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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 : 룻기 1장 15-22절 

제목 : 낙심후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

 

 

▶ 설교 영상 :  낙심후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

 

 

하늘을 높이 날고 싶었던 방패연이 있었습니다. 방패연은 더 높이날고 싶어서 몸을 쭉 펴면 땅에 있는 사람이 실을 팽하고 잡아당깁니다. 이 방패연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실만 없으면 더 높이 오를텐데” / 실만 없으면 별에게도 가볼텐데 / 실만 없으면 구름에게도 가볼텐데 하고 말합니다. 방패연은 실이 미웠습니다. 어느날 방패연이 결심합니다.

내가 실을 끊어야하지방패연은 실을 끊어버리자 바람이 불어와 한번도 오르지 못한곳으로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칩니다. “자유다” “자유다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더니 방패연이 이리저리 휘둘러다가 그만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이 방패연은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땅에 있는 실 때문에 강한 바람을 이겼고, 실 때문에 하늘을 날수가 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키면 더 자유할 것 같은데, 이 예배만 안드리면 시간이 더 생길것같은데, 순종하는 건 구속받은 것 같아서, 교회안에 성도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것에 묶이기 싫어서 죄와 불순종과 의심의 칼로 하나님과 연결된 실을 끊을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안에 갇히는 것, 하나님 은혜안에 머무는 것, 하나님 사랑안에 구속되는 것이 가장 자유롭다는 것을 방패연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려 있을 때 삶의 강한 바람을 버티고, 더 높이 날아오를수 있다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잡아당겨주시고 밀어주시고 바람에 흔들리지 요동하지 않도록 잡아주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묶어있다는 것이 자유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본문 룻기는 사사시대의 배경입니다. 유다땅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에 엘리멜렉이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아내인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유대땅 베들레헴 땅에는 흉년이 들어 먹을것이

없게 되자 이 식구들은 옆 나라인 모압지방으로 가서 살기로 합니다. 남편과 아내인 나오미는 모압지방은 유대 베들레헴보다 훨씬 더 좋을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동경하며 갔던 땅입니다.

부품꿈을 안고 떠났던 엘리멜렉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지방으로 갔는데 그만 나오미 남편인 엘리멜렉이 모압땅에서 죽습니다.

남편을 기댔던 나오미는 신기루와 같은 꿈이 깨지게 됩니다. 그래도 두 아들이 있으니까?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땅에서 이방연인을 며느리로 맞아드리기로 합니다 큰 며느리는 오르바이고, 둘째 며느리는 룻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기대하면서 10년을 모압땅에서 살았는데 그만 남편도 잃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두 아들마저 모압땅에서 죽게 됩니다.

1;1 사사들이 치리하던때에 그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의 두아들이 남았으며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십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서 젊음과 재산, 의욕도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가슴속에 실낱같이 남아 있던 희망과 꿈까지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재기를 위한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않은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룻기에서 처음 등장은 나오미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낙심과 좌절과 아픔을 보여줍니다.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7. 있던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모압땅에서 남편도 두 아들도 잃어버린 나오미는 더 이상 모압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향땅인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실행을 옮기는데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는데 모압며느리인 큰 며느리 오르바 둘째며느인 룻입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두 곳의 지명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베들레헴이요 또 하나는 모압입니다.

두 장소는 서로 대조를 이룹니다. 유다 베들레헴의 이름은 그대로 떡집입니다. 하나님의 집, 말씀의

, 신앙의 고향, 하나님을 경외하는 장소, 언젠가는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축복의 땅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반대로 모압은 어떤곳입니까? 이방 세계, 우상숭배, 음란과 부도덕, 불신앙, 배교의 자리, 하나님을 모르는 신앙에서 멀어지는 땅임을 보여줍니다

 

나모미는 두 며느리에게 두 아들마저 잃어버렸으니 너희들이 사는 친정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처음에 두 며느리는 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나오미 역시 완강하며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늙어서 재혼할수 없다, 만일 아직도 내가 희망이 있어 오늘밤이라도 재혼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그들이 자랄때까지 너희가 어떻게 기다릴수 있겠느냐? 너희가 어떻게 남편없이 살수 있겠느냐? 하면서 두 며느리가 자신을 떠나기를 권면합니다 이렇게 슬픔에 빠져있는 나오미는

 

징계 :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두 며느리를 데리고 유다땅으로 가지않을려고 했던것입니다. 나오미는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비련여인으로 이 시련에서 고난과 슬픔, 불행의 원인은 하나님의 징계의 손이라고 생각을 해서 자신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고백합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모른채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을 합니다.

1:13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는 유대땅에 흉년이 그쳤다(1:6)는 소문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을했던것입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큰 소리로 울면서 간곡한 부탁에 큰 며느리 오르바는 결국 자신의 고향친정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는 룻은 끝까지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고 있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잡으며 같이 가겠다고 말을 합니다. 나오미와 함께 하려는 룻의 고백이 남편을 잃어버린 상황가운데서도 그의 진실한 고백을 통해 삶에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룻의 첫 번째 고백 :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5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며느리 룻에게 민족과 모압의 신까지 동원해서 강력하게 룻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와 같은 나오미의 강력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습니다.

