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9.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딤후3:5 / 요13:21-30절
제목 : 예수를 믿는다는 것 – 네가 돌아서라
목회를 하면서 제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경험하고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체험한 사람들의 미끄럼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세워졌다고 생각하면 넘어져있고, 쉽게 침륜에 빠져버리는 것을 볼때마다 제 가슴에는 늘 못다한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첫째는 과거적 회심의 문제일수 있습니다. 회심이 총체적으로 복음의 의미를 경험한 신학적 회심이 아니라, 진리 중 일부만을 경험한 도덕중 회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현재적 은혜의 문제입니다. 즉 바르게 회심해야 할 뿐만아니라 그 회심을 늘 보존하고 살아야만 견고한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가장 큰 요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적으로 마음에 품고 살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적으로 마음속에 품고 살지 않으면 죄에 대한 승리는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딤후 3: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 말씀합니다. 이 본문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그리고 경건의 모양을 가지게 된 제자들중 한 사람 가룟유다를 통하여 우리도 모습을 비취어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가룟유다를 통해 어떤 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일까?을 함께 나누어 봅니다.
알맹이없는 껍데기 신앙은 가라
사도바울은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울수록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많이 교회안에 그리고 성도들안에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경건”이란 무엇인가? 헬/유세베이아스 /영어로 갓네스 godless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모양” -헬/모르포스 윤곽,모양을 뜻함 / 즉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를 의미합니다.
즉 말세때가 되면 이땅에 그리스도인으로써 ‘알맹이가 없는 경건이 차고 넘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능력” - 헬/뒤나미스 뜻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의미함으로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네가 돌아서라“ - 헬/아포트레푸 - ~로부터 멀리 떨어져 의미로서 ”~로부터 멀어지도록 자신을 돌이키라“ 는 의미입니다. 진리의 말씀즉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돌이키라 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자들, 돌아서야 할자들이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가진자 즉 알맹이는 없고 신앙의 껍데끼만 가진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세때가 되면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마지막때가 가까울수록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때까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의지하면서 믿음을 지키고 있을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씀합니다.
즉 주님의 때가 가까울수록 믿음을 지키고 견디어내는자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참믿음을 가진자가 없는 세대가 오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실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시고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갖춘자들이 이 세상에 득세할까요?
그것은 바울이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을려고 해도,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고 감사하지않고, 거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시대가 가까울수록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자가 예수님의 제자중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 가룟유다는 제자로써 실패한 이유
오늘날 이 세상에서 나타난 신자나 비신자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을 통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감사하지 않는 이시대를 통해 가룟유다라는 인물를 통해 그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것입니다. 가룟유다는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어주고 팔아버린 장본인이기에 그를 통해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누구인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을 문제의 답을 찾아볼려고 하는것입니다.
한때는 예수님의 제자 : 가룟유다
1. 유다는 한때는 예수님의 12제자중 한사람이었습니다. 2.다른 제자들처럼 그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고 주님과 함께 힘든 여정을 보냈습니다. 3.유다는 예수그리스도에게서 큰 매력을 느끼고 장점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이야말로 새로운 왕국을 세울 메시야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예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4.예수님이 보이신 표적과 기사를 보면서 예수님이야말로 최고의 인간이고 이스라엘을 구원자로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5.가룟유다는 제자들중 돈궤를 맡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6.유다는 주님을 가까이 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전도도 했고, 귀신을 쫓아내는 경험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룟유다가 인간적으로 볼때는 참된 그리스도인처럼 보였지만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실한 주님의 제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자였고, 재정을 맡고있고, 전도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갖추었도 가룟유다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엇고,참된 제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모습의 보면서 유다같은 사람들이 교회공동체 안에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가룟유다의 진실 : 탐욕을 꿰뚤어 보시는 주님이 싫었던 유다
유다의 삶을 통해서 발견할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는 유다처럼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유다가어떻게 잘못 믿었습니까? 표면적 대답은 유다가 물질에 대한 즉 돈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요12: 4-6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주님의머리와 발에 향유를 바른 사건입니다. 가룟유다는 삼백 데나리온이 가치있는 향유가 아까워서
마리아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러면서 그 돈을 예수님의 머리에 붓지 말고, 가난한자들에게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합니다. 성경은 6절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가룟유다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은자로써 삼백데나리 데는 큰돈을 자신에게 맡겼으면 그돈을 훔쳐 갈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가룟유다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알고 계셨던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26:14-16 14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장면에도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삼십 즉 노예의 값밖에 돼지않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버립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것입니다. 가룟유다는 돈에 눈이 멀어 탐욕이 가득찼다. 그래서 탐심은 버려야 합니다. 탐욕을 가지고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업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물론 맞습니다. 정확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예수님을 팔아넘긴 결정적인 이유었을까?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또 하나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 넘긴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의 중심으로 항상 꿰뜰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탐욕으로 가득찬 가룟유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꿰뚤어 보시는 것을 유다는 견디지 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자주 자신을 향해 던지는 암시적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정확한 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돌이키지 않고 자신의 꿰뜰어 아는것에 대한 싫은 감정을 마음속에 묻어둔 채로 지냈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싫어하시는 행동을 반복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암시를 주셨던 주님의 지적, 곧 일종의 기회를 계속해서 묵과하다가 결국에는 견디지 못하여 예수님을 은삼십에 팔아넘겼습니다.
