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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 마태복음 5장 9절

제목 :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받음

 

 

■ 설교 영상  (쿨릭)

 

 

오늘 말씀은 마5:9 화평하게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것임이요

이 구절은 예수님의 산상설교에서 7번째의 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려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화평을 받는자가 아니라 화평을 할려고 하는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진다는 것입니다

다툼이 일어났는데 싸움이 일어났는데 화평를 만드는자가 갈등과 분쟁이 얼룩진 곳에 화평을 이룰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를 말합니다.

 

일곱째의 복은 구약에서 화평을 가리키는 말씀은 샬롬입니다. 구약의 샬롬은 창조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모든 영역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성취됨을 말씀합니다.

샬롬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 , 인간과 자연의 물질적 관계,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관계등 모든 조건이 평화를 이루것과의 관련되어 말씀합니다.

샬롬이 육체적인 면에서 말할때는 건강이라고 말하고, 샬롬이 정신적인면에서 말할때는 행복이라고 하고, “물질이나 자녀의 생산적인 면에서 말할때는 번영 또는 형통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샬롬의 개념은 포괄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영역에서 건강, 행복, 번영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기초로 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온전함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26: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인간이 사는 세상에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평화가 깨지고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악은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면서 화평이 깨졌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진후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 깨져버렸습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각자의 다른 사고방식과 배경, 가치관 , 이해관계를 가지면서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한 집안에서도 종교적인 문제로 인하여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또 사회적 불평등을 통해서 갈등과 긴장을 가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악용하여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통해 권력의 부를 추구합니다.

화평이 깨진이유를 정신적 요인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사회라는 테두리는 경쟁속에서 살아갑니다. 경쟁에서 이길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두려움, 불안 등이 찾아오면서 내면의 갈등은 심화되고 불안해 할때에 정신적인 불안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자각 면역체계가 깨지는등 마음의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신적인 문제는 국가도 가정도 직장도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화평이 깨지는곳마다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인간의 정신 불안은 더 심각해지고 이것으로 인하여 사회의 많은 악영향을 미치게 될것입니다. / 지금 사탄은 가정을 깨고 있습니다 부부간에 불화가 너무나 심각합니다 이 심각한문제는 교회안에 성도들 가정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갈등하고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부는 말로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자녀들은 방황하고 갈등하면서 아파하고 있습니다. 정말 치유받아야 할 곳이 가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안전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화평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하는 화평은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을까? 분열과 갈등이 있는곳에 너희가 화평을 만들어 가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화평을 만드는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선지자를 통하여 앞으로 평화의 왕이 오셔서 이 세상을 평화의 나라로 만들것이며 이 평화의 왕이 통치를 통해 영원한 평화가 이 세상에 도래할 것을 예언합니다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화평을 이루시고자 오신 분입니다.

에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수많은 천군천사가 찬양하는데 그분을 평화로 오신 분임을 알립니다.

2:14 지극히 높은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중에 평화로다

인간의 타락이후로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평화를 이루고자 하신 분임을 만방에 알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화평과 관련된 말씀을 하실 때 화평을 받는자가 아니라 화평를 만드는자가 될 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화평하게 하는자 : / 호이 에이레노포이오이 의미로 화평에 속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화평을 만들어 가는 자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의미입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를 위한것이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사람과사람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나고, 싸움이 있는 곳에 화평을 만들어가는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은 평화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솔로몬왕은 온순한 사람이고 평화의 왕이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역대상 22:9 보라 한 아들이 내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것임이니라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은 아들 솔로몬을 불러서 하나님의 성전을 부탁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렀고, 크게 전쟁하여 피를 많이 흘렀으니 다윗 너는 성전을 짓지 못할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평황의 왕이고, 온순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성전을 짓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가 솔로몬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온순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온순한 사람이란 히/ 이쉬 메누하 뜻으로 평화의 사람 이란 뜻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자이고 평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라는것입니다. 솔로몬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평화의 사람으로서 주변의 모든 대적들로부터 평화롭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끼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명철력으로 화평을 만들어가는 자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라고 말씀합니다. 이 땅에서는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자의 아들인 사탄의 아들들이 공존함을 말씀합니다. 천국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좋은 씨를 통해 열매를 맺어갑니다. 그러나 사탄의 아들들은 사탄의 성향을 닮아 악의 뿌리를 내리면서 파괴하고 염려와 근심속에서 살아가도록 조종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평화를 원하고 화평을 이루기를 원하지만 사탄은 분쟁을 일으키고,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용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화평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운데서 화목이 먼저 이루어진후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5: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교회안에서 얼마든지 일어나는 형제와 갈등이 생겼을 경우에 적극적으로 화해하는 태도가 화평케하는 행동임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선한 양심에의해 자신이 거스리는 죄나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자기의 잘못된 행동이 기억나거든 지체없이 형제와 자매에게 가서 화해의 노력으로 화평을 서로 이루는 것이 화평케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자 즉 화평을 만들어 가는 자‘ ’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 가 예배가운데서 먼저 가서 화목케하는 직채에 따라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한다는것입니다. 손을 내밀어주고, 긍휼히 여겨주고, 그를 이해해주고, 용서해 주는 마음이 화해이고 화목이고, 화평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예배의 태도에 먼저 나와야하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서로가 화해하고 화목하는 일들이 일어날때에 어떤 에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예배자를 찾으시겠습니까? 분을 품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예배가운데 거하는 형제 자매를 하나님께서 보신다면 과연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치 않을것입니다.

