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설교

2024.6.23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

채인기 2024.06.24 15:17 조회 수 : 32

성경 : 마태복음 5장 4절

제목 :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 

 

 

 ▶주일 영상 설교 :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 

 

 

 

여러분은 한 주간 심령의 가난함을 가지고 살았습니까? 예수님이 없이시는 살수 없다고 고백하면서 모든 공급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살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자들에게 복되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리들도 들었지만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를 이렇게 비유적으로 표현하십니다.

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씀에서 피리와 춤은 결혼식을 의미하고, 울음과 가슴을 치는 것은 장례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 아이들끼리 먼저 결혼식 놀이를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피리를 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결혼식잔치때 피를 부는데도 전혀 춤을 추지 않는것입니다. 아이들이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아이들이 장례식을 놀이를 하고자 제안하고 장례식를 놀이를 합니다. 상대방 아이들은 슬피 울어주고, 가슴을 쳐야하는데 울지도 않고 가슴도 치지 않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것입니다. 예수님께서닌 감각이 없는 아이들의 상태를 사람들에게 적용하면서 세례요한이 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고 해도 감각이 없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개하라 ,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라고말씀하셔도 여전히 반응이 없는 시대를 비유로 말씀하신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철저한 개인주의 , 탐욕주의 , 문화적 분리주의 , 포트스모덤 이라고 말을합니다. 개인주의로 인해 보이스피싱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속여서 가난한자나 젊은이층이나 시골노인등을 가릴 것 없이 속여서 돈을 착취하는 이들이 지금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 피해로 인해 나이드신 어른들이 억울해서 자살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않습니까? 또 사회적이 이슈였던 전세

계약사기로 인해 청년들, 신혼부부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습니까? 남을 속여서도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피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울어야 할 때 울지도 않고 가슴도 치지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애통함이란?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

3.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애통함이람 무엇을 의미할까요? 왜 심령이 가난한자가 다음에 애통한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먼저 애통하다는 의미(/‘펜데오) 심히 근심하며 (고후 12:21) 고통스럽게 슬퍼하는 것(9: 15) 의미합니다. 창자를 끊는 듯한 아픔, 뼈를 깍는 듯한 고통을 동반한 슬픔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깊고도 심원한 슬픔을 가진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자 즉 프토코스 절대적인 가난을 통해 하나님이 공급하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영적인 가난을 가진 사람, 주님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수없다는 사람들이 바로 절대적인 가난 심령이 가난한자를 말씀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나타나는 반응이 애통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애통함이란 자신이 소유했던 것을 얻고 싶은데 얻지못한것에대 오는 욕망이나 충족하지 못한 슬픔과 애통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재산을 늘리려고 했으나 늘리지못한것에 대한 슬퍼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마르다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히 여기며 울었습니다.

11;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렸을때에는 이룰 말할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갖게 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자녀들이 먼저 세상을 떠날때는 슬픔이 너무나 큽니다. 부모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버리고 감당할수 없을것입니다. 이런 애통함은 그 어떤것도 비교할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애통함이란 무엇일까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신자인 내가 내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훼손될것같은 마음이 나를 사로잡을 때 오는 슬픔을 말합니다.

자신의 행동과 언행이 죄인줄 알면서도 죄의 종노릇하고 하고있는 자신의 죄의 모습에서 오는 애통함을 말씀합니다. 신자로써 말씀의 기준에서 벗어나 신자로써 가지 말아야 곳에 가고,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고,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는 것에 죄에 인식의 애통함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무엇에 대해어떤 문제때문에 애통하는 자를 위로해 주신다는 말씀이겠습니까?

바로 때문입니다. 재산을 손해보고 가족을 잃고삶의 불행으로 인해 애통해하는 이들은 당시에

오늘도 많습니다. 그러나 라는 문제에 대해 하나님 앞에 큰 슬픔을 느끼고 애통해하는 이들은 극히 드둡니다. 자신에 죄에 대해서도 관심도 별로 없습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시면 많이 느끼실것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정신이 이상하다고 하면서 형량을 낮추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죄를 지어도 죄책

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가 경험하는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은 무엇인가?