가룟유다는 돈에대한 탐욕을 꿰뚤어 보시는 예수님이 싫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요2: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절대로 여러분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인간은 외모를 보지만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그 말씀의 소리에 귀를 닫아 버린 순간 실패에 자리에 서게 됩니다.
제자중에 있었던 한 사람의 마귀 : 가룟유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가룟유다의 행위와 마음을 안 마귀는 유다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생각을 넣었더라. 왜! 12제자중 그가 예수님을 팔려고 생각했을까요? 그는 처음부터 그 마음에는 예수님이 아닌 다른마음으로 채워졌던것입니다. 그것은 탐욕이었고 그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꿰뚫어 보고계시는 주님이 싫어던 것입니다. 공생의 삶이 어쩌면 외식이고 알맹이 없는 껍데기 신앙이었던것입니다. 참된 신자가 아니고 참된 제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수 있씁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2년이 되었을 때 누구를 지목하고 말씀하십니다. 요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한사람은 마귀라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 한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가룟유다’입니다.
이 소리를 들었던 가룟유다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요? 가룟유다는 이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거나 통곡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주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회개하지 않았고,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것처럼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 가룟유다를 지목합니다 요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가룟유다는 이 말씀을 들었고 계속 자신에게 지적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너희는 깨끗하나 다는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지적하는데 유다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주님은 유다에게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 가룟유다를 지목합니다 요13: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여기서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라는 것에 누구를 가리킬까요? 가룟유다입니다. 그가 배신과 배반할 것을 아셨던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다는 결정적인 선언에도 유다는 태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니은 네 번째 가룟유다를 지목 요13:21 2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 너희중에 하나가 나를 팔자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가룟유다는 자신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르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유다가 이쯤 되면 자신을 보고 돌아섰을까요? 아니요.
가룟유다의 마음속에 마귀가 들어갑니다. 요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제 그를 사탄에게 영원히 내주기라도 하시는 듯 “네가 하는 일을 속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0절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말씀합니다. 이밤에 가룟유다는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대제사장에 예수님을 팔려고 갔던 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얼마나 많이 깨닫을수 있도록 알게 하십니까? 그런데 유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불신하는것입니다. 즉 믿지 않는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안에서 재정을 맡고, 중직을 맡고, 교사로써 가르치고,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를 한다고 한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알면서 행치하는 불신의 죄를 짓고 있지않을까요? 다시한번 자신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내 신앙은 하나님앞에서 안전한가? 내 신앙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앞에서 바르게 설려고 노력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치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닐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 두부류의 사람들
오늘날 교회공동체 안에 두부류의 사람들로 분류할수 있습니다. 하나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처럼 돌이키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말씀임을 알고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얼마나 울었습니까? 반면에 또 한사람 가룟유다처럼 자신을 향한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마음의 문을 닫고 말하는자를 싫어하고 적대감을 갖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느 부류의 속한사람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진실하게 반응하면 사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떻게하면 ‘네가 돌아서라’는 말씀에 반응할까요?
