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5.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여호수아 6장 8-21절
제목 : 그리하여야 (~때까지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하라“ )
불의 전차라는 영화로 .애릭 리델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1942년 파리 올림픽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올림픽의 꽃이라는 불리는 100m 육상 결승전 경기가 주일로 잡혔습니다. 당시 강력한 우승 후보는 영국의 에릭 리델선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일이라는 것 때문에 출전 포기를 선언합니다.
에릭 리델은 “주일은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날”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100m 결승전을 포기합니다.
이때 영국신문과 뉴스는 “조국을 배신한자” “융통성이 없는 고집쟁이 신앙”이라면 온갖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며칠 후 리델은 200m, 400m 육상경기에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중거리는 그의 주 종목이 아니어서 우승을 기대할수 없었습니다. 리델은 200m에서 동메달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400경기 그는 처음부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달리는 것을 본 관중들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렇게 달리다가 심장이 터져 죽을지도 모르겠는걸” 하면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리델이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47.6초라는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 하게 됩니다. 기자들이 우승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처음 200m는 내가 뛰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이 직접 뛰셨습니다”
에릭 리델의 이야기가 감동이 되는 것은 무엇과도 타협할수 없었던 신앙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 영웅이 되었지만, 에릭 리델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이듬해 영웅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내던진 채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24세의 젊은 나이로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의 원칙으로 인간과 타협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설계하시고 계획하시고 실행하십니다. 그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거대한 철옹성같은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믿음으로 순종을 할 때 내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이 거대한 사건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입술로 증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이 구약에 사건으로 보지마시고, 오늘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처음으로 맞닥뜨린곳이 바로 여리고성입니다. 6:1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자가 없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왜! 여리고는 굳게 닫혔을까? 그것은 1절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 여리고성의 주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리고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왔던 사건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과정 아모리 사람의 두 왕시혼과 옥이 당한 사건 (수2:10) 그리고 요단강을 건널 때 물이 마른 사건 (수5:1)등을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점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싸우는것보다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성을 견고하게 빗장을 걸어 잠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리고성이 철옹성같이 견고한 것을 그림을 통해 이 성을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심을 보여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므로써 가나안정복은 하나님의 방법과 순종을 통해 해야함을 알게하는것임을 말씀합니다.
먼저 여리고성은 어떤 곳인가?
그림1.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고 처음으로 맞닥따드린 곳이 바로 여리고 성입니다. 그리고
가나안땅 첫 정복지로 하나님께 온전히 하나님께드려야 했습니다. 첫 열매는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18:13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의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서 정결한 자마다먹을것이라
가나안땅에 첫 정복지로 여리고성은 반드시 인간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하면서 정결하게 드려야 했습니다.
여리고성은 ‘이중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완전히 철옹성같이 인간이 절대로 이 성을 넘어갈수 없게 구조가 되어있습니다. 바닥은 외부옹벽이 있고, 그위에 하층성벽이 있고 또 그위에 상층 성벽이 있습니다. 여리고성에 살고 있던 라합여인은 창녀였기 때문에 하층민이었고 북쪽 하층성벽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림2 여리고성에 구조는 기초성벽인 아래쪽에 돌로 옹벽이 5M전도 깔려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토벽으로 둘려쌓여있습니다. 이 옹벽위로 높이 7-8m의 진흙벽돌로 된 성벽이 있습니다. 이것을 외벽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하층민들이 살고 이 진흙벽돌의 제방 즉 뚝 위로는 유사한 진흙벽돌로 된 안쪽에 벽이 있습니다.상층민들이 사는곳입니다. 외벽에 비해 14m나 높습니다. 14m위에 여리고성읍을 이루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여리고성에 가로가 200m 세로가 120m정도 됩니다. 상부와 하부에 사는 사람들이 약 몇천명은 살았을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림3 여리고성은 어떻게 무너졌을까?
