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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1.3.28.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마태복음 21:1-11

제목: 왕의 예루살렘 입성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환영했던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한 주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할 당시 많은 군중들이 종려나무(棕櫚-, palm tree)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칠 때 그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외침을 통해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부활절 전 주일을 종려주일(Palm Sunday)동시에 고난주일(passion

Sunday)이고 고난주간 (Passion week)이 시작하는 첫주일이기도 합니다.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을 앞에 두고있기 때문에 종려주일로 볼때에는 온백성들이 호산나를 찬송하였기에 기쁨과 환의이지만, 고난주간을 앞에두고는 고난이고 애통한 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뜻에 의해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알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근처에 이르럿을 때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감람산에 올리브 나무로 유명한 곳입니다.

 

본문설명

1절에 나오는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은 유대인들에게 종말론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삼하15:30, 왕상 11:7)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전 멸망을 예고합니다.(24:3) / 감람산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감람산의 많은 무덤들이 열리는 장소였습니다.(27:51-53)

감람산은 예수님 공생애 사역의 십자가 대속사역을 감당한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수난의 예고를 알린것처럼 예수님의 운명이 결정되는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자신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알았기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근처 감람산 벳바게에 도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벳바게에서 두제자를 향하여 명령하십니다.

21:.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인 나귀와 나귀새끼를 풀어내게로 끌고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나귀새끼 주인이 무엇이라고 말하면 주님이 쓰신다고 말하면 즉시 보낼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합니다. 여기서 주가 쓰시겠다라고 말씀하고 즉시 보내리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중 주가 쓰시겠다를 직역하면 주님께서 그것들을 필요로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신적능력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즉시 내보니라 라는 뜻은 나귀주인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할것이라는 확신을 제자들에게 알려줍니다.

제자들은 순종하고 예수님 말씀에 나귀새끼를 끌고 옵니다.

그렇다면 종려주일은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종려주일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참된의미:

1.말씀을 이루려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예언의 성취) (4.5)

21: 4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나귀새끼를 데리고 와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겠다는 것은 이미 구약에 예언된 말씀입니다. 본문에 예언했던 선지자는 누구일까? 바로 스가랴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500년전 스가랴 선지자는 스가려서 9:9절에 예언을 합니다.

스가랴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시온의 딸은 예루살렘을 향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즐거워하라 왜냐하면 유대인의 한 왕이 공의로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겸손하게 나귀새끼를 타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향하여 갈 것을 예언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길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귀새끼는 인간이 한번도 타보지 않았던 나귀새끼. 인간의 세속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동물을 말합니다. 이 나귀새끼는 예수님을 위해 준비된 새끼입니다.

 

왕이 겸손하게 나귀새끼를 탔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제국의 아래있던 이스라엘은 로마가 외쳤던 팍스로마나 모든 나라는 힘의 평화를 외쳤던 시대였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힘과 권력으로 전쟁에 나가 승리할 때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크고 멋있는 준마를 타고 로마에 입성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화려하고 멋진 준마가 아니라,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겸손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시지만 정치적인 군사적인 왕이 아니라, 이땅을 구원하시기위해 평화의 왕, 샬롬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군중들의 호산나의 외침 (8.9)

8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여기서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여기서 나뭇가지종려나무입니다.

나귀새끼를 끌고와서 예수님께서는 나귀새끼의 등에 오르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갈때에 수많은 백성들이 종려나무가지를 깔고

겉옷을 벗어 길에 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왕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보통 종려나무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구약에 예후가 왕이 될 때 이런 행위가 있었습니다.

왕하 9:13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예후가 왕에 오르자 백성들은 왕이 지나가는 자리에 자신의 옷을 땅바닥에 깔아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의미입니다.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종려가지는 주로 왕이 지나는 길에 펴놓거나 그것을 들고 흔들었습다. 결국 무리들이 종려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또 흔든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환영하고 있는 것인가? 왕으로 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9절에 보니까 예수님을 향해 무리들이 지르는 함성이 있다.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이 백성들의 외침은 호산나 였습니다. 호산나 :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 이제 구원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이 함성에도 의미가 있다.