첫째는 예수님을 믿는자로써 예수님의 모습이 내 삶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애통해야 함

예수님을 믿는 자가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이 아무도 나를 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보지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쩔때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놀래거나 무서울때가 있을것입니다. 내 안에 이렇게 무서운 죄가 있다는것에 말입니다. 이렇게 더럽고 무서운 죄가 내안에서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식하지 못한 자신을 보면서 애통해야합니다.

 

때로는 내 가족조차도 모를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나 자녀가 혼동이옵니다. 교회에서 모습과 가정과 밖에서 모습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면서

어떤 것이 진짜일까하는 착각이 올때가 있습니다. 우리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애통해 하고, 변화되고 싶지않는 자신을 보면서 애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슬픔이 되고 애통함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안에 두가지 법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서 곤고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고백합니다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

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마음안에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싸웁니다. 지금도 우리안에 이런 영적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

.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내 속사람의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합니다.

 

둘째. 예수그리스도의 삶이 나타나지 않으면 결과는 자기만을 위해 삽니다. 이것을 우리는 애통해야 합니다.

신자의 삶의 목적이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나타나는 결과는 결국 자기를 위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안위와 평안 그리고 부요함과 풍요로움에 신경을 쓰며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것에 대한 죄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마지막때가 되면 나타나는 증상에 대해 말씀합니다.

성경은 딤후 3: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4.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것보다 더하여

마지막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애통해야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을 합니다. 신자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은혜는 감사인데 이 감사도 하지않습니다.그리고 세상의 쾌락을 위해 살아가고 자신의 쾌락을 사랑하는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편안함과 안일함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신자에게서 나타나지않는 현상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따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제자가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것이니라.

부인하다 헬/아르네오마이 / ‘거절하다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는 요구 혹은 유혹을 허락지 않고

물리치는 행동을 나타앱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씀은 1. 먼저 자신의 의지와 뜻을 부정하고 또한 자신의 욕구와 육체의 유혹을 허락지 않고 단호히 물리치는 적극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육체의 유혹이 무엇입니까? 탐욕,정욕입니다. 이것이 내 마음안에 가득하면 예수님을 따를수 없다는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욕구가 우러나오는 것을 계속 거절하는 힘을 길러야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2.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므로써

생겨나는 온갖 고난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헌신된 마음을 뜻합니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지금 당장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하여 희생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를 보면서 지금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합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해야할 사명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그 다음에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이순간에도 주님이 주신 사명에 관심이 없고 다른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애통하고 슬퍼해야합니다.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올수 있도록 하는 것은 먼저 믿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또 다른영혼을 구원하는일에 부르심을 받았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라옵기는 자기 십자가를 지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똑똑히 주님의 얼굴을 향하여 이곳을 향하여 보시고 있고 지켜보고 있음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지막때 심판의 때가 되면 하나님앞에 서게 될것입니다.

 

셋째. 자기만을 위해사는 신자는 자기를 자랑하고 높이는데 관심을 갖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애통해야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진 신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싫증을 냅니다 싫증을 내면서 다른곳에서 집중합니다. 여러분의 모습과 태도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자신이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한번이라도 묵상하면서 살아갈려고 하셨습니까? 말씀을 외우고 신자로써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면서 이 한주간 살았습니까? 난 예수님이 아니면 절대로 살수 없다고 고백하면서 말씀대로 살아볼려고 씨름해 보셨습니까? 만약 이것중 하나라도 되어있지 않는다면 여러분중 누군가는 배교의 길을 서는 신자일줄 모릅니다. 배교의 위험의 징조는 복음에 싫증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청교도 신학자 죤오웨 목사님은 배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징조가 있다는것입니다.

