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10-12절
제목 : 의를 위하여 박해를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
오늘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팔복을 끝을 맺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 애통하는 자... 긍휼히 여기는자, 마음이청결한자 그리고 화평하게 하는 자로 예수님께서는 팔복에 말씀하십니다.
팔복에 마지막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신자가 왜!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야합니까? 신자가 왜! 박해를 받아야 합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의를 위해 박해받는 것, 핍박받는 것은 의 때문입니다. 이 “의”는 칭의로써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오는 박해와 핍박을 의미합니다.
의 때문에 핍박를 받는다는 것은 이땅에 성도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특징이고 이땅에서 살아갈때에 땅의 악의 세력이 주는 핍박과 박해가 신자에게 반드시 뒤따르기 마련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벧전 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는것 때문에 고난이 따르고 핍박이 따르는데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것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거짓 증거를 듣게 되고, 악한 말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은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는 것을 의미하는데 왜! 박해를 받는가에 성경은 2가지를 말을 합니다. 첫째 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욕을 당하게 될까요? 그것은 세상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세상과 짝하며 살아가는 자는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 순종하지않고 할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땅에서 살고 있는 존재이지만 언젠가는 우리 몸도 영혼도 하나님의 나라도 가야할 몸과 영혼입니다.
첫째는 진짜 신자는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려고 하지않습니다. 직장에서도 세상의 방식대로 할려고 하지않기 때문에 욕을 먹습니다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킬때에도 모범을 보이고, 아랫사람을 함부로 하지않고, 식사할때에도 식사기도하죠. 말을 할때에도 거친말, 입에 담지못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술자리나 2차도 가지않을려고 합니다. 자기유익보다는 남의 유익을 위해 힘쓰고, 할수만있다면 정직하게 하며, 모범된 삶을 보여줄려고 힘쓴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업하신분들은 세금을 포탈하거나 뒷돈을 주면서까지 자기 사업을 확장시킬려고 하지않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항상 자기의 모습을 하나님앞에 비추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의식을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을 모습을 보면서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하고, 핍박하고, 좋은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비방과 비난을 하면서 깎아내릴려는 것이 세상사람들의 방식이고 특징입니다.
둘째 왜! 박해를 받는가? 그것은 예수님 때문에 육체적으로 핍박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에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육체적 박해와 핍박을 받으신분들이 있습니다. 그 한 예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고후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여러분!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반 맞았다고 말을 합니다. 몇 대쯤 될까요? 40에 하나 감하면 39입니다. 39* 5= 195입니다. 195대를 한번에 맞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매를 맞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부른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위한 주님의 도구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후 그는 복음의 사명자로 복음의 사도로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을 증거하면서 살았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열방에 전해지기까지 쉬지않고 전진하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가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한계의 상황을 뛰어넘을만큼 그를 복음의 미치게 한 것이 있다면 무엇겠습니까? 단 하나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열방가운데 전하는 것이 그를 믿는자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줄려고 한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 예수라는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그분의 의를 이루기위해 자신의 삶의 전부를 드렸던것이고 인간의 한계상황을 뛰어넘을수 있었던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진실하게 고백합니다.
고후 4: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육여쌈, 답답함, 박해,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가 새겨져있고 그 예수의 생명이 그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 의를 위해 박해를 감당하고 육여쌈을 당하여도 이길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제가 몇 년전 방문한적이 있는 전남 영광군에 있는 염산교회와 야월교회입니다. 두교회는 기독교 선교탐방지로 유명합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북한군들은 전남 영광군에 까지 내려와서 염산교회성도들을 향하여 공산주의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기독교인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학살했습니다. 야월교회는 성인부터 어린아이 까지 65명의 전 교인이 모두 순교했고, 북한군은 약 두달에 걸쳐 전 교인을 처형했고 교인들의 집과 교회에 불을 질러 야월교회의 기독교의 흔적을 모두 없앴다고 합니다. 성도들 대부분이 거의다 몽둥이질이나 구덩이에 산 채로 매장당해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최대의 순교지인 염산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77명의 교인이 순교했습니다. 저수지에 사람들을 내몰고 큰 돌을 묶어 사람의 목에 매단채 어린이나 어른들 상관없이 뒤로 손을 묶고 목에는 큰돌을 묶어서 저수지에 빠트렸습니다. 살려고 물위에 올라올때마다 죽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거나 총으로 싸서 죽였다고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킨 것은 예수님이라는 인류의 구원자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알았던 죽음을 맞이했던 믿음의 선배들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순교를 했던것입니다.