-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환호에는 예수님이 다윗 왕의 후손이라는 인정뿐 아니라, 메시아이길 희망하는 기대가 담겨 있다.

시편118: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여호와여 이제 구원하소서 라는 뜻에 호산나가 유월절 축제 기간에 정기적으로 낭송되었던 시였다.

유월절이 무엇을 기념하는 절기인가? 이스라엘의 애굽의 압제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그런데 바벨론의 침공으로 멸망을 당해, 나라없은 설움 속에서 헬라와 수리아, 그리고 로마의 압제를 계속해서 받아오던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은 민족의 해방을 대망하는 절기로 의미가 부여 되었다.

유월절에 낭송되었던 이 시편들의 내용은 순례객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노래였고, 이 시편에는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높이 외치던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 뜻이 아닙니까? 무리들의 함성은 이것이다. '다윗의 자손이여 하나님이 보내신 바로 그 메시야이신 예수님!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무리들의 외침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소서!

무리들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 / 로마압제에서 해방시킬 이스라엘 민족의 세상적인 왕 그래서 호산나를 외칩니다.

무리들은 지금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하고 있습니다. 호산나를 외쳤던 이 수많은 백성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하나님의 메시야로 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다.

즉 오랫동안 메시야 대망을 가졌던 무리들은 예수를 정치적인 메시야로 인식하고 그가 당장에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을 압제와 고통에서 해방시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의 왕으로 오시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당신이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왕, 세상적인 왕이 되셔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메시야로 환영합니다. 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다윗의 무너진 왕조를 회복하시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소서. 이것이 무리들이 예수님을 향해 함성을 지른 이유였다.

 

유대인의 착각? 예수님은 평화의 왕, 진리를 증거하는 왕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단한 착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평화의왕으로 오셨지, 정치적인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8: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맞다 나는 왕이 그런데 나는 세상의 왕으로 온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구원하러 온 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주님을 믿는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기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배신! 십자가에 못박은자 무리들

호산나를 외쳤던 무리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는 자의 무리들로 변합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의 모함으로인해 이렇게 예수님은 아무런 힘도 없이 빌라도 총독앞에 끌려가 모진 매와 채찍질을 받았던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서 호산나를 외쳤던 수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모습을 보자 돌변해 버립니다. 예수님을 버립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죄를 찾지 못하다고 하자 이들의 무리들은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23: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8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19: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무리들이 18절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받고 대신 사람을 죽인 죄인인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호산나를 외쳤던 무리들이 이제는 자기에게 유익이 없으니까? 한순간에 예수님을 버리지 않습니까?

 

저는 베드로입니다. 저는 가룟유다입니다. 우린 어떤자입니까?

우린 베드로입니다. 우린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3년을 함께 동거동락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장 결정적일 때 예수님 가장힘들 때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은30냥에 팔아버리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고 외쳤던 그 순간마다 베드로와 함께 모든 제자들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배신을 하고 예수님을 떠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법정에서 모진 고난을 받을때에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골로다 언덕을 걸을때에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때에도 그곳에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 우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도 않았습니다. / 우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 그런데 우린 예수님을 2000년전 외쳤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무리들과 함께 있었던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린 예수님을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유익이 없으면 언제든지 버리는 사람들일수 있습니다. 그런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이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주님의 사람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한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2.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고난을 맞이할 준비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은 우리가 저주아래 있는 죄인이기에 그는 율법에 저주에서 우리를 끊기 위해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나무에 달린자마 모두가 저주받은 인생들이었기에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저주를 끊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그 사랑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연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연합은 주님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오신것처럼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오셨음을 직접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혔기 때문에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안에 예수님께서 사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닌 예수님앞에서 살려고 힘썼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죽어야 예수님의 모습이 나올까요? 얼마나 살아야? 얼마나 믿어야 예수님처럼 살아갈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정말 이땅에서 주님을 위해 살수 있을까요?

 

내 은혜가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지리라.

사도바울에게 가장 연약한 것이있었습니다 다른사람들은 질병은 다 낫게하고, 귀신도 쫓아내는데, 자신안에 있는 질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질병을 위해 예수님께 3번이나 간구합니다. 자신의 질병을 치료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때 바울은 깨닫습니다. 진정한 온전함이 무엇인가? 자신의 약함을 아는것입니다.

