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마태복음 5장 5절
제목 :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영상 설교 :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존스 홉킨슨 대학에서 재활학과 의사로 박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승복 박사입니다. 그는 자신과같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줍니다. 이렇게 할수 있는 것은 그 내면에는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의 사고를 이겨내고 당당하게 일어설수 있었던 것은 이승복박사의 내면에 단단함입니다. 자신의 삶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더 영위하게 해주고, 희망과 소망을 줄수 있는 것이 바로 온유합니다.
여러분! 온유함이라는 것은 온순하고 유순한 것을 온유함이라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온유함이라는 것은 이승복박사처럼 심령이 가난함인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차고 언제나 변함없이 성실하게 신실하게 자신이 주어진 일에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단단하게 세우고 도와주는 것이 온유합니다.
한주간 심령이 가난한 마음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살아보셨습니까?살아보시니까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갖게 되던가요? 오늘 말씀은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국어사전에 온유에 대한 정의는 “ 사람의 표정이나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라고 소개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는 천성적으로 부드럽거나 소심하거나 우유부단한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어사전 의미처럼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당시 고대사회인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온유라는 말을 별로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소리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것입니다 사회에서 힘이 있어 권력을 가지고,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을 좋은 덕목으로 생각했던것입니다. 성품이 완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재산이나 지위를 가지고 사는 것에서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란 무엇일까요? 또 갈라디이서에서 성령의 열매중 온유가 나오는데 그 온유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예수님이 마5:5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것임이요 말씀하시는 온유란 헬/ 프라우스 라는 의미로 “그저 무기력하고 나약한 것이 아니라 단단한 내면에서 비롯된 힘”을 말씀합니다.
이 온유를 히 : 아나브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사람” “겸손한” 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23절에서 온유는 헬/프라우테스 라는 의미로 “ 자기에 대한 이기적인 관심이 없고 자기 자랑을 전혀 하지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는 나약하고 힘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힘이 없어서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성경에서 온유는 힘이 있지만 자랑하지 않는 것을 말씀합니다. 즉 힘이 있지만 자랑하지 않는 겸손을 말씀합니다.
프라우스라는 온유는 겸손한, 낮아짐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구약에서 인물로 바로 모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민 12:1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2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이땅에서 온유함을 대표한다면 바로 모세다 라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땅에서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는 말씀하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인 모세가 1절에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합니다. 즉 흑인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누나 미리암과 형인 아론이 모세를 흑인여자와 결혼 했다고 비방을 합니다.
또 모세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에게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느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느냐고 화를 냅니다.
여기서 모세가 누나와 형을 향하여 내가 이스라엘의 대표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셔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셨다라고 권위를 내세울수 있고, 자신을 방어하면서 말할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자신이 대표로써 변증하거나 논쟁할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12장에서는 모세가 권위를 내세워거나 방어를 했다는 장면이나 말씀이 없다는것입니다.
조금 전 온유가 히브리어 “아나브”로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사람” “겸손한 ”이라고 의미가 있습니다. 이뜻은 지금 내가 사람이나 어떤 일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 같아도 견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평하지않고,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모세가 연약하고 힘이 없고, 부드럽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세 내면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거대한 담대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강점이었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가지고 있는 온유함은 무엇일까요? 모세가 가지고 있는 온유함은 “부드러운 성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나누고 나아가 자신을 희생할줄 아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민수기 12장 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라고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온유: 헬/프라우스는 원래 어디서 발단이 되었냐면 거칠고 사납고 잘 따르지 않는 야생동물이 어떤 조련사에 의해 온순하게 잘 길어진 상태를 의미할 때 온유라고 쓰였다는 것입니다. 즉 야생마 길들이기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야생마는 힘이 넘칩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통제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야생마가 조련사를 만나게 되면 달라집니다. 조련사를 통해 훈련되면 통제할수 없었던 야생마는 조련사에 의해 자신의 힘을 통제합니다. 조련사에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야생마였습니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자기방식과 철학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조련사되신 하나님을 만난후부터는 모세는 온유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기전에는 야생마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통제할수 없는 자기방식대로 살아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에 율법의 동해보복법처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그가 하면 그 방식대로 그대로 되갚아야 속이 시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조련사 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분의 손에 우리 인생의 고삐를 잡고 있을 때 우리는 나를 통제할수 있었고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수 있었던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지금도 나를 통제하시는 분이 예수님이 아니라면 나는 지금도 야생마라는것입니다. 어디로 튈줄 모르는 야생마가 되어 통제불능의 상태로 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조련사가 예수님이어야합니다. 그분이 나를 다스리고 제어하고 말씀하시고 훈육할때에 나는 완전할수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면 내 인생은 주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때부터 죄의 늪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고 헤어나올려고 발버둥을 쳐도 넘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온유
예수님의 온유에 대해 말씀하시는 곳이있습니다.
