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3.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고전 13장 1-7절
제목 : 사랑의 찬가 : 사랑은 오래참고
여러분! 이분은 누구십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분은 왜! 십자가에 달리셨을까요?
왜!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끼지 않고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이 죽지않으시면 우리 인간의 죄는 사함을 받을수가 없고 구원마저 얻지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은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값없이 주신 은혜의 산물입니다.
저는 고전13장 사랑의 찬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엄청난 부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부담감은 아름다운 본문을
저로 하여금 본문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해치지 않을까하는 염려였습니다. 마치 아름답게 핀 꽃을 꺽어 버릴것같은 마음말입니다.
또하나는 이 위대한 사랑의 장을 말씀을 전하기에는 내게 너무 사랑이 부족하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안에 성령께서 이 본문의 말씀을 연구하고 책을 통해서 섭렵하면서 조심스럽게 심오한 진리를 탐닉하고 나눈다는 것에 주님께서 나무라지 않으시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본문의 장을 두드려봅니다.
너무나 광대하고 귀중한 글들을 한 시간안에 다 고백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준비였습니다. 저역시 한주안동안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역시 성령님께서 조명해주신 것까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날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여,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묻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명령,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모든 교훈, 그 모든 가르침 가운데 어는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가를 묻고 있었던것입니다. 마22:37-39절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의 말씀은 율법의 완성은 이세상의 가장 큰 가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 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말씀할때에는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를 투영해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기까지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대신죽으신 그 사랑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무리 더듬어도 알수없기 때문에 ”예수님“를 빼면 안됩니다.
본문배경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므로써 특히 예배때 방언과 예언의 무분별한 사용과 자기과시를 드러내므로써 예배가 무질서가 되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은사들중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전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먼저 12: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그리고 본문 14:1 사랑을 추구하며 라고 말합니다. 12장은 영적의 은사에 대하여 나열합니다.
14장은 영적은사에 대한 바른 사용법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13장은 끼어 있습니다. 13장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른 은사를 사용할 때 가장 증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랑이 없는 은사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은사중 최고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3장은 1-3절 어떤 신앙과 덕목도 사랑이전제되지 않으면 모든 은사는 헛된 것임 (사랑의 필수성)
4-7절 사랑은 이론적 관점(머리) 아니라, 필수적관점(가슴)으로 실천해야하는 본질이다 (사랑의 본질)
8-13절 모든 은사중 절대적인 사랑만이 영원하다 (사랑의 영원성)
.사랑은 내면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현하고 표출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표현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마음에 있지만 마음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치열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표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안에 사랑이 있느냐?“ ”그사람을 사랑하느냐“에 질문에 우리는 내 마음깊은 곳에서만 찾아서는 안되고, 언제나 삶을 통해 확증되어지고,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표현이되거나 투영될때에 사랑을 알수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만 사랑을 간직하고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밖으로 표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술이 아니라, 피묻은 십자가앞에 나온 사람만이 주어진 은혜입니다..
일반 시중에 있는 서점에 가면 사랑에 대해 쓴 책중에 사랑의 방법, 사랑의 기술, 어떻게 하면 사랑하게 되는가? 등 수많은 사랑의 방법이나 기술에의해 체험과 지식을 통해 점진적으로 습득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사랑은 기술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을 때 다가오는 ”은사“입니다.
어느날 저는 교회 예배당에 의자에 앉자 한참동안 십자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내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부족한 나를 위해 십자가위에 죽으셨을까? 내가 무엇이간데 그토록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나님의 눈물 즉 독생자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시기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십자가에 사랑이 제가슴에서 느껴지면서 조금씩 그분에게 다가갈수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왜 나를 위해 죽으셨고, 죽으셔야만 했는지를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 분주한 하루하루가 시작될 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할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준비된 시간에 한번쯤 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시길 원합니다. 그때 십자가의 사랑을 조금씩 알게되고, 관계가 깊어지게 될것입니다.
