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마태복음 5:1-3절
제목 : 심령이 가난한자가 받는 복
▶설교 영상 : 심령이 가난한자가 받는 복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는 그 유명한 산상수훈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8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다고 해서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산상수훈은 예수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사이를 살아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의 윤리 헌장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갈릴릴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기전 제자들의 부르실 때 먼저 “치유”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4:23-25)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십니다.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 등 가장 연약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고치십니다. 그리고 바로 5-7장에서 산상설교를 배치합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의 의는 “가르침과 ”치유“를 드러내고자 했던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설교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후 산에서 가르치실 때 제자들이 나와서 산상설교를 듣습니다. 물론 무리도 나왔지만 예수임의 초점은 바로 주님이 부르신 제자들이었습니다. 즉 교회공동체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상설교는 바로 이 땅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가야할 규례이고 헌법입니다.
산상수훈은 가장 중요한 의미는 마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이루러 오셨음을 말씀합니다. 이 의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의, 십자가의 의를 의미합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계명인 복음이며, 신자는 산성설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5:3-10 팔복과 13-16절에서 소금과 빛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야하는 일은 이 땅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팔복을 드러내고 나타내는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신것처럼 형식과 외식에 빠진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되기위해서는 팔복을 통한 소금과 빛으로 세상을 향하여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복은 역설적이며 혁명적입니다. 세상의 일반적인 현세 기복적 행복관을 뒤집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복은 얼마나 잘사느냐?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집안의 내력은 어떻느냐?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기준을 두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사람들의 복의 기준은 부의 부유함에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의 기준은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복이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과 세상의 복의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복을 말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중심의 관점에서 복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의 복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데 비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내세적이고 사람의 변화에 관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소유의 관점에서 말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관점에서 복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지기 위해서는 세상이 말하는 복인 물질이나 부요함의 개념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복의 개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 에 해당하는 ‘마카리오스’ 는 인간이 가치를 둔 물질의 부요함과 편안과 안락함을 초월하고 뛰어넘어 영적인 충만함만으로만 채워지고 가득차게 되어지는 최고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그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팔복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분이시고, 애통해 하시는 분이시고, 온유한 분이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분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고, 마음이 청결하신 분이시고, 화평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팔복은 예수님의 모습이고 성품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예수님께서는 산에 앉아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너희가 팔복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말씀하고 있고, 소금과 빛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어떻게 살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에서 팔복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성품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회심한 사람들에게 임하는 특성입니다.
산성설교는 듣고 실천해야 한다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고 산으로 올라가서 가르치십니다. 무리들이나 제자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마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라이는 그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말씀처럼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설교는 예수님께서 무리들과 제자들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시고 선언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의 배경에서 산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장소로서 신의 계시가 중계되는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구약 배경에서 시내산위의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 백성에게 전했고, 종말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한 산에 모으실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앉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교사들처럼, 권위있는 모습으로 말씀을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3절부터 10절 팔복에서 예수님의 입으로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산성설교의 제일 마지막 7장에서 7:26 나의 이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집을 짓는데 모래위에 지은 사람을 말합니다. 모래위에 지은 사람의 집은
7:27 비가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고 예수님
이 말씀하십니다. 비가 내려서 홍수가 되어 모래위에 지은 집이 쓸어져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래위에 지은 집은 금방 무너져 버립니다. 만약 우리가 팔복에 말씀을 기초로 5-7장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모래위에 지은 집처럼 그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래위에 지은 집이 주는 의미가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지은 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는 건기때는 땅이 말라서 사람들이 길처럼 이용하여 지나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기때가 되면 그땅이 길이 되어서 홍수가 된 물이 넘치게되는 곳입니다. 그곳을 와디 라고 합니다 다시말해서 어리석은 사람은 물이 지나가는 와디에 집을 지은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곳이 물이 지나가는 곳인지 알면서도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잠깐 영상을 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와디인 물이 지나가는 곳에 집을 지을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너지겠죠 무너진뿐아니라 사람의 목숨까지도 위험합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하시는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완악하고 강팍하여 말씀을 무시하고 듣고 행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함의 중요성
5:3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복받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수 있으며 심령의 가난함이 없이는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가르치는 이 말씀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되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심령을“을 붙여서 인간의 마음의 상태나 태도가 가난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자가 복이 있는데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눅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어떤 질문을 합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이땅에 임합니까? 묻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 그래서 그 소망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며 모세오경의 하나님만 믿고 달려왔는데 도대체 언제 하나님 나라에 갈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오경만 붙들면 천국에 들어갈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니의 나라는 여기있다 저기있다 아니라 너희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이미 이땅에서 시작된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심으로써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천국을 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천국도 있지만, 이땅에서도 누릴수 있는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천국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두 종류의 가난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령의 가난은 무엇을 의미할까입니다. 먼저 ‘가난’에는 두 종류의
가난함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프토코스 와 페네스입니다.