마 11: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다 주님께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자신 누구인지를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은 온유한 분이고 겸손한 분이라고 소개를 하시면서 나의 멍에르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희의 무거운 수고의 짐이 덜어지고 쉼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온유함은 나약하고 힘도 없는 약한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온유함은 헬/ 프라우스 “그저 무기력하고 나약한 것이 아니라 단단한 내면에서 비롯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내면에 능력있는 힘이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자를 살리고, 각종 질병을 고치시고 물고기와 떡으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내면의 힘,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을 얼마든지 감당할수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께 맡길수 있는 인생을 사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온유함입니다.
구약의 선지서에서도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마26:53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로마의 군인들이 잡으러 왔을 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열두 군단 몇천명 ,몇만명이 천사들을 부릴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리고 충분하고 강력한 내면의 힘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잠잠하게 어린양이 털을 깍듯이 잠잠하게 입을 열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다는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실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신것입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모세의 온유은 무엇이었습니까? 부드러운 성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나누고 나아가 자신을 희생할줄 아는 용기”를말한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온유인것처럼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을 위해 희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온유해질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유함은 저절로 되는게 아닙니다.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심령이 가난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 프토코스 하나님이 없이는 살수 없다는 절대적 가난이 우리에게 있고 그다음에 하나님이 없이는 살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다보면 애통한자가 되어야 합니다. 애통이 무엇입니까? 자신안에 있는 죄가 있음을 알고 죄를 멀리하고 괴로워하고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겠다는 진심이 있는 회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때에 악에서 지지않고 죄아래 있지않게 되고 악을 선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온유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신뢰하면서 내면이 담대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삶에서 따라가야하는 온유함
1.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가 온유해야 합니다.
약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말을 할때에는 많이 듣고 말을 적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을 때 화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에서 따라가야하는 온유함 두 번째 2. 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할때에 하나가 되기위해서 온유함
엡4: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야고보사도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하는데 겸손과 온유함으로 성도를 대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라는것입니다.
교회는 가장 연약한 자들이 모였습니다. 다섯손가락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기질과 특성이 다 다릅니다. 세상에 있는 자들을 불러서 예수님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이루어진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바로 온유함과 겸손합니다.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온유가 히:“아나브”로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사람” “겸손한 사람으로 지금 내가 사람이나 어떤 일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 같아도 견디는 것, 억울해도 사람들앞에서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불평하지않고,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여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어떻습니까?세상속에서 모임보다 더 하게 격하게 미워하고, 시기하고, 비방하고 다투고, 온갖것에 휩싸여서 세상 법정에서 싸우는일들이 일어나고 있지않습니까?
교회안에 샘물교회 성도님들이 내면에서 풍겨나오는 힘은 엄청난 강하고 담대하면서 겉으로는 묵묵하게 자신의것을 드러내지않는 온유한 자가 되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성도들의 삶에서 따라가야하는 온유함 3. 셋째는 교회의 목회자와 중직자들 그리고 리더들이 온유함의 품성을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
딤후 2:24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바울은 영적인 아들이고 어린 디모데에게 당부의 말을 합니다. 다시말해서 리더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잇는데 그것이 바로 온유함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두가지 공통적인 단어를 쓰는데 첫째는 모든 사람에 대할때에 온유하라 둘째는 온유함으로 훈계하라는 것입니다. 너 그렇게 못하니? 너 그것밖에 안돼 하는 정죄가 아니라, 모든사람으로 온유함으로 대하라는것입니다.
