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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4.4.7 거룩을 위해 힘쓰는 성도

채인기 2024.04.09 06:27 조회 수 : 31

성경 : 시편 24편 1-10절

제목 : 거룩을 위해 힘쓰는 성도

 

하나님의 성품중에 하나는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거룩은 히/카도쉬 라고 합니다 구별하다입니다. 무엇을 구별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삶을 살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방식대로 삶을 살것인지 선택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시편 24편의 배경은 삼하 6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엘리제사장때 블레셋과 이스라엘간에 전쟁이 있었고, 이스라엘은 전쟁에 패하므로써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겨서 블레셋땅 기럇여아림에 머물게 됩니다. 블레셋과 전쟁에서 사울왕과 아들이 죽자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은 하나가 됩니다. 다윗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찾기위해 하나님께 묻고 블레셋과 전쟁을 통해 법궤를 찾습니다. 그리고 시온산 예루살렘 성소에 안치하기위해 가져오는 과정가운데 웃사의 실수로 오벧에돔의 3개월을 머물게 되고 2차시도 끝에 법궤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춤추며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하나님께 번제의 제사를 드립니다.

 

시편 24편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선민 이스라엘 신정왕국의 새 수도로 세우고 하나님과 법궤를 예루살렘인 시온 산으로 모셔오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시편 24편입니다.

삼하 6: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5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인 법궤를 맞아들이는 바른태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 부모님시대는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한때였습니다. 오늘날도 별별 다르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 시대보다 훨씬 낳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때는 먹고사는 문제로 갈등한 사건이라면 이제는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큰문제로 부각되는 세상을 살고있습니다.

사람이 무섭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었을것입니다 여러분은 한번쯤 내안에 또 다른 나를 볼때가 있을것입니다. 내안에 이런것들이 있어서 하면 깜짝 놀랄때가 있었을것입니다.

내안에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을 심리적용어로 에고라고 합니다. 에고는 자아또는 라는 뜻의 헬라어입니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자아또는 자의식입니다.

이 에고는 우리몸,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에고는 몸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동입니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에 주안점을 둡니다. 나의 이익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합니다. 내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욕구가 바로 이 에고로부터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마음이 고장

이 나게 됩니다.

마음이 고장난 상태로 오래 지속되면 마음이 완악한 마음이 됩니다. 내안에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살아갈때에 마음이 움직이게 됩니다. 내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에고인 내가 다른 내가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안에 두마음이 싸우는데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싸우는 우리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고장이 나버리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파괴되어 죄아래 살게 될것입니다. 죄가 자신을 덮은데로 죄로 여기지 않고 무디어진 자신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그러나 고장났던 마음들이 회복되고 고쳐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어제 저는 우리가 필리핀 선교를 갈려는 김대익선교사님이 목포에 와서 만났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노회기간이기 때문에 선교보고를 노회에 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모님이 수술을 하셔서 한국에 잠깐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회 때문에 목포에 오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을 대학이후에 30년만에 같은 노회소속으로 만날 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 친구가 저희 교회에 오자 눈물이 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서로 간증하고 선교이야기를 들으면서 선교사님의 사역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15년을 필리핀 선교사님으로 지금도 헌신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91세인데 영암에서 근로복지에서 일을하면서 아들 선교사님에게 선교비를 보낸다고 말을하더군요. 얼마나 은혜스럽습니까?

그중에 선교사님이 필리핀은 너무나 가난하여 가족들이 2평도 안되는 곳에서 함께 자다보니 근친상간과 성폭행등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초중고등학생들이 임신하여 아이를 낳아기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것은 그것이 죄인줄 모른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이 태권도를 통하여 예의를 가르치고,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하면서 바르게 가르치다보니 자신의 제자중에 아직까지

그런일이 없게되고 그것이 잘못된것인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거룩함을 잃어버린 죄의 결과인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다시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신자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하겠다고 고백합니다. 해산의 수고는 무엇입니까? 철저하게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자신의 헌신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고, 주님을 위해 자신의 순교도 감당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함을 잃어버린 시대에 다윗은 누가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산이란 표현이나 여호와를 위하여 깨끗하게 구별된 곳을 의미하는 그 거룩한 곳이란 표현

은 모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시온산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오를 자설 자는 곧

하나님을 예배드릴 자를 가리킵니다.

