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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가복음 1533-41절 십자가에세 받으신 고통의 진실

 

33-41절 예수님의 죽음 / 42-47절 예수님의 장례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신 제 육시부터 구시까지 곧 정오부터 오후 세시까지 은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지속됩니다. (33) 그리고 십자가상에서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하십니다(34-38)

십자가형을 집행하며 예수님의 운명 과정을 지켜보던 백부장이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 었다고 중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전 하루 중 태양이 가장 밝게 빛나는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갑자기 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사건은 아모스 선지가가 예언한

그 날에 내가 해로 대 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라는 말씀(8:9)의 성취된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암시이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구시에 오후3시에 십자가상에서 큰소리로 외칩니다.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큰소리로 성부하나님의 아버지께 외치고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이 절규의 외침이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말씀하셨을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고통에 가득 찬 큰소리로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귀를 막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공생애 사역하는동안 한번도 성부하나님의 뜻을 저버린적이 없으시는 분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룰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홀로 젊어짐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시는 영적 고통 가운데서 이와 같은 절규가 나왔던 것입니다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분이 짊어지신 십자가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이 절규는 예수님 자신의 죄가 아니라, 온 인류가 범한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고통의 궁극적 깊이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하나님과 단절을 겪음으로써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로 인도할수 있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당하신 고통의 실체와 원인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3시간의 어두움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진노와 저주를 감당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예언하는 말을 합니다.

 

<<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주님은 우리의 죄짐을 지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에수님을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의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는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더러운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진 채찍과 조롱과 모욕을 당하므로써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깨끗하게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심으로써 조롱과 모욕과 고통을 당하신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죄가 아니면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도 없고, 모욕과 고통을 당하실 필요가 없으신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시면서 죄인의 자리로 내몰아 저주의 죽음을 당하게 했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주님의 이 고통의 절규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실제로 버리신 것에 근거한 말입니다 죄의 샀은 사망이며, 범죄한 모든 인류는(3:23 ; 5: 1 2 ) 하나님께 버림 받아 영원한 사망에 처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2위 하나님 이셨지만 성육신하여 우리 인간들과 같이 되셨고 또 비록 그 자신은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위해 죄인과 같이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형벌을 받아 일시적이나마 사망의 고통을

맛보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죄를 죽일수 있는가?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 목사님은 아주 잘 죄죽이기라는 책에서 정리를잘했습니다.

우리는 이땅인 세상에서 실아갑니다.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차있습니다.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3장에서 아담의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아시고 인간의 마음과 생각에서 나오는 모든 계획이 악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하여 노아의 방주를 만들게 하셨고 노아의 8가족외에는 구원의 문이 닫혀 40주야에 비를 내려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쓸어버리게 하셨습니다.

 

이런 악한 생각과 마음이 이땅에 사는 모든자들에게 있습니다. 죄의 뿌리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죄를 죽이기 위해서는 첫 번째가 사도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합니다.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땅에있는 지체가 무엇입니까? 나에게 있는 옛자아의 죄의 본성을 말합니다. 죄의 본성을 죽이라고 합니다. 죽이라는 것은 과감하게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옛자의 본성이 무엇입니까?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이라는 것입니다.

음란 : 불법적인 성관계 / 부정 : 정직하지 못한 도덕적 문란행위 / 사욕 : 감정적 욕망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개인적인 욕심 / 악한 정욕 : 인간에게 있는 보편적 욕구 / 탐심 : 경제적인 욕구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을 의미합니다.

땅에 지체를 죽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탐심입니다.

! 탐심이 우상숭배입니까? 탐심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에 탐심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하는데 그 대상이 누구인가?가 중요합니다

3: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하는 그 대상이 바로 1절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던 자 즉 세례를 받았던 자 즉 교회성도들입니다 3절 성도들은 땅에 속한 옛사람이 예수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땅에것을 죽여야하는 자는 신자를 말합니다.

4절 모든 성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얻었다/ 불신자는 지옥으로 신자는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영광의 주를 보게 될것입니다. 땅에것을 죽여하는 자는 바로 죽음과부활을 가진 신자를 의미합니다.

다시말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향하여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죄의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악하다보니 이모습에서는 선한양심이나 선한 모습이 없기 때문에 땅에 있는것들을 날마다 죽여야한다는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때문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죄의뿌리는 너무나 강해서 심령을 상하게하고, 염려와 근심과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켜 영혼을 파괴함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하거나 외면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는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습니다. 이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씨가 길가에 뿌려졌는데 악한자가 와서 마음에 뿌려진 씨를 빼앗아갑니다. 또 씨가 뿌려진곳은 돌밭인데 말씀을 듣고 즉시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환난이나 박해가 삶에서 오니까 마음에 뿌리를내리지 못하고 넘어집니다.