전남은 유달리 기독교 순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수에 손양원목사, 주기철목사님들 선교지가 있습니다.
전남 영암에도 기독교 탐방지가 있고, 전남 영광이나, 증도에서 문증경 전도사 선교센타가 있지않습니까? 너무나 귀한 선교의 피가 흐르는 곳이 전남입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에 말씀하신 것은 모여있던 무리들과 제자들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가장 볼품없고, 소외된자들에게그리고 삶의 가능성이 없는자들에게 복을 선언하셨습니다.
복의 선언은 팔복을 순종하는자들에게 위로를 받을것이고, 배부를것이고, 하나님을 볼것이고, 긍휼히 여김을 받을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을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교회안에 어떤 신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있습니다. 그냥 교회만 왔다갔다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않고 내 신앙만 지키겠다고 생각하신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는 종교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아마 교회안에 일어나 일 때문에 상처를 받았거나 때로는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않아서 그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팔복에 마지막을 통해 너희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고 환난을 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분들은 예수님의 팔복에 대해 말씀은 좋지만 나는 핍박을 받아야할 이유가 없다 . 왜냐하면 나는 가진 것이 있고 필요하다면 살 수 있는 약간의 재물도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 그렇게 살고싶은 마음은 없고,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생각하신분들이 있을것입니다. 또 내 심령이 가난하여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고, 나는 죄를 짓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가슴을 치며 애통할 마음도 없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만 잘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하지않고 긍휼히 여기거나 불상히 여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가진신분들도 있습니다. 나는 누구와 부딪힐일이 없고 또 윤리적으로 죄를 짓지 않을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이 늘 청결한 상태를 유지할려고 합니다. 나는 내 일만 하고 다른 사람을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직장에서 다른곳에서 싸움을 하든 분쟁이 일어나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에 화평을 만들려고 하거나 할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영혼을 위해 울어주거나 전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라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신분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에게서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이런 분들에게 어떤 말씀이 들리겠습니까? 극히 개인주의가 교회안에 들어오게 된다면 과연 누가 가서 복음을 증거할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을 받고 고난을 참고 인내하면서 신앙생활을 할수 있겠습니까?
이 팔복의 여덟 번째의 복은 예수님 때문에 고난과 핍박과 박해를 당할것임을 말씀하고 있고 그런자에게 복이 임하고 천국이 그들에게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핍박과 고난과 환난이 왜! 성도에게 따릅니까? 그것은 성도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려고 하기때문이고, 예수님과 어울리려고 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가지말아야 곳에도 가고,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고,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게되면 적당한 타협은 그렇게 불신자들에게 매력적인 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않습니다. 믿지않는 나나,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신앙생활은 당신이나 별반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핍박이 고난이 가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 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욕을 당하게 될까?
우리가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아야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는 영적 전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Not yet입니다. 아직은 완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우리를 부르실때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야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땅에서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살아간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뒤따르는 것이 영적전쟁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교회에 오다가 다툼이나 기분상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기고 교회에 오신 것이 바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것입니다.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하나님앞에 기도해야하는데 하는 마음을 주실 때 나갈까 말까하다가 기도의 자리에 나와 무릎을끊고 기도할 때 영적 전투에 승리한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품께하신 전도할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그 영혼에게 전화할까 말까 찾아갈까 말까하다가 전화하고 그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우리가 이땅을 살아간다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될것이 영적 전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날마다 영적 전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세상이 공중권세 잡은 자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의를 위한 복이 ‘복’된 이유가 무엇인가 ?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첫째. 우리의 신앙을 자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했는지 성장하지 못했는지 무엇과 비례할수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얼마나 괴로워하고 아파하는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예수님 때문에 아파해 본적 있으신가요?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바로 살지 못한것 때문에 나 자신을 보면서 괴로워해본적 있으신가요? 반드시 이런 아픔이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성장통을 겪어야하는 것은 신앙의 가장 근본이됩니다. 성장을 하기위해서 반드시 예수님을 통한 나의 모습을 비추어볼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더 악해질것입니다. 세상사람인 불신자들은 신자인 우리를 환난에 넘길것이라고 합니다. 불신들로부터 더 힘들게 될것이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 심령이 상하도록 낙심오도록 내 심령을 죽일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라,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을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신자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게 될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혹시 예수님의 말씀처럼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불신자들 때문에 욕도먹고, 거짓증거를 받고, 악한말을 듣고 있는분이 계십니까? 그리고 너무 힘들어 지쳐있는 분이 계십니까?. 심지어는 너무 고통스러워 숨조차 쉬지 못할것같은 지쳐있는 심령이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런 환경과 상황을 역전시킬 분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자가 복이 있고 천국이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런 상황가운데서 끝까지 견디라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견딥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견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견디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예수의 이름으로 믿음으로 버티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주님께서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24:9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늞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아멘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것입니다.
