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9.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다니엘 6장10-15절
제목: 억울한일을 당할 때 신앙의 진수를 보이라
우리가 국가나 사회가 결코 공평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이 느낄것입니다 기어이나, 공무원사회에서도 정규직으로 들어가도 학력이 낮다는것 때문에 정규직으로 되었어도 불이익을 당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직장내 괴롭힘 왕따, 외면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오해나 억울한일을 당할때가 많을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십니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저역시 그런 억울한일을 당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그냥 모든 것을 다 파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냥 아무런 대응을 하지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무대응으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다니엘을 보면서 이것이 진짜 신앙의 진수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모든일에는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게 됩니다. 우리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에만 치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과정을 별로 중요시 하지않습니다. 결과만 좋게 나오면 모든 것이 없던일로 되어버리는 것이 세상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과정과 함께 결과를 중요시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과정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진정한 신앙의 진수를 깨닫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비법을 알기위해서는 반드시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8: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구약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분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셔서 말씀을 전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아들임을 선포하시면서 진리를 가르치고 병든영혼을 고쳐주면서 새계명을 그들에게 전하는데도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유대인들의 율법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은 믿지않았고, 오히려 미워하는 시대였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진리를 믿지 않는 세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한국교회를 향하여
“나를 향하여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시 진리이신 예수님 앞에 서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 때 진짜 신앙의 생활의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되고, 자신의 신앙의 진수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새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어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또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속에 계시겠음이라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진리이시고, 성령도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여러분안에 거하셔야 진리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수 있고, 그 말씀을 깨닫게 되는것입니다.
진리 (眞理): 참된 이치. 참된 도리 / 헬/알레데이아 (άλήθϵια)입니다 / 헬라어 ‘데오스’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진리인 ‘알레데이아’ 글자안에 ‘데’가 들어간 것은 진리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진리란 숨겨지고 감추어진 것이 밝히 드러나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란 바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기도 하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가리키기도 한다 즉 바로 예수님 자신이 진리의 원형이신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의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진리가 되기위해서는 반드시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진리가 3가지 조건 첫 번째 : 진리의 절대성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절대로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났더라도 여전히 죄악에 물든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진리가 될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절대로 변하지 않고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진리가 3가지조건 두 번째 : 진리의 객관성입니다. 진리는자신의 주관적 해석이나 체험에 근거하기보다는 성경의 말씀의가르침에 그토대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개인적인 체험이나 환상으로 진리의 진위여부를 판단할수 없습니다.
진리는 시대의 환경이나 상황을 초월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오직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전달되고 증거되고 보존되는 진리가 참 진리입니다. 그래서 나뿐아니라, 상대방에도 검증되는 객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진리가 3가지 조건 세 번째 : 진리의 합리성입니다. 진리의 합리성에 기초한 개인적인 체험으로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의 기초를 통해 논리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비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말씀에 근거하여 믿어야 하는것이고, 삶을 살더라도 믿음의 근거를 가지고 확신해야 하는것입니다.
그 모본이 바로 다니엘의 영성입니다. 억울한 상황가운데서 죽음앞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진리이신 하나님앞에서 보여주고 있는것입니다.
분문배경
다니엘은 청년때 바벨론 포로 끌려왔었습니다. BC 605년 예루살렘 멸망 1차때 일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제국의 느부갓네살왕 벨사상왕을 거치게 됩니다. 페르시아는 바벨론을 전쟁으로 정복한후 바벨론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고 새로 등극한 왕이 전세계의 패권을 다스리게 됩니다.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80세 고령의 나이에도 그는 고국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왕인 다리오왕은 3명의 총리를 세웁니다. 넓은 땅을 분할하여 3명의 총리를 두게 되었는데 그중에 다니엘이 수석총리가 되고 다리왕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다니엘은 제국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총리중 수석총리로 발탁한 것은 그의 지혜와 경륜이 새로운 제국에도 여전히 높이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총리가 된후 주변의 높은 사람들로부터 시기를 받습니다. 이들은 법령을 만들어 다니엘을 고발하여 사자굴에 넣어 죽게하기위한 계획을 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구원하시고, 모함했던 자들은 오히려 사자굴에 던져저 죽게됩니다.