하나님께서 6일동안 아무소리도 내지말고 언약궤중심으로 돌라고 하시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을 돈후 모든 백성들에게 외치라고 할때에 이 성이 무너졌습니다.
외부옹벽과 내부옹벽이 무너지면서 자연스럽게 흙이 쌓이게 되므로써 경사가지게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라가서 점령할수 있었던것입니다. 즉 바깥쪽 진흙벽돌이 무너지면서 경사로가 생기어 자연스럽게 똑바로 직진해서 성벽을 올라갈수 있는 다리가 되었고, 안쪽 진흙벽도 무너져 내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라갈수 있도록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림4처럼 벽이 무너져버리니까 사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진 벽돌들을 타고 올라갈수 있었던것입니다.
그림5 여리고성안에 여리고 사람들은 만반에 준비를 했다는 것을 고고학 박사들로부터 알수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위할때에 대비를 잘 준비했습니다. 여리고성안에 물을 공급할수 있는 샘이 성벽 안쪽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지기 전에 농사 수확기라서 그들은 충분한 식량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수3: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맨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이 잠기자
고고학자들이 그림처럼 집들마다 곡식이 가득찬 항아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여리고성 주민들은 몇 년은 버틸수 있을수 있을정도로 풍부한 식량과 충분한 물이 공급되었습니다.
그림6 우린 여기서 여리고성을 정탐할때에 도와준 인물이 있습니다. 가나안에 여인이면서 기생 라합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도와주므로 인해 라합과 가족들을 그녀의 집안으로 대피시키면 생명을 살려줄 것을 약속받습니다.
수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1907-1909년 고고학 팀을 이끌었던 독일팀에서 북쪽 성벽의 짧은 구간은 다른 장소와 부분과는 달리 무너지지 않았음을 발견됩니다. 다른 성벽은 다 무너졌는데 유독 이 성벽만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진흙벽돌 성벽의 일부분은 아직도 2m 이상의 높이로 서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성벽에 잇대어 집들이 이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라합의 집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 2:15 라합이 그들을 창문해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위에 거주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에 있는 여리고성을 칼이나 창으로 전쟁에 승리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이루어져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무너진 여리고성에 대한 예언과 성취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누구든지 무너진 이 여리고성에 다시 건축을 하는자에게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저주는 기초를 쌓을때에 첫째아들이 죽을 것이다. 그리고 문을 세울때에 막내아들이 죽을것이라고 예언의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다시 이 여리고성에 다시 성을 쌓을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말라고 하면 꼭 하는 사람이 있는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경고한 말씀입니다.
왕상16:34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벧엘사람이 여리고성에 기초를 놓을 때 첫째 아들이 죽습니다. 둘째 아들이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도 두려워서 여리고성에 어느누구도 여기에 성을 다시 짓거나 문을 달지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림9 고고학자들은 이 여리고성은 사실임을 신문보도로 알립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철옹성같은 여리고성이 무너지지 않는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드리는 순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리고성이 말씀하시고자하는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신자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서 영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말씀을 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으셨다면 인류의 모든 구원은 없었을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와 우리를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의 시간안에 간섭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큰 문제와 어려움을 주십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역사하셔서 큰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셨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철옹성같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전에 약속을 먼저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성을 주셨다고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 여리고성을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셨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성경은 언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약속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즉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과 역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성령님이 내주하시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분별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성경의 모든 사건들을 하나님의 이루시고자하는 뜻의 사건으로 보고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 이상한 군사작전
6:3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하나님께서는 이 성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후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상한 군사작전을 가르쳐 줍니다. 보통 전쟁을 하게되면 반드시 등장하는게 무기인 칼과 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함락하는데 인간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시고 철저히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상한 군사작전을 지시하십니다.
