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요한복음 12장 20-26절
제목: 모든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 십자가
우리는 앞전주에 가을 새생명축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새생명축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입니다. 하나님친히 배설하셨고, 모두를 초청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조된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 즉 한영혼을 주님앞으로 인도하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자신이 이땅에 오신것에 분명한 말씀하신 것은 요3:17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이 심판을 받게하려고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의 아들을 통해 모든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때 딤전 2:4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도바울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사람이 구원을 받은가 동시에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은혜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생명축제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것은 한번의 행사로 치우기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주님 오실때까지 교회가 해야할 본질이고, 본분이기 때문에 영혼을 향한 구령의 열정은 멈출수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새로오신 분이 가져야할 가장 큰 은혜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가장 큰 의미가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 것은 지금도 어딘가에 우리를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할 영혼이 아직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직 심판의 때를 미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본문설명
유대교 최대명절인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온 순례객들중 일부 헬라인들이 빌립에게 부탁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을 가르쳐 주심과 아울러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를때까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이 임박했음을 말씀하시는데 23절 인자가 영광을 받을때가 왔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올라가시기전에 십자가에 달리실때가 왔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으로 온 인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죄인을 위해 주님께서 홀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은 모든 영혼들에게
새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한 알의 밀이 이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나로말미암아 생명의 열매를 맺으신다고 말씀하신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자들은
34절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고 질문합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는데고 불구하고 영적 어두움에 빠져 알지 못하는데 사람들이 있듯이 오늘 우리가 사는 이시대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믿지 못한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직도 영적으로 눈이 감겨져 있는 영혼들을 빛으로 오게하실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단어 하나의 원어를 중심으로 우리가 가져야할 제자로써 성도로써 함께 나누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한 알의 밀이 썩어져야할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맺어야할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이 친히 지신 십자가입니다. 단어하나의 의미를 깨닫고 성도가 맺어야할 열매 십자가를 바라보기 원합니다.
모든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 십자가 첫 번째는 죽어야 한다.(24절)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음 : 내 자아안에 있는 정욕,탐욕,미움,시기등 죄의 죽음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의 헌신적인 죽음의 가치가 중요함을 말씀합니다.
여기서 죽지 (헬/ 아포드네스코) 는 일반적으로 ‘생명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신비한 ’죽음‘(골3:3)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의 교만, 시기, 질투, 미움, 욕심, 등을 못박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럴 때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죽어야한다는 것은 압니다. 내안에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아의 성품이 있습니다. . 오늘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아닌 우리 은성교회 성도님들 한분한분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아직도 죽지않는 내 영혼의 자아는 바로 죄의 무서운 힘 때문입니다.
사람안에 내주하는 죄의 가공할 힘
롬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신자나 불신자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죄는 우리안에 강하면 강할수록 엄청난 가공할 힘이 됩니다. 신자와 불신자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불신자들에게는 자신의 의지로 할수 없는 강력한 세력이 있는데 그것은 ’죄의 무서운 힘‘입니다. 이것은 죄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죄의 주인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듭니다.
인간을 죄의노예로 만들어서 계속 미워하게 합니다. 죄가 강력할수록 죄의 노예화가 되는데 그것이 바로 중독이 됩니다,.마귀는 인간을 처음에는 죄의 노예화를 시키는데 먹는것에 욕심을 갖게합니다. 또는 성적타락에 빠지게 성에 욕심을 갖게 합니다. 또는 돈에 욕심을 갖게 합니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명예에 욕심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돈과 명예를 가지게 되면 권력에 욕심을 갖게 합니다.
이렇게 죄의 노예화를 시키면서 점점 이 정욕과 탐심이 커지면서 ”중독이 됩니다“ 그래서 마약중독, 성중독, 도박중독, 게임중독, 미움중독을 일으키게 되어 그만 죄의 왕노릇을 하게 되어 그사람은 인생이 파괴되어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에서 승리할수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안에 내주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우리안에 있는 자아가 죽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화) 어릴 때 부보님을 잃고 고모의 손에 자란 한소녀가 있었습니다. 고모는 결혼도 하지않고 어린 조카들을 길렀습니다. 어느덧 소녀는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고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갖게 된 소녀는 고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이 여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춘기 조카는 조카대로 잔소리가 심한 고모에 반항심이 커졌고, 고모 역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교회에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고모에게 잘못한 일을 회개하고 잘하겠다고 결심하지만 집에만 가면 좀처럼 마음억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고모가 조금만 잔소리하고 야단쳐도 화를 참지 못해 고모에게 대들거나 화를 냈고, 문을 쾅닫고 자기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학생회 예배에서 소녀는 목사님의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것이라“ 말씀이 소녀의 마음을 파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고모를 만나니까 안되는 거야. 예수님이 내안에 계신데 ”예수님이 이 고모를 만나주시면 되겠구나!“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막상 현관앞에 서자 소녀는 다시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모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야단을 칠것이고, 그러면 자기도 참지 못하고 또 싸울것만 같았습니다.
