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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0.12.27.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마태복음 59

제목 :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하나님의 아들

 

2020년 다산다난했던 한해를 보냅니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것들이 제재가 가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코로나가 너무 심각하여 3단계를 올릴지 오늘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어떤분들은 올 한해를 자신의 인생에서 잃어버린 한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잃은것과 얻은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이든지 잘되면 얻은거고 무엇이든지 잘 안되면 다 잃어버린것일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가치나 논리로 논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기준과 가치과 예수님의 말씀과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절대로 편안한 길, 평탄한 길, 잘되는 길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좁은 길, 고난의 길이라고 말씀하면서 성도가 예수님을 따라갈려면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이 죽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소유의 포기, 자신의 욕망의 포기, 자기 자랑의 포기를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날샘qt말씀중 미가 6:6-8 말씀 가운데 참 많은 은혜를 줍니다.

6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선지자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러 갈 때 번제물로 무엇을 가져하는지 질문합니다. 최상품의 일년된 송아지를 드릴까? 천천 만만이나 되는 많은 숫양과 기름과 같은 희생제물을 드릴까? 아니면 이방풍습인 몰렉제사를 통해 아들을 바칠까 하는 더러운행위를 드리므로써 하나님께서 만족해 하실까하는 반문을 합니다.

과연 얼마나 드려야 하나님이 만족해 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수천 수만마리의 동물의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형식적인 제사, 외형적인것에만 치중하는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제사즉 예배가 무엇인가?

1.정의를 행하고 : 불의한자를 징계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은자를 사랑으로 공정히 대하라는 것

2.인자를 사랑하며 : 하나님께서 사랑의 언약을 지키듯이 서로간에 평안을 위해 언약을 충실히 지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3.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020년 마지막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어떤 태도와 자세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 봅니다.

 

오늘 말씀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화평하는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일컬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고, 또한 우리안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름을 받기위해서는 화평케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받을만큼 화평케하는 자입니까? 에이레네와 샬롬이 우리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화평하게 한다는 것을 말할때 분열이 있는곳에 평화를 만들어주는 것 그게 화평하게 하는자가 아닙니까? 그래서 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면서 비폭력주의를 외치고, 무저항의 평화전도사가 되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의 판단으로 했던 사람이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입니다.

 

인도의 간디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읽고 난후 비폭력, 무저항의 평화주의자가 된것입니다. 간디는 죽는 날까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읽는게 산상수훈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진짜 화평케하는 자입니까? 세상의 가치의 논리로 볼때는 간디가 화평케하는 자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간디처럼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외치고, 평화주의를 외치는 그런 종류의 행함을 말씀할까요?

간디는 힌두교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화평케한다는 것은 간디처럼 그 비폭력의 평화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간디가 착한일을 하고 세상사람들에게 평화를 기여했다고 할지라도 그건 성경이 말하는 그 화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팔복중 일곱 번째을 소개합니다.

5:9 화평케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이레노포이오이 마카리오이 아우토이 데우 휘오이 클레데손타이

화평 : /‘에이 레노포이오이’ : 에이레네 : 평화’ (10:3)‘안전’ (11:21) 뜻을

포이에오 : ‘만들다’ (19:4)행하다’ (1:24)

합성어인 에이레노포이오스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이는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란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본문의 묘사는 이 세상은 이미 평화가 깨어진 세상이며, 평화가 복원되어야 하는 세상임을 전제합니다. 물론 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분쟁이나 국가간의 전쟁 혹은 생태계의 파괴등으로 인해 깨어지고 혼란해진 세상을 가리키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세상을 가리킨다.

 

즉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써 인류는 사탄에게 속한자가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산산이 깨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하는 바 화평케 하는 자는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바쳐 평화를 회복하신

(2: 14) 평화의 왕 (7:6)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힘입음으로써 하나님과 화해하여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함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게 함으로써 이 세상의

죄와 갈등을 해결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이다.

 

성경에서 평화를 보는 관점:

인간이 창조하기 전 에덴동산의 상태 : 샬롬의 상태 , 평화의 상태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의 삶이 바로 평화의 삶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자기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온전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샬롬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의해 파괴되었고, 더 이상 인간은 에덴에서 살수가 없었습니다. 죄는 평화를 깨버렸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원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죄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화) 모 대기업을 단니던 어떤 분이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세상에 대기업이라는 조직에서 배운 경험을 가지고 아주 작은 두란노서원이라는 선교단체로 옮겼는데 그 조직은 비교할수 없이 허술하여, 직원 100명을 매일 모아놓고 하나님의 기업은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매일 쥐어짜답니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조직의 효율성, 조직의 기능, 원칙을 적용하기 시작했답니다.