. 사랑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인간을 향한 사람은 분리되는 것 아님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도 사랑하듯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대상이 기뻐하는것에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에 슬퍼하듯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인간도 사랑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을 겉모습만 번지르하는 신앙생활을 배척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신앙생활일 겉멋 들린 신앙생활은 파멸의 지름길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정교한 가면을 쓴다해도 그것은 사람의 눈만 속일수 있을뿐 하나님의 눈을 속일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안에 신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영성이 깊어지지 않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허세와 허위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거짓으로 포장하기 때문입니다.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생활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에 하나님앞에서 하나도 보여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신자들의 영성이 깊어지지 않는것입니다. 적당히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제법 괜찮은 사람인 양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하는 부패의 각질들을 제거하는 자기 안에 개혁없이는 겉멋 들린 신앙생활만 하면 그의 영적삶은 파멸로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는것입니다. / 사도바울은 13장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바로 인간의 모든 은사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전제조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13:1-3 사랑의 필수성 : 사랑이 없으면 모든 은사는 헛된 것
1.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이방종교의 행위이고 2. 가지고 있는 은사는 차가운 도구일뿐이다.
1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의 사람들은 방언을 천사의 언어로 생각하였고, 자신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하게 된 것을 하늘의 천사같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서 특히 예배에 이미 참여한것처럼 생각했던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때마다 무절제하게 사용하여 자신만이 특별한 은사를 행한다고 자랑하며 특히 예배의 행위를 혼돈을 일으켰습니다.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는 헬라의 신비주의 종교에서 광란의 의식때 쓰이는 도구였습니다. 바울이 이 표현을 쓰는 것은 사랑이 없이 방언만 하는 것은 ‘악기가 생명이 없는것처럼 이방종교의 예배의 행위와 다름이 없이 하는 것은 그저 두드리는 대로 소리를 낼뿐이라는 것’입니다.
13: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도바울은 예언과 모든 비밀과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말합니다. 이 표현은 신비한 체험을 하고 깊은것까지도 통달하는 그 어떤것에서 믿음이 얼마나 위대하게 역사하시지는지를 가르쳐 주실 때 사용했던 말입니다. 믿음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도하고, 실패한 사람에게도 새로운 힘을 공급하기도 하고, 사자굴에서도 굴하지 않고 풀려나게 하는것도 믿음이었던것입니다. 그런 능력을 행하는것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즉 우리가 사랑이 없이 섬기고 있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사는 차가운 도구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잠깐은 능력이 있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지 몰라도 영원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미국의 1960년대 흑인운동가로 활동했던 마틴루터 킹 목사님은 백인으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던 목사님입니다. 당시 흑인이 백인사회에서는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핍박과 고통스러운 때였습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그리고 마틴 루터 킹목사님을 괴롭히고 박해할때마다 // 마틴 루터킹 목사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박해를 가하고 폭탄을 던지고 아이들을 때리고 할지라도 우리는 당신들을 미워하지 않을것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당신의 힘이 더 강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을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이 더 강한지 내기 합시다”
그때 우리가 승리하게 되면 우리의 승리는 이중적 승리가 될것입니다.“ = 이중적 승리는 당신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승리 말입니다. 비폭력적 승리는 결국 사랑으로써 백인은 흑인을 사랑하고, 흑인은 백인을 사랑하는 것이 즉 연합하여 함께 어울리면서 공존하는 세상이 바로 승리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승리라고 마틴 루터 킹목사는 말합니다
이제는 본격적인 사랑의 본질로써 이론적 관점(머리)만아 아니라, 가슴으로 실천하는 필수적 관점에서 본질을 봅니다.
2, 사랑의 본질 :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 첫 번째 : ‘사랑은 오래참고’(4절)입니다.
사랑의 본질에서 4-7절까지 15가지의 사랑의 특성중. 그중에서 3-4개의 사랑의 오래참고에 관한 비슷한 공통점을 찾을수 있습니다.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4가지중 4절 ‘사랑은 오래참고’ 헬/마크로뒤메이 (μαχροθυμεῑ) : 인내/
해를 끼치는 자에게 복수하지 않고 견디어 냄을 의미함.
7절 ‘모든 것을 참으며’ : 헬/스테고 (στεγω) : 절제/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참는다‘ 의미
즉 사용할수 잇는 권한을 다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헬/휘포메네이 (ὺπομένει) 고난/ 견딘다.
