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설교

2022.6.5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

채인기 2022.06.05 17:46 조회 수 : 57

2022.6.5.

채인기목사

 

성경본문 : 고전 1:10-17

제목: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으로 하자

 

우리 사회는 무한 경쟁사회라고 말을 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급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을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가 다쳐올때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순간부터 뒤처지게 되고 때로는 짓밟히는 역사를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군사력 강화, 경제강화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이런말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일등만 기억하고 이등, 삼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화되고 추구하는 것이 자꾸 바뀌어도 변화지 않는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입니다. 주님의 피로값주고 사신 교회는 변화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교회는 일등이 있어서안되고, 이등,삼등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세상의 철학과 논리로 움직이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이 주인이셔야 하고, 종인 우리는 주인의 말씀에 대꾸하거나 토를 달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주인이신 예수님만이 말씀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천은 예수님안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급변하는 세상가운데서 여전히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세상의 논리와 철학으로 싸우는 교회성도들에게 하나가 되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분문설명

당시 고린도교회는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많은 문제점중에 하나인 성도들간의 분쟁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글로에의 권속으로부터 고린도교회에 심각한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듣게 됩니다

10-12절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서너 파벌로 갈라져 각각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이라고 서로 주장을 합니다. 여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분열의 원인이 지혜인 헬라철학을 자랑하는데서 있습니다. 철학이 유대인들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말은 서로가 분쟁이 없어 서로 같은말, 같은 뜻으로 연합할 것을 제시합니다.

 

바울은 13-16절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둘로 나누어질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자신이 여러분들을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또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라고 반문합니다.

이말은 바울,아볼로,베드로이라는 사람을 숭배하지말라는 뜻입니다. 파당을 지어 지도자인 사람을 숭배하고 신격화하니까 바울 자신부터 아볼로, 게바, 그 어떤 사람도 구원자가 아니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참지도자이시고, 구원자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또한 세례를 강조하면서 자신이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것에 감사를 합니다. 이들은 세례의 본질의 의미를 모른채 자신들의 파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세례를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복음사역자로 보낸신 것은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음을 말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말의 지혜(세상의 철학)로 하지않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음을 말합니다.

즉 인간적인 방법으로 전하지않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만이 증거하였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성도들끼리 분쟁하지말라 인간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한다

2.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성도의 하나됨

3. 세례의 본질을 퇴색시키지 말라 그리고 자신이 전한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다

4.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 말의 지혜로 하지않고 순수한 복음만 전했다.

 

바울은 먼저 고린도교회가 그 교회의 지도자들을 따라 분열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고린도교회가 여러 분파로 나뉜 것은 특정 지도자들에게 지나친 집착 때문이다. 11.12

특정지도자는 첫 번째 바울파: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했고 바울의 성경적 깊이와 지식 때문에 바울을 존경한 나머지 파당을 형성했을 것입니다. 아볼로파: 바울이 떠난후에 이 교회에 와서 사역했던 사역자였습니다. 그는 헬라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학문이 많고 구약성경에 능통했으며 웅변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이 약하기 때문에 요한의 세례밖에 모를 정도로 미미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가르침을 받은후에야 비로소 그는 바른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18:25.26)

게바 역시 베드로써 고린도교회에 추종하는 사람들이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무엇을 말합니까? 사도바울은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중심이 아닌 사람중심으로 일을 하게 되면 성도가 잘못된길을 가게 되고, 분쟁하며 서로 싸우고 파를 나누는 위험한 일이 있을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0절 모두가 같은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합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1. 교회와 성도의 문제의 해답은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10) :

교회가 온전히 합한다는 의미 : 예수님안에서 연합과 하나됨에서 문제를 해결함

1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바울은 분열된 마음을 하나가 되기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같은말로 연합을 하라는 것을 전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을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교회의 몸에 붙어있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형제와 자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17장에서 거기에는 한 장 전체에 걸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리는 대제사장적 기도가 기록되어 있

습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사역중에 드리던 여타의 기도와는 달리 이제 십자가를 눈앞에 두시고

드린 기도입니다.

17: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1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가장 간절히 간구한 것은 다름아닌 제자들의 하나됨이었습니다. 곧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리신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남겨두고 이 땅을 떠나시며 가장 염려하신것이 무엇이었는지 또 무엇을 가장바라고 계신지를 분명 알고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후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하나될 것을 말씀하신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거서 연합과 하나됨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성경에서 답을 찾지않고 다른곳에서 찾을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예수님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인생의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리석은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문제를 기독교 점쟁이한테가 가서 해결할려고 했습니다. 기도원을 쫓아단니고 밤낮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는 속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집뿐만아니라, 아버지가 목회하라고 주신 교회의 건물까지 없어지는 것을 들었습니다. 완전히 속은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왜그럴까요? 개인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 답을 찾지않고 다른데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여러가지 문제는 어디서 해결점을 찾고 있습니까?

잠언 1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려면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만 앞에서 살아가시길 원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것입니다.

