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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4.9.8 베드로야! 나를 따르라

채인기 2024.09.12 13:39 조회 수 : 32

요한복음 21:15-19

제목 : 베드로야! 나를 따르라 ( 순교)

 

 

설교 영상 

 

 

미션이라는 이 영화는 18c 남미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주인공은 과거에 노예상인이면서 전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했던 죄들을 회개하면서 선교사가 되기로 하고 선교사가 되어 미개척땅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사랑을 전하고 죽음을 무릎쓰고 미개척땅을 들어가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우고 복음이 확장되어가지만 그땅에도 외부인들이 들어오면서 원주민을 쫓아낼려는 사람들과 갈등을 맺으면서 이어가는 영화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순교를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복음의 열매를 맛보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을 증거하며 주님의 오

실길을 예비하는 수많은 선교사님과 저 시골오지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목사님들이 계신다는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로코 여선교사님은 결혼도 하지않고 거의 10년째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모로코는 이슬람을 주 종교로 믿고 있는데 이곳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직접 들은적이

있습니다. 10년에 자신이 4000명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돌아온 것은 몇사람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척박한 땅, 황폐한 땅에 주님의 피묻은 십자가의 복음이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나 많은 헌신과 눈물과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예수를 위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멸망에 이르는 영혼을 구원할자를 찾으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3번째 나타나셔서 복음전파 소명을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고향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직접 갈릴리에 찾아 오셔서 떡과 고기를 주시면서 이들에게 다시 순교적 사명을 불어넣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사이에서 오고가는 말씀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그리고 사명을 통한 회복을 주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3번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는 예수님

햇살이 따스한 어느 해변가에서 제자들과 식사를 마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3번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먼저 예수님께서 15절에서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하신 것은 주님은 베드로에게 지금 갈릴리에 있는 일곱명의 가장 가까이 지내는 제자들과 먹고 살아야하는 어부로 둘중에 예수님인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은 이 질문을 던지실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기 전곧 마지막 만찬석 상에서 베드로가 당신께 한 말을 떠 올리셨을 것입니다. 그분이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26 :31)고 말씀하실 때에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바로 베드로가 했던 그 말에 대한 확인의 성격을 띠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그가 비록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는 못하였어도 여전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주께서 알고자 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변함이 없는지를 확인하고자한것 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사랑의 표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고전 13:4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니느라 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랑은 인간에게 주어진 은사가 아니라는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성품을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를 말하는데 오래참는 것, 온유한 것,자랑하지않고 교만하지 않는 것,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방언 때문에 성도들이 시험에 들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방언을 하는데 어떤 성도는 방언을 못합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는사람이 방언을 못하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바울은 131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 라고 말을 하는것도 그사람이 아무리 방언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방언은 의미가 없다고 말을 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는데 그 은사에는 사랑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전도를 할때에도 내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을 때 더 값진 것이고, 사랑이 없다면 사랑할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는 다른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누가 전도할수 있습니까? 누가 황페하고 척박한 이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할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할때에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저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 참고, 견디고 바라고 견디면서 끝까지 오래참고 계속적으로 다가가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미션에서 선교사님이 원주민들에게 한번도 들어보지못한 복음을 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견딤과 인내와 사랑이 필요했겠습니까? 성도님! 전도의 구령의 열정이 식지마세요. 꼭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겠다는 열정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3번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까요? 우리는 여러 가지 각도에 생각해 볼수 있지만 첫 번째는 낙심하고 있는 베드로를 위해 영적인 치유를 하시기 위해서일것입니다.

며칠절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마친 다음에 예수님께서 새 계명에 대해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

13: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말씀하시는데 새 계명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댜.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것이고, 두 번째는 내 이웃을 내 몸과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내 제자인줄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는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당당한지 모릅니다. 베드로 자신은 어느 제자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고 얼마든지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 놓을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당당하게 예수님을 위해 질문합니다.

16: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는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수 없지만 후에는 따라오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왜 지금은 따라올수 없으며 나중에 따라올것이라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3번 나를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고,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것처럼 베드로로도 자신을 위해 십자가의 순교자로 죽을 것을 알고 계셨던것입니다.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다시 대답합니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막상 베드로가 목숨을 던져야 할 위기를 만나자 그의 모든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는 자가 되었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아마도 여러날을 힘들을것입니다. 배신했던 자기 자신을 보면서, 참기 힘들었을것이고, 자신이 왜 그랬는지 자책하면서 괴로워했을것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을것입니다.

베드로는 분명 영적인 침체에 빠져서 세상의 고기를잡는 옛날의 삶을 살고자 했을것입니다. 그렇게 당당했던 그가 이제는 모든 사명을 잃어버렸고 영적으로 병든 사람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영적인 침체와 영적인 낙심에 병을 걸린 베드로를 치유하시고자 다시 베드로를 찾아 오신것입니다. 베드로로와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낙심과 좌절, 자책가운데 빠져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야를 부르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불렀을 때 시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믿기전에 불렀던 이름입니다. 옛자아의 이름입니다. 베드로가 너는 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은 변화되지 않았던 옛 자아가 나를 부인하게 한것임을 깨우쳐주기 위함일것입니다.