하나님께서 억울한 가운데 있을수 있는 다니엘의 삶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우리는 보고 알면서 그현장에서 우리가 믿는 엘로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다니엘을 향한 음모와 모함
다니엘을 죽일려는 음모와 모함 : 다니엘이 수석총리가 된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높은 관리들이 다니엘을 모함하여 어떻게든 총리에 끌어내려 죽임에 이르게 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습니다.
6:4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7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어떤 상황입니까? 다니엘이 수석총리가 되자, 행정적으로나 부정적인 일등 나라의 일에 혹시 흠이 있을까 보았지만 다니엘에게서 어떤 흠이나 근거도 허물도 찾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총리,지사, 총독, 법관, 관원들이 합세하여 다니엘 한사람을 어떻게든 옭아매어 다리오 왕에게 고발할 증거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없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알게 되어서 30일동안만 법률을 세우고, 금령을 정해서 다리오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절하거나 구하면 사자가 있는 굴에 집어넣자고 법을 세웁니다. 그리고 거기에 못미치니까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 법을 절대로 고치지 못하도록 규례를 세우자는 것입니다.
다리오왕은 자기를 높이는 것을 알고 자신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세웁니다.
이젠 다니엘은 꼼짝없이 이들의 음모와 모함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사람도 아니고 높은 위치에 있는 모든 고관들이 합세하여 달려들어 다니엘을 무너뜨릴려고 합니다. 정말로 난감한 상황이고 억울한 상황입니다.
여러사람이 모여서 한 사람 다니엘은 잡아 죽이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중에도 자기가족중 자신만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가족모임이 있으면 때로는 왕따를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것입니다. 신앙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인생사가 늘 그렇듯이 사람이 사는 곳에는 가족이나 회사에서 직장에서 사업의 일가운데서도 이런일들이 어쩌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억울함 때문에 화가 나기도하고, 잠못이루는 밤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이런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고, 억울하고, 우는 사자같이 달려드는 이 무리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의 신앙의 진수, 믿음의 진수를 볼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신앙의 진수
1.다니엘의 신앙의 진수 첫번째 :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 무끞을 끊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우리가 먼저 알아야하는 것은 자신이 처지가 우겨쌈을 당하는 상황, 억울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자신이 기도하던 집윗층인 기도처로 가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떻습니까? 자신을 변명하기위해 사람을 찾거나, 전화를 해서라도 자신의 합리화를 만들어낼려고 하지않습니까?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을 다니엘은 정확히 알았기 때문에 평생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살리실 것을 더욱견고하게 믿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신가?
그림)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한국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데,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합니다.
뻬레쉬트 빠라 엘로힘 에트 핫솨마임 웨에트 하아렛츠
태초에 창조 하나님 그 하늘들을 그리고 그땅을
여기에 성경에 첫머리로 시작한 것이 태초입니다. 히브리어는 태초는 무엇입니까? 베레쉬트 –입니다. 여기서
‘베’: ~하나님의 집 안에 그리고 레쉬트 -> 근원, 머리, 우두머리 라는 뜻입니다. 즉 시작, 근본이라는 의미로써 베레쉬트라는 것은 시간이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는 근원으로서 시간의 출발점을 의미합니다. 무에서 유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있게하셨다는 것입니다.
엘로힘은 ->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창조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엘로힘의 하나님”입니다.
