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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 : 누가복음 2339-43

제목 : 십자가 2 : 한 강도가 십자가에서 회심

 

김남준목사님은 오늘날 기독교가 잃어버린 신앙이 있는데 두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십자가의 신앙이 사라졌다. 둘째는 내세의 신앙이 사라졌다고 지적합니다.

십자가의 신앙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일제 강점기때 주기철, 손양원, 최권능 목사님처럼 일사각오의 신앙을 가지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신앙을 구걸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않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알기에 천국 소망을 마음에 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것은 내세의 신앙 즉 천국 소망이 있었기때문일것입니다.

 

 

우린 두 강도가 십자가상에 예수님과 함께 달려있을 때 처음에는 똑같이 예수님을 욕했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런 변화를 통해 한강도가 회심한 사건이 일어나므로써 한 강도는 비방을 또다른 한 강도는 회심을 통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됨을 보게 봅니다. 그렇다면 한 강도에게 어떤 심적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오늘 본문은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두 강도와 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장면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받게 합니다. 유대 백성들로에게 예수라는 사람이 2명의 흉악한 강도처럼 여기게 하여 그렇게 왕처럼 따르던 자가 무능력하고 초라한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죽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갑자기 심적변화가 일어난 한 강도의 회개와 믿음인 회심을 통해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땅에있는 백성들은 어떤 태도를 하고 있는지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호산나를 외치면 왕으로 추대했던 백성들, 종교지도자들인 관리들, 군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23: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갈보리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님을 보면서 백성들은 서서 구경만 합니다. 관리들은 비웃고 조롱합니다. 너가 하나님이라면 너는 남을 구원하면서 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느냐고 비웃습니다.

군인들은 희롱하면서 신포도주를 주고 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이 백성들과 관리들과 군인들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받아야할 만큼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야 할만큼 큰 죄를 지었습니까? 아니요.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았고 죄가 없으신분입니.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수백년전에 예언합니다.

53: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잘못된 생각 : 세상 재미를 보다가 죽을때 예수님을 믿으면 되지않겠느냐?

우리는 한번쯤 두 강도를 비교하면서 말한적을 들은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역시 그런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강도중 한사람이 죽을 때 회심했고 그것으로 예수님이 낙원에 함께 있을 것을 말하지않았느냐? 이것가지고, 나도 이땅에서 세상에서 인생을 즐기고 누리고, 돈을 벌어서 자식들도 장가,시집다 보내고, 여행도 다니고, 내 마음껏 누리다가 좀 여유가 있을 때 늙어서 죽을때쯤에나 한 강도처럼 회개하면 나도 구원받아서 천국가지 않겠느냐고 말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 사람들은 아주 큰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값싼 복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평생 제멋대로 살다가 인생 말년에 어떻게 믿게 되어 구원받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린 여기서 그런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첫째.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것. 인생은 내 마음과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자기가 원하는 때에 맞지않고 어느 순간, 어느때에 죽음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둘째. 죽음을 앞두고 한 강도처럼 믿음이 분명하게 갖게 될거라는 보장도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임종의 자리에서 회개하기를 권해도 구원에 대해 관심도 없고, 천국 소망을 믿지 않고 돌이키지 않고 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평생 주님없이 살아왔던 사람이 자신의 방법과 자신의 뜻대로 고집스럽게 살아온 사람이 인생의 황혼기에 변화가 된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있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강도가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잘 잡아 구원받았듯 자신의 인생도 그럴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강도는 평생 나쁜 짓만 하고 살았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형벌인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던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이 강도는 자신의 삶의 끝자리인 죽음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를 통하여 자신의 진실하고 마음을 다한 회심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강도에게 일어나 변화

이것은 성령께서 한 강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셨다는 것 밖에 해석할수 없습니다. 분명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강도가 회심의 사건이 언제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먼저 주변 상황을 보면 23:32 도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가니라.

세 개의 십자가에 예수님이 가운데 두 행악자인 강도들은 양 옆에 서있게 되고 이들은 사형을 받게 된것입니다. 백성들은 구경하고, 서기관, 바리새인, 대제사장들은 서서 비웃으면서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너를 구원해 보라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희롱하고 있습니다.