예수님은 바울이 자만하지 않기위해 그 몸에 연약함을 주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이 예수님께 붙들려서 복음을 위해 능욕을 받고, 배고프고, 박해와 외로움속에서도 그는 기뻐합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기뻐할수 있습니까? 바울이 약함이 다시 주님께 쓰임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할것이 교만이 아닐까요?

 

우리가 5주과정중에 예화중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온전한 화음 , 하나된 화음

옛날 아주 먼옛날 소리나라에서 가장 시끄러운 마을로 소문난 일곱소리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도레미파솔라시 라는 서로 다른 일곱소리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 어느날 일곱소리 마을 아이들이 한곳에 모여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날마다 싸우고 있었습니다. / 일곱소리 어른들은 언제나 자기 목소리만을 주장하며 서로에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일곱 소리 마을에서는 서로 다른 일곱가지 목소리가 날마다 시끄럽게 들려왔습니다. /

언제나 도도한 목소리로 도도가 가지주장을 하면 솔솔은 웃기지 말라며 쌀쌀맞게 소리를질렀습니다.

시시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시비를 걸었고, / 좀 과격한 파파는 퍽퍽 주먹까지 휘드른곤 했습니다. //

한밤중에도 랄라랄라 시끄럽게 떠들기를 좋아하는 라라” / 미미한 소리에도 짜증을 잘 내며 투덜거리는 미미

에에 소리를 지르며 언제나 남들에게 야유하는 레레이런 일곱소리 어른들의 시끄러운 싸움은 일곱 소리 아이들을 날마다 괴롭게 했습니다. / 너무나 속상한 어린 도도가 울면서 하늘을 향해 먼저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곱 소리 마을 사람들이 싸우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 그러자 옆에 있던 어린 미미와 솔솔도 한목소리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모아진 소리가 화음을 이루었습니다. 더 놀라운 거슨이렇게 서로 어우러진 소리들이 또 다시 어우러지면 아름다운 하모니가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 소리 아이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화음이었습니다.

동네에 이제는 어른들까지도 하나로 화음을 이루면서 더 이상 일곱소리 마을에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예화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복음로 하나된 화음이 필요하고, 서로 부족하지만 부족함을 사랑으로 은혜로 볼수 있는 마음들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절대로 사랑할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힘으로 화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저에게 맡겨주신 여러분들을 목양하는데 있어서 사랑을 할려고 노력하지만 다 채워줄수 없는 것이 나의 연약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는 것입니다.

 

3.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는 것

12:15.16 15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부활과 연결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오시자 제자들은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영광을 얻으신 후에라는 뜻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으로 자신에게 올때에 진정으로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죽음이 너무나 충만하고 완전한 까닭에 그분이 죽음으로써 성취하신 것이 상급과 보응이 부활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의 수난과 죽음으로써 만족되었습니다. 죄에 쏟아 부어질 거룩한 저주가 남김없이 부어졌습니다. 죄사함의 대가가 충분히 지불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완전히 충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통해 완전한 성취가 이루어졌고, 자신의 목적이 완수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이한주간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면서 고난에 함께 참여하셨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입니다. 그분은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다시 부활하셨으면 합니다. 우리 신앙도 다시 살아나셨야 합니다 죽은신앙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배신하는 신앙이 아니라, 거듭난 신앙으로 다시 살아나셔야 합니다.

 

내 심령 깊숙한 곳에 외칠 호산나!

9절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찬양의 소리입니다.

2000년전 이스라엘백성들은 의도적으로 호산나를 외쳤다면 오늘 우리는 가식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진슴으로 고백하는 마음으로 한주간의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소리높여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곳에서 호산나 라고 외칠수 있는 그날이 우리에게 빨리 왔으면 합니다.

샬롬의 왕으로 내가 구원받아야 할 구주를 진심으로 목놓아 부를수 있는 호산나가 우리에게 함께 부를 때 종려주일에 참뜻을 가지고 진심으로 우린 예수님이 가신 길에 종려나무를 깔고, 자신의 겉옷을 깔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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