5절 ’성내지 아니하며‘ : 헬/ 파로코쉬네타이 (παροξύνεται) 분노 /쉽게 예민해지는 기질
첫 번째 4절 1. ’사랑은 오래 참고‘– 헬/마크로뒤메이 / 해를 끼치는 자에게 복수지않고 견디어 냄을 의미함 (인내)
바울은 사랑의 성품을 말하면서 떠올린 것은 첫 번째가 사랑받은자의 입장에서 죄인인 우리를 향해 오래참으시고 예수님의 성품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하는자의 입장에서 사랑은 내안에 부패한 욕구, 욕망, 정욕, 미움, 시기를 억누르는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서로 형제끼리 미워하고 시기하여 자기 의견이 다르고 분쟁하여 재판하고 송사하는 잘못된 우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갈망합니다.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성품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형상을 가졌기 때문에 사랑을 갈망하게 됩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은 나이가 들면서 부모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친구나 이성친구에서 배우자와 상사로 옮겨지게 됩니다. 대상은 나이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욕구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가족이나 연인이 가장 원망스럽고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서로에게 받을 것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두사람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깊이 수용하고 공감하
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용납하고 이해하는데 가족안에 부부에게는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은 서로에게 수용하고 기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감하라 : 참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상처‘만 간직하게 되고, 참사랑을 아는 사람은 ’사랑‘만 간직한다.
즉 서로에 대한 공감한다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공감(共感)이 무엇입니까?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으로써 그와 함께 소통하고 나누는 것을 공감이라고 합니다. 어느 부모님이 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 아빠는 항상 네뒤에 있다.“ 딸은 절대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부모가 뒤에 있다는 걸 아는 딸은 어떤 힘든 상항에서도 모든 경우의 수를 늘어놓고 합리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할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느껴야 자신이 놓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을 사랑하고 뒤에 든든하게 지켜주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온도가 다르게 됩니다.
두종류의 사람의 마음의 차이는 모두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사람은 살아가면서도 원망의 기억을 가슴에 묻지 않습니다. 때로는 잠시 힘든일을 겪더라도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에 힘을 얻습니다.
참된 신앙을 가진 부부가 공감대가 형성이 되고,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을 보고 가게된다면 원망의 기억을 가슴에 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가득 상처를 품고 있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여유가 없고 각박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사랑중에서 참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상처를 간직하게 되고, 참사랑을 아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게 됩니다.
그러면 왜! 어떠한 상황가운데서도 오래 참아야 할까?
오래참음의 모본은 예수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2. 이 세상이 우리에게 오래 참는 사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오래참음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로써 ”인격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인 사랑하면 살지못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는 외부인 밖에서가 아니라, 내부인 내마음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참고 인내하고 버티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랑이 감정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흘러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랑을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마음 끌리는대로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우리안에 있는 정욕이고 탐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적인 자아의 성품을 억누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사랑이 예수님의 성품에서 드러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십니다.
2. 사랑의 오래참고 두번째 7절 ’모든 것을 참으며‘ : 헬/스테고 (στεγω) : 절제/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참는다‘ 의미
즉 사용할수 잇는 권한을 다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의 성격대로 기질대로 화 낼 것은 화내고,내 방식을 다 주장하고, 내 권리를 다 주장하는 것은 사랑이아닙니다.
모든 것을 참는 사랑은 첫 번째 사랑의 희생의 댓가를 치루어야 함. 두 번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조금씩 온전해짐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비용은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며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한 순간부터 우리는 ”희생의 요구에 댓가를 치루어여 합니다. 사랑하며 살기위해서는 모든 것을 참는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 사랑의 실천을 하게 되면 조금씩 온전해 지고 성숙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분의 성숙함을 무엇을 판단할수 있을까요? 아마도 사랑의 희생의 댓가를 치루고 있고, 사랑의 실천을 통해 조금씩 온전해 지는 것을 보면서 판단할수 있지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온갖 모욕과 비방과 비난에서도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으신 것은 저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희생의 댓가를 치루고 사랑의 실천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시고 절제하신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참으신것입니다.
3. 사랑은오 래참고 세 번째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헬/휘포메네이 (ὺπομένει) 고난/ 견딘다.
’견딘다‘는 말은 무엇인가 감내해 내기 어려운 것을 감내해 낼 때 쓰는 표현입니다. 감당할 만 것을 감당하는 것은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견딘다는 것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참고 또 참으면서 견디어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견디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든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린도13장의 사랑장은 이방인들에게 쓴 편지가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을 듣고, 놀라운 은혜를 받고, 신령한 은사들을 체험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나름대로 방언이나 다른 은사들을 체험했던 영성을 가졌던 신자들에게 쓴 편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이 입증되지 않는 영성은 다 가짜라고 말을 하는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현실속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실제의 삶속에서 희생을 견디어 내야하는것입니다.