 

이 분은 용맹스러운 용사처럼 고지를 향해 깃발을 흔들면서 달려갔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달려 정상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까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자기에 대해서 철저하게 혼자의 리그를 즐기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돌아보지않고 자기의 목표를 위해 달리다보니 외로움과 철저한 외면을 당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이때 이분은 이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이 분이 깨달은 것은 처음에 대기업에서 단니던 자신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작은 두란노서원이라는 직장으로 옮기게 한 것은 조직의 기능이나 효율성있게 하여 효율적으로 움직일수 있게 하라는 뜻으로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질서를 잡고 시스템을정비하고, 사람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은 회사안에서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것입니다. 깨어진 관계, 분열과 갈등가운데 있는 그곳에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죄로 막힌담은 모든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막혀있던 모든담을 헐게해야 합니다.

신자는 분쟁과 갈등이 있는곳에서 화평의 관계를 맺을수 있도록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허물많은 사람들이교회안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받거나 때로는 상처를 줍니다. 예수님이 우리안에 오셔서 나라는 존재에 성령의 인치시고 다스릴 때 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신자는 평화를 만드는자가 되어야 하고, 그 평화가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성경은 평화 즉 평화의 왕을 표현할 때 이사야서를 말합니다.

구약에서 평화의 왕?

이사야 9:6.7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는 앞으로 한 아기가 태어나고 그분은 정사를 메고 기묘자로 모사라 전능하신 분이고 평강의 왕이 태어날 것을 예언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오셔서 정의 , 공의로 다스릴것이며, 평화가 영원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 화평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수직적 화평이 이루어져야 하고,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수평적 화평인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이루어지는 화평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20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오셔서 화평을 주러 오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에는 악인과 의인이 함께 공존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할수 없고, 물과 기름이 함께 섞일수 없듯이 빛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지만 아무도 그를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둠인 유대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지만 오히려 예수님을 죽일려고 했고, 철저히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연약한자에게 예수님은 가장 찬란한 빛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신곳에 하나님의 화평이 실현됨

85: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잠언 10: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하나님의 에이레네가 있는곳에는 반드시 의인과 악인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이땅에서는 분쟁과 갈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땅에서는 세상에 국가나 사회에서 갈등하고 분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평화가 깨지고 화평이 깨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평화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평화를 깨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의인함께 악인들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악인들은 평화를 깨고 무너뜨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러 오셨다면 가장 먼저 화평이 이루어져야하는 것은 어디일까?

 

1. 예수님이 화평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 : 바로 입니다.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나라는 존재는 죄가운데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 마음먹은 것 모든 것이 죄의 뿌리에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먼저 치유되지 않으면 절대로 선한 것이 나올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선이지만 내안에 다른 법이 자꾸 죄를 짓게 하므로써 악을 행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끝나면 절대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오지 않습니다. 죄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님안에 있고 함께 공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예수님과 화평을 이룰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안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해방되는 것은 예수님안에서입니다.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해방된 나라는 존재가 예수님안에서 자유를 얻을 때 진정한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바울이 나는날마다 죽노라 고백했던것처럼 내안에 내자아가 날마다 죽어야 한다는것입니다. 내안에 쓴뿌리, 견고한 진, 내면의 상처가 올라와서 다른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2. 예수님이 화평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 : 가정

너무나 힘이든 가족 구원

화평이 깨진곳이 가정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우리 성도들중 누구나 한번쯤 겪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고 말씀합니다. 이말씀이 잘못오해하면 예수님이 가정에 화평을 깨러 오신것일까 하고 생각할수 있는데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복음이 한 가정안에 들어갈 때 가족간에 불화가 생겨질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성도는 세상에서 평안한 삶을 사는것이라, 오히려 세상에서 영적전쟁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무리 혈연관계인 가족일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문제에서 신앙관이 다르면 결코 하나가 될수 없다는말씀입니다.

불신자인 남편과 신앙의 아내 그리고 믿는 형제와 불신자 형제간에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게 되므로써 이러한 이유로 가족관계가 멀어지게 되고, 심할 경우 죽는일도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김남준목사님의 저서중에 끝나지않는 가슴앓이 가족구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이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를 맡기면서 몇가지 교훈의 말을 합니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니라.

라고 말합니다 믿지않는 가족을 돌아보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자기 가족과 친족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가족은 특별한 관계입니다. 세상에 많은 모임과 기관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기관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가정도 하나의 작은 교회입니다. 작은 교회인 가정이 올바르게 서는 것을 통해 우리의 교회가 올바로 설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을 변화시켜 바르게 길러 내는 목적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길러낸 사람들을 작은 교회인 가정으로 돌려 보내서 그 가정이 참된 교회가 되게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께서 죄와 유혹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고자 하는 선물입니다.

교회에는 목회자가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그 그늘에서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신앙생활하면서 신자다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가정을 하나의 작은교회라고 한다면 가정에도 분명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연합된 가정의 경우에는 그 가정의 가장임 목회자가 되어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 늘 기도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영적인 연합을 공고히 내 나갈 것입니다.