온우주가 아무것도 없이 어둠 캄캄할때에 엘로힘의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사이의 모든 존재 자체 만드시고 그들이 서로 얽혀서 빚어내는 모든 역사의 유일한 원초적 기원이시고 근원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나 모든 만물이 엘로힘이라는 존재의 기원에서 시작되기때문임을 고백할 때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엘로힘의 하나님은 시작이 하나님이시고 인간과 만물가운데 운행하시고 간섭하신분이 엘로힘이시고, 그 인간과 만물이 생을 다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는분도 엘로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소유권과 통치권이 엘로힘 하나님께 있음을 다니엘은 알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주체가 누구냐? -“엘로힘”하나님입니다. / 무에서 유를 없는 것을 있게하시는 분이 누구냐? “엘로힘의 하나님”“시간의 시작과 끝을 가지신 분이 누구냐? 엘로힘 하나님 / 인간의 생사화복을 소유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 누구냐? 엘로힘 하나님이십니다. / 이런 확신과 믿음이 있기에 다니엘은 자신을 모욕하고 음모를 꾸며내서 사자굴의 밥이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엘로힘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질서이시고, 시작이고 마침이라는 것, 알파와 오메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진수란 사물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진수라고 합니다. 즉 다니엘의 신앙의 진수는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처럼 고소를 당하도록 법규를 범한 것은 그 법규를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자신의 목숨보
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그 금령을 접하는 순간 자신을 시기하는 간악한 무리들이 간계로 그 같은 금령을 반포하도록 음모를 꾸였으며 그들이 자신을 반드시 고소할 것이라는 사실도 짐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될 것임을 알고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한 국가의 총리로서 그 국가에서 제정한 법률을 알면서도 이를
위반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위에 있는 국가의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하며,그 이유로서 그러한 국가의 권세는 하나님의 정하
신 바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롬 13:1.2). 또한 사도 베드로는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에 대하여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고 권면했습니다(벧전 2:13.14). 이러한 측면으로 본다면, 다니엘은 다리오 왕에게 권세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권위를
불복종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 .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 다니엘은 국가의 법률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하
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라면 지키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일제 강점기때 신사참배를 거부했었지만 그들의 신사참배 거부 행위가 하나님의 권위를 불순종한
것이라 말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그렇게 단호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한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자가 본 받아야 할 합당한 자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주기철목사님과 손양원목사님을 지금까지 좋아하고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세상과 하나님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중 그 어떤것도 엘로힘 하나님과 바꿀수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학생에게 질문을 합니다. - 성령님이 어디에 계시니? 하니까 학생은 제 마음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목사님은 그 성령님은 너 마음에 무엇을 하고 있니? 라고 질문하자 학생은 아무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예를 들면서 집에 어머님이 계신다 그런데 그 어머님은 방에서 꼼짝도 하지않고 누워만 계신다.
그 다음날도 어머님은 꼼짝도 하지않고 누워계신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똑같이 어머니님은 방에서 누워만 계신다
그렇다면 이 어머님은 어떤 상태인가? 바로 죽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아무것도 하지않고 계신다는 것은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죽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죽은 것은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안에서 성령님이 일하고 계시지않는다면 죽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이 허한 사람이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무기력한 자신의 신앙생활에 지친 영혼들을 봅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눌려있습니다. 삶이 멍때립니다. 말씀을 들어도 냉냉합니다. 이런 분들은 지금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첫 번째 내영혼의 시선이 하나님께 있는가?/ 두 번째 기도의 영을 습관처럼 유지하고있는가? / 세 번째 기도가 사탄과 전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이 도전하고 있는가? / 네 번째 간절한 기도를 간청의 기도를 하고 있는가?를 보셔야 합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의 무릎을 끊습니다.
고관들은 시퍼런 눈을 떠서 다니엘을 주시하는데 마침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즉시 다리오왕에게 고발합니다. 다리오왕은 자신이 아끼는 다니엘이 법을 어긴것에 밤새 자지못하고 금식하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정한 법이기에 어쩔수 없이 사자굴에 집어넣습니다.
