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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2.9.11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채인기 2022.09.13 13:45 조회 수 : 51

2022.9.11.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마가복음 4:35-41

제목: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노아와 같은 믿음

어떤 한 인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자들이었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담을 쌓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도시락을 먹게 되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기도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도시락을 펼치고 밥을 먹었지만 이 사람은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이 사람의 모습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놀리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공사장을 지나가던 개가 몰래

와서 기도하던 틈을 타서 그만 도시락을 훔쳐 달아나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합니다. 도시락을 잃어버린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하면서 놀려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기도를 마친 이 신실한 크리스천은 조용히 일어나서 자신의 도시락을 찾기 위해서 개에게 다가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더 크게 웃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그만 담장이 무너져 비웃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쌓던 담장 밑에 깔려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구약때에 노아도 이처럼 그 시대에 홀로 외롭게 하나님을 섬기던 의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할때에도

노아는 묵묵하게 노아의 방주의 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 인류의 홍수로 심판하실대 하나님께서 노아의 의로움을 보시고 그와 그의 가족들만을 구원하셨습니다. 아무리 우리 신앙인의 삶이 외롭다고 할지라도 선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가 매우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노아처럼 끝까지 묵묵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흔히들 인생을 바다로 많이 비유합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2차 갈릴리 사역을 보도하면서 주님께서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하신 이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이적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 지방에서 거라사 지방으로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발생한 것으로 예수님께서 신적권위를 지니신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은 막연히 풍랑속에서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잘 건너갔다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폭풍을 만난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주신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1. 인간은 살아가는 삶에서 누구에게나 위기와 고난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며칠전 힌남노 태풍을 뉴스를 통해 엄청난 위력을 가진 태풍이라고 보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남쪽은 많은 피해가 없었지만 경남에 부산과 포항에서 아주 큰 피해를입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안타까운 소식을 우리는 듣게 됩니다. 아파트 경비원분께서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오르니 차를 빨리 빼라고 안내방송을 듣고 모자간이 지하로 내려갔다가 중학생 아들은 죽고 어머니는 살았습니다. 아픈 어머니를 도와줄려고 내려갔다고 큰 변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한치 앞도 알지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본문은 제자들이 직면하는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바다한가운데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큼 큰 광풍으로 두려움에 쌓여있다는 것입니다.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갈릴리바다에서 배를 타고 향해를 하는 중 큰 광풍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세찬 바람과 비가 쏟아지면서 물결이 배에 부딪혀 배에 바닷물과 빗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분명 어떤 조치를 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의 상황입니다.

38절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라고 자신들이 죽게 생겼다고 예수님께 자신의 심정을 토로할정도로 지금 제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살아가면서 큰위기가 오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고난과 고통이 찾아오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볼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과함께 가는 바닷길에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건너 가면 오히려 일어나던 풍랑도 잔잔해져야 되는데 왜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길에 푹풍이 일어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는지 얼른 이해가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다 불행했던 사람들도 금방 행복해지고 또 인생이

고통이 없어 만사형통해야 하는데 오히려 고통이 중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교회 고 옥한흠 목사님이 고난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고난은 변장하고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다시말하면 겉으로는 고난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축복을 안고 오는 변장된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고난은 그 자체가 크고 작음에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믿음의 태도냐, 아니면 불신앙적 태도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다를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의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난을 완전히 제거하실수 있는 능력있는 하나님께서 왜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것일까요? 성경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난을 성도의 유익을 위해서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 크게 두가지 1.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2.하나님의 자녀다운 인격을 형성하는데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을 통하여 말씀을 지키게하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자를 돌아오게 하시고, 죄를 범하는 자녀들을 고난을 통해서 회개하게 하시고,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을 깨어서 일어나게 하시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변증가이면서 시인,작가인 C.S 루이스라는 분이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사람에 따라서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들이 남아있다 그러므로 고통이라는 것은 귀머거리에게 알아 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면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통과 고난을 통하여 죄악에 묻혀있는 자들을 돌이켜 회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자가 모든 것이 만족되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여 신앙의 나태함을 가진 성도들이 있습니다. 잠자고 있는 자를 일깨워 고통을 통해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그리고 2. 하나님의 자녀다운 인격과 성품을 다듬기 위해 고통과 고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게 되고, 말씀이 심장과 생각과 성품과 인격을 완전히 부수는 일을 하게 합니다. 변화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수없기 때문에 옛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부셔져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혹시 고난과 고통중에 계신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확성기를 틀어주신것입니다. 잊지마세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확성기의 소리입니다.

