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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4.10.13 예수를 믿는다는 것

채인기 2024.10.17 09:58 조회 수 : 25

성경 : 요한복음 13:21-30

제목 : 예수를 믿는다는 것

 

* 설교영상 : 예수를 믿는다는 것  

 

교회안에 성도들의 영적무기력이 어디서 올까요? 교회안에 도무지 삶이 바뀌지안고 하나님앞에서 인격이 바뀌지 않는데도 교회를 다니는것만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날교회안에 그런 사람들이 수가 적지 않게 있는 것이 교회의 영적 무기력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안에 자신의 모습을 보지않고 주님앞에서 회심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자지들의 경험과 판단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신자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너무나 간단하게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자유분방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을 교회안에 심을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교회안에 가장 무서운 적이 들어오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사탄이 성도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교회안에 생명력, 생기, 자유, 기쁨의 감격, 예수그리스도로 믿음의 신앙을 지키려는 능력등 이러한 모습이 많은 성도들 가운데서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바로 이시대의 영적 암담합니다.

 

남의 삶에서 위로 받지 정작 자신안에 일어나고 있는 삶의 능력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것에 대한 착각 나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신자, 변화되기 싫어하는 신자, 하나님의 말씀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며 독단적으로 살아가는 신자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가 섞여있는 것처럼 참과 거짓이 함께하고 예수님을 믿는것과 믿지않는 것이 뒤섞인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믿는자와 믿지 않은자가 멍에를 같이 할수업속, 의와 불법이 함께 할수 없으며 빛과 어둠이 서로 사귈수가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 곧 우상이 서로 조화될수 없을 만큼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고후 6: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빛과 어둠이 어떻게 함께 공존합니까? 예수님과 어떻게 우상인 벨리알이 함께 조화를 이룰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와 우리의 몸이 어떻게 교회가 세상적인 방식과 우상의 찌들린 세상의 생각과 몸으로 함께 공존하며 살수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빛과 어둠이 얼마든지 서로 사귈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과 우상이 서로 조화될수 있다고 세상은 말합니다.

 

회심하지 않는 가룟유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가룟유다와 같은 신자들을 예수님을 회심시키지만 그들은 회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는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룟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 사역을 했던 인물이고 제자이기 때문에 그의 인생에서 왜! 낙오자가 되어버렸을까? 예수님으로부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뻔 했던 인물이 되었버렸는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어 파는 가룟유다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돌아보아야합니다.

먼저 가룟유다를 말하기전에 우리가 가룟유다와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될수 있는 요지가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아니겠지요. 하는 어느 제자중 한사람으로 생각하는 제자처럼 자신이 의롭고 깨끗하다는 모습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몇시간 전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나를 팔리라하셨을 때 다른 제자들은 아무도 눈치를 못채고 정말 이런 일이 있을수 잇는가?’ 라는 의구심만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아셨지만 다른 제자들이 눈치를 채지 못할정도로 가룟유다는 나름대로 완벽한 모습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가룟유다 마음안에는 위선, 거짓, 속임, 배반, 배신, 예수님을 팔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우리가 생각할때에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었을까?’에 대답은 가룟유다의 삶 전 과정에서 발견될수 있습니다.

가룟유다도 분명히 다른 제자들처럼 처음에는 예수그리스도에게서 큰 매력을 느끼고 장점을 발견했을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야말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왕국을 세우실 메시야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능력에서 죽은자를 살리고, 눈먼 맹인을 눈뜨게하고, 귀신들린자를 낫게하는 이적을 보면서 분명 저분은 다른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을 했을것입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그의 말씀을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니까? 자신 역시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 되면 높은 한자리 정도는 차지할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닐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는 제자들중에 돈맡은 사람으로 신임을 얻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서 들었고 제자들과 함께 전도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룟유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회심하지 않는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때에 유다와 같은 사람들이 교회안에 얼마든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직분을 맡고있고, 사람들로 신임을 맡고 있고, 탁월한 능력과 역량을 발휘하면서 교회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실제로 그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아닐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룟유다와 같이 예수님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가룟유다를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가룟유다와 같이 예수님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탐욕을 꿰뚤어 보시는 예수님이 싫었던 가륫유다

우리는 가룟유다의 행실을 통하여 유다의 마음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유다는 너무나 싫었습니다. 무엇이 싫어을까? 가룟유다는 탐욕에 눈이 먼 자신을 꿰뚤어보시는 예수님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서는 안될 일들을 벌이는 것을 보입니다.

가룟유다 무엇을 잘못 믿었습니까? 구체적으로 행동에서 드러나는데 첫째는 유다는 물질에 대한 욕심, 돈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강했습니다.

12:4-6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가룟유다는 마리아가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신 것을 보면서 이 향유를 어째서 예수님의 발을 씻는데 쓰느냐? 차라리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더 좋았을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다의 마음을 아시고 가룟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는 도둑놈이다. 그는 돈궤를 맡고있기 때문에 그것을 돈을 헌금하면 훔쳐갈려고 생각햇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가룟유다의 어떻게 잘못했는가?

