 눈을 빼라는 말이 아니라, 눈으로 바라보는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내 영혼이 치명적인 결과를 얻지 않도록 사고와 가치와 의지를 영생에 들어가도록 상을 얻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높은 자리였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오른팔이 되느냐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되고자하면 끝이 되고, 섬김을 받는것보다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고 비유로 말씀합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그시대에 가장 약하고 천하고 인정받지 못한 주류를 의미합니다.
37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예수님을 연결시켜서 어린아이처럼 천하고 인정받지 자를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한것처럼 된다 이게 무슨 말씀이냐면 어린아이는 약하고 천하고 인정받지 사람들 즉 종이나 노예를 의미하므로써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종으로서 섬기러 왔음을 의미합니다. 종이나 노예는 주인을 위해 섬기듯이 예수님께서 종으로 오셨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기까지 하나님께 종으로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면 나처럼 종이되면 하나님을 영접한것처럼 되기 때문에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이땅에 직위와 큰것으로만 채울려는 사고와 철학으로만 사는 존재가 되지말고, 진짜 예수님의 제자로써 살아가야하는 법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 (막10:45) - 이것이 예수님이 종으로 오셨음을 마가는 증거하고 있는것입니다.
38-40절 금하지 말라.
요한은 어떤 이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38절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 : 당시 예수님의 12제자 외에 예수님을 추종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눅10:9,17 70인 제자들도 있습니다. 이들 중 어떤 자들일것입니다. )
요한은 어떤자가 귀신 축출사건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들에 대해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보고합니다.
-> 지금까지 귀신 축출 기적은 예수님과 열두 제자의 독특한 활동이었기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자신들만 이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은 귀신 축사 능력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들 즉 제자들에게 있는줄 생각했습니다.
요한과 제자들안에는 “자신들만이 가질수 있는 특권 그리고 시기와 질투가 마음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요한과 제자들은 자신들의 권한이 침애 당하고 있다는 사실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과 제자들은 얼마 전에 귀신을 쫓아내지 못해서 사람들 앞에서 무안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9:17.18)
자신들은 실패했는데 자신을 따르지 않는 어떤자가 귀신을 측출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위신도 실추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위기감을 느껴서 금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39.“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39절 “그를 막지 말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곧바로 나에 대해서 나쁜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 40절 우리에게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 편이다.
그러한 기적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도 시행할 수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심으로 주의 능력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어떤 사람을 통해서든지 일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은 민11:26-30절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엘닷과 메닷이 선택받은 칠십 장로에 속하지 않았는데
도 진영 밖에서 예언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모세는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 기를 원하노랴’'(29절)라고 대탑한다. 중요한 것은 그 메시지를 전하는 사
람이 아니라 신적인 메시지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경우 중요한 것은 축사자의 신원이 아니라 귀신에 대한 영적 승리다.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문제점은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8-40절 말씀은 하신 것은 제자라는 특권을 침해한다고 해서 자신들만의 특권을 드러내것나 시기와 질투속에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특권이 아니라, 이 어두운시대를 더럽히는 사탄과 귀신을 쫓아내는 영적인 승리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삶을 방해하고, 죄의 종노릇하게 만드는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헸지만 고치지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십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은 기도외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9: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수 없는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똑같은 말씀입니다. 마1714-20 / 20절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기도는 항상 따라다니는데, 기도는-> 믿음이 있는 기도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한다면, 믿음없는 기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막11:23.24)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낼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막 6:7) 그러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제자들은 귀신을 쫓애낼수 있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했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온통 세상의것에 높은 자리에 앉을려는 싸움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능력이 나가지 못한 것이다. (막33-37절)
그만큼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자리싸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가져애헸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해야 하는데 믿음의 기도를 하지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생각을 해야합니다. - 기도가 안될때가 있습니다 / 말씀이 안들릴때가 있습니다. / 자꾸 생각속에서 방해하는
삶속에서 근심과 염려속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능력이 약해집니다.
염려가 올때마다 자꾸 내일로 미루는 훈련이 필요하고, 현실적인 문제와 대면하면서 믿음과 기도는 내 삶을 방해하는 귀신의 제어하는 능력을 쫓아낼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41-48절 죄의 유혹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자선을 베풀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 아니라,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 사람이기 때문에 마실 물 한잔을 건네주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상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42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 이 작은 자 : 첫째. 어린아이(9:36) 둘재. 예수님의 제자들 (9:31) 3. 이 시대에 연약한자들, 미성숙한 자들
실족하케 하면 : 덫, 죄에 빠짐, 고전1:23 십자가를 거리끼는 사람, 갈5:11 십자가의 걸림돌 이라는 의미로
믿음을 따라 멸망케하는 하는일을 의미로써 나약하고 미성숙한 신앙인을 유혹하거나 죄에 빠지게 하면 배척하여 상처를 받게 하고 낙심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났다. 말씀합니다.
수리아, 헬라, 로마의 사형법으로 사람을 죽인 원수나 국가의 안정을 파고하는 자를 죽일 때 사용한 방법이다.
(아무리 연약한자라도 실족시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범하면 해당부위를 잘라버리는 것이 낫다고 아주 무서운말씀을 합니다.
43-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 45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 47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실제로 자기 신체의 일부를 제거해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가 우리 영혼에 치명적인 해악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 -> 사람이 하는 일을 나타내고, 발은 사람이 가는 곳을 나타내고, 눈을 사람이 바라보는 것을 나태냅니다.
손,발, 눈이 어떤곳을 바라보느냐,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따라 죄의 심각성을 통해 영생을잃어버리느냐? 아니면 구원
을 얻느냐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결과를 참된 결과 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 힘은 실로 파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손이 네발이 네눈이 범죄하면 찍어버리고, 빼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의 결과가 실로 엄청난 파괴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는데 쓰는 도구가 되면 결국 영원한 심판인 지옥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범죄의 심각성은 치명적인 해악을 통하여 영혼이 멸망의 길을 선택하여 지옥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손,발, 눈이 주님을 바라보는데 쓰고 보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아! 손으로 하는일, 발로 가는곳, 눈으로 바는곳을 예수님을 바라보고 섬기는 데 쓰는 도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필요한 덕목(49-50)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야할 덕목에 대해 간략한 권면으로 마무리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49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49-50)
제자들이 서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불로서 소금에 절여서 성전에 드려지는 번제물처럼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참여하는 희생제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난의 불로 정결한 제물이 되지 않으면 지옥불에 고통을 당하는 죄악의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로 정결함을 입지 않으면 남을 실족하는 자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금에 절여진 제자들만이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소금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제자들도 세상에 꼭 있어야할 소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역할은 화목하게 하는 일입니다. 화목케 하는 사람들이 지체를 실족하게 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죄악을 저질러서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은 서로 경쟁하지만 제자는 벽을 허물고 장벽을 부스고 차별을 철폐해야 합니다. 전쟁을 그치고 평화를 심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화목하기를 힘쓰며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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