 

룻은 강권하지 말고, 나도 머물겠고. 어머니의 하나님을 나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룻은 친정이 있는 모압땅으로 강권적으로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룻은 어머니가 가시는곳에 나도가고, 어머니가 머무시는곳에 나도 머물겠다고 고백합니다. 다시말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는 고백이고, 불편한 상태일지라도 함께하고, 어떤 어려움도 함께 극복하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룻이 고백한 것이 무엇입니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말씀의 의미에는 룻이 자기 가족과 친척과 그동안 섬겼던 신까지 버린다는 것은 자기를 지금까지 보호해 왔던 울타리와도 같은 모든 보호 영역을 뛰쳐나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시어머니의 백성과 그 하나님에게로 간다는 것은 언어풍습사고 방식가치관등 전혀 다른 환경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그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모든 위험들을 안고가겠다는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룻의 두 번째 고백 : 어머지가 죽는곳에 나도 죽는다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자신이 살아있는동안 나오미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룻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있게 보아야 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며느리의 행동입니다. 절망과 낙심가운데 있을때에 그리고 선택해야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무엇을 선택할것인가를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큰 며느리 오르바란 여인은 시어머니의 간곡한 말에 자신이 섬겼던 신, 그모스신이 있는 친청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믿었던 하나님을 믿을 것을 그리고 어머니의 하나님과 함께 함을 선택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에 머물고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세상의 편안함에 젖어 살게되면 오르바란 여인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것입니다. 한번 선택한 것을 바꾸지않는 룻을 보며 나오미는 더 이상 말을 하지않고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낙심한 가운데서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

나오미는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음이 죽고싶은 심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고향 베들레헴을 돌아오자 마을사람들의 떠들며 반응이 나오는데 초라한 형색으로 남편과 두아들을 다잃어버리고 룻이라는 이방며느리를 데리고 고향으로 귀환하는데 보이는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형편없겠습니까? 마을사람들은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여 베들레햄 여인들끼리 서로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면서 조롱섞인 말과 연민의 정 그리고 기쁨과 감격으로 이가 나오미냐고 연발한것입니다.

형편없는 초라한 모습과 완전히 망해서 돌아온 나오미가 마을사람들의 향해 뭐라고 합니까?

20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가 마을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전에는 풍족하게 모압땅으로 갔는데 이제는 완전히 거지가 되어서 돌아왔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징벌을 주셔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말을 합니다. 나오미의 가슴에는 남편도 죽고, 두 아들마저 죽게한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그 마음속에 가득찼음을 봅니다. ”하나님, 왜 하필이면 접니까?“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데 저에게 이런 큰 시련과 고통을 안겨 주십니까?“ 라고 원망함을 봅니다.

 

그러면서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고 말합니다. 나오미라는 뜻은 기쁨입니다. 마라라는 뜻은 괴로운 , 쓰라림 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내 인생은 기쁨이 아니다. 내 노년은 기쁨이 아니라 괴로운 인생이고 너무나 힘든 날만 남은 쓴 인생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낙심과 절망가운데 있는 그녀. 어쩌면 하나님까지도 버리고 싶은 나오미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것이 탁월한 선택임을 하나님께서는 보여줍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역사하시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 뭐냐하면 피상적인 믿음과 신앙이 아니라 항상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왜 오느냐? 왜 시련이 오느냐?하는 문제에서 피상적으로 알아서는안된다는 것입니다.

 

낙심이 우리에게 오는 이유는 1부터 10까지 지나왔던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과정을 무시하고, 10이라는 결과에서 나쁜 결과를 가져오면 낙심과 좌절을 합니다.

교회가 목표와 목적을 위해 달려갈때에 때로는 그것이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않고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는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게되면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신일이고 안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정이라는게 예정 결과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우리는 그 예정 안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안에서 행하는 어떤 사역도 그 과정가운데 하나님앞에서 충성됨과 성실함의 태도를 가지고 이런

모든 과정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과정가운데 우리의 충직함과 성실함을 통해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 결과의 뜻이 좋든 나쁘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낙심이 오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했는데 낙심이 오더라도 과정가운데 서로가 더 관계가 깊어지고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통하여 우리는 깊은 우대관계를 맺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에서 따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교회 안 와도 된다고 생각하는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중 중요한 한가지는 저와 여러분은 이땅에서 신실한 예배자로 살기 위해 우리는 예배하러 오는것이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3:23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적인 예배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공적인 예배가 중요한 만큼, 삶의 예배에서 우리의 모습에서 올바른 과정이 나오도록 하기위해서는 공적인 예배에 충실하게 참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날마다 개혁이 일어나야합니다. 일주일동안 삶의 예배 과정가운데

가정에서의 삶 하나하나가 다 과정입니다 / 직장에서의 삶 하나하나가 다 과정입니다 / 학생은 캠퍼스의 삶에 하나하나가 다 과정입니다 / 이 과정을 통하여 여러분들이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그그리스도께서 그 이루신 일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뭐냐 하면 우리가 예배자로 살도록 부름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나오미와 룻에 관계속에서 고난이라는 과정, 시련이라는 과정, 고통이라는 과정, 좌절이라는 과정, 아픔이라는 과정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겨낼수 있었겠습니까?