두 강도들 역시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하고 살벌한 이런 상황가운데서 한 강도의 회심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성경은 한 강도가 어떻게 회심했는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측할수 있는 것은 이것은 성령께서 강도의 마음을 만지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이럴수는 없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려있는 도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까?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40)

23:40.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두 강도중 한 강도가 반대편에 있는 강도를 향하여 강하게 꾸짖습니다.

 

여기서 동일한 범죄라는 것은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마땅한 판결을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마땅하다 는 말입니다.

꾸짖는 강도는 우리는 아주 심각한 죄 사람을 죽인죄로 인해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는 네가 어찌 거기에다 죄없으신 예수님을 조롱함으로써 하나님을 두려워하지않고 무서운 심판을 받을려고 그런 행동과 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가 추론할수 있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께서 한강도의 구원을 예정하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강도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하심일것입니다.

온갖 나쁜일만 일삼다가 드디어 무서운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려있을때까지 세상을향하여 욕하다가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보면서 두려움이 생겨 자신의 사악한 죄가 보였을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때문일것입니다.

자신앞에 계신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극악무도한 자신과 다른 모습을 보았을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속에서 그는 죄가 없으신분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속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두 강도앞에 십자가에 서있는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3. 해골이라는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새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가상칠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일곱말씀중 두 번째 말씀을 이 강도는 듣게 되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두고서까지 자신보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이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올리고 있는 예수님을 한 강도는 뚜렷하게 보았을것입니다.

 

강도의 변화가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백성들을 향하여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무섭게 경고하십니다. 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은성교회 목회자를 비롯하여 성도들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이땅에는 진실이 없다. 불쌍하고 긍휼도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이땅은 온통 저주와 속이는것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진실하게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듣는 대상이 이방인입니까? 불신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마음에 간음과 거짓과 속임과 도둑질과 포악하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분주함과 헛된 것을 내려놓고 호세아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라고 그리고 하나님을 힘써서 알아야 한다고 피를 토하며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백성들은 내버려두더라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심해야 합니다. 회심하지 않는 자는 마음이 강팍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본사람은 눈물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앞에 나오는자는 하나님께서 안으시고 치유하여 주십니다.

이 사랑을 알때까지 우리는 계속 십자가앞에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도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까? 십자가에서 회심이 일어남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봉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 강도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회개와 믿음을 갖는 회심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은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시고 고아와 같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예수님께서 친히 성령님에대하여 말씀합니다.

 

16: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님께서 내가 이세상을 떠난후 또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 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향하여 알게하고 책망하실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강도가 변화가 일어나 회심한 것은 분명 성령님께서 강도의 마음에서 자신의 죄를 알게하고 보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십자가에 달려있지만 회개하지않으면 안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고

불과 몇분전에 똑같이 예수님을 비방했던 자신의 죄가 큼을 알고 반대편있는 강도를 향하여 무섭게 책망하는 것을 봅니다.

 

회심이라는 것은 영어로 conversion 방향전환이라고 합니다.

인생일대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회개와 믿음이 바로 회심입니다. 회심은 죄인된 우리가 주님앞에서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보고 참되고 진실한 회개없이는 믿음이 있지않습니다. 그리고 참된 믿음없이는 회개가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회심 이전의 상태는 온통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회심이후 상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상태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전환이 일어난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옛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으로 변화시작되는 시점이 바로 회심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초로 일어나는 회개와 믿음이 회심이이고 그후에 계속해서 우리가 삶에서 회개하고 믿고, 또 회개하고 믿고 하면서 점점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을 성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강도는 회심이 시작은 바로 죽음을 앞둔 십자가상이었습니다. 그는 죽음보다 더 귀한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회심하는 사건을 일어나게 되었고, 마지막 순간에 짧지만 자신의 고백으로써 방향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회심은 죽음앞에서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것입니다. 성도님! 주님을 만난 이후 여러분에게서 변화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죽는 순간까지도 죄인인 강도 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회심은 참된 회개가 없이 믿음이 절대로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참된 믿음이 없이는 진실한 회개가 우리가운데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방향전환을 하세요. 예전에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될수 있도록 말입니다.