첫 번째 하나님앞에 끝가지 충성된자가 되라.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몇 년전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아실것입니다. 15년을 산다는 소가 할아버지와 인연을 맺는 것이 40년이 넘습니다. 이 소는 할아버지의 소중한 자산이고 자식이었습니다. 할어버지와 소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한결같이 논밭에 나가서 일을 했습니다. 40살이 된 소도 나이가 먹어서 잘 걷지를 못합니다. 할아버지와 소가 함께 늙어가면서 걷는 것이 불편합니다. 할아버지가 소에게 말을 합니다. ‘너하고 나는 팔자가 드셔서 죽을때까지 죽도록 이렇게 일만하는구나! 하고 넋두리를 합니다. 결국 이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겨울을 잘 지내시라고 마지막 땔감을 가득 채워놓습니다. 그리고 이소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합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일어서라고 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는 할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소가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소 코에있는 코뚜레를 낫으로 잘라줍니다. 나이가 든 소는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죽습니다,. 소는 자신이 죽을때까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유다는 처음에는 제자였지만 그는 예수님앞에서 충직한 제자가 되지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아닌 다른것에 사로잡혀 살았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멸망의 길, 사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것입니다
우리역시 가룟유다와 같은 자가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앞에 날마다 서있어야 합니다.
충성된 사람은 말씀대로 살기를 작정합니다. 그래서 또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신이 만난 예수그리스도를 알리기를 원합니다. 삶에서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실천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게 되면 반듯이 말씀의 반응이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 말씀 자체를 싫어하고 교리 자체를 싫어하며 적대시하면 그것은 여러분은 ‘유다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 아닙니다. 그런 신자는 예수님을 팔 사람이고, 마지막때 배신할 사람입니다.
오늘날 경건의 모양을 갖춘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래서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을 함께 갖춘 사람을 하나님께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신앙을 버려야겠다고 하나님앞에서 다짐하셔야 합니다. 이제는 뒤를 돌아가는 신앙이 되어서는안됩니다.
두 번째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죄를 회개하고 돌이킨자의 삶을 사는것
언제부터인가 교회안에 회개가 사라졌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고백해도 후회하는 것에 그칩니다.
여러분 찔림이나 후회는 회개와 별개입니다. 자신의 죄를 찔리거나 후회하는 것은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심이 있어야 한다는것입니다. 회심에는 회개와 믿음이 함께합니다. 회개는 죄에대해서 돌이키는것이고, 믿음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가룟유다와 베드로와의 평가와 차이를 보겠습니다.
가룟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스스로 뉘우침에 끝납니다.
마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5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유다는 스스로 뉘우쳐 은 삼십을 대제사장에 갖다줍니다. 그리고 그는 자살해 버립니다. 여러분 스스로 뉘우쳤다는 것은 후회이지 회개가 아닙니다. 자기 생각으로 끝나버립니다. 가룟유다는 후회로만 끝납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의 평가를 어떻게 내리십니까? 마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 가룟유다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았다라고 예수님은 평가하십니다. 이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죄를짓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후회로만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진정한 회개가 예수님 앞에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베드로를 볼까요? 그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한 사람입니다. 닭이 울리자는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마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베드로는 스스로 뉘우치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며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죄가 아무리 무거워도 주님앞에서는 다 용서가 되는것입니다. 반드시 삶에서 말씀이 삶에서 생각이 나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나를 지키고 다스려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관념과 방법과 가치는 말씀을 가리우게 합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66: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죄악을 품고 기도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으신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악을 반드시 고백해야합니다.
여러분안에 회심이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것이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 하나님앞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마지막때가 되면 더 많은 유혹이 올것입니다. 후회하는 삶보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앞에 더 진보적으로 나아가는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진실하게 만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말씀이 여러분안에 살아움직이고 그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주관하시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세 번째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가까이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한치앞도 알지못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1시간후 아니 5분후도 모르는 인생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길면서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신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안에 참된 삶을 누리라고 시간과 생명을 주신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가룟유다가 성찬의 떡을 받고 밤에 나가버리자 예수님은 남은 제자들에게 새계명을 주겠다고 하시면서 서로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서로사랑하면 그때에 내제자가 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13: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는 말세가 되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형제를 서로 사랑하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할때 가져야할 자세는 1. 신자가 삶에서 가장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바른관계로 사랑하는것이 첫 번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관계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뜻과 목적을 알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관계가 바르게 되지않으면 우리 인생은 어느것 하나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바른관계가 되지않았습니다. 자기생각대로 자기방법대로 살았던자가 가룟유다입니다. 반면 비록 연약하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한 베드로는 주님을 진실로 만나면서 삶의 전부를 주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삶으로 살아가면서 순교합니다. 바른관계는 첫 번째 말씀의 조명 / 두 번째는 말씀의 적용된 삶 / 세 번째는 인내하는 삶으로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는 모습입니다.