 

2. 광풍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 : 잠잠하고 고요하라

제자들이 큰 광풍을 통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 도우실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알고 예수님을 깨웁니다.

인간에게 두려움은 가장 큰 염려거리가 되게 합니다. 두려움이 엄습해 오면 하고 있는일마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때로는 좌절하게 하고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지금 제자들은 두려움이 엄습하므로 인해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떠는 이유는 바다 한가운데서 큰 광풍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뱃사람 베드로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할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두려워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습니다. 우리는 폭풍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의 존재가 어떤 분인신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큰 광풍과 바람을 꾸짖고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39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고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께서는 광풍을 잠잠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와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아는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 자연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제하시는 분이시고 특별히 인간의 삶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우리와 함께 계셔서 살아 역사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큰 광풍같은 큰 문제의 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예수님을 찾고 간구하실 때 그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잠잠하고 고요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범접할수 없는 영역을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잔잔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천지의 모든 만물들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나의 아버지, 나의 전능자,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무시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지 마세요. 만약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여러분안에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것이고,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불신은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세차게 불었던 문제의 광풍도, 휘청거리는 바다의 움직임도 예수님의 말씀한마디에 잠잠하고 고요해지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이 오고 염려많은 이 세상에서 신자가 이 세상에서 이기는 힘과 능력은 무엇입니까?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힘은 무엇일까? 1.간구의 기도 2.믿음입니다.

1. 기도는 성도가 두려움과 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38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8절에 보면 광풍으로 인해 침몰 위기에 직면하여 다급해진 제자들은 배의 뒤편에서 곤히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면

서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의 광풍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자기들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않고 주님께 도움을 호소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주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현상태에서 기대할 수있는 것은

기적뿐이었고 주님께서 이를 행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으로 도움을 청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취한 이 행동을 가리켜서 기도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곤경에 처할 때에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두려움을 쫒아내는 능력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도란 우리가 안고 씨름하는 문제 속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하는 통로여서 어떤 문제들도 해결이 가능합니

. 기도는 성도가 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50:15)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게 끝난 것처럼 보이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통로인 기도가 있으며이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 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하는 이마다 얻게 된다고 가르칩니다(7:8). 하나님께로부터 난 신자는 세상가운데 살아갈때에 어려운 난관과 환란, 고통과 고난가운데 이기는 힘은 바로 에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염려와 두려움의 원인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부재에서 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부재)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요한일서 54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광풍을 명하여 잔잔케 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즉 그들이 마치 사시나무떨 듯이 두려워 떨며 불안해 한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실수라든지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보이셨으나 믿음이 없는 행동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책망하

셨습니다.

오늘도 믿음이 없는 성도들에게 주님이 책망을 듣게 될것입니다. 주의 제자들은 비록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기는

했어도 자기들과 함께 한 분이 누구인지 알고 또 신뢰했더라면 불안에 떨거나 염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보인 반응은 믿음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었으므로 책망을 받아 마땅합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책망을

받게 될 위험성이 적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염려와 불안을 극복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그 원인은 믿음의 부재에

있습니다. 주께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4:6)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일체의 것들을

다 준비하시고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7:8)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듯이 하나님께 구하기

만 하면 되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입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사도바울은 참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라.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바울은 참믿음의 뿌리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참 믿음이 입으로 시인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믿는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서 들음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압습니다. 믿음이 생기게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3.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인생의 안전한 항로입니다.

인생의 배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습니다. 만약 그 배에 예수님이 타시지 않았다면 얼마나 큰 위험이 있었겠습니까? 평생을 뱃사람으로 살아다고 하지만 자연의 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이길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안전한 항로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과 늘 동행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자리에 예수님이 주인이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인물중 에녹은 365일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동행 / : 할라크 걷다, ~을 따라서 , 처음부터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이 내 삶에서 주관하시도록 내 인생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었다는 의미입니다.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예수님께 나를 맡겼다는 의미입니다.

