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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4.7.28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채인기 2024.08.02 18:46 조회 수 : 38

성경 : 마태복음 5:7절

제목 :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설교 영상 :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사랑하는 성도님! 이 한주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생활하셨습니까? 혹시 다른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동정하고 불쌍히여기고 용서를 통한 사랑의 흔적을 남기셨습니까?

말씀대로 살아보시니까 어떠신가요? 저는 샘물교회 성도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떤 일에도 원팀이 되어 함께 기도하고 움직이고 서로 배려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합니다. 성도님! 예배가운데 선포되는 말씀을 그냥 흘러보내지 마시고 말씀대로 살아보겠다는 분명한 다짐과 생각을 순종할때에 여러분들의 삶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게 될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은 삶의 예배가운데 살아낼때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 여섯 번째의 복은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부터 긍휼히여기는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을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다섯 번째부터 여덟째까지의 복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즉 대인관계속에서 제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관계속에서 여섯 번째 복음 바로 마음칭 청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면 한번쯤은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신자에게서 최고의 행복이며, 최고의 소망일것입니다.

 

인간은 로 인하여 하나님을 볼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으로 인해 신자는 다시 하나

님을 보게 될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우리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볼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하고,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마음이 청결해야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을까? 하나님께 대한 공경함이 없는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의 깨끗하지 못한 마음

유대인들에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 태도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구약에 말라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얼마만큼 외식적이고 형식적으로 마음에 없는 예배를 드렸고 불공경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공경하지 않고, 그리고 제단에 더러운 제물을 드렸습니다.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공경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에 두지않는 결과는 무엇이니까.? 하나님께 드려야할 거룩한 제물을 병든 것, 눈먼 것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나와 드려지는 예배와 예물을 드릴 때 어떤 태도로 드립니까? 사람도 받지않고 먹지않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못합니다.

이때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예배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무엇이리고 말씀하십니까?

1: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이렇게 제단에 헛되이 드릴려면 차라리 누군가가 성전문을 닫아 버렸으면 좋겠다고 탄식의 소리를 말합니다. 너희가 드리는 형식과 마음에 없는 드리는 것을 통해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습에서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경멸하고 공경하지 않는 예배를 드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그런 교회가 있다면 우리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들을수 있습니다.

2: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너희가 회개하지 않고, 처음 행위 즉 하나님의 처음 사랑, 교회형제를 향한 처음사랑을 가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촛대를 무엇을 의미합니까? 촛대는 어두음울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1:20 내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일곱 촛대를 일곱교회라 말씀합니다. 그러면 촛대는 곧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를 옮기겠다는 것은 옮기리라로 번역된 키네소는 본래 한 곳에서 다른 곳드로 옮긴다는 의미라기보다 제거해 버리다밀어버리다는 의미입니다. 다시말해서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없게 되면 일곱교회의 사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제거해 버리고 밀어버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시대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공경함이 없고 경멸하고 마음이 전혀 변하지않았습니다.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는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들이 입술로는 립서비스를 잘해서 나를 공경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이 백성들의 마음은 완악하여 깨끗하지 못하여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들은 예수님을 마음에서 멀어진 이유는 조상들의 전통과 사람의 계명을 교훈을 삼기 때문에 예수님을 경멸하고 공경하지 않고 헛되이 경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시대가 되면 나타나는 것은 24: 10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2불법이 성형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불법이 만연하고 사람들간에 미워하고, 사랑이 식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사람들은 그런다고치더라도 교회안에서도 우리가 들어야할 말씀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자매가 자매들이 서로 불미스러운 관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해야할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마음이 청결한자가 되기를 원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복이 있을것이며 하나님을 보게 될것임을 말씀합니다.

 

마음의 중요성

마음이 왜! 중요할까요? 인간은 타락한 이유 모든 것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생각이라는

자아의 본질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6:5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뿐임을 보시고

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생각하는 것 계획하는 것 모든 것들이 인간의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악하다는것입니다. 부패한 마음, 오염된 마음, 더러운 마음 등 죄로 인하여 인간은 전인격적으로 부패했는데 마음이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마음의 청결입니다. 단순히 종교 의식상의 청결이나 위생상의 청결, 혹은 외형적인 행동적 차원에서의 도덕적 청결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은 인간에게 있는 자아를 말씀하시는데 사람이 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의 중심을 말씀합니다.