2. 의를 위한 핍박이 복된 이유가 무엇일까? 믿음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신자에게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위로받고 싶어하고 그분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신뢰할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은 첫째. 자기가 크게 잘못해서 박해를 받는 것을 의미하는것도 아니고,
둘째. 자기 어리석다고 미련해서 박해를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셋째. 광신적으로 행동해서 박는 박해를 의미하는것도 아니고 넷째.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사상이나 철학, 정치적인 신념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핍박, 박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를 위해서 받는 박해인것입니다.
예수 믿는 일에는 큰 희생과 대가가 지불해야합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으로부터 욕먹고 박해받고, 온갖 비방과 중상모략을 받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박해로 순교까지 당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까지 왔는지 측정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게 찾아온 고난과 핍박과 박해를 어떤 식으로 어떤 방법으로 대처하고 이겨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9장에서 맹인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맹인의 흙에 침을 발라 눈에 바르십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맹인은 순종하였고 고침을 받아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맹인이 눈을 뜰때가 안식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누구냐고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그를 어떤 사람으로 아느냐고 묻습니다.
요9:17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눈뜬 맹인은 자신이 생각할 때 그분은 선지자일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눈을 뜨게했으니까
바리새인들은 두 번째 불러서 눈 뜬 청년을 부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예수라하는 사람은 안식일에 눈을 뜨게 했으니 죄를 지은 죄인이다 .말하자 이 청년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9: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당신은 죄인으로 볼수 있지만 나는 그분이 죄인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은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비꼬는 말로 응대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 청년은 처음에는 선지라로 알고 있던 예수님이라는 분을 이제는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눈을 떠서 생각해 보니까 알겠다는것입니다. 자신의 눈이 떠보니까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메시야가 아닌가 하는 고백을 합니다.
9: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이 청년은 믿음의 확신이 서게 되었습니다. 내 눈을 뜨게 해준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분이 구약에서 오실 메시야임을 직감했고 또 그렇게 바리새인들에게 고백하자 이 소리를 들었던 바리새인들은 눈 뜬 맹인을 이스라엘서 쫓아내버리는 출교를 시켜버립니다. 출교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써 엄청난 무서운 죄목입니다.
출교는 율법을 범한 자로 여겨 가족과 친구 등 동족과의 접촉을할수 없고, 유대사회에서 영구히 매장되는 것입니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출교를 당하면서까지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시대의 메시야임을 말할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출교를 당하는줄 알면서도 이렇게 말했던것입니다.