1. 복음의 진리를 상실한 신자 ( 예수님의 복음이 하찮게 여기거나 싫증되는 사람)

2. 복음안에 약속된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신자 ( 구원, 영생, 치유, 사랑, 은혜 , 죄사함등)

3. 복음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라는 것에 확신이 없는 신자 ( 관심을 두지 않음)

4. 기독교를 거절하고 다른 종교로 돌아설려는 마음의 태도 ( 로마카톨릭교회의 미신적 교리, 우상숭배적 예배를 구하는 것)

5. 교회공동체안에서 신자들을 경멸하고 사귐을 거절하는 신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사람이

라고 여기는 것)

6. 교회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성령의 사역을 부인하거나 경멸하는 신자.

교회안에는 성령의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심령이 상한자가 말씀과 기도로 치유되거나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제까지 주님을 떠났던 내 마음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은 성령께서 친히 우리 안에서 간구하시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치유,회복,은혜, 기도응답, 기적등 이 모든 것들을 부인하거나 경멸하는 신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돈으로 해결할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징조가 내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애통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진실하게 고백해야합니다.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를 빨리 점검하고 죄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원인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세상이라는 쾌락과 즐거움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애통한자에게 진정한 복은 자신의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지신의 죄에 대해 애통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하는것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무서운 죄악인지 알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주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바로 복입니다.

어부인 베드로는 주님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죄를 보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5: 5 시몬이 대다합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 말씀에서 베드로는 처음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내렸는데 많은 고기를 잡고 난 후 베드로가 이 고백을 합니다. 베드로는 그는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기적을 체험하면서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인 반면자기 자신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임을 너무나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5절에선 베드로는 처음에는 선생님이라고 했다가 기적을 본후에는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죄인이리라고 고백한 것은 자기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것에 대한 깨달음에서 기인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뉘우침에서 대해서 말한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실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인 친구를 데리고 지붕을뚫고 예수님께 내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2:9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우리의 죄를 사하하실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어떤 죄라도 우리가 주님께 고백하면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습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바로 죄의 권세를 이기신 분임을 말입니다. 그래서 죄에서 자유케하는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자유할수 있는것입니다.

더 이상 정죄아래 있지 않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는 해방되었습니다.

 

애통하는 참된 신자는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9 또 이르시되 들을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바로 위에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의 말씀인 씨뿌리는 말씀을 해도 백성들의 마음의 상태가 완악하다는 것입니다.

13:11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3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개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니라 하였느리라.

천국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은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들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눈이떠도 맹인이고, 귀로로 듣지 못하고 듣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5절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지 않고, 자신이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들을귀 있는자는 들으셔야 합니다. 여기서 들을귀는 내몸에 붙어있는 신체적 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들을 귀는 예수님의 말씀의 신적인 권위의 말씀이 들리고, 그 말씀을 받아들일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금은 주님을 믿지않고, 떠나는 배교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주님의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합니다. 천국 복음이 선포되는데도 마음이 완악해지지 않도록 마음의 상태가 깨끗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치 않는다면 여러분의 구원도 흔들릴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혜로운 신자가 되시길 원합니다. 지혜로운 신자는 지금 회심하는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사명을 잃어버렸고, 관심도 없었고 애통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피끊는 심정으로 회심해야 합니다. 애통하는 자의 자세가 바로 회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지한 죄를 가슴을 치며 회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께로 돌아가야합니다. 주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그리고 들을 귀가 준비되어있는지를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죄를 민감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미끄러지지 않고 똑바로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은혜의 강가로 나오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죄에 대하여 예민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배교나 주님을부터 멀어지는 원인이 모두가 자신안에 있는 죄 때문입니다.

야고보사도는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사도는 인간의 성장과정을 죄로 비유하면서 한 사람이 욕심에 이끌려 미혹하게 되었는데 욕심이 한 사람이 잉태했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잉태한 것이 배에 나와서 죄를 짓게 되면서 죄가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커진 죄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사망의 이르고, 심판의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은 결국 나를 유혹에 넘어지게 하는 앞잡입니다.

