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0.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마태복음 5장 8절 / 시편 24: 3-7절
제목 :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지금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는 불안과 초조감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백신이 언제나오느냐? 언제 맞을수 있느냐? 지금 2단계,또는 2.5단계인데 언제 3단계로 올라가느냐?등 연말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안해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럴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라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바뀌어가는 것을 저는 학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 밑을 보실 때 병들고, 아프고, 온갖 세상에 염려와 근심속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을 보았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백성들의 모습이었을것입니다. 그런 삶의 찌들어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
1. 심령이 가난하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오직 하나님만 철저하게 의지하여 하나님이 없이는 살수없음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2. 애통한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자신의 죄에 애통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하는데 자꾸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않는것에 대한 애통함이 우리안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위로해 주신다는것입니다.
3. 온유한자는 복이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온유는 하나님께 대한 온유로서 사업이 부도나도, 재난을 당해도, 어떤 환경에서도 어려움이 온다고 할지라도 욥같은 신앙으로 환경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고백하는것입니다.
욥1:21 21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4. 의에주리고 목마른자는 복이있다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이땅에서 하나님을 알기를 믿기를 타는 목마름으로 갈망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5. 긍휼히 여기는자는 복이 있다 – 긍휼이라는 헬/헤세드입니다. 불쌍히 여기는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통해 우리가운데 나타나야할 마음이 긍휼히 여기는마음이 있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산상수훈의 여섯 번째 복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것임이요”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첫 번째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음”과“청결”이라는 단어가 무엇인가를 아는것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봅니다
첫 번째 “마음”(헬/카르디아 ) 자아, 중심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마음이 감정의 근원, 의지, 지적인 생각이 하나님을 만나는 내적인 영역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마음은 심장이라는 단어와 혼용해서는 씁니다. 즉 마음은 생명과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렘11:20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통함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복을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계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되고, 마음이 잘못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선지자나 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
창세때 인간은 타락한 이후로 생각하는것과 마음이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서 볼수 있는 것은 마음이 부패하고 거짓된 마음의 눈입니다. 죄와 허물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큰 상처는 인간의 마음이 깨끗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한마음은 우리안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마음이 청결한자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 청결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청결 헬/카다로스 ‘깨끗한’ 의미입니다. 때묻은 옷을 깨끗이 세탁하여 흰옷이 되었을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청결의 핵심 : 탐욕과 두 마음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려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
우리들의 마음이 이런 저런 사연으로 상처와 아픔으로 고통중에 때가 묻게 됩니다. 이렇게 때묻은 마음이 이땅에서 흰옷처럼 깨끗한 카다로스가 될수 있을까? 그것에 해답은 계7:13.14절
13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안에 있는때를 무엇을 깨끗하게 할수 있습니까? 그것은 나를 위해 십자가위에 죽어 흘리신 보혈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청결한자를 이제까지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마음에 더러움이 없는 마음을 생각하셨거나, 세상에서나 사회적으로 도덕적, 윤리적으로 정직하고 거짓이 없고, 청결하면서 흠이 없는 것을 생각하셨을것입니다.
최근 불교에서 한참 인기가 있는 혜민스님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사람이 tv나 세미나를 통해 외친 것이 무엇이냐면 “무소유”를 외쳤습니다. 그는 하버드대학을 나오고 얼굴도 잘생겼습니다. 그런데 그사람의 실체가 드러났는데 남산에 부근에 집이있고, 미국에도 집을 사놓았던 사람입니다. 엄청난 부자였던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무소유를 외치고 있었으니 그것도 스님이라는 탈을 쓰고 말입니다. 중세때 카톨릭에서 추구하는 수도원 운동으로 수도생활하면서 세상과 단절하면서 속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너무나 많이 타락해버리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말도할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지만 불교에서처럼 속세에서 벗어나고, 천주교처럼 수도원으로 들어가야만 마음이 청결할까요? 예수님은 그런 청결함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청결에서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합니다.
롬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나의 행실을 보면서 내가 일지 못하는 곧 원한지 않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역시 자기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청결하게 하지못하도록 어떤 법이 자기 마음을 짓누르게 하여 하나님의 법을 이기지 못하므로써 그는 좌절하게 되었다는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탄식의 소리를 합니다 “오호라 이 사망에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바울이 탄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안에 두마음을 무엇을 의미할까?