좀더 말하면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나는 내적 마음인 감정의 근원과 행동하는 의지 그리고 생각하고 느끼는 지적인 영역으로서 마음의 순수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진짜 더러움은 우리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 인간의 중심에 깨끗하게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마음의 변화는 다른 것으로 변화가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한 자아의 변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은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마음이 청결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청결이란 무엇인가?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볼수 없다는 말씀이 있고, 하나님을 볼수 있다는 말씀이 둘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앞에 설때에 하나님을 알거나 보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첫째 우리가 어떨 때 하나님을 볼수 없는가?

33: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에게 보여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물든 부정한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더립히는 헹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인간이 하나님을 보게 되면 죽음을 면할 수가 없었던 시대가 바로 구약시대였습니다.

모세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대면하고 친구처럼 이야기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모세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만 얼굴은 보지못하지만 등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세우시고, 재정하시면서 남자들은 매년 3번의 절기가운데 하나님께 보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3:17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하나님께 보이라는 것은 이 절기를 반드시 지키고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3대 절기를 중요시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에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본 사람 (14:8-10)

14: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함께 동거동락하면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같이 식사하고, 자고, 생활을 같이 했습니다. 이 모습속에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을 보게 하셨던것입니다. 그분의 모든 부분을 볼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어느날 에수님의 제자 빌립은 예수님께서 와서 성부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느냐? 나를 본 자가 하나님을 보거늘 어째서 하나님을 보이라고 말하느냐 고 반문합니다.

나와 하나님은 하나님이고,내가 하나님 아버지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안에 계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청결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로 더러워진 마음을 하나님과 교제할수 있는 깨끗한 마음의 상태를 늘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청결은 인간 스스로가 할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주님을 따를수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 안됩니다. 강권적인 성령의 능력과 역사가 일어나야 한는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마음이 청결해질수 있을까?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사도바울도 자신도 하나님의 형상인 성품을 닮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합니다. 뼈를 깍는 고통을 통하여 자신도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땅에서 신자가 어떻게 마음이 청결해지느냐의 문제는 아주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인관계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신자들을 신앙의 갈등속에 살게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어쩔때는 믿음보다는 내 감정대로 하고 싶을때가 있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보다 내 생각대로 처리하고 싶을때가 너무나 많고 유혹이 오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청결하게 할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란 너무나 힘이 들게합니다. 얼마나 힘이들면 여러 가지 일들중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마음이 청결한자가 하나님을 볼것이라는 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대로 해야만이 하나님을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마음이 청결해 질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답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청결해 질수 있는 것, 깨끗해질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속에서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한자, 의에 주림고 목마른자, 온유한 자의 마음을 갖는것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첫 번째가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 모범의 답이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저는 한주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보았습니다. 내 마음 깊숙한곳에서 우러나오는 주님의 마음을 알기위해 힘썼습니다. 나보다 남을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더 깊은곳으로 인도함을 받고 싶었습니다. 기도할때에도 오늘 하루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달라고 하면서 계속적으로 말씀을 내 자안의 본성안에 죄의 뿌리를 제거하고 말씀으로 저를 흠뻑 적시게했습니다. 사람을 대할때에도 제 생각속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보았습니다.

 

사람은 관계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싫든 나쁜든 어쩔수 없이 부딪히면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직장에서든지 사업장에서든지 어느곳에서 대인관의 관계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써 산다는 것은 라는 존재를 바꾸는 작업을 하는곳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의 본성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면서 이 사람이 나와 가까이 할 수 있는 친구같은 사람인지? 아니면 나와 가까이할수 없는 적인지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틀이 내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 안에 자꾸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선을 긋습니다.

다시말해서 사람마다 이 사람이 적이거나 친구이거나 하는 평가와 편 나누는 것을 내안에서 구분하는 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틀에 내가 적과 동지를 걸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지만 그 사람을 적으로 보고 관계를 닫아 버릴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을 받아들임으로써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할것인가를 분명한 태도를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분법적으로 적과 동지를 나누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와 맞지않는 적은 없다고 자꾸 나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직장이나 사업장인 장소는 적을 만나기 위해서 간것도 아니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간것도 아닙니다.