 

죽으셨던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자기앞에 나타났으니 베드로가 얼마나 기뻐겠습니까? 완전히 떠나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예수님이 자신에게 나타났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공생애때에 내가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실제로 부활하셔서 자기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면서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예수님이 베드를 향해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그 질문에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3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에 질문에 베드로는 고백을 하면서 영적인 치유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에수님을 부인하고 자책하며 괴로워했던 자신이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통해 그는 영적인 치유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치유를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는지를 묻고 난후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말슴하십니다. 어린 양을 맡길 때 요구하신 조건이 있다면 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양들은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이 양들은 목자없이 살 수 없는 양들입니다. 그런데 그 양들을 베드로에게 맡긴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는 것은 마 4:19을 보면 제자들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들에게 어린양에게 꼴을 먹이고 양들을 관리하는 일까지 감당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1617절에 반복되는 내 양을 먹이고 치라는 명령은 요한복음의 선교 명령라고 할 수 있다.

 

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3번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까요? 둘째는 사도의 사명을 회복하는것입니다.

베드로는 에수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도는 복음음 전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써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고 가르치고 전해야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내양을 먹이라는 3번의 말씀을 통하여 완전히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오순절 성령의 강력한 능력을 통하여 오직 참된 복음을 위해,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주어진 사도라는 특권을 가지고 예루살렘이라는 복음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2:37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40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베드로가 오순절 절기가 되어 예루살렘에 모인 디아스포인들을 향하여 에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선포합니다.

이 패역한 시대 사람들아! 너희들이 죄없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너희들이 십자가에 예수님을 죽였다. 그러나 그 예수님의 성부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 우리가 중인이다.(32)

이 패역한 시대에 구원을 받을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밖에 없다.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합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밥티스마 담그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으로 나의 옛사람, 옛자아는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의 부활로 다시 새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증표가 세례입니다. 너희들의 옛사람은 죽어야 한다. 너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세례를 통하여 주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이때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렸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가하면서 가슴을 칩니다. 이때 베드로는 회개하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외칩니다.

회개의 세례가 일어나게 된 후 예루살렘성에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베드로를 설교를 통하여 3,000명이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장 연약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예수님을 부인하고 모른다고 했던 주님의 제자, 낙심하고 영적으로 침체되었던 그 제자를 예수님께서는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그 말씀한마디로 위로와 힘을 불어넣어주실때에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달은후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디아포스라 유대인들을 다시 깨웁니다.

 

베드로의 사역이 여기서 끝나는줄 아십니까? 복음의 능력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이루면서 예루살렘은 성령의 파장을 일으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할때에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예전에 사도들이 아닙니다. 이틀동안 복음을 증거하지 말라고, 감옥에 가두었는데도 불구하고 복음을 증거되는곳마다 예루살렘성 안에 5,000명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4:4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어떻게 예루살렘성안에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까? 단 하나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능력이 사도들에게 임하게 되었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했던 모든사람들에게 임하면서 성령의 불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된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샘물교회안에도 일어나야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의 기도, 타는 목마름같은 성령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직장에서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줄 압니다. 더운 날씨에 얼마나 지칩니까?

91일부터 릴레이기도회를 샘물교회에서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큰 은혜는 전교인들이 이 릴레이기도회를 함께 동참하면서 매일 자신의 시간에 와서 기도를 하고 갑니다. 어떤 분들은 피곤한 가운데서도 퇴근후에 저녁에 늦게 와서 기도를 하신분, 아이를 안고와서 자신의 기도의 시간을 채우고 가신분, 새벽과 낮에 와서 기도하고 가신분 다양하게 이 기도의 시간을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지금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할때입니다. 한분 한분의 기도가 모여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줄 믿습니다. 저는 다시 말씀드립니다. 가을 새생명 축제 한번을 치루는 이벤트를 할 마음이 없습니다. 많이 동원시켜서 내가 많이 데리고 왔다고 보여주기식 행사는 할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아주 작은것부터 기도의 시간을 뿌리고, 태신자의 영혼들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불러가면서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한 마음이 성도들에게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태신자들을 만나, 식사와 차도 마시고, 작은 선물도 주고 해서 5-7번의 만남을 가지고 각 목장에 모여서 서로를 알게하고, 친분을 쌓은후 1124일 추수감사절 새생명축제 때 일제히 모시고 오는것입니다.

 

여러분! 작은 불이 큰 산을 태웁니다. 큰 산을 태우는 것은 작은 불씨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샘물교회에서 이 새생명축제를 시작하신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면 끝을 맺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과정가운데 우리의 할 일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기다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말씀이 성취됨.

