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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2.11.20. 추수감사절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누가복음 11-19

제목 예수님께  감사를 표하는 나병환자 사마리아인

 

이 교수님은 2000년 여름, 스물셋에 뜻하지 않게 만난 교통사고로 전신 55%3도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음주운전한 사람이 차선을 넘어서 이진서교수가 탄차와 정면 충돌하여 차에 불이 났습니다. 이후 40여 차례 고통스러운 수술을 이겨낸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희망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여러분! 이지선 교수님의 영상을 보시면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여러분의 몸이 정상인것에 감사하지 않습니까?

잘려나간 손가락과, 발가락, 그리고 녹아내린 얼굴과 온 몸의 피부를 보면서 이분의 입술에서 무엇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이 교수님의 인생을 역전시킵니다 이 교수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를 마친 후 미국 보스턴대 재활상담학 석사, 컬럼비아대 사회복지학 석사, UCLA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한동대 상담심리 사회복지학부에서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환경을 뛰어넘고, 좌절과 낙심을 뛰어넘어 그 인생의 인내를 통한 엄청난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그는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세우셔서 인생을 역전시켰습니다. 이런 은혜는 바로 감사에서 시작됨을 봅니다. 하나님께 감사했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올 한해 추수감사절을 통하여 여기까지 성도들의 삶가운데서 동행하시고 함께하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거룩한 예배에 함께 하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일곱절기중 초막절 수장절. 장막절에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대 절기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 14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첫째 절기는 유월절(무교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하게 될 때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고 쓴 나물과 누룩이 들어가지않은 떡을 먹으며 출애굽을 준비하는 절기였습니다.

둘째 오순절(맥추절)로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과 첫 번째 수확하는 곡식인 보리와 밀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셋째 초막절 (장막절)로서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들과 포도와 무화과 추수를 감사하며 또 자신들의 조상들이 출애굽 40년 과정가운데 장막생활을 경험해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이 꼭 지켜야하는 절기의 특징은 바로 감사하는 절기라는 것입니다. 1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때 때에 따라 이른비와 늦은비를 내리셔서 곡식과 온갖 과일들이 잘 자라서 풍성하게 넘치도록 채워주신것에 감사하는것이고 한해를 하나님께 지켜주시고 인도하신것에 대한 감사가 바로 추수감사절입니다.

 

본문배경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로 들어가셨다가 배척을 당하자, 베레아로 우회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고자 요단 동편으로 가시는 길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9:51-56) 예수님은 한 마을에 들가셔서 그곳에 있는 10명의 나병환자들 고쳐주신 사건을 보여줍니다.

9명의 나병환자 유대인들은 감사도 하지않고 예수님을 다 떠나버렸지만 오직 한 사람 이방인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는 고침을 받고 예수님께로 와서 감사함을 표시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질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생명의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유대인뿐만아니라 이방인 사마리아에게도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비참한 나병환자들의 신세

본문 나병환자가 나옵니다. 구약성경에 나병환자들은 전염병중에 하나로 전염성과 파괴성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 질병에 걸린자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자로 생각했습니다.

레위기 13:45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46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나병환자들은 자신이 이 병을 걸리게 되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치면서 자신이 문등병자라는 것을 알려야합니다. 이 나병환자에게 있는 나병균은 신경을 마비시켜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며, 얼굴의 코나 귀 또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썩어 없어지는 매우 심각한 증세를나타냅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살면 전염이 되기 때문에 한 마을에 살수도없고,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고,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동네에서 쫓겨나서 사람들이 거주하지않는 산속이나 깊은 동굴이나 사막의 움막속에서 죽지 못해서 사는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할 그 어떤 이유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죽지못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이런 삶속에서 나병환자는 세가지 감사의 조건을 다 잃어버리고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첫째.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사람이면서 사회에서나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3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

이들은 사회에서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갈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하며 가족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외면을 받거나 버린받은 사람들어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어느누구도 관심도 없는 버려진 인생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서는 감사의 조건이 없습니다.