잠언 1: 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8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어리석은자, 거만한자, 미련한자 특징이 그것을 쫓아가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책망하는것에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받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이 재앙을 만날 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대답하지않고 부지런히 찾아도 만나지 못할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비웃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는 계속해서 예수님과 하나됨을 유지하는 것

17: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마지막기도입니다. 기도의 중심은 하나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가시지만 제자들고 우리는 이땅에서 남습니다. 세상은 사탄의 유혹과 탐심에 빠트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이름으로 우리를 보호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된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되기를 원하고 기도하신것입니다.

여러분! 성도가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 뜻을 온전히 합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면서 그분과 하나됨을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문제의 해결과 답은 예수님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2. 교회가 온전히 합한다는 의미 : 뒤집힌 세상의 논리를 예수님의 말씀으로 바꾸어라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은 자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라고 반문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세례는 통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2:38 ; 8‘16)혹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6:3) 행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구원을 얻고 그의 통치 영역에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세례는 주님편에서는 우리를 구원하사 자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이요 / 우리 편에서는 주님께 신의를 지킬 것을 맹세하고 후에 결코 어떤 다른 영적주인을 모시지 않겠다는 일종의 서약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세례는 자신이 베푼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바울이 아무에게도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몇몇 당파의 지도자들이 자기파의 세력

을 확장하기 위해 앞다투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면서 몇사람만 자신이 세례 주었다고 하면서 이름을 거론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은 죄씻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는 세례의 본질은 잃어버린 채 단순히 자신을 지지하는 파를 확장하는 도구로 세례를 사용했던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거룩한 예식인 세례를 비본질적 의도로 사용하는 일에 바울 자신이 편승하지 않았다는 것은 바울로서는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가 교회안에서 사역을 하고 봉사를 하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세워가는데 있어서 온전함을 드러내라고 덕을 세우는것입니다. 세례를 계속만들어서 자기의 당을 짓고 파를 늘리기위해서 세례교인을 많이 배출한다고 하여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느 교회는 장로,권사, 안수집사를 세우는 것은 직분을 맡으면 교회를 떠나지 않을거이라는 이유 때문에 세운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참된 본질이 아닙니다.

또 어떤분들은 교회안에서 장로,권사 집사를 세울 때 사회생활에서 직장생활에서 자신이 장로를 직분을 붙이면 권위가 있다고 생각해서 받는다고 말한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본질이 아닙니다.

성도가 세상의 논리가 아닌 말씀으로 바꾸는 것을 할때에는 두가지 사상이 필요합니다.

첫째 사상적 사상 : 신학이 필요

첫 번째는 사상적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윤리적 부분입니다. 사상적부분이라는 것은 교회안에 성도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의 문화에 길들여져서 교회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의 사상으로 갑자기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꾸준히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면서 사상이 바뀌어져 가는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반드시 신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학(theology)은 테오스(하나님)와 로고스(말씀)라는 두 개의 헬라어 단에서 나온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가르쳐야합니다. 신학의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아는지식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성도가 신학적 이해가 깊어질수록 선과 악을 구분할줄 알며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성숙해 지는것입니다. 말씀에서 삶의 지혜를 얻고 지혜를 가지고 분별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윤리적 사상: 도덕적 의무

이렇게 신학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하여 성도들이 더 깊은 내면의 관점으로 바뀌어질 때 그때 세상으로 들어가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감당할수 있는것입니다. 그전에 반드시 절대적인 하나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요한일서에 두장로가 나옵니다. 한 장로는 가이오라는 교회장로이고, 또 한 장로는 디오드레베라는 장로입니다.

사도요한은 두 장로를 평가합니다. 가이오라는 장로는 요한삼서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기 심히 기뻐하노라

5.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가이오라는 장로는 당시 사도들이 순회교사로써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할때에 따뜻하게 맞이하고, 전도의 사명을 잘감당하도록 전심을 다하여 도와주었다은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디오드레베 라는 장로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9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헌신하는 순회교사를 맞아들이지 않고, 악한말로 비방하고, 맞이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한 장로가 디오드레베입니다.

왜 이런일이 벌어지는것입니까? 사상적 즉 신학사상이 부족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않는 것에 결과입니다.그래서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한결과 온것입니다.

두 번째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 뜻을 온전히 합하라는 것은 세상의 논리나 가치로 믿는사람이나 믿지않는 사람들을 섬기지말고, 예수님의 말씀의 참된 가치의 사상으로 바로 전하는 것입니다.

 

3.교회가 온전히 합한다는 의미 : 보이는 것은 오직 십자가만 보여야 합니다(17) /십자가 자랑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해 전하는데 자신은 오직 복음을 전할려고 부르심을받았고, 그 복음을전할 때 세상의 말의 지혜로 하지않고 십자가의 복음을 헛되지않고 전했다고 증거합니다.