 

두 그림이 있습니다. 왼쪽 그림은 내 인생에 내가 주인인 사람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내 인생에 예수님이 주인인 사람입니다. 먼저 왼쪽 그림은 내 인생의 왕좌에 내가 앉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인생의 밖에 계십니다. / 그래서 모든 일을 나 자신이 주관하므로 흐트러져 있는 것처럼 혼란과 좌절과 낙심과 두려움속에서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른쪽 그림은 예수님이 내 인생에 주인인 사람입니다 내 인생의 왕좌에 예수님이 앉아 계십니다. / 나는 내 인생의 왕좌에 내려와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긴 삶을 삽니다. / 그래서 모든일을 예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하기 때문에 하나님하신 계획과 삶이 일치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 지금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왼쪽입니까? 오른쪽입니까? 우리는 오른쪽 그림에 사람의 삶을 살고있습니다. 여러분이 주인되시지 말고, 예수님이 주인된 삶을 살게 되면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풍성한 삶을 살기위해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계신다면 그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실것입니다. 그분의 삶의 능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삶의 능력의 원천이다 : 예수님 알고 믿어야 합니다 (41)

41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성도가 교회를 단니면서도 예수님을 막연히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만 안다면 그분의 삶은 불행한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능력을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를 못하는것입니다.

제자들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것을 보면서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누구이기에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시길래 그렇게 큰 폭풍이 잔잔하고 바다로 조용해지는 가입니다.

그분은 누구십니까? 첫째.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분입니다.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둘째.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 인간은 언젠가 하나님앞에 서게 됩니다. 영생을 얻느냐, 심판에 이르냐에 그 갈림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않느냐에 갈라지게 됩니다.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셋재. 구원자이신분

3:17 하나님이 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죄로 멸망받아 심판받아야 할 영혼들을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오셨습니다.

넷째 평안과 안식을 주러 오신분 여러분의 삶에 참된 평안을 안식을 주시는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14:26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다섯째 기도의 응답을 주신분 우리가 기도할때에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14:7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6:6 너는 기도할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이 누구인지 바로 안다는 것은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즉 그분 안에 거하시는 신성을 간과한다든지 알지 못하는 이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예수님을 일컬어 훌륭하고 위대하신분 이라고 칭찬한다하여 그가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분을 단지 한 위대한 인간으로만 보려는 자들은 그분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며 그분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에도 참예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아는 것이 중요하며(10:30) 우리를 구원하신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삶의 능력의 원천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신자에게 바라는 마음

40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오늘날 신자에게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인생의 파도같은 폭풍일어 곧 죽을것같은 상황에서도 나를 부르는 자는 너에 인생에 잔잔하게 고요하게 하신분이 예수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뿐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게 서 있지 않고 도리어 계속해서 의심을 하는 경우에는 우리는 계속해서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든후에야 우리 마음에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속에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의 감정은 지성을 뒤따르고 지성과 감정은 의지를 견인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감정이 생활에서 원천이고 우리 손으로 하는 일들을 활성화시키는 힘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확고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우리 감정은 의심하게 되고 염려와 두려움으로 사로잡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안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지 마시고, 보이지 않는 성령님의 능력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잔잔하고 고요하라 /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이 말씀은 두려움과 슬픔과 고통에서 요동치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에 안정을 주실것입니다. 말씀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한주간 새로운 마음으로 계속 이 말씀을 외우셔서 말씀을 의지하여 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이미 여러분은 폭풍이 잠잠한 것을 보게 될것이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을것입니다. 아름다운 주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지는 한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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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2.9.4 벧엘로 올라가자 채인기 2022.09.06 47
101 2022.8.28 마지막때에 일어날 일들 채인기 2022.08.29 44
100 2022.8.21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가리라 채인기 2022.08.23 47
99 2022.8.14 고운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붓고 채인기 2022.08.17 40
98 2022.8.7 전도,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의 증표 채인기 2022.08.08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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