 

베들레헴에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큰 은혜

하나님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에게 은혜와 축복을 예비해 놓고 계셧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22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여기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이 3가지가 드러납니다. 첫째는 사람, 둘째는 때, 셋째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첫 번째 은혜는 모압여인 룻이라는 이방 며느리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가족은 죽거나 떠났습니다. 그런데 룻은 끝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먹을것이 없고, 입을것이 없는 너무나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룻이라는 여인 때문에 베들레헴에서 가장 부자이고 믿음이 좋은 신실한 남자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4:13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6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나오미는 모압에 며느리로 삼은 룻이라는 여인을 통해 가문이 다시 일어나고, 그 가문에서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오실 예수그리스도가 보아스와 룻이라는 여인을 통해 탄생함을 보여줍니다.

 

금 당신옆에 누가 있습니까? 지금 만나게 하시고,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바로 그 사람이

당신의 룻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를 통해 당신을 축복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비롯 믿지않는 내 남편일지라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성도를 사랑하고 목회자를 사랑하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되 그 사람을 통해 은혜 베푸시길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예비하신 두 번째 은혜는 보리 추수 시작할 때입니다.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나오미와 룻이 모압땅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때가 보리 추수를시작할 때 왔다는 것입니다.

때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2: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나오미가 먹을것이 없어 곡식알을 주우러 올때에 보아스는 자기 종들에게 명령합니다. 룻이라는 여인이 와서 곡식단 사이에 있는 이삭을 주울 때 책망하지 말고, 곡식 다발을 뽑아 버려서 가져갈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가장 적절한 때에 돌아오므로써 먹을것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제공받을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낙심한 자들에게 좌절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압이라는 세상에서 살다가 벧엘이라는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온 여인들에게 준비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하시고, 주인으로부터 보호륿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때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세 번째 은혜는 장소인 베들레헴입니다.

1:22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라더라

나오미와 룻이 유다땅 베들레헴은 돌아왔고 그가 있는곳이 바로 죽은남편의 친족이고 그 마을에서 유력자인 보아스가 살던곳입니다.

이 장소에서 그는 먹을 것을 제공받았고, 보아스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그리고 에수그리스도를 오게하는 가문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낙심한 후에 찾아오는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것처럼 여기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낙심과 좌절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사람을 통하여 일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과 환경가운데 있습니까? 좌절과 상실한 마음 가운데 있으십니까? 혹은 내 육신의 질병의 연약함 때문에 아픔가운데 있으십니까?

낙심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모압이라는 세상에서 돌아와 베들레헴이라는 하나님의 집에 머물게 되면 하나님은 예비하신 은혜가 있음을 말씀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하고 나오미라 부르지말고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했던 이 여인은 비롯 볼품없어 보이는 룻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은 실행되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따르는 신자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빛은 자기만을 위한 빛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빛은 세상 속의 빛이고 세상을 위한 빛입니다.

그래서 그 빛됨이 내가 구원받음이 주변의 구원으로 확산되어져야합니다.

예수님의 독특한 특징이 하나가 있습니다. 과거에 예수님 이전에 율법주의자들은 혈루증이나 문등병을 걸리게 되면 어떤 특정한 죄약에 오염된 사람들은 만지지 말라고 구약의 율법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만지면 그 사람은 부정한 사람이되고 따로 정상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고 일주일동안 격리됩니다.

절대로 부정한 사람과 가까이 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11:24이런 것은 너희를 부정하게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은 부정했던 사람 문등병에 걸린 사람을 직접 만지셨다는 것입니다.

5:12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1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혈류병 앓았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졌더니 깨끗해졌습니다. 율법은 만지면 부정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만져야 치유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그런곳이고 그런 신자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담을 싸서 우리들끼리 오염될까봐 벌벌떠는 존재들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속에 침투해 들어가서 세상사람들을 복음을 증거하고 만져서 깨끗하게 만드는 문제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빛입니다. 낙심되고 넘어지고 슬퍼하는 자들에게 가고, 구원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 영혼을 만져야합니다. 그리고 치유해 주어야합니다. 그러기위해서 예수님은 소망이없고, 철저하게 개인주의이고 이기주의이고 좌절과 상실밖에없는 이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불러낸것이고 너희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이한주간도 상실된 마음을 다시 회복하시고 은혜로 찾아오신 성령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승리하시는 한주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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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2024.6.23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 채인기 2024.06.24 32
201 2024년 6.16 심령이 가난한자가 받는 복 채인기 2024.06.22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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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2024.6.2 십자가에세 받으신 고통의 진실 채인기 2024.06.06 35
198 2024.5.26 아테네에서 전도하는 바울 채인기 2024.05.28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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