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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4.1.14.

채인기 목사

 

성경 : 에스겔 2223-31

제목 : 누가 성() 무너진 데를 막을 것인가?

 

에스겔은 예레미야선지자의 뒤를 이어 활동했던 선지자로 바벨론 2차 침공때 여호와긴 왕과 더불어 포로가 된 후, 그로부터 5년째 (주전 593년경) 되는 해에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선지자로 소명을 받았던 자입니다.

그림을 보면 중간에 빨간 박스안에 유대인의 70년 포로생활이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으로 멸망할 때 주전 6051차 침공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 다니엘과 셋친구들과 많은 백성들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의해 예루살렘은 3번이나 침공을 당합니다.

주전 5972차 침공때는 에스겔과 용사만명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는데 여기에 여호와긴 왕도 끌려갑니다.

주전 5863차때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이 쳐들와서 예루살렘 성전이 불태우고, 성벽이 무너지면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왕과 두아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시드기야왕은 두눈이 빠진채로 끌려가면서 남유다인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합니다.

바벨론 포로시대때 활동했던 선지자가 예레미야, 에스겔과 다니엘입니다.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이 끝날 때 바벨론은 메대바사인 페르시아왕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은 멸망하고, 고레스왕은 예루살렘을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스룹바벨이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했던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해야만 했는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유다에 4종류의 신분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선지자들, 제사장들, 고관들 그리고 백성들입니다. 남유다는 총체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분노케 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고 결국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앞에서 어떻게 타락했을까요?

 

타락의 원인

4종류의 신분들중 첫째는 선지자들입니다.

22:25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순수하게 전해야하는 사명을 받은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당시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구실로 돈벌이를 합니다. 율법에 근거하여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고, 회개와 순종을 촉구하기보다는 힘있고 권력있는자들의 비위나 맞추며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고, 재물 축적하는데 급급합니다.

인간의 영혼의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지 않은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타락합니다.

 

둘째는 제사장들입니다.

22:26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제사장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할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거룩하게 해야할 책임이 있는사람들이었습니다.

에스겔 당시의 제사장들은 너무나 타락했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의 성결한 삶을 지도하고 가르치며 그들의 본이 되어야만 했음에도 자신들이 먼저 율법을 범했습니다.

제사장들은 거룩한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못했고, 부정한것과 정한 것을 구별해야할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할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안식일은 이제 형식적인 날에 불과했고, 그결과 하나님이 증거되고 하나님 오직 그분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우셨던 제사장들이 타락합니다.

 

셋째는 고관들입니다.

27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고관들은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지도하는 정치가들입니다. 이들은 뇌물을 좋아하여 불법으로 돈을 횡령하고 억울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자들에게 불공평하게 판단했던 사람들입니다.

올바른 정치를 해야할 고관들이 타락합니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백성들입니다.

29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백성들은 윗사람들의 타락한 모습을 그대로 배우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지도 못하고, 성결과 거룩이 무엇인지 잊어버린채 강도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사회는 불신풍조가 팽배했고,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찼으며 자신과 자기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형제인 자기 민족까지 서로 물도 뜯고 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육적인 타락과 함께 영적인 타락은 유대 사회 전반에 있게되자 자연스럽게 타락의 길로 서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와 제사장들에게서 볼수 없게 되므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형식은 있었지만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는 절대될수 없었습니다. 4종류의 신분의 사람들은 완전히 하나님앞에 타락하므로써 악의 영들의 종노릇을 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유다의 일차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남유다는 타락의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22:15 내가 너를 뭇 나라 가운데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고 너의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에서 멸하리라.

18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19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20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유다를 멸망시킬려고 선택한 나라를 말씀하시고 그 나라에 의해 너희들은 흩어지게 될것임을 말씀합니다. 바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것을말씀합니다.

그리고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광로 속에 남아 버려진 찌꺼기처럼 쓸모 없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쓸모 없는 찌꺼기들을 