이상한 군사작전은 언약궤를 들고 나팔을 부는 제사장의 뒤를 따라 이스라엘 군사들이 하루에 한 바퀴씩 엿새 동안을 돌고, 일곱째날에 일곱 바퀴를 돈 후에 나팔소리가 들릴 때 함께 소리치면 성이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성안으로 공격하라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군사작전중 성을 공략할때에는 성벽을 타고 넘는다는가 / 사닥다리를 대고 성벽에 기어오르거나
화살을 날리어서 공격을 하든가 합니다. 보통은 이중에 한가지를 사용하여 전쟁을 하거나 성을 함락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림10 하나님의 방법은 여리고 성 행진 행렬순서 (6:8.9)는 1.선봉 부대(군사들)가 앞장섭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2.일곱나팔를 든 일곱 제사장들이 따릅니다. 그리고 3.언약궤(법궤)가 뒤따릅니다. 마지막 후미에 후미부대(군사들)이 뒤따르게 됩니다. 이 행렬대로 7일동안 돌지만 전투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을 돌라고 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임재를 칭송하는 축하행진이라는 것입니다.
4.5절 제사장들은 양각나팔을 길게 불었다는 것입니다. 양각이라는 히/요벨 의미로서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이라는 것입니다.
요벨은 구약에서는 “희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일곱 제사장이 (7) 일곱나팔을 붑니다(7) 불면서 6일을 돕니다. 일곱째 날에는 일곱제사장이 일곱나팔을 불면서 성을 일곱 번 도는 것은 7이란 숫자의 반복입니다. 50년을 희년이라고 합니다. 7*7=49년 그리고 내년에 50년째가 되면 희년을 선포합니다. 희년의 나팔소리는 노예와 종되는 시대가 끝났으므로 은혜의 해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이 나팔은 일반 나팔과는 차이가 있는 나팔입니다. 이 나팔은 희년을 선포할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나팔소리는 기쁨이 담긴 축제의 소리였습니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결국 승리와 축제를 알리는 신호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리고성 전쟁을 하나님이 친히 인도할뿐만 아니라 그 전쟁은 처음부터 승리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삶을 거룩하게 만드는 단단함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땅을 정복해서 싸워야 했기때입니다. 새로운땅,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져야 함을 가르치고 ’자신의 육신의 생각 사고와 방법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내 생각과 사고와 철학과 가치관이 바뀔 때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온전히 주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과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할 일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해야할 일 : “자기 소리를 내지말라 그리고 때가 되면 외쳐라”
10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치지말고, 음성을 들리게 하지말고, 아무말도 내지말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침묵을 명한 첫째 이유는 아마 하나님의 음성으로 간주되는 나팔소리를 백성들이 주의 깊게 듣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따르게 하기 위한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6일동안 성을 한바퀴씩 돌때에 불평이나 불만등 경건하지 못한 비웃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일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냅니다. 자신의 소리를 내기를 좋아합니다. 자기를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자기를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을 돌 때 앞에서는 군사들 뒤에 일곱제사장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사람들 마지막에는 군사들입니다.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공동체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하게 되면 전염병처럼 퍼져 공동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면 전쟁은 실패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역도 헌신도 봉사도 다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자신의 소리를 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안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교만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철옹성같은 여리고성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승리할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그리하다가”입니다.
“그리하다가” 라는 단어는 “히/아드 ” ~때까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하라“ 뜻풀이가 됩니다.
’아드‘라는 단어에는 이스라엘이 잠잠히 인내해야할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큰 전쟁을 앞두고 여호수아가 내린 명령은 잡담을 금하고, 하루에 한번 6일동안 그냥 언약궤를 따라 돌라는 것입니다. 한번 돌때마다 성이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징조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그 행렬에 참여하는 이스라엘 군인이 기대와 자신감을 가질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6일동안 어떤 징조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스라엘군의 행동에 여리고 성을 지키던 군사들이 돌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조롱이나 비난을 하지않았을까요? 아니 전쟁하러 온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않고 성만 돌고 있으니 얼마나 황당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이스라엘 군사들도 자신들이 이렇게 돌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보면서 불평과 불만을 가득했을 것입니다. 굴욕감과 허탈감마저 들수 있는 충분한 상황일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해야만“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려면 ”그리해야“했습니다.