 

절대적이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1. 누가 거룩한 시온 산 예루살렘에 예배를 드릴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자입니다.

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다윗은 거룩한 시온산 예루살렘 누가 설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다윗은 천지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세계, 세계가운데 사는 자들, 바다, 강들을 건설하셨다. 이 모든 단어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창조되었음을 다윗은 찬양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이 무엇일까요?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신자입니다.

내 마음과 뜻대로 하지않고 작은것이라도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인생을 내 마음과 뜻대로 살지 않겠다는 고백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은 언제나 주권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죽을것같은 상황에서도 도망자의 신세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었을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삼하 2:1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3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다윗은 더 이상 블레셋땅에 살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로 가라고 말씀하셨고, 그러면 어디로가야합니까? 할때에 헤브론으로 가라고말씀하십니다.

다윗은 가족들과 추종자들의 다 데리고 헤브론 땅으로 갑니다.

또 다윗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

삼하5:18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19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이 말씀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수도를 옮깁니다. 그런데 블레셋군대가 다윗이 왕의 등극을 알고 쳐들어 왔습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할까요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올라가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는 순종할때에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서 볼 수 있는 주권은 첫째는 늘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둘째는 묻습니다. 문제와 상황도 어떤 상황에서도 셋째는 말씀하시면 순종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삶의 패턴입니다. 도망자신세일때에도 다른 나라와 싸울때에도 항상 이 법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와 상황가운데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관점을 하나님께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훈련된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세우시고자할때에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문제나 상황에 자꾸 물어보는것입니다.

이런 패턴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자꾸 십자가앞에 자신이 서있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순종할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완악해진것입니까? 무엇인가에 거룩함이 내 마음에서 깨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욕심일수 있고, 음란일수 있고, 경제적인 돈일수 있고 , 사람때문일수 있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몰리면서 결국이 피폐한 마음으로 변해버렸기때문일것입니다.

성도님!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제일먼저 세웠습니다. 내인생에 주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고 내 인생의 자리에 주님이 좌정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2. 거룩한 시온 산 예루살렘에 누가 섭니까?

둘째. 뜻을 허탄데 두지 않는 신자입니다.

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첫째는 손이 깨끗하며 라고 다윗은 말합니다. 다윗이 손이 깨긋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표현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1:15에서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죄와 폭력으로 얼룩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상태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영적으로 하나님앞에서 성결한 삶을 살려고 힘썼다는 것입니다.

성도님! 우리가 죄를 안지을수는 없지만 죄를 죽이거나 줄일수는 있습니다. 죄를 짓고 난후 반드시 그 죄에 대하여 회심하시길 바랍니다. 회심에 훈련을 반복하게 되면 죄의 자리에 서지 않을려는 마음과 태도가 마음속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하여 민감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손이 깨끗할수 없습니다. 다시말해서 삶의 방식에서 죄의 피로 가득하게 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힘들고 재미없고 지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원인입니다. 죄의 손을 씻는 훈련을 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마음을 정결하며 뜻을 허탄데에 두지 아니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 세상에서