사자굴에서 도우시고 건져내시는 하나님
22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들의 무리안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는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잡아먹지 못하도록 막아버렸습니다. 사자굴에서 살아나왔습니다. 굶주려 이빨을 드러내며 금방이라도 잡아먹을것같은 맹수의 사자도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해버렸다는것입니다. 모함과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변명을하거나 대꾸를 해주면 기름에 불을 넣는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잡아먹을려고 난리를 치는데 그 난리를 치는 자에게 잠잠하게 하는 방법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는 처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자굴이라는 인생의 굴레에서 서로잡히고 잡아먹는 세상의 전쟁터에서 결코 일어설수 없고 숨쉬기 조차 힘든 상황가운데 내몰린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바라볼때에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 아십니까? 다니엘의 하루 세 번기도는 1년 2년 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보여주기식 기도가 아닙니다. 그는 다니엘서 1장에 소년때 약 20세때 바벨론 바벨로로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한나라의 왕이 4번 바뀔때에 나이가 고령의 나이 80이 넘는 연세입니다. 60년을 넘게 변함없이 엘로힘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앞으로 지켜주실 하나님께만 기도를 했다는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위험한 상황을 이기게 하는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담대하게 원수의 세력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않는 신앙적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능력이었습니다. 이 법을 어기면 자신은 사자의 밥이 되는줄 알면서도 자신의 죽음조차도 뛰어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는 진리이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나를 이 죽음에서 건지실 것을 믿고 감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알았습니다. 평생을 지켜주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죽음을 왕에게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일사각오의 심정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자신의 억울함을 모함을 아뢰었던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다니엘의 신앙의 진수는 여기에 있습니다. 억울할때에도 목숨조차도 위태울때에도 엘로힘 하나님앞으로 나아가시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무릎은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진동시켜서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 두손을 포개어 무릎을 끊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2.다니엘의 신앙의 진수 두번째 :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음(23절)
23왕이 심히 기뻐서 명
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몸이 하나도 상하지 않는상태에서 말입니다.
다니엘은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앞에서 서있는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다니엘은 두가지 사실을 다리오왕에게 깨우쳐줍니다.
1.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다는 것
2.자신이 사자의굴에서 건짐을 받은 것은 자신의 죄가 무죄함을 증명해 주기때문이라고 다니엘은 왕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확고한 믿음이 세상의 왕으로부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다리오왕
20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6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다니엘은 다리오왕에 대해 처음부터 반역이나 악한계획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는 두가지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믿음으로 성립되기위해서는 몇가지 요소가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믿음이란 지적동의(知的同意)입니다.
이사야 55: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 지적동의가 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실을 알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것입니다 어떤 진실을 받아들이기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알기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둘째는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는 상대방의 등을 기대는 것이빈다. / 신뢰는 믿음의 심장과 같습니다. 몸이 있어도 심장이 뛰지않으면 죽은것이듯이 신뢰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즉 우리가 믿는 대상이 대충아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믿는 엘로힘의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다니엘은 자신을 사자굴에서 건지실 것을 믿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억울한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생역전을 준비시켜 주십니다.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나오자 이제는 다니엘을 참소했던 사람들을 끌어오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처자식까지 사자 굴에 던져버립니다.
다니엘을 억울하게 했던 음해했던 음모를 꾸미고, 죽게 만들려고 했던 무리들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니엘을 형통케 하신 하나님
28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두왕을 섬길때에도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형통케하는 복을 허락하십니다. 형통 / 헬 :첼라흐 / 번영하다 뜻으로 목숨걸고 자신의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다니엘에게 있습니다. 다니엘 역시 하나님께 마음이 있습니다. / 이한주간 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앞에 내 신앙의 진수를 보여주시지 않겠습니까?
꼭 한번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사탄에게 뺏기지 마시고 다시 시작해 보는것입니다.
여러분!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날 때 또는 자신을 억울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날때에 아무런 감동없이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다니엘의 영성을 회복하는것입니다.
1.[기도] 늘 하던대로 무릎을끊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2.[믿음] 자기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는 말씀처럼 자신을 구원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한주간 엘로힘의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현장에서 이 말씀대로 해보니 나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간증의 고백이 있는 풍성한 삶이 되시길 주님의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