첫째 : 가난 /헬: 페네스 / 상대적인 가난이라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가난한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 가난 / 헬 : 프토코스 / 절대적인 가난입니다. 마음이 완전히 파산한 상태의 사람, 가진돈이 한 푼도 없는 거지와 같은 상태의 가난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이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가난을 말합니다. 말만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고백을 하면서 영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프토코스 가난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한는 가난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완전히 번아웃된 상태를 말합니다. 절대적인 의존도는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말씀하신 이 가난은 바로 프토코스 가난 즉 절대적 가난과 빈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프토코스가 아니라, 영적인 프토코스 즉 영적으로 가난한 자를 의미합니다.
이 사람은 스스로 해결할수 없기 때문에 도움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프토코스 가난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겸손함을 알기에 하나님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40: 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나의 인생의 도움이 하나님 밖에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으의 도움만 바라는 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환경이나 처지에서 도우실분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알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신뢰하고 하나님에게 도움과 구원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고 고백합니다.
성경에 자신은 율법으로는 완전하게 지켰다고 자랑하는 한 부자청년이 있습니다.
이청년은 예수님께서 와서 어떻게 하여야 자신이 영생을 얻을수 있는지, 구원을 받을수 있는지 물어봅
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십계명의 말씀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이 청년은 자신은 간음하지도 않고, 살인하지도 않고, 도둑질도 하지않고, 거짓말도 하지않고, 네 부모를 공경했습니다. 즉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을 합니다.
눅18: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0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이 청년의 완전함은 도덕법인 십계명을 다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를 예수님께 드러낼려고 하는 의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의 마음을 아시고 너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너가 부자이니까 재산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시고 난후 나를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청년 윫법은 다 지켰는데 딱 한가지가 걸렸습니다. 이 한가지 때문에 영생의 문이 닫아지게 되었습니다. 구원이 닫아지게 생겼습니다. 영생과 구원의 문이 닫히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부자청년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 마태복음에서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부자청년은 재물로 인하여 근심하여 불순종하므로써 자신의 길을 갑니다. 이 청년은 영생의 문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재물로 인한 근심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상대적 가난을 가진 페네스 가난은 비교의식을 통하여 내게 없음을 알고 가난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열심해 보면서 이루어갈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없이도 얼마든지 할수 있다는 자기 스스로의 자존감 만족감에 빠져 살아갑니다. 바로 부자 청년처럼 말입니다.
프토코스 가난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마음이 파산한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서서 겸손하게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앞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그는 평생 갈릴리 마을에서 고기잡이로 어부의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베드로는 압니다. 바람불 때, 고기가 있고 없고, 어느때에 고기를 잡을지 잡지 말아야할지, 어떤 고기가 많이 나오는지를 아는 베테랑 어부입니다. 우리 인생도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다보면 자신의 일에 대해 자신감이나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자만감에 빠질수 있습니다. 그런 자만심에 빠진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심령의 가난함으로 바꾸십니다.