 

저는 지금 마지막때를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와 교회를 향해 성도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산상수훈의 말씀 8복이 정말 필요할때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속에서 왜! 갈등이 없겠습니까? !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 분쟁이 없겠습니까? ! 원수같은 사람이 없겠습니까? 이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이땅에 사는 세상의 논리와 방식과 방법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수같은 사람 , 분열을 조장하고, 화해를 하지못하도록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구약에서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는 미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너희가 들었으나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른다 너희는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핍박하는 자들과 서로 싸우지말고 오히려 기도해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화평케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갈등가운데서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냥 묻혀서 가십니까? 아니면 안보고 말지 하고 언제든지 떠날준비를 하시면서 살아가십니까?

성도님! 우리는 말씀을 듣는것으로만 끝나면 아무런 내 인생에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이들것입니다. 아니 힘이듭니다. 그러나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신다면 원수를 사랑할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 순간부터 계속적으로 구하시면 어느날 성령님께서 원수를 움직이게 하는데 먼저 원수를 기도했던 자신부터 위로를 해주실것입니다. 그리고 원수와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으니까? 뼈를 깍는 심정으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깨져야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훈련을 다른 사람을 통해 시키고 있는것입니다. 상대방을 통해 원수같은 사람을 통해 나를 변화시킬려는 하나님의 계획된 연단과정입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살리는 생명입니다. 사탄은 교회공동체가 무너지기를 원하고 계속 분열시킬것입니다

 

국민일보 신문에 교회 내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교회 내 갈등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교회 구성원의 다양성, 신앙의 차이, 세대 간의 이해 부족 등이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신앙의 차이

성도간에 신앙의 깊이와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교회 내에서도 각자의 신앙 생활이

다를 수 있으며, 이는 종종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예배 방식이나 성경 해석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등이 발생할수 있다는것입니다.

둘째. 세대간의 이해 부족

30대와 40대는 가치의 기준과 사고방식이 50대 이후 중년층에서 노년층 세대 사이에서 신앙적 이해부족으로 인하여 갈등이 생긴다는것입니다. 젊은 세대는 새로운 변화를 원할 수 있지만, 노년 세대는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개인적 문제

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개인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생활 방식, 개인적인 문제 등도 교회 내 갈등을 일어난다는것입니다. 예를 들어, 목회자나 소그룹리더, 중직자들를 통하여 리더십 스타일의 차이나 개인적인 오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것입니다.

 

이런 교회와 성도간의 갈등의 해결방법은 무엇일까를 보여주는 그중에 하나가 갈등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합니다. 이 방법들은 실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들입니다.

1.대화와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데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것이라고 합니다.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2.중재자 활용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데, 신뢰할수 있는 목회자나 리더를 말합니다. 단 중재자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공정성을 말합니다.

3.소그룹 활동은 갈등을 완화하고 구성원간의 유대감을 높이데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신앙을 공유하고, 고민과 갈등을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4.교육과 훈련갈등 해결을 위한 교육과 훈련도 필요합니다. 교회 내에서 갈등 관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구성원들이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갈등과 분쟁속에서 해결방안 중에 하나인 중재자의 활용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화평케하는자가 공동체에 있어야 한다는것입니다. 화평을 만들어가는 자,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하는 성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 여러분들이 화평을 만들어 가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가정안에서, 직장안에서, 사업장에서도 화평을 만들어가는 자, 화평을 만들기 노력하는 신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화평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어느 집에 들어갈때에 꼭 인사할것이 있는데 평안을 빌어주라는것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할때에 그 집에 머물고자할대에 평안을 빌어주는 말을 할때에 그 집이 합당하면 기꺼이 받아들이면 평안의 복이 임하게 된다는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집에서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면 그 평안의 복을 빌어주었던 사람에게 다시 돌아온다는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아는것으로 변화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직장이나 가정에서나 어디서든지 이해관계속에서 내 유익을 위해 화평을 깨는 사람이 되고 있다면 하나님앞에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합니다. 말로 화평을 깨서 상처를 주고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행동으로 화평을 깨고 상처를 주고 있다면 하나님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내 몸이 내 육신이 하나님의 성전인지 아니면 강도의 소굴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고전 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성전안에서 매매하는자들을 내쫓으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을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 몸이 어떤집입니까? 기도하기를 힘쓰는 거룩한 성전을 세우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고집과 불통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습니까? 나로 인해 가정에 화평을 깨고 있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길 바랍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친히 내교회라고 피로 값주고 산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와 가정을 깨는데 앞장서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분열과 분쟁이 있는 곳에 화평을 만든는자가 되어서 당신 때문에 가정이 화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화를 만드시는 피스메이커가 되시길 원합니다.