 

둘째. 10명의 나병환자들의 삶은 작은 희망도 꿈도 꿀수 없는 비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병이 어떤 병인줄 압니다. 나병환자들은 한센병으로서 나병균이 온 몸에 퍼지게 되면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눈도 코도 손도 다 떨어져버리고, 온몸이 고름으로 가득차 버리기 때문에 정상적인 몸이 될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병이 나을것이라고 꿈도 꾸지못한채 하루하루 죽지못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서는 감사의 조건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을것입니다. 살이썩어져 가기에 살소망이 없는 비참한 자신을 보면서 언제쯤 죽을까하는 비참한 삶이었을것입니다.

 

셋째. 나병환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이들은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치유할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부정한 사람들이라 어디를 갈수가 없었습니다. 제한된 구역에서만 살수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당연히 마을 안에 거주하지 못하고 마을 밖

외곽에 일반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자신들만의 거주지를 형성하였던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좋은 의학으로 나병환자들이 극히 드물지만 그 당시에는 손쓸수 없는 병이 아니었습니까? 자연적 치유는 되지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찾아와서 도와주지 않으면 절대로 고침을 받을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희망이 없는 나병환자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

이렇게 희망이 없는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이 한 마을에 들어설 때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멀리서서도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간절히 목놓아 외칩니다.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너무나 간절히 외칩니다.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 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0명의 나병환자들은 마지막이라는 절규의 심정으로 외칩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기회를 잡을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더러운 병을 고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금 지나가고 계시는 예수님을 꼭 붙잡아야한다는 신념밖에 없었을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하지않을까요? 나를 만지실분은 예수님밖에 없다고 외쳐야 할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아닐까요? 우리는 나병환자들처럼 더러운 몸을 갖고 있지않지만 그러나 정말 씻고 싶은 더러운 마음들이 우리안에 가득차 있지않습니까?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쳐야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가난한들 소망이 없고 희망도 없는 비천하고 가난한자들에 복된 소식인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사실을 가지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곳마다 영적으로 포로된자들이 자유를 누리고, 눈이 보이지않는 자들에게는

다시 세상을 볼수 있게 하셨고 귀신에게 눌린자들에게는 해방되는 은혜의 해 희년을 선포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수님께서는 이제 진리의 안에서 자유를 주시기위해서 나병환자들을 앞으로 지나가십니다.

살아갈 이유도 희망도 없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시자 이들에게 나타나는 변화?

 

1.소망없고 비참한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소망도 없고 사회적으로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나병환자들에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찾아오셔서 나병환자들이 있는 동네로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에게서 십자가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인간이하로 취급받고 관심도 없는 나병환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들앞으로 지나가십니다. 그때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소리를 높여 외칩니다. 예수 선생님!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비참한 인생가운데서 친히 찾아가셔서 그들의 간구소리에 귀를 기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 팔복중 첫 번째 5:3 가난한자는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난이라는 단어에는 두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 프토코스 말이있고, 둘째는 페네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페네스는 상대적인 가난을 의미하는데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가난한 것입니다. 생필품은 다 가지고 있지만 사치품이 없는 가난입니다. 프라다 가방은 있는데. 그런데 구찌가방이 없습니다. 이것을 상대적인 가난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프토코스는 절대적인 가난을 의미합니다. 가진돈이 한푼도 없는 가난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자입니.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도와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신뢰하는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자입니다.

지금 나병환자들은 프토코스 가난을 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절대적으로 할수 없기 때문에 비참하고 너무나 괴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 자신을 불쌍히여겨 달라는 간구, 오직 주님밖에 우리를 도와주실분이 없다는 절대적인 가난을 지금 이들은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병환자들을 찾아가신 것은 치유의 목적도 있지만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육적인 치유만 받으면 무엇하겠습니까? 생명의 이르는 구원도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치유하셨던것입니다.