그는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바다에 나갔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 잡지못하고 돌아온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눅5:45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베드로는 예수님께로 뭐라고 말합니까? 45절 우리들이 밤새 수고하여 고기를 잡을려고 했지만 잡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어떤 결과를 얻습니까? 그물이 찢어질정도로 심히 많이 잡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무들까지 불러서 고기를 잡는데 두 배에 고기가 가득차 배에 물이 잠길정도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프토코스의 가난함을 고백합니다.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는 프토코스 가난함을 통해 마음이 완전히 파산된상태로 항복하고 머리를 숙이고 당신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절대적인 가난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의 모두가 이 예배를드리러 올때에 어떤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프토코스 가난한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그래서 이 예배당에서 앉을 때 자신의 죄가 보였습니까? 그리고 진심으로 고백하며 내가 죄인중에 괴수이고 주님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아니면 이 예배 한시간을 때우면 된다는 매주 의무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심령이 가난한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래도 잘사는 나라에 살고 있고,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모두가 어느정도는 풍요롭지 않아도 누리고 살기 때문에 굳이 하나님이 없이도 살수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물이 넘쳐나는 홍수속에서 진정 마실물이 없다는 말처럼 모든 것이 외적으로는 넘쳐나지만 진정 내마음은 공허하고 허전하고 그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는 빈마음으로 살아가는신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심령이 가난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고 주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프토코스 가난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잘살고 잘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사업 수단이 좋아서 내가 한줄압니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많은 사람들한테 나는
자수성가해서 이만큼 내가 이루었다고 자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너가 잘해서, 너가 능력이 좋아서 부자가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8장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너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내가 네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다른 나라들보다 부요함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복은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에 자식이나 물질에 기준을 두고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훈련이나 징계를 내리실수 있습니다. 신명기 8:16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광야를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지나가게 하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해서입니다.
낮추신다는 것은 이 백성들이 말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애굽의 신들,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땅에 있는 우상들을 섬길수 있는 마음으로 가득찼기 때문에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낮추시기 위해서 광야로 보냈다는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만나와 물을 공급받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철저히 낮아질때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토마스 왓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1.자기 칩착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기 집착에 빠지지않는다는 것은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없이도 얼마든지 할수 있다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십자가를 붙잡는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입술의 고백에서는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것이라 고 고백합니다.
2.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벧전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보다 더 어려운 환경을 당해야 마땅한데도 그만큼이라도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사는 사람입니다.
3.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함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4.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예수그리스도가 외에는 도움을 받을수 있는 어떤 상황도 안되기 때문에 주님이 하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주님 제가 무엇을하기를원하십니까? 하면서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5. 입술에서 찬양과 감사의 고백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부자 때문에 잠을 이룰수 없다면 저는 한번쯤 하나님은 공평하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은 많지만 자식농사를 못지어서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할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자녀들을 말씀대로 키울때에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책임져주시는 것을 봅니다.
심령의 가난함을 어떻게 우리가 알수 있습니까? 사람의 삶의 열매로 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열매로 안다고 말씀합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수 없고, 나쁜 열매가 좋은열매를 맺을수 없다.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심령이 가난함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맺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지금 자신의 마음의 태도를보면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열매를 잘 맺는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다른사람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말이나 행동에서도 절제합니다. 십자가앞에 늘 서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덧입고 가는 신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심령의 가난함은 어떻게 생겨날까?
예수님께서는 5-7장까지 산상수훈에 제일 마지막부분에서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않는자를 비교하시면서 말씀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지혜로운자이고, 말씀을듣고도 햏하지 않는자는 어리석은자라고 2가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그는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받지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나라도 듣고 삶에서 행할려고 한다는것입니다. 자신은 주님이 주신 말씀을 듣고 행할때에 세상풍파가 나를 넘어뜨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게 반석위에 세워줄실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데 그분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한주간 프토코스 가난
을 가지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바고 직장에서 가정에서 어는 곳에서든지 오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묵상하면서 나에게 심령의 가난함을 통해 천국을 누릴수 있는 한주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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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 2024.8.18 나는 하나님께 충성할 것이다 | 채인기 | 2024.08.29 | 43 |
208 | 8.11 의를 위하여 박해를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 | 채인기 | 2024.08.14 | 34 |
207 | 2024.8.4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받음 | 채인기 | 2024.08.07 | 40 |
206 | 2024.7.28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 채인기 | 2024.08.02 | 38 |
205 | 2024.7.21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 채인기 | 2024.07.23 | 29 |
204 | 2024.7.7 맥추절을 감사로 지키고 보이라 | 채인기 | 2024.07.09 | 37 |
203 | 2024.630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 채인기 | 2024.07.02 | 52 |
202 | 2024.6.23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 | 채인기 | 2024.06.24 | 32 |
» | 2024년 6.16 심령이 가난한자가 받는 복 | 채인기 | 2024.06.22 | 38 |
200 | 2024.6.9 낙심후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 | 채인기 | 2024.06.12 | 42 |
199 | 2024.6.2 십자가에세 받으신 고통의 진실 | 채인기 | 2024.06.06 | 35 |
198 | 2024.5.26 아테네에서 전도하는 바울 | 채인기 | 2024.05.28 | 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