성도님!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라는 것은 / 프로스쿠네오라는 의미로 엎드린다, 입맞추다 라는 뜻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최상의 존재에게 경의 표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주권자이시고 절대자이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 가장 낮은자의 모습으로 엎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죄에서 돌아서는 자에게 주님이 위로해 주십니다.,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예수님은 죄에 대해 애통하는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것일까? 이유는 죄에 대해 애통하는자를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예배를 드리는 우리성도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아야할 영혼들입니다. 슬픔과 좌절과 외로움과 힘든 상황과 가정적으로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아야할 지체들입니다. 힘드십니까? 외롭습니까? 나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까? 아직도 죄에 허덕이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면서 좌절하십니까? 우리가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다면 예수님때문이라고 해야합니다. 그분이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애통하는 마음에서 위로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날마다 받을 준비를 해야합니다. - 매일 말씀을 묵상함

말씀묵상과 함께 오늘 하루를 이길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합니다. - 기도의 자리에 늘 서라

그리고 죄 아래 있지않겠다고 늘 인식하고 인지하라 사소한 죄라도 민감하라.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죄를 덮어준다는 의미를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덮느니라는 의미는 사람이 사람의 죄를 덮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랑은 다툼을 일으키는 미움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허물 즉 연약함과 부족함을 덮어주고 말없이 용서한다는 의미입니다.

5. 예배를 경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 예배가운데 치유와 위로가 있습니다. 예배를 회복함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읇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신자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준비를 했다는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은 세련되고 진지하게 무조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거짓과 이단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고 다 말씀인줄 알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받아들일만한 받아들일 만큼 타당한가를 분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복음을 참된 복음으로 받아들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뢰아사람들이 지성, 감정, 의지가 학문적으로 지성으로 소유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지성으로 깨닫게 되니 날마다 복음의 말씀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깊이 말씀을 탐구하며 연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위로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고할때입니다. 그 말씀을 살고자 실천할 때 위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앞에 엎드려 눈물흘리며 기도할 때 위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한주간도 심령에 가난함을 통해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시길 원합니다.

자신안에 있는 더러운 죄성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영적인 성숙함을 위해 주님앞에 순종하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7 10.27 수문앞 광장에 영적 대각성운동 채인기 2024.10.30 29
216 2024.10.13 예수를 믿는다는 것 채인기 2024.10.17 25
215 2024.9.29 참된 예배를 위한 준비 채인기 2024.10.04 34
214 2024.9.22 예배는 삶이다. 채인기 2024.09.28 29
213 2024.9.15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채인기 2024.09.18 35
212 2024.9.8 베드로야! 나를 따르라 채인기 2024.09.12 32
211 2024.9.1 나는 말씀을 전파하리라. 채인기 2024.09.03 44
210 2024.8.25 나는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길 것이다. 채인기 2024.08.29 43
209 2024.8.18 나는 하나님께 충성할 것이다 채인기 2024.08.29 43
208 8.11 의를 위하여 박해를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 채인기 2024.08.14 34
207 2024.8.4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받음 채인기 2024.08.07 40
206 2024.7.28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채인기 2024.08.02 38
205 2024.7.21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채인기 2024.07.23 29
204 2024.7.7 맥추절을 감사로 지키고 보이라 채인기 2024.07.09 37
203 2024.630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채인기 2024.07.02 52
» 2024.6.23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 채인기 2024.06.24 32
201 2024년 6.16 심령이 가난한자가 받는 복 채인기 2024.06.22 38
200 2024.6.9 낙심후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 채인기 2024.06.12 42
199 2024.6.2 십자가에세 받으신 고통의 진실 채인기 2024.06.06 35
198 2024.5.26 아테네에서 전도하는 바울 채인기 2024.05.28 4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