 

살아본 사람만이 깊은 말을 할수 있습니다.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허탄한 이란 말은 공허다. 헛되다 라는 뜻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신앙도 삶도 공허해진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공허하지 않습니까? 기도했는데, 예배도 드렸는데 공허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말씀을 듣고 삶에서 살지않기 때문에 공허한것입니다. 행함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행함이 왜 중요할까요? 말씀으로 행할려고 할때에 여러분의 삶의 어디서 무너지고, 어디서 통하고, 어디서 유혹이 들어오고, 어디서 갈등하는지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내게 유익이 되려면 내가 믿음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음이 있는 것을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것입니다.

신앙은 앉아서 들을때가 아니라 행할때에 유익이 됩니다. 나에게 유익이 될뿐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남에게도 유익이 되고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을 미션으로 알면 안됩니다. 신앙은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숙제인것처럼 미션이 아닙니다.

신앙은 분명 우리가 믿는 주님을 닮아가야합니다 그것이 목적이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뭔가 정해놓고 그것을 미션으로 이루니까 주님을 닮은 모습은 없고, 내 의만 늘어가게 되는것입니다.

 

예배후에도 여러분의 모습에서는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하는 강한의지의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세상과 다름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자세와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예배를 그냥 왔다가가는 마당만 밟고 가고 떼우는 것으로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분명 달라야 합니다. 세상가운데서도 달라야 합니다. 다름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진짜 영적싸움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지금 예배후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싸움은 에배드리고 훈련 받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가운데서 배운 것을 여러분의 삶가운데서 애쓰는 싸움이 진짜 싸움입니다.

그래야 내게 유익하고 남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패잔병이 아닙니다.

신앙은 매일 내가 처한곳에서 내가 할 싸움을 하고 내게 붙여주신 사람들에게 삶으로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앉아서 말이나 미션으로 하지말고, 내 삶에서 무엇이 변화되었는지 내 삶과 생활이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를 검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신앙이 점점 성숙해지면서 자라고 있습니까? 생각하는것도, 말하는것도, 행동하는것도 성숙해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말씀대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살아본 사람만이 깊은 말을 할수 있습니다. 샘물교회 성도님! 하나님앞에서 삶의 예배속에서 살아보시길 바랍니다. 보옂시길 원합니다. 내가 진짜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진짜 샘물교회 성도라는 것을 행동에서 말로서 화평을 만든자로 그들에게 감동을 주시길 바랍니다.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 이게 무슨 말씀인가?

10: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 화평을 주러 오신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열이 일어나는곳에 기도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줄로 생각하지 말고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린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겠습니까?

 

가족 내의 갈등은 복음을 받아들인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의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가 자신의 가족이나 공동체와의 갈등을 경험할 수 있음을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 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충돌할 때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종종 세상의 가치와 상충하며, 이는 가족들 간의 갈등과 대립을 초래할 수 있다는것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대립에서 예수님은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서로 상반될 수 있음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세상의 부패한 가치와 충돌할 때, 그로 인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신것에 검"이라는 표현은 갈등, 심판, 분열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은 문자 그대로의 무기가 아니라, 복음이 가져오는 갈등과 분열의 상징입니다. 이 갈등은 가족들 사이에서 아주 심각하게 종교적인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국가나 사회나 가정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생명을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이 복음이 들어가고 복음의 순종하는 곳에는 분열되었던곳이 하나가 되고, 갈등이 있었던곳에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일부 사람들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기존의 종교적, 사회적 구조와 충돌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갈등과 분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족들 사이에서도 종교적인 문제가 얼마나 갈등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희 집안에서도 종교적인 갈등 때문에 형과의 문제속에서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가족은 소중하다 귀중하다 그러나 예수님보다 더 삶의 우선순위에 두어서는 안됨을 말씀합니다. 평화가 깨지고 화목이 깨진다고 할지라도 가족을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고, 내가족을 구원해야겠다는 분명한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을 끝까지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구원의 소망의 불씨를 끝지 않으면 언젠가는 주님의 십자가로 화평을 이룰때가 올것임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아들일까요? 십자가로 화평을 이룬자

십자가는 원래 저주와 죽음의 형틀이었지만 에수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평화의 도구로 치유의 도구, 화평의 도구로 이루셨습니다.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다고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 가족들이 예수그리스도로 하나가 될 때가 얼마나 화평이 이루어지고 평화가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보신분들이 많이 있을것입니다.

이 세상은 갈등과 분쟁은 계속 될것입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갈등이 있다고 할지라도 화평을 만드는 자가 있다면 그것을 중재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앞에 서있는 부족하고 흠이 많은 신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성숙해 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세상이라는 전쟁터와같은 곳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데 피한다고 도망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니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셨고, 특별한 지역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 안에서 경작하고 지키며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이 사명이고 신앙의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우리는 선악과를 절대로 따먹어서는 안되는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 한주간도 삶의 현장에서 화평하는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컫음을 받을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갈등과 분쟁이 있는곳에 화평을 만드는자가 되시고 ,화평을 만드는데 노력하는 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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