직장에서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에 함께 보고 가는것입니다. 그레서 내안에 있는 틀을 자꾸 깨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안에 있는 이분법적 편 가르는 것을 깨야하는데 말씀에 다스림을 받거나 기도를 통한 작업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점점 가까이 느껴지게 됩니다. ”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나도 변화시키고 그 사람도 변화시켜서 관계를 아주 좋게 만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를맺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평가할수 있는가? 전에는 나와 관계맺는 사람이 한사람의 직장인으로 동료로 때로는 친구와 후배로 생각하고 대하였다면 예수님을 믿고 난후는 그런 관계가 아닌 한 사람의 영혼으로 본다는 겄입니다.

관점의 변화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직장생활하거나 사업장의 사람들도 한영혼의 구원하는 관점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내가 변화되었다는 것에 평가를 내릴수 있습니다.

 

한 영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뀌니까 마음이 청결하려고 정직할려고 선한 영향력을 미칠려고 힘쓰거나 노력하게 된다는것입니다. 자신의 변화로 모습에서 한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신경을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옆에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바라본다면 어떤 태도와 자세를 취할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게 될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 : 하나님을 볼것임이요

어떻게 하면 마음이 청결한 상태로 하나님을 봅니까?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답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허탄한데에 마음을 두지말고, 거짓맹세로 삶을 살지 마라

하나님을 볼것이요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구약배경은 시편 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6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을 눈으로 볼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볼것이라고 말씀하실까? 하나님을 본다는 표현은 은유적으로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서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과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려고하고 찾을려고 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갈려고 할때에 알게 되는것입니다.

 

시편 24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하시고 자신은 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그런데 예배자는 성전에 오르기 전에 한 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서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예배자는 먼저는 손을 깨끗해야 합니다. 두 번재는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셋째는 허탄에 마음을 두지 않는것이고 넷째는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아야 함을 시편기자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의 각자 삶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쾌락으로 즐거움으로 탐욕으로만 채울려고 하지말고, 거짓것으로 자기를 포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자들입니다. 종교성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지말라는 것입니다.

대인관계속에서 진실성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진실성이 무엇입니까?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으로써 모습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신자임을 보일려고할때에 그 보일려는 태도에 거짓됨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하나님을 보게되고 알게 됩니다.

 

둘째. 어떻게 하면 마음이 청결한 상태로 하나님을 봅니까?

시편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0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기자는 어떻게 하면 행실이 깨끗해지는지를 말씀합니다. 지키고, 찾고, 두는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말씀을 지킬려고 하라는것입니다. 둘째는 주의 말씀을 마음에 떠나지 않게 하고 전력을 다해 주님을 찾으라는것입니다.

셋째는 자신이 죄를 짓지 않을려고 말씀을 마음에 새겼다는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다스릴 때 내 마음이 청결할수 있고, 내 행동이 깨끗할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멈추어서는 안되는 내적변화의 성장 : 마음이 청결한자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은 성장하고 자라고 있습니까? 다시말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기에 위해 마음을 청결하기 위해 이땅에서 힘쓰고 있습니까?

인터넷이나 뉴스를 보면 사람이 잔인해지고 점점 악해지는 것을 봅니다. 어른들의 모습에서 성숙함이란 찾아볼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악한 것을 닮아갈려고 하지않습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3:11 내가 어렸을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라고 말합니다. 몸은 어른인데 행동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지식이 멈추어져있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어른이 다른점은 신체적인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자아가 성숙해야 합니다. 이럴 때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온전하게 볼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땅에서는 주님을 보는 것이 희미하게 보지만 우리가 주님앞에 설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듯이 아주 자세하게 보게 될것입니다. 그때에는 우리 몸과 영혼이 완전체가 되어 주님을 똑바로 볼수 있을것입니다.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한주간도 마음이 청결한자가 되어 하나님을 보시는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값진 복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것에 힘쓰는 한주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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