두 마음을 품지 않는것
두마음은 두 주인을 섬길수 없다. 2.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마음
1. 두마음은 한 주인만 섬길수 없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뜻은 인간이 두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보고 가는것입니다.
깨끗한 흰종이에 검정색깔을 뭍히면 온갖 불결입니다. 그러나 흰종이를 그대로 두면 청결이 됩니다.
야고보사도는 두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약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두마음을 가진자들아 성결하라, 죄인들의 손을 깨끗이 하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마음이 청결한 마음이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의심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주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교만을 낮추라고 말합니다. 두마음을 가진것에 애통하면서 슬퍼하면서 울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자, 긍휼히 여기는자의 마음과 일맥상통합니다.
두마음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향해서만 집중되어야 하는 마음이 나라는 존재가 또다른 육적인 마음으로 쏠리는 것을 두마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교만이라고 합니다.
교만 헬/휘브로스 “피조물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휘브리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두주인을 섬길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 외에 다른신을 섬기면 두마음입니다 다른신이 무엇입니까? 맘몬이라는 세상의 물질(즉 돈)을 말합니다 인간들은 맘몬이라는 신에게 지배를 당하여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중에 하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노예는 종은 절대로 두 주인을 섬길수 없고, 한 주인에게만 복종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2.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야고보사도는 두 마음을 품은자들을 가리켜서 ”의심하는자“라고 부릅니다.
약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 말씀은 단순히, 의심하면서 구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 듯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없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막상 어려운 일이 눈앞을 가리고 위기에 직면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더 열심히 하나님을 붙들어야 할 상황인데도 오히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허황된것처럼 생각하고 아무런 생각도 안납니다. 정말로 믿음을 가지고 대체해야할 시기에 정반대로 믿음을 차버리고 싶은 유혹을 받을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문학가인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 제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제 믿음은 이성에 근거해 있습니다. 정작 제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저의 상상력과 감정입니다. 믿음과 이성이 한 편이되고, 감정과 상상력이 다른 편이 되어 싸움을 벌이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이성으로 알게 되었고 믿습니다. 위기를 만나면 이성에 근거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버리는 장애물이 생깁니다. 그것이 바로 ”감정“입니다. 위기앞에 동요되는 것입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만들어서 공상을 하고 스스로 불안을 조성합니다. 기도하지만 엎드리지만 부정적인 생각으로 점점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게 감정입니다. - 근거없는 감정이 이성에 근거한 믿음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C.S 루이스 는 ”믿음은 아무리 기분이 바뀌어도 한번 받아들인 것은 끝까지 고수하는 기술이다“
기술이 필요한데 이성으로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을 감정과 상관없이 흔들림 없이 고수하는 기술을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의심할때가 있습니다. 의심하면서 기도했는데 응답될 경우는 어떻게 해석할수 있느냐?
기도하면서 의심하면 안돼! 하나님이 내 기도 안들어줘! 정신 똑바로 차려! 의심하면 안돼! 의심하지 말아야지! 하고 우리는 생각할수 있다는것입니다.
여러분! 의심이 뭡니까? 이것이 될까? 안될까? 조급해 하면서 촐랑되는 것이 의심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사도는 뭐라고 고백합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해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걸 의심이라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가진 의심한자를 요동하는 풍랑과 같다고 말합니다.청결하지 못한 사람을 풍랑에 요동하는 것같다고 말합니다. 이 풍랑이 마치 물위에 걸어서 오다가 빠져버린 베드로를 연상케 합니다.