출교를 당한 것을 아신 예수님은 청년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9:35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님께서 이 눈뜬 청년에게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묻자. 이 눈뜬 사람은 “내가 믿고자 한다고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주여 내가 믿나이다 라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눈 뜬 청년의 믿음은 어디서 온것일까요? 처음에는 선지자라고 알고 있었던 그가 어떻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수 있을까요 그리고 주여 이제는 제가 당신의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자임을 믿는다고 말할수 있었겠습니까? 이 청년은 예수님이라는 분이 아니면 자신의 눈을 뜨게 해줄 분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청년은 의에 핍박을 받아 출교를 당합니다. 누구때문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것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병든몸을 고침받고도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고 가버린자들도 있습니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얼마든지 고침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이 눈뜬 맹인마큼은 그래도 은혜를 잊지않았습니다. 비록 자신이 출교를 당하여 한가지를 잃어버렸지만 그는 얻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고 참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배반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을 받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되며, 감사를 잊어버려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한자들에게는 미련한것이고,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고백합니다. 미련한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자인 우리는 말씀이 능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말씀을 믿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하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지금 여러분이 불신자인 남편으로부터, 불신자인 직장상사로부터 , 또는 지인이나 친구로부터 예수님을 믿는것 때문에 미움이나 왕따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슬퍼하지 마세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핍박을 받고 있으면 오히려 상이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말씀입니다. 지금 내가 너무나 심한 핍박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환난을 당하고 있고, 왕따를 당하고있는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에수님께서는 내 이름 때문에 , 예수님 때문에 받고 있는 핍박을 기뻐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진짜 너가 그리스도인라는 증거의 표시가 핍박이라는 것입니다. 박해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 예수님께 속한자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요15: 18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게서 세상에 속할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세상 사랃들이 우리를미워할것이고,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려고 하니까 박해하고 핍박을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마디로 세상이 나를 박해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지금 여러분이 고통, 핍박, 환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이 말씀대로 기뻐하십쇼, 그리고 주님안에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박해를 받는 것은 예수님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박해를 기뻐하시고 하늘의 속한자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써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 의를 위하여 박해와 핍박을 받을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5: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첫째는 기뻐하고, 둘째 즐거워하고 셋째 너희의 상이 크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들도 박해를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에 보시면 너희의 상이 크다고 말씀합니다. 왜! 핍박으로 박해를 인하여 발생된 결과가 주님으로부터 큰 상을 받을것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팔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에 말씀하시면서 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복에 대하여 생각할 때 자꾸 세상에 주는 물질의 복, 오래사는 장수의 복을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팔복은 물질의 복, 장수의 복이 세상이 주는 복에 대해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기자는 처음 시편을 시작할 때 “복있는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복“ 히/ 아쉬레 의미입니다.
아쉬레’ 는 ‘에쉐르’의 복수형이다. ‘에세르’ 는 ‘곧다’ ,‘똑바로 가다’ 란 일차적 의미에서 ‘번영하다’ ,‘성공하다’ 란 파생적 의미까지 가지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원문으로 볼 때 ‘아쉬레’ 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삶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것 자체가 복이며,또한 이런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번영과 성공이 곧 복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시는 절대 주권자가 계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신 전능자이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형통하며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됨을 말씀입니다. 누가 팝복에서 복을 받습니까? 아쉬레 하이쉬 :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삶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팔복을 적용하실 때 다른사람을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이 들어야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 말씀을 내 자신에게 적용시켜야 합니다. 이 말씀을 나를 비추어볼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자가 되어 절대빈곤 즉 내힘으로 살지않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살수 없다는 심령의 가난한 분이 되시길 원합니다.
/애통한자가 되시길 원합니다. 자신안에 있는 죄성들을 보면서 내안에 더러운 죄의 목록들을 보면서 회개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회개는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고 죄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입니다.
/온유한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온유함은 얼굴에 나오는 인자함을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자신의 더러운 죄를 계속 고백할때에 내 심령안에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기를원합니다. 내 성품안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것, 자비의 마음입니다. 나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볼때에 아주 중요한 성품중 하나가 긍휼히 여기길 원합니다.
/ 그리고 의를위하여 박해를 받을 때 다시말해서 예수님을 믿는것 때문에 언어폭력을 당하거나 거짓증거를 당할때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을 가지고 살때에 힘들겠지만 힘써 노력함을 하나님앞에 보여주시길 원하고 바랍니다.
누가 상이 큽니까? 이땅에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이땅에서 예수님 때문에 많은 것들을 잃어버릴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재산도 건강도 명예도 진급도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어버릴것입니다. 핍박과 환난과 영적싸움은 끝이 없을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엄청난 큰 고통이 따를수 있습니다. 그때 오늘 팔복의 말씀중 하나라도 기억하셔서 이 말씀이 성도님의 삶가운데 위로가 되시고 위로를 통한 회복이 일어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한주간 사랑의 성도님!
팔복중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묵상하면서 주님이 제시하는 길을 똑바로 걸어갈때에 주어진 복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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