여기서 온유함이라는 것은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리더의 내면안에 담대한 믿음의 힘을 가지고 견디어 내는 온유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리더들이 온유함으로 대함으로써 듣고 있는자가 회개할수 있기 때문이고 진리를 알수 있기때문이라는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에서 따라가야하는 온유함 마지막 4번째 불신자에게 전도할때에도 온유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교회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한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불신자를 교회로 데리고 와서 양육하고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까지 많은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바쁜 일상가운데서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자신의 희생과 섬김과 있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땅에서 살아갈때에 인간관계속에서 온유함에 미덕이 필요하다는것입니다.
디도서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바로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은 단순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이 아닙니다. 야샹마와 같은 우리 자신을 조련사가 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을 따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물질을 나눌줄 알고 나아가 자신을 희생할줄 아는 용기가 바로 윤유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온유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들의 희생을 통해 너희 백성들과 후대 사람들에게 복음이 확장되어 갈것이기 때문에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온유함이란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강하고 단단함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의 내면에는 언제나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누리고 살면서 죄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늘 깨어있기 때문에 내면이 강하고 단단할 수밖에 업다는 것입니다.
9가지 성령의 열매중 하나가 온유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매가 온유함이라면 오늘날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보면 힘들고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목숨을 함부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안에 내면의 단단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강하게 버틸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외롭거나 자살하는 이유가 이 온유함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것입니다.
온유함의 모조품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합니다. 외모가 온화하면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면 온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외모에서 오는 온유함은 모조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우리안에는 단단하고 견고한 온유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하고, 지치게 한다고 할지라도 내면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서 불안, 염려, 근심, 두려움, 낙심, 좌절 온갖들이 나를 공격한다고 해도 내 내면에는 하나님의 것으로 단단하게 채워져있어서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온유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여러분의 내면은 단단하고 견고하고 겸손합니까?온유함에 헬라어 프라우스인 단단한 힘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면의 힘을 기르시길 바랍니다. 심렴이 가난한 절대적인 가난이 있습니까? 자신의 죄를 보면서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십니까?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지 않으면 살수없다는 절대적인 가난을 의존함과 자신의 죄에 대한 애통함이 없다면 절대로 온유할수 없습니다. 반대로 교만해 집니다.
성도님!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온유함이 필요합니다. 헬라어 프라우스 온유함으로 무기력하고 나약한 것이 아니라 단단한 내면에서 비롯된 힘”을 가진 온유함말입니다. 야생마와 같은 자들을 말씀으로 조련시켜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길을 걷게 할수있도록 조련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면의 단단함과 힘이 있는 능력이 오늘 신자들에게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는 복이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유하면 땅을 상속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까?
마5:5절은 시편 37:11절을 같은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마5:5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것임요
시편 37:11 그러나 온유한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하면서 다윗이 고백을 합니다. 온유한자들이 있다면 반대로 악인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악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37: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7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뿐이라
악인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시말해서 악인들이 성공하는 것 때문에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불평하지 말라고 하느냐? 왜! 시기하지 말라고 하느냐?
37:2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하나님의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이땅에서 살아가는동안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성실을 통해 땅을 차지하게 하고 풍성하게 먹을 것을 제공하실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땅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것입니다. 시편 37편에는 온유함에 대해서 마음이 온화하고, 유순한자들이 땅을 얻는다는 말은 없습니다. 삶에서 자신의 기대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고 하여도 끝가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프토코스 심령의 가난함을 가지고 자신의 죄를 보며 애통해하고 회개하고 돌아설려고 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 온유함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의자히사길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잠깐입니다. 잠깐은 즐기고 좋을수 있지만 내면의 강건함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이 하나님앞에서 불평하지 말아야하는 것은 악인이 잘되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조바심을 가지고 시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을 살면서 깨달았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기위해서
그러면 의인인 신자들이 이 땅에서 땅을 기업으로 얻을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온유한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말입니다. 시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3에서 하나님의 의뢰하고 선을 행하는 것 5절에서 내 인생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
즉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의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은 믿는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나브 “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함을 통해서 기업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온화하고 유순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 땅을 소유하지 못한 가난한 프토코스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 즉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땅을 소유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의 삶에서 심령이 가나한기를 원합니다. 죄에서 애통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내면이 단단하여 강한 힘으로 한 주간 사시고 승리하시면서 간증이 넘쳐나는 한 주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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