허무한 것을 마음에 품거나 가치없는것에 집중하거나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허무한것과 가치없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하는 일들일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욕입니다. 정욕은 인간에게서 거룩함과 싸우는 무서운 적입니다. 이 정욕이 인간의 마음에 담겨져 있기 떼문에 오직 하면 사도바울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합니까? ! 십자가에 못박아햐합니까? 정욕이 우상숭배가가 되기 때문입니다.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탐심을 정욕이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것들이 무엇입니까 탐욕입니다. 바울은 이 탐심과 정욕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선언합니다.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은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난 여전히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닌 인간의 욕심에 의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바울은 왜! 못박았다고 말을 합니까?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돈 이 두주인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중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통해 탐심과 정욕이 마음에서 올라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목적이 인간의 육체에서 올라오는 탐심이라는 정욕이라는 우상에 찌들어 사는 존재임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것을 기억하면서 주님이 나의 더러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돌아가신것처럼 우리 역시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갈때에 이 십자가가 나를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정욕과 탐심을 끊임없이 계속 십자가에 못박은 신자만이 예수님의 진정한 신자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을 때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거룩함으로 살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될것입니다.

 

셋째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말입니다. 언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말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종종 맹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짓 맹세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자기의 악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도용하는 죄악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말의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악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의도적인 범죄라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사람을 죽입니다. 거친말 거짓말, 비난하는 말은 교회 공동체를 죽입니다. 이 말로는 하나님에 거룩한 산에 설수가 없습니다. 누가 거룩한 시온산에 설수 있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창조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사람을 살리는 언어를 쓰는것입니다.

 

. 거룩한 시온 산 예루살렘에 누가 섭니까? 하나님을 갈망하는 신자입니다.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올라가는 목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만나기 위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자가 거룩한 시온의 산에 서게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윗은 야곱을 거론한 것은 창세기 32장에서 형 에서가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듣고 야곱은 형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재산과 식구들을 나누어서 얍복강을 건너가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얍복강가에서 홀로 남아 하나님과 씨름을 합니다.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때에 어긋났더라

씨름을 했다는 것은 야곱이 하나님께 생사를 걸고 처절하리만큼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은 이곳에서 하나님을만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하나님중심적 사람으로 바꾸어져서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의지하게하시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합니다.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십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길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야곱은 이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부릅니다. 브니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브니는 얼굴 / 엘은 하나님 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입니다.

30.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이 하나님께 간절히 갈망의 기도을 할때에 하나님과 영원토로 교제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란 표현은 결국은 하나님께로부터 자비와 긍휼을 그리고 도우심을 구하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낙심이 오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진보해 나가야합니다. 사탄은 결코 여러분을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교회를 흔들고,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고 요동치게 합니다. 요동치게 하는 마음을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서서 하나님의 얼굴을 계속 구하셔야 합니다. 방법은 단 하나 야곱처럼 씨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갈망하는 기도뿐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마음이 식어질때에 병든 마음이 들어옵니다.

여러분의 지금 마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니 이번주 여러분의 마음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여러분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것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어라!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에 들어오자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쁨을 감출수가 없어서 노래로 표현을 합니다. 다윗은 온 천하에 위엄을 떨치시는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궁정에 문에 입성하시는 것을 묘사합니다.

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이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여러분은 주님의 교회를 생각하시면서 오고싶은 교회가 되도록 힘쓰시길 바랍니다. 교회만이 나의 안식처가 되고 쉼을 얻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지친 심령을 위로받고 이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처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행군하여 진을 칠때에 성막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성막을 향하여 진을 쳤던것입니다. 광야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이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신 성막에 있듯이 우리 마음의 중심도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향하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수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수 있겠습니까?

내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주권을 바로 세운 신자만이 이찬양을 고백할수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찬양할수 있습니까? 이땅에 살더라도 내 자존심만큼은 우상에게 마음뺏겨 허망하고 허탄것에 마음을 두지않겠다고 살아가는 신자가 찬양할수 있습니다.

누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갈망하는 신자입니다. 예배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갈망의 마음이 있는 신자에게 하나님은 예배를 흠향하시고 받으십니다.

삶의 실천은 말씀을 기억하는것입니다. 실천하는 순종의 자리까지 가는 것이니다.

끝까지 십자가를 바라보는 거룩한 신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를 갈망하는 성도에게 진심으로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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