 

셋째. 도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까? 예수님을 변호함 (41)

41.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회심한 강도는 주님을 변호합니다. 그는 조금전까지 똑같이 예수님을 욕하고 비방했던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반대편 강도를 향하여 이 예수님이 행한 일은 옳지 않는 것이 없다고 변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죄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심한 강도는 자신들이 받는 십자가의 형벌이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적절한 처벌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에게 내려진 형벌은 온당치 못하며, 오히려 악한처벌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강도가 변호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것입니다. 한번도 일대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적이 없던 그가 이 예수는 모든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이 이 흉악한 강도를 이렇게 바꾸어버릴까? 누가복음의 본문은 이 강도가 변화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23: 34절 예수님의 용서의 기도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강도가 보기에 십자가에 달려 최후를맞는 예수님의 모습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형으로 함께 최후를 맞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십자가에 달린 마지막 순간까지도 잘못을 뉘우치지기는커녕, 함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비방할정도로 그 마음이 증와 미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어가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자들을 위해 간절한 용서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본 회심한 강도를 바꾸게 한것입니다.

 

회심한 강도는 주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당신의 나라인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즉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천국에 들어갈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신을 희망의 나라로 옮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회심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하게 하는 능력이고 힘입니다. 회심한 강도는 자신의 죽음을 어둠이 아닌 천국에 옮겨달라는 것을 요청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말한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성도님! 우리도 나를 기억해달라고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회심하여 믿음과 회개로 살아가면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요청할수 있습니다. 무엇을 기억해달라고 해야할까요? 우리는 천국을 이미 준비된 사람으로써 무엇을 기억해달라고 해야 할까요? 참된 믿음과 참된 회개를 통하여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강도의 말에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답변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43)

회심한 강도의 요청은 수락하십니다. 수락의 말씀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시간입니다. 오늘 죽고사는 문제에서 해결되어야 할 주님의 시간입니다. 오늘은 주님이 허락하시는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자에게 즉각적으로 선언되어 효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장 삭개오에게도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고 선언하셨습니다.

 

강도는 오늘, 지금 십자가상에서 회심하므로써 구원을 선포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회심의 의미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겠습니까? 회심은 누구앞에서 합니까? 예수님 앞에서입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앞에서입니다. 그는 회심하면서 변화된 것은 예전에 모습이 아닌 변화된 모습의 시작은 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욕하고, 비방하고 모욕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변호합니다. 한 쪽 강도는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쪽 강도는 오늘,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 가운데 돌이켜 은혜를 구하지 않고 죄 중에 영원한 형벌로 들어갔습니다. 오늘날에도 두 편으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따라가는 주님의 성도들로 나뉘어집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앞에서 회심해야합니다

강팍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에게는 자신의 죄를 절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회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회심해야할까요? 첫째는 자신안에 있는 죄입니다. 호세아선지자 외쳤던 자신의 죄를 무시하고 내버려두고 살아가는 자신을 보면서 회심해야합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을 회심해야 합니다.

둘째는 예배의 태도입니다.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이 있다면 회심해야합니다.

셋째는 믿음없는 기도입니다. 믿음으로 구하지않고, 간청하지 않는 기도를드리는 것을 회심해야합니다. 넷째는 삶에서 말씀에 순종하지않는 것을 회심해야합니다. 성도가 삶에서 변화가 일어나지않고 세상사람과 짝하고 똑같은 삶을 살고있는 것이 있다면 회심해야 합니다.

회심한 강도에게 놀라운 변화는 예수님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것입니다.

짧지만 회심한 강도는 평생에 한번 마음에 진심을 담아 주님앞에 회심을 통한 삶의 너무나 큰 선물을 받습니다. 그것은 천국에 이르는 구원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회심이 일어나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회심할 때 부어지는 은혜가 차고 넘치는 은혜로 부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한주간 힘써서 주님앞에 나와 더깊이 주님을 알아 주님을 기쁨이 되는 거룩한 신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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