구원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 사마리아인에게 있다는 것

예수님은 왜 사마리아와 갈릴리사이를 지나가셨을까요? 바로 이 이방인 사마리아 나병환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일것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유대인에게도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지만 이방인 사마리에게 생명의 말씀이 전파되고, 그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인들이 누구입니까? 종교적 배교와 민족적 혼혈등의 문제로 인해 유대인들로부터 철저하게 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안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수 있다는 것과는 상관없는 부류들로 취급했던 자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과는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마라인에게 치유와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2.예수님이 찾아오시자 이들의 변화 두 번째 : 은혜를 구한자는 예수님을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 하시더라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칩니다. NIV 성경에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는 말씀이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말씀하십니다.

팔복중 다섯 번째 복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긍휼은 자비혹은 불쌍히여김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긍휼은 불쌍한 사람, 어려운 사람을 돕는것입니다.

긍휼이 의미에는 반드시 문제상황을 전제로 하는데 어렵고, 힘들고, 고통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긍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치유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긍휼히 여김을 받음으로써 우리의 심령이 치유됩니다. 한순간도 주님의은혜가 아니면 살수 없는 저희들입니다.

 

3.순종하는 자에게 예수님을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여러분! 나병환자들은 정결규례에 의하여 레위기13장에 제사장이 환자의 나병이 고침을받았다고 선언해 주어야 가족들이 살고있는 마을과 집안으로 들어와서 이전의 행복한 삶을 누릴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명의 나병환자들에게 자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말씀을 들은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서 제사장을 찾아가서 길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에게로 가서 보이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고침을 받았습니다.

순종은 순종할려고 힘쓸 때 그 과정가운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거나 치유와 회복이 됩니다.

얼마나 큰 감사입니까? 얼마나 큰은혜입니까? 말씀대로 이들은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통하여 진리안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평생 문등병자로 살아가야한다는 마음의 짓눌림에서 자유와 해방을 보았으면 이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어떤 표현을 해야할까요? 분명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감사할수 있는 신자만이 진짜 신자입니다.

 

누가 예수님께 감사합니까?

17: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누가 예수님께 감사합니까? 믿음을 보여주고 감사를 표현하는 이방인 사마리아인입니다.

나병환자는 자신의 몸을 보이기위해 제사장에게 갈때에 치유됨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믿음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은 제사장에게 가는것보다 예수님께로 가서 나음을 입었기 때문에 제일먼저 감사를 표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낫게되었다는 것을 사마리아인은 믿었기 때문에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여겨 치유하신것도 은혜이고, 그가 구원받은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가 예수님께 감사하러 왔습니까? 유대인입니까?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입니까?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은 감사하지도 않고 예수님께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안은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엎드려서 감사를 전합니다.

이 사마라인은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지않고 가던길을 돌이켜 다시 예수님께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묻습니다. 열명이 다 깨끗함을 받았는데 아홉은 어디로 가고 이방인 사마리아인만 감사를 표하러 왔느냐고 질문하십니다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 감사하기 위해 돌아오지 않았던 다른 아홉명의 반응은 우리가 얼마나 종종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들을 당연시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나병보다 더 악독한 우리 내면의 죄악을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자신의 모든 피를 흘리시고 살이 찢기시고 옆구리에 창을 찔러 피를 쏟으셨습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에 감사할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성도님!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인간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행위의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음으로써 얻게 된 은혜의 구원입니다.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엄청난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은 1948년 여순 반란 사건때 안재선이 주도하던 좌경 폭도들에 의해 정말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장남 동인과 차남 동신을 잃었습니다.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할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통곡하다가 절망해 버릴 것 같지만 손목사님은 두 아들이 순교한 사건의 배후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19481027일 아침 여수 애양원교회에서 두아들의 장례예배를 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감사의 고백을 했습니다.

손양원목사 9가지 감사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나에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감사합니다.

셋째, 33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어 죽는 것도 큰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손목사님은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복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라는 고백으로 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손목사님의 절대 감사의 신앙앞에서 장례식에 참석한모든 교인들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감사로 사는 인생

여러분! 영상가운데 이지선교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분에게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감사가 있어겠습니까?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을 역전시킬것이라고 믿습니다.

 

11월의 추수감사절은 올 한해를 인도하시고 앞으로 함께 하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부족한것도 모자란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은성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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