예수님께서 갈릴리바다에서 낙심하고 지쳐있었던 베드로에게 3번이나 내가 너를 나를 사랑하느냐? 그 사랑을 확인후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이 엄중한 명령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진실한 고백을 통하여 사도로써 분명한 직분을 감당할 때 예루살레 성안에는 3,0005,000명 수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샘물교회안에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샘물교회안에 일어날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어린 양을 먹이고,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베드로에게 찾아오셨던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방황하고 갈바를 몰라 헤매고 있는 주님의 양들을 우리가 가서 먹이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저런 핑계와 변명보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과 방향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안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주님께로 인도하겠다는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3.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3번이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까요?

나를 따르라전도를 통한 순교를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셋째는 베드로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준비할수 있도록하시기 위하여 3번이나 질문을 하셨습니다. 18절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젊어서는 내가 원하는곳으로 다녔다면 이제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것을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젊었을 때 주님을 위해서 자기를 던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유받은 이후부터 그는 주의 복음과 주의 양들을 위해, 주의 교회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 남은 몇 십년의 여생을 온전히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것이라는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베드로가 양팔을 벌리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에 표현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를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의미를 구체화시킬수 있는 말씀은 바로 그 뒤에 19절에서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또는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때에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순교할 것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예언의 말씀을 하고 계신것입니다.

 

실제로 베드로의 순교할대 A.D. 64년경 네로 황제의 박해때 지금의 바티칸에서 베드로 자신의 요청에 의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당했다고 합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십자가에 순교하게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부인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못박혀 죽겠습니까? 나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순교를 했습니다.

죽음은 그가 원하는 죽음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주님을 위해서 죽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그 잔인하고 끔찍한 십자가를 그가 원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네가 원하지 않는곳으로 끌고 갈것이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에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앞에서 할수만 있거든 이 잔을 옮기시옵소서 라고 인성을 가진 몸으로 고백을했습니다.

 

사랑하는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을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이 베드로에게 임했던것처럼 그 사랑이 베드로에 다시 일어나 순교적 사명을 감당할수 있도록 한 힘의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맞이하는 오직 두 가지 결론. (심판과 영생)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오직 두가지 곧 생이라는 사망과 영생 두가지 중 하나의 끝을 맞게 됩니다 다른 가능성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예외없이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정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죽음의 적나라한 실체와 하니님을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는 그것과 다른 결말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구원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사망과 영생이라는 두가지 중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인간에게서 죽음앞에서는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다른 모든 현실문제를 뒤로 하게 됩니다. 살아생전 씨름하던 직장문제, 자식문제, 경제적인 문제 등 죽음앞에서 더 이상 중요한 현실이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사형선교를 받았는데 이런것들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죽음보다 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하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분들도 있을것입니다 여전히 지금 나는 죽음보다 더 큰문제가 놓여져 있기 때문에 당장 죽음이 실제적으로 느껴지지 않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잊지 마세요.

우리 모두 오래지 않아 이 두가지 결론 중 하나에 이를것입니다. 누가 먼저 될지는 알수 없습니다. 나이가 젊다고 더 멀다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일 예배후 낮시간에 제자훈련을 받은후에 그날 저녁에 친구들과 식당에서 식사하고 와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언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것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면 이 죽음을 가져오는 원인이 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이 불순종의 결과가 죄이기에 모든 인간은 사망과 심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생이라는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이 영생의 문제는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영생이라는 본질적인 의미는 단순히 끝없이 계속 살아가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생은 요17:3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아는가운데서 영원히 사는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5:24 나 보내신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자들에게는 영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죽음과 영생은 단 한사람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않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것입니다 죽음과 영생의 문제의 키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고, 또 가지고 있습니다.

이땅에서 살아있을때에만 기회가 있는것입니다. 이땅에서 예수님을 믿게 해주어야만 하는것입니다.

그일을 하기위해서 지금 새생명축제를 준비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늙어서 네 팔을 벌리리니 라는 말씀을 통해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의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고, 나를 따르라는 순교적 사명을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한주간도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따라야할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기에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하는것입니다.

여러분! 9월 릴레이기도는 멋으로 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태신자의 이름을 부르셔서 기도하시고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 수 있지만 기도하는 시간을 정한 이 약속을 최선을 다해 지키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예수님과 함께 일할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한사람보다는 두사람, 두사람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세워져서 이 패역하고 척박한 땅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우리가 전했던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진실한 신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기뻐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세대를 준비하여 주일학교,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들까지 주님의 참된제자로 세워 이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곳에 샘물교회를 세우시고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이 될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가 만나고 있는 태신자에게 문자도 보내시고, 만나서 식사와 차도 마시면서 주님이 주신 영생의 말씀을 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만남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이 여러분의 삶가운데 이루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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