사랑은 힘들어도 그 자리를 도중에 포기하지 않는것입니다. 국민일보에 보면 황혼이혼이 그리고 젊은 세대들의 이혼률이 높게 나옵니다.30,40년 살았던 분들이 이혼을합니다. 그리고 다시 재혼합니다. 이렇게 쉽게 이혼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진실하게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이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에게 미련을 하나씩 하나씪 내려놓게 되어집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끝까지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한자입니다.
4 네 번째 5절 ’성내지 아니하며‘ : 헬/ 파로코쉬네타이 (παροξύνεται) 분노(조절) /쉽게 예민해지는 기질
예수님께서는 화 즉 분노는 살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마5: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야고보사도는 화를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약1:20 20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분노가 주는 악영향력 : 1. 우리의 영성을 약화시킴 – 분노, 화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기도가 막힙니다. 자신안에 포악한 본성으로 말미암는 분노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치밀어오른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영혼을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신자의 영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다시 영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2. 분노를 자주 나타내면 선한영향력을 끼치지 못함 – 분노를 자주 내면 주변에 사람이 없고, 사회생활에 고독해 집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자꾸 분노하면 행복은 곧 사라지고 마는것입니다. 화산이 폭발하는 산은 꽃이 자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 교회, 직장 및 사업장 기타 공동체를 화신이 폭발하는 분노의 산으로 만든다면 아름다움과 행복, 화목, 즐거움, 기쁨의 꽃들이 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안에 갇히게 되어 고독해지는것입니다.
분노를 잠재우는 방법 : 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잠재운다.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유순‘이라는 말은 한자로 부드러울 유, 순한 순, 즉 부드럽고 순한 마음과 태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분노를 잠재우는 방법은 말을 부드럽게 할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말씀의 다스림 받고 사는 것 : 잠언 29:11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어떤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심령골수를 쪼개고도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안에 예리하게 살아움직이면 말씀의 다스림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안에 있는 더러운 욕심과 탐욕 그리고 미움이 다스림을 받게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의 삶을 통해 분별력을 생겨서 자신안에 올라오는 불순물들을 자꾸 억제 시킬수가 있는것입니다.
세상끝까지 영원한 것은 사랑뿐입니다. : 사랑의 가치는 값으로 칠수 없습니다.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2000년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시고 그 십자가는 치워졌지만 예수님의 사랑만은 2000년이 지난후에 남아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린 사랑을 잃어버린 세대에 살고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을 잃어버린지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라고 말한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할수있을 때 사랑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헨델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가발을 잃어버렸다. 한참동안 난처해하고 있을 때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그의 가발을 찾아주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근처 이발관에서 일하는 아가씨였다. 그 후 헨델은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를 자주 찾아갔고 어느덧 그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헨델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의 친필 악보를 선물로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헨델은 그 이발관에 갑자기 들렀다가 이발을 하러 온 한 손님의 머리를 만지고 있던 그녀가 무심코 다른 이발사에게 “머리를 말게 악보 몇 장만 갖다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헨델은 조용히 이발관을 나왔고 그 후로 다시는 그 이발관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헨델의 명작 ‘메시아’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여인처럼, 진리를 아무리 진리라고 말해도 진리인줄 모르는 사람들처럼,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있지만 그 말씀을 다 깨닫지 못하고 있다.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은 가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사중에 제일이 사랑이고, 사랑이 없는 은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울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은사는 폐하고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끝날까지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십니까?
아내가 몸이 연약합니까? 남편은 연약한 아내를 더 많이 이해를 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감당해 주시면 됩니다. 아내는 남편의 부족한 부분이 보입니까? 아내는 부족한 남편의 그 부분까지도 자신이 가슴에 안고 하나님앞에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면 해결됩니다.
자녀 때문에 힘이 듭니까? 자녀들은 엄마 아빠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면서 살면, 그 아가페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하면 자녀들은 그 틀안에서 안식을 얻고 자유를 얻고 평안해 지는것입니다.
늙은 부모님이 계십니까? 그 늙음 자체를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우리도 늙게 됩니다. 그래서 더 부모님을 사랑해 주어야 하는것입니다.
직장안에서 가정안에서 친구의 관계서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안에서 회복되고 치유되어야 합니다.
이 한주간 사랑은 오래참고를 묵상하시면서 인내/ 절제 / 고난가운데 견디는것 / 분노제어를 묵상하시면 하나님! 저에게 오래 참을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한주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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