소녀는 현관 손잡이를 잡고 기도했습니다. // ”예수님 제가 고모를 만나면 오늘 또 싸울 것 겉아요. 예수님이 고모를 만나주세요. 저는 죽었고, 예수님이 제 안에 살아계시잖요“
그렇게 기도하고 문을 열자 역시나 고모는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소녀를 맞았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마자 ”너 교회를 갔었지! “ 하고 무섭게 야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녀의 눈에 야단치는 고모의 무서운 얼굴은 안보이고, 어느새 주름이 지고 흰머리가 난 늙은 고모의 모습이 들어온것입니다.” 조카들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쓸쓸히 늙어가고 있는 지치고 여윈 모습이 보인것입니다. 소녀는 너무 마음이 아파 고모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고모! 얼굴에 왜 이렇게 주름이 많아? 언제 이렇게 흰머리가 났어?” 고모, 우리 때문에 이렇게 늙어버렸어....“
어린 조카가 자신을 끌어안고 펑펑울기 시작하자, 고모의 가슴도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평생 조카들을 위해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살아온 고모에게 얼마나 많은 슬픔과 한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조카가 자기를 끌어안고 그렇게 엉엉 울자 고모의 가슴에서 응어리 진것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날 예수님께서 고모를 깊이 만나주셨고, 그 후 고모 역시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우리 가정에서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유는 하나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지 않아서입니다. 만약 은성교회 안에서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유는 하나입니다. 목회자인 제가 죽지않았고, 저와 함께 있는 성도님들도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죽으면 남편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겉모습은 분명히 옛날 아내 그대로이지만 자아가 죽으면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아내가 아닙니다. 아내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것, 남편에게는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습니다.
주님! 내 남편좀 만나주세요! 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데, 집에 가기만 하면 바가지 긁고 온갖 성질 다 부리면 남편은 성난 아내를 보아도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볼도리가 없습니다. 펄펄살아있는 아내의 자아에 가려 예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인격과 삶이 교회와 집에서 판이하게 다를 때 자녀들에게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런 모습을 볼 때 자녀는 신앙을 가증스러운것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들 앞에서 자아가 죽은 모습을 보인다면 비로소 자녀는 부모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하나 ’열매‘ : 거룩한 삶을 사는것
저와 여러분에게 죽지 즉 (헬/ 아포드네스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신비한 ’죽음‘이 오늘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죽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여기서 열매 (헬/카르포스)는 나무의 열매나 사람의 대를 이를 자손을 말하지만, 본문에서 열매는 영적으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을 통해 삶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께 드릴만한 ”거룩한 결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내 안에 자아가 죽어야함을 역설하고 있고, 죽어야만 열매를 맺느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후 교회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교회와 성도들은 숱한 핍박을 받았고 또 여러 위기들과 마주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대적하는 자들도 교회를 이 세계에서 말살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수많은 주의 백성들이 밀알이 되어 맺어진 열매들이기 때문입니다. 값진 열매말입니다.
지금처럼 돈만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세상에 죄짓지 않고 구속받지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편안한 것은 타락한 자유를 찾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돈만있으면 다 된다는 내면의식이 더 강하게 일어나고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시대에 없었던 핸드폰이 지금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정보를 접수하고, TV시청, 영화,음악,게임,쇼핑,등 모든것 하나의 기계인 핸드폰에 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시대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로 인하여 더욱더 주님과의 만남을 멀어지게 하므로 비대면 예배를 추구하고 권장하는 국가와 교회가 늘어나면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할 예배를 파괴하는 일들이 지금 무섭게 일어나고 있는 이 시대입니다.