또 씨가 가시떨기에 뿌렸습니다. 말씀을 들었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때문에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막혀버렸습니다

그러나 좋은땅에 뿌려진 씨는 1006030배 열매를 맺습니다 이 사람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을 맺기위해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염려와 근심과 환난이 오지만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죄를 죽여라, 실로 죄죽이기를 위해 매일 노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

항상 성도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생각과 마음이 항상 악한것임을 우리가알고, 죄가 내안에서 싹트지않도록 죄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죽이는 것을 게을리 하게되면 죄가 우리를 죽일것이라고 말합니다 죄가 넝쿨이 되어 우리를 감싸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 15: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나의 자랑을 한 것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바울은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는것입니다 내 몸을 쳤다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서있는가를 점검하였고, 자신이 사역할 본질을 잊지 않았다는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의 상태를 알고도 내 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계속적으로 죄를 죽이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성도님! 내안에 옛자아의 본성인 음란, 부정, 사욕, 탐심 등이 있지않는지를 보고 내안에서 계속 올라올때마다 죄를 죽여야합니다, 바울은 갈5: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인간의 죄악 때문에 6시간동안 십자가에 매달려계시고 결국은 숨을 거두시게 됩니다.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셨다는 것은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예정하신대로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니다죽으실때에 성소에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버립니다.

15:38. 이에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구약시대때 성전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안쪽 휘장과 성소로부터 안뜰을 구부하는 바깥쪽 휘장 2가지있는데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두 개가 다 찢어졌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돌아가실 때 하나님께서는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있는 휘장을 찢으셨다는 것은 분명한 의미가 있는것입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음 직후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는 휘장을 이처럼 완전히 둘로 찢어 버리신 데에는 다음과

같은 심오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 준다(10: 19).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가져 왔으며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쳐진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 사역을 수행하시기 전까지 인간은 1년에 단 한차례 속죄일에그것도 오직 대제사장만이 속죄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의 대속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상징하는 휘장이 찢겨진 것입니다. 이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보여 주는것입니다(2: 14-16).

-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죄인된 우리를 화목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되어던 우리를 십자가에서 소멸시켰다는 것입니다.

 

둘째구약 제사 제도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구약 시대에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제물이 요구되었습니다. 즉 구약 제사 제도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온전한 회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단번에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제사 없이도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즉 주 예수의 피를 힘입는 것이 그것이다. 라서 더 이상 희생 제물을 근간으로 하는 구약 제사 제도는 오늘날에는 의미가없고, 불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3: 18).

 

그 시간 예수님의 십자가에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로마의 백부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39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자신의 숨기전까지 인간애를 보이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면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23:34 / 43)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때에 그 장면을 목격한 여인들을 말씀합니다.

 

[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자들 ]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때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자가 당당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6 예수님의 시체를 받은 아리마대 요셉은 세마포를 싸서 바위속에 판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려 무덤문에 놓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은 유대인들이 모인 산헤드린공회원에서 그래도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43절에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할수 있게 내어 줄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존귀한 공회원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당시는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출교하기로 이미 결의한 상태여

(9:22) 산헤드린 회원이라도 공적으로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시인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비슷한 위치에 있던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3: 2). 보는 눈들이

많으므로 이목을 피하고자 밤에 그분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두 사람의 변화됨을보여줍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당돌하게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줄 것을 요청했고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습니다

(19:39).

 

이렇게 자신의 직위에서 출교를 당할수 있는 위험한 일인데도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어 당당하게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할수 있었던 용기는 무엇때문일까요? 바로 이들은 땅에것을 소망을 두지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에게는 땅에것에 집착하는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하고, 자신이 예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크리스챤을 배제하고, 주님이 아닌 다른길을 선택하지 않을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그러나 이들은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기에 땅에것에 집착하지 않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신앙과 믿음은 똑바로 주님을 보고 있습니까?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믿음의 결단이 있습니까?

성도님!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게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생각의 게으름일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여 삶을 살아갈때에 세상과 신앙의 갈등에서 미리 앞서 생각해버리고, 그것을 타협하고 그것을 합리화하고, 그것을 정당화 하면서 살아갈때에 우리의 신앙은 뒤로 물러가게 된 것을 내 자신이 보게 될것입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하며 살아갈때에 그리고 내 신앙이 하루에 1cm만 자란다면 성숙된 신앙의 모습으로 자라게 될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더할 수 없이 처절한 고통이었으나 이 죽음이 있었으므로 인류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고우리의 구원은 안전하며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지신 이 십자가는 이를 지켜 보던 여러 사람을 변화시켰고이후로 지금까지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것입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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