고린도교회에서 분쟁이 시작된 원인중 하나가 세상 철학과 종교에서 만연했던 지혜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대조시킵니다. 고린도교회 신자중 자기들이 신령한 지혜를 소유했다고 주장하면서 바울의 교훈과 차별을 지을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십자가만 보일때만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말의 지혜란 당시 헬라세계의 중심부에 있었던 고린도교회에 속한 일부성도들도 인간의 지혜와 달변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8-25절까지 지혜의 대해서 굉장히 강하게 강조합니다.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사도바울은 지혜있는 사람이 어디있으며, 학자가 어디있으며, 이 시대의 변론가가 어디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표적으로 번역된 세 메이아(011μa)’

구체적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을 뜻하는 복음서에는 유대인들이 예수께 찾아와 자주 표적을 요구했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2:38 ;16:1 ;8:11-12 ; 6:30)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이성적인 증거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이성은 지혜(/소피아)를 찾는 것 곧 철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헬라인은 어떨지 모르지만 사도바울은 우리 만큼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십자가만 보고 가는 은성교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나는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내 입술에는 무슨 말이 많이 나옵니까?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보여주는 현상만 보고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헬라인들처럼 이성으로 생각해서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영적인 영감은 무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된것만 믿습니까?

아니면 주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주님의 길을 가고자 하십니까? 선택은 여러분이 하시지만 끝은 다르게 됩니다.

 

오늘 저녁예배부터 우리는 MD전도정착사관학교에서 주최하는 1단계훈련인 MD사역자 양성 훈련을 받습니다.

MD사역자 양성의 목표는 장기간 결석자 회복, 새신자를 전도하여 섬김이와 함께 5주간 출석시켜 소그룹으로 소속시킨 성도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준비해왔던 훈련과정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은성교회와 성도님들이 어떻게 변화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성교회를 향하여 이런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기회는 계속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7: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우리는 주님이 이땅에서 말씀하신 지상명령의 말씀인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어명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달려왔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구했고, 길을 찾아보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오직 예수님께만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기도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제자는 자기의 뜻을 주장하지않고,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예수님만 따른다는 의미입니다예수님의 종인 저는 십자가의 길만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분의 길만이 진리이기에 저는 순종하면서 걸어갈렵니다. 어쩌면 교회에 부딪히는 돌이 있을수 있고, 헤쳐나가지못할 엄청난 큰 난관이 올수도 있을것입니다. 결코 만만치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함께하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하신 주님이 앞으로 저와 교회와 함께 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되는 교회를 꿈꾸며

이땅에 완전한 교회가 없기 때문에 교회마다 어려운 난관들을 항상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비추어 해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로 꿈꾸셨던 교회와 성도 그리고 바울이 이상을 꿈꾸며 전하고 지켜왔던 예수님의 복음이 온세상의 진리로 가득하기를 꿈꿨던 꿈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십자가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던 이름모를 수많은 신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우리는 다시 꿈을꾸며 은성교회와 성도는 달려갈려고 합니다.

오늘 전 남은자가 한 사람이라도 은성교회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이땅에서 이루고자 했던 꿈을 그리고 사도바울이 꿈꿔왔던 하나되는 교회와 성도가 있기를 다시 기도해 보았습니다.

모두가 함께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교회와 성도

기도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교회와 성도

말씀에 생명의 바람이 불어 심령이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교회와 성도

작은 씨앗을 심어 강팍한 흙을 뚫고 자라나 바람과 태풍을 막아주는 거대한 거목이 될 수 있는 교회와 성도

작은 순종이 심어져서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늘의 문이 열리는 요셉의 창고가 되는 교회와 성도

 

사랑하는 성도님!

은성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고 같은말, 같은 마음, 같은뜻으로 온전히 합할수 있도록 사랑으로 힘써 이루어가기를 원합니다.

이한주간 십자가만 바라보고 하나됨을 꿈꾸며 기도로 다시 시작하는 한주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7 2022.7.31 : 준비, 기회. 깨어 있으라 채인기 2022.08.03 50
96 2022.7.24 마음의 죄를 죽이라 채인기 2022.07.26 58
95 20222.7.17 성도가 감당해야 할 해산의 수고 채인기 2022.07.19 51
94 2022.7.10 진리를 수호, 첫 사랑 회복 채인기 2022.07.12 56
93 2022.7.3 맥추절 하나님을 앎으로 감사가 나옵니다 채인기 2022.07.04 57
92 2022.6.26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로 사는 사람의 차이 채인기 2022.06.27 62
91 2022.6.19 성령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때 채인기 2022.06.19 49
90 2022.6.12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 채인기 2022.06.13 51
» 2022.6.5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 채인기 2022.06.05 57
88 2022.5.29 성령에 따라 사는 신자는 포기란 없다 채인기 2022.05.29 49
87 2022.5.22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채인기 2022.05.22 49
86 2022.5.15 다윗 : 여쭤보는 자 채인기 2022.05.15 47
85 2022.5.8 네 부모님을 공경하라 채인기 2022.05.09 51
84 2022.5.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채인기 2022.05.03 53
83 2022.4.24 여호와를 앙망하는자 새힘을 얻는다 채인기 2022.04.25 48
82 2022.4.17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그가 살아나셨다 채인기 2022.04.17 50
81 2022.4.10 십자가상에 말씀하신 일곱말씀 채인기 2022.04.11 46
80 2022.4.3 나는 무엇을 가까이 하는가? 채인기 2022.04.07 54
79 2022.3.27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채인기 2022.03.28 60
78 2022.3.20 뒤틀린 부모사랑 채인기 2022.03.21 4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