히브리서기자는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어떤 습관과 같이 하지말라고 했는데 오히려 교회가 비대면 예배를 장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성도들에게 참된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 말들이 허공을 치는 메아리가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더더욱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않고 또 삶의 예배가운데 살아내지 않고 자기의 의지와 자기 주장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안에 판을 치고 그 사람들을 생산해 내고있지않는지 정말 위험한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유혹에 욕심에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엡 4:22)“ 이라고 사도바울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맺어야 할 열매!는 나를 위해 죽으심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2. 모든 성도가 맺어야할 열매 두 번째는 세상의것을 좋아하거나 사랑하지않는 것 (25절)
25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여기서 ”사랑하는“ 단어는 (헬/필레오) 자기부모 및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자기생명에 대한 육체적이고 감각적이며 본능적이 애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세상에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말씀하실대 미워하는 (헬/미세요)라는 의미는
세상적인 정욕을 따라 살려는 인간적인 욕망을 증오하란 말입니다. 불신자를 떠나 교회안에서 주님을 진실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보이는 이세상의 것에만 집착하고 추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절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격 요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세상적인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다. 세상적인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 무엇인 가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는 것’ (마16:24)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고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쫒는 것이 결코 쉬운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쫓아갑니다.
아브라함의 세 가지 구체적인 실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오랫동안 살아왔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앞날이 아무것도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 가나안땅을 선택하는 문제였습니다(창 12: 1-4), 둘째는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는 문제였습니다.
(창21: 9-21) 비롯 계집종에서 난 자식이라고 하지만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식입니다 그를 내쫓는것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셋째는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브라함이 100세 나은 사랑한 독자 하나밖에 없는 아들,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않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명하신 산에서 번제로 드리는 문제 (창22 : 1-14)였습니다 . 어느 것 하나 쉽게
결단할 수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결국 자기를 부인하고, 즉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하나님만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좋은 편을 택하였기에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얻게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님! 자기의 소중한 것을 위해서 예수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아무리 소중한 것일지라도 기꺼이 버리는 사람이 있다. 영생을 위하여 나아가는 사람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입니다.
3. 모든 성도가 맺어야할 열매 세번째 : 죽음을 동반한 순종이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것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마지막으로 주님은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십니다.
따르라 (헬 아콜루데오)는 ”같은 길에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것같이 나역시 삶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있어야한다는것입니다. 이것이 같은 길에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주님을 따르는 것은 죽음을 동반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순종의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노력하여 순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노력으로 하는 순종은 힘들어서 못합니다. ”예수님 힘들어요!!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대로 하려니까 죽을 것 같아요.“
힘들다. 어렵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노력하여 순종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노력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죽으라고 하셨습니다. 내힘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예수님과 함께 자신의 자아가 죽었음을 .믿음으로 취하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노력으로 죽으려 하는 사람은 죽은 척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이 더 무섭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곁에 와서 걷드려보면, 화들짝 일어나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몇 번은 참습니다. 그러다가 폭발하니까 더 크게 화를 내게 됩니다.
에수 믿는 것은 도를 닦는 것이 아닙니다. 내힘으로 죽으려고 하니까 속병이 생기게 됩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는 믿음으로 취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자아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죽어야 비로소 주님이 내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표시가 납니다. 지금 내 옆에서 시체가 누워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가 시체라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그는 코로 숨을 쉬지 않고 가슴에 손을 대보아도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주위의 어떤 자극과 변화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아가 죽은 사람도 알아볼수 있습니다. 사람의 어떤 말이나 평가에도 죽었고, 칭찬에도 죽은 사람이 진짜 죽은 사람입니다.
제 입에 목숨걸고 예배드려라. 목숨걸고 목회하라 라는 말이 제입에서 종종 나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는 힘이 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한번 왔다가는 인생 내사랑하는 주님께 쓰임받다가 가는 것이라면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하는것처럼 해보는것입니다. 그래서 목숨걸고 한 영혼 한영혼을 기도하면서 영적성숙을 위해 세우면서 가는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동반한 순종이 뒤따르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즉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예수를 묵묵히 따르는 자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계시게 될 하늘 나라에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의 형식이 아닌, 신앙의 내용이 분명한 사람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예수 우리 주안에서 가진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바울은 자신이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신앙의 형식만 갖추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내용이 분명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우리역시 신앙의 정신 spirit 이 분명해야합니다
내자아가 죽는 그날까지 저와 여러분이 해야할 분명한 행동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내가 못박혀야합니다. 목숨을 건 사랑, 주님과 뿌리깊은 사랑을 해보겠다는 분명한 결심과 다짐이 날마다 삶가운데서 씨름을 해야합니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마음이 있지않는한 우리의 신앙은 위장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할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힘듭니다.
죽음을동반한 순종의 댓가를 치를 성도만이 맛볼수잇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리고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자아가 죽으면 사랑하는 남편, 아내, 자녀, 부모님, 지인들이 돌아올것입니다.
이한주간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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