하루에 한번씩 6일동안 언약궤를 따라 도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의 반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의 때를 기다리는 순종의 행동이었던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똑같은 패턴 똑같은 공간, 똑같은 시간 안에서 날마다 살아갑니다. 뭐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시간도 의미있는 시간도 보내는것도 아닙니다.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삶도 6일동안 6바퀴를 돌고 있던 이스라엘처럼 거창한 의미도 찾을수 없고, 왜 해야만 하는지 의미와 목적도 모른채 변화와 발전도 없는 듯 여겨지는 시간일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하루의 삶에 성을 언약궤를
가지고 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따르면 돌았듯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끝까지 주님의
때가 올때까지 돌아야 합니다. 바로 그때 전과같이 똑같은 방식으로 도는 그날 이후 일곱째날 여호수아는 백성들
을 향하여 일제히 “외치라”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다고”고 말합니다.
15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여기에 전과같은 방식으로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은 6일동안 해 왔던 똑같은 방식 즉 늘 해오던대로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살아갈때에 어느순간 어느때에 7일째 때가되면 나팔소리가 들릴 때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6일동안 하나님의 역사의 때를 기다리는 순종의 행동이 되기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할까?
6일동안 하루하루 언약궤를 메고 돌 듯이 우리는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인 QT묵상과 기도로 시작하라는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하였으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를 하루를 버티게하고 살아갈수있도록 강한 힘을 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가 강할수록 사탄과마귀는 절대로 나를 위협하지 못합니다. 내 삶을 파괴시킬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루라는 주어진 시간에 절대로 타협하지 마시고, 우선순위를 이것부터 꼭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 방법이 인생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이기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해야할 일 :. 믿음의 순종입니다.
20.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들을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성을 점령하고
왜 우리인생에 여리고성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100% 순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순종말입니다.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단단하게 굳게 닫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가지고 놀기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안에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함께 하신 성도들은 두려워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하나님이 만지시면 하루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도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기독교 신자를 죽이고 핍박했던 사람입니다.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두려워한 인물이 바울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예수님은 단 몇분만에 그를 선택하셔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택된 그릇을 바꾸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30명이 넘는 VIP영혼들을 기도하는데 우리가 먼저 불평의 소리, 못한다는 소리, 온갖 잡음의 소리를 내지 않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순종할 때 역사가 안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것처럼 그 불쌍한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시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철옹성 같은 강팍한 사람도 예수님께서 바꾸시지 않으실 분이 있겠습니까?
이번주에 저는 그동안 하나님앞에 저의 믿음을 드리면서 기도했던 문제를 해결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민집사님의 신학교에서 목사안수를 받는 것입니다. 이 신학교의 법이 목사안수를 받을려면 다니는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신학교 노회에 소속이 되어야 합니다. 교단이 다르면 안됩니다. 교단이 다르면 목사안수를 받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잘 압니다. 제가 합동측으로 교단을 옮겼기 때문에 손해를 볼수 있는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학장님도 뉘앙스를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몇주간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이 문제가 잘 해결될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새벽에 확신이 제에게 주어져서 학장님에게 전화를 걸고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민집사님의 문제를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문제가 해결될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처음 시작하셨고, 끝을 보시게 하시는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너희는 온전히 바치라
18.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여리고성은 가나안땅 첫 정복지입니다. 첫 열매는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그래서 여리고성에 있는 모든 물건들 역시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되어야 했습니다. 이성에 얻은 물건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온전히 바치는 것은 1. “그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는 그때까지”
2.전과같은 방식으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 중심으로 성을 돈것처럼 나팔을 불 때 우리는 외치면 됩니다. 삶의 작은것에서도 때를 준비할수 있는자가 되고, 하루하루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처럼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서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은성교회 성도님들이 기초의 본질을 절대 놓치마시고 말씀QT와 기도, 믿음을 드리는 순종이 있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