2.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인생에 일어나고 있는 자세한 계획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요일날 첫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훈련했습니다. 첫장에서 하나님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알아서 찾아가겠습니다. 하면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하루하루 예수님을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길이시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인생의 길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을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려고 하루하루 순종하는 삶을 시작하지 않는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각자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상세한 계획을 보여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사랑을 하게되면 세상에 속하며 살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랑을 하게되면 은혜가 넘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은혜가 넘친다는 것은 죄가 은혜와 사랑에 머문사람을 틈타지 않는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과 은혜로 사는 삶을 살수록 모든공급이 하나님께로 부터온다는 것을 누리기 때문에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세상의 죄가 틈타지 않습니다.
바울이 고백합니다. 롬7:14.15 14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율법아래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아래에 사는 사람은 죄를 짓고 살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진실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코스로 은혜안에 머물게 됩니다. 은혜안에 머문사람은 죄가운데 있지않고 죄를 싫어하게 되고, 죄를 지을려고 하지 않습니다. 혹 죄를 짓더라도 진심으로 회개를 하면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려고 합니다. 불편한 관계가 얼마나 힘드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결론! 어떻게 하면 우리가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돌아설까요?
1. 충성된자가 되라 (하나님의 말씀의 반응을 일으키는 것) 2. 죄를 회개하고 돌이킨자의 삶을 사는 것 3.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이한주간 깊은 묵상있기를 원합니다.
가룟유다는 탐욕의 눈이 먼것도 있지만 더 긍극적인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소리를 외면하고 자신을 꿰둘어 본 예수님이 싫어던것입니다. 혹 나만을 위해 인생을 살고있지않는가? 난 주님의 말씀을 귀를기울이고 매일매일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가?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 말씀을 묵상하며 되새김질 하면서 혹 미흡하고 깨진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하시고, 세상으로부터 깊이 들어가 있으면 다시 죄가운데서 회심하며 세상을 사랑하지않고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가지겠다는 분명한 다짐과 확신을 가지고
이 한주간도 멋진 삶, 환희와 기쁨의 삶을 살아가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57 | 2021.10.31 마음을 찢어 회개하라! | 채인기 | 2021.11.01 | 49 |
56 | 2021.10.24 내 신앙은 진짜인가? | 채인기 | 2021.10.25 | 50 |
55 | 2021.10.17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됨을 알지어다 | 채인기 | 2021.10.18 | 51 |
» | 2021.10.10 예수를 믿는다는 것 – 네가 돌아서라 | 채인기 | 2021.10.11 | 48 |
53 | 2021.10.3 사랑의 찬가 : 사랑은 오래참고 | 채인기 | 2021.10.03 | 46 |
52 | 2021.9.26 고통속에서 삶을 의미있게 사는 법 | 채인기 | 2021.09.28 | 54 |
51 | 2021.9.19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 | 채인기 | 2021.09.23 | 52 |
50 | 2021.9.12 말의 언어 (살리는 언어, 망하는 언어) | 채인기 | 2021.09.14 | 49 |
49 | 2021.9.5 4명의 믿음의 차이점: 알렉산더,데마,마가,누가 | 채인기 | 2021.09.06 | 41 |
48 | 2021.8.29 날마다 주님과 가까이하는 생활? | 채인기 | 2021.09.03 | 59 |
47 | 2021.8.22 찾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 채인기 | 2021.08.23 | 54 |
46 | 2021.8.15 요단을 건너라! | 채인기 | 2021.08.16 | 52 |
45 | 2021.8.8 기드온의 태도와 말씀의 확신 | 채인기 | 2021.08.10 | 61 |
44 | 2021.8.1 코로나때 방심과 각성 | 채인기 | 2021.08.02 | 57 |
43 | 2021.7.25 시험에 들지않게 전도하며 깨어 기도하라! | 채인기 | 2021.07.26 | 66 |
42 | 2021.7.18 예수님은 사람에게 집중하셨다. | 채인기 | 2021.07.20 | 70 |
41 | 2021.7.11 내 삶에 역사의 감사와 은혜로 기록되길 | 채인기 | 2021.07.14 | 64 |
40 | 2021.7.4 이 땅에서 복! 그러면 순종하세요. | 채인기 | 2021.07.14 | 59 |
39 | 6.27 알곡과 가라지 | 채인기 | 2021.07.03 | 59 |
38 | 6.20 중보기도자는 시대의 영적거인이다 | 채인기 | 2021.06.23 | 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