작은 교회인 가정안에 믿음이 있는 부모나 자녀가 십자가를 지고 계속 기도해 나가야합니다. 그사람이 작은 목회자가 되는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정에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정을 다스려야합니다. 가정의 구성원들은 그 예수님의 말씀에 순응하고 따라야 합니다. 지금 힘들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열매를 맺을것입니다.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질려면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평화를 맺을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화목제사입니다. 평화의 제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우리 가정안에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화목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 화목, 화평을 위해 드려진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피로써 믿음이 있는 화목제물을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구약의 속죄제사를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피를 통해 우리와 화평이 이루어진것처럼 가정안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것처럼 우리가 가정안에서 복음을 가진자가 죽으면 반드시 그 가정에 평화가 이루어진다는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통한 화평 즉 에이레네가 그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업장에 이루어지는 것은 내가 화평을 이루도록 준비되어야 있어야한다는것입니다.

 

화평을 이룬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진정한 화평이 무엇인가를 말씀합니다.

5: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미워하는자들을 오히려 사랑하고 자신들을 핍박하는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화평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할수 없지만 그들을 위해 다시 기도할 때 선인에게 해를 비추시고, 늦은비와 이른비를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와 비를 동일하게 내리지면 결과가 다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인가?

지금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께서 자신이 선교사로 파송하기전 자신이 한국에서 가장 크게 힘썼고 기도한 것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분이 청년때 어떤 상황에서도 밝고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헝제가 말이 많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이 형제를 좋아한 이유는 이 형제가 있는곳에는 불편한 관계가 없었지고 사람들을 기분을 좋게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형제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이 형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집안 배경도 없고, 지독하게 가난했다는것입니다.

 

이 형제가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순간부터 자신이 이런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어디를 가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닌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라고 빠짐없이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형제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가는곳마다 분열과 분쟁이 갈등이 있으면 평화가 화평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형제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관계가 풍성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형성이 잘 이루어지니까 도움의 손길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의 삶의 환경까지도 바꿔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인 화평을 이루기를 원하는 것에 하나만 가져도 관계를 통한 환경의 문이 열린것처럼 우리안에 화평을 이루는 것이 부족하거든 예수님안에서 에이레네 화평을 가진가 되도록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갖는 화평의 핵심 : 1.용서, 2.믿음 3.(평강,희락)

1.용서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는 선물을 포장할 때 끈이나 리본등으로 마무리 장식을 합니다. 여기서 끈은 속박이 아니라, 내용물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도구입니다. 사랑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를 묶어주는 용서의 끈은 서로를 이어줄 뿐만 아니라 관계를 최상화시킵니다. 우리안에 가장 약하고 연약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는것입니다.

저역시 이것에서 자유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해야하고, 누구보다 예수님의 성품을 더 많이 닮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2.믿음 :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얻기위해서는 화평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믿어도 진실하게 인격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내안에 의심하는 담을 허물어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의 담을 쌓거나, 불신의 담을 쌓거나 하면 절대로 인격적인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신만 더 커집니다. 이 불신은 교회를 단녀도 아무런 증거도 어떤 역사도 맛보지 못한다는것입니다. 내안에 불신의 벽을 부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3.(평강, 희락) :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여기서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신자의 최종 목적지는 성화의 길을 걷는것입니다.

평강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신자의 내면안에 일어나는 현상이 평강입니다.

하루에 수십번씩 우리를 흔들고 넘어뜨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상황이 올때에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과의 약속의 자존심이 평강입니다.

희락은 하나님과의 평강이 이루어지고 있는 내면의 상태에서 계속유지되도록 하는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기쁨입니다.

우리안에 슬픔은 절대로 기뻐할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사할수 있는 상황이 변화되지만 기뻐할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안에 기쁨이 넘치는 것은 주님이 주신 밖으로 나오는 즐거움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본입니다. 신자가 다른 것으로 섬길지라도 자신의 인격과 삶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참신자기 아닙니다.

 

신앙의 품격 : 예수님으로 인한 인격성숙

사람이 외모에서나 모습에서도 품격이 드러나고, 사람의 말에도 품격이 있고, 성품에도 품격이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안에서 인격에도 품격이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품격을 아는 것은 간단합니다. 말입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품격을 무엇으로 알까요? 말보다 믿음의 행실을 보일때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신자는 신앙의 품격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람을 얻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올바른 형성이 되면 사람은 붙게되어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 있든지 화평를 만드는 자가 되시길 원합니다. 화평을 나누는자가 되시길 원합니다.

분쟁이 있고 갈등이 있고,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는곳에 여러분이 예수님의 에이레네 화평을 주는 신자가 되십쇼!

그러면 반드시 관계속에서 얻게 될것입니다.

2021년 새해에는 더욱 새로워진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합니다.

이 한주간 신앙의 품격인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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