26:14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30냥에 예수님을 산헤드린 공회원들에게 팔아 죽게 할려고 대제사장들과 예수님의 죽음을 가지고 거래를 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은 30냥을 주면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거래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버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을 근거로 우리는 그가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물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것은 맞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보는것입니다.

!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을까입니다. 이것만이 예수님을 팔아넘긴 결정적인 이유였을까? 실은 예수님은 부자이기는커녕 머리 둘곳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신분입니다. 게다가 유다가 맡은 돈궤라고 해봐야 작은 필요를 채울 만큼의 소액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을 팔 때 받은 30”도 그리 큰 돈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물질에 대한 탐욕이 예수님을 팔아넘긴 주된 이유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팔아 버린 결정인 이유는 무엇일까?

유다는 예수님께서 유다의 마음의 중심을 항상 꿰뚤어 보셨기 때문에 견디지 못해서 예수님을 팔아버린것입니다.

 

탐욕이 가득찬 자신의 심중을 예수님께서 꿰뚤어보시는 것을 견딜수 없었던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비유로 말씀하실때에 열두 제자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6: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유다는 이미 주님이 자신을 꿰뚤어보신다는 것을 알았을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와 자기 사이의 거리를 느끼고 있었던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팔것이라고 말씀하신대도 불구하고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지도 않고, 퉁곡하거나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반감을 갖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말씀을 합니다.

 

13: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너희들은 온몸이 깨끗하다 그러나 열두제자들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유다에게 말씀하신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신것입니다. 다시 제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님을 위한 살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말씀하시는대도 불구하고 유다는 회개의 기회를 놏쳐버립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심중을 다 아시면서도 인내하시면서 기회를 주셨고, 돌이킬수 있도록 권면하셨으며 고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집이 센 유다는 그것을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13: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조각을 적셔다 주는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중에 한 사람은 마귀다. 그는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마귀가 바로 가룟유다라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가 예수님을 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가 공생애 3년중에 2년의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누구를 지목하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유다는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 버렸고,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꿰뜷고 있는 예수라는 사람이 죽어야 자신이 탐욕을 채울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나갔는데 밤이었습니다. 유다의 퇴장과 어둠의 시작을 연결시켜 이야기함으로써 그의 배신과 악행으로 인해 밤이 시작된것처럼 이 밤은 일상적인 밤이라기보다 어둠의 권세아래 있게 될 죄악의 밤입니다. 지옥같은 밤입니다.

 

우리는 유다처럼 예수님을 믿어서는 안된다

결국 가룟유다의 멸망의 전과정은 우리들에게 유다처럼 예수님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은 쉽게 자신은 유다와 다르며 우리 주변에 유다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유다같은 사람이 이시대 ,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이것은 교회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설교를 듣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을 향한 반복된 말씀을 선포하는데도 이 말씀을 자신을 향한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향해서 돌이키라는 말씀을 싫어하고 전하는 자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이 선포될때에 이 말씀을 내 자신에 말씀하신 것으로 비추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자신의 심정을 꿰뚫고 예수님을 싫어서 죽일려고 했던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 한사람을 위하여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비롯한 모든 교회 공동체 소속된 성도들을 향하여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한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계속 반응하지 않는 것은 사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배당에 앉아 예배를 드린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손님에 불과합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했을 때 다른 제자들은 반응을 하는데 가룟유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않습니다.

교회안에도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처럼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말씀임을 깨닫고 돌이키는것입니다. 또 다른 부류는 유다처럼 자신을 향한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마음 문을 닫고 말하는 자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가는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끼여 머뭇거리고 있는 백성들(신자들)

왕상 18장에 우상을 섬기도록 주도했던 아합왕에게 하나님께서 36개월동안 비를 내리기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예언이 이루어져 남유다 나라가 극심한 기근으로 초토화되버립니다. 그러나 아합왕은 조금도 움직이지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부르시고 비가 다시 내릴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대적을 합니다.

엘리야는 우상을 섬기는 거짓선지자들과 대결을 하는데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를 대결을 해 보자는것입니다.

이때 그 모인자리에 세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합왕과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선지자 400명입니다.

또 다른 한편에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우상인 바알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며 머뭇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도전하는 대상은 세 번째 부류사람 중간에 낀 사람들 /.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 하나님도 좇고, 우상도 쫓는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엘리야는 말합니다.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너희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 바알을 쫒으라고 말을 합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둘사이에서 머뭇머뭇거리는 중간에 낀 신앙상태에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도 선택하고, 세상도 선택해서 둘사이에서 재고 있고, 머뭇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왜! 제일먼저 중간에 낀 머뭇머뭇거리는 사람에게 지적합니까? 중간에 낀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판하고, 교회를 비판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주요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이땅에서 일을합닏

 

참신자는 자신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죄악되고 교만하여 추하다는 고백을 더 많이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위선적인 신자들은 자신이 그렇게 심하게 죄악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회개할 필요도, 회심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는 신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가운데서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베드로처럼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며 돌이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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