마14:8-32절
28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한마음, 한길만 보고 갈때는 바다에 거친 풍랑이 일어나도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세찬바람을 보다가 빠져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저와 여러분에게 ”너를 보지말고,/ 네 현실을 보지 말고,/ 그거보면 사망의 물에 빠지게 되어 있다. 나만 바라바! / 나만 바라보고 한발씩 물에서 걸어 그러면 절대로 빠지지 않아 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 시커하고 캄캄한 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바다한가운데, 조그마한 배가 세찬 바람과 풍랑에 맞아서 요동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 지금이 상황이 코로나로 인하여 어려운 상황 또는 다른 세상의 일로 나타나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뭐라고 합니까? 28절 ‘나를 명하사’ 라고 말합니다. 이말은 베드로가 지금 자연법칙에 의해 요동하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권능을 의심하지 않고 물위를 걸어가 가겠다는 의사 표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을 물위로 오라 하소서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오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갑니다. 지금 우리가 이해를 해야하는 상황은 지금 베드로는 세찬바람과 풍랑이 불고있는 상황에서 주변상황을 보지않고 예수님만 똑바로 보고 갈때에는 만유법칙, 자연법칙, 중력등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물위를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 걸어갈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오라 는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에 의심없이 갔기 때문에 걸어간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물위를 걸은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나라는 존재는 믿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믿지 못하는나를 보지 말고,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청결한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에 빠진 베드로를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믿음이 작은자여 왜 의심하느냐? 고 말씀합니다.
자신의 지나친 상황, 현실에 집착하다보니까? 순간 주님을 놓쳐버리자 불안감과 두려움이 밀려온것입니다.
그래서 바다에 빠진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나만 바라보라! 나만 의지하고 오라고 말씀합니다. // 지금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어려운 시대를 겪고있습니다. //
여러분이 사는길은 오직 주님의 얼굴만 구하고 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 :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최고의 소망입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을 볼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으로 인해 인간은 다시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볼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볼수 있다’ vs ‘볼수 없다’는 말씀
얼굴을 볼수 없다 : 출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얼굴을 볼 수 있다 : 시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민12: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출23: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하나님을 본다는 것: 1.하나님을 아는 것, 2.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산상수훈에 말씀 5:8절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것임이요.
이 말씀은 시편 24:3-7 말씀에서 나온것입니다.
3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7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편 24편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하시고 자신은 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그런데 예배자들은 성전에 오르기 전에 꼭 해야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성도가 거룩한 성전에 오르기전 할 것:
첫 번째 손이 개끗해야 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함 / 두 번째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않는 것.
세 번째 거짓 맹세하지 않는 것
1.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다른 이들에 대해서 죄를 짓지 않는 성결한 삶을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손’은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방식과 그와 관련된 활동을 상정하는 표현입니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서 진실한 사람 즉 신실한 태도를 가지고 가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2. 뜻을 허탄한데에 두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인이 그 마음에 허탄하고 허무한 것을 품거나 무가치한 일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들이 영원히 누리지못하는 세상것에 탐닉하는 어리석은 욕심을 말합니다.
3.거짓 맹세하지 않는 것 :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는 불성실한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자는 하나님과 교제를 할때에는 진실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음이 청결한자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거룩한곳에 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성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뵙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이 외치던 소리가 ”문들아! 들어라! 성소의 문을 열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청결한 자에 대한 이야기를하시다가 갑자기 성소의 문을열어라 는 것은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가 이겼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성소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보좌입니다. 우리가 육신이 거룩한 성전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자기 마음을,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아주 철옹성처럼 꼭꼭 닫고 있다가 하나님이 그를 이기시고 그 성전을 열고, 전쟁에 이기신 하나님이 들어가서 거기를 꽉 채울 때 내안에 부정적인것들이 더러운것들이 없어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을 보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마음이 두마음을 품지 않고 반드시 한분만 보고 가야합니다
1. 세상을 보더라도 요동하지 않는 마음이 하나님을 봅니다
2. 먼저 말씀하신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 때 하나님을 봅니다
3. 두 주인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내 마음에 주인으로 모실 때 하나님을 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가득차고 넘칠 때 하나님을 봅니다.
5. 부정적인 생각의 틀을 바꾸어 믿음의 틀로 바꾸면 하나님을 봅니다
지금 전세계와 한국은 그 어느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겨울이 되니 코로나로 인해 팬데믹에 빠져 하루 1,000명 이상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정부는 백신의 소식은 깜깜무소식입니다. 불안감만 계속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소상공인들은 점점 일자리를 잃어가고, 중소기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46:1-3, 10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10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땅과 바다는 역사속에서 늘 요동하고 ,흉흉했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사람은 요동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0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됨을 알지어다 라는 말씀에 아무것도 하지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 믿음이 마음에 뿌리박고 어떤 상황에도 움직이지 말라” 뜻입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없듯이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마음이 청결한자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가는것입니다. 이한주간 만큼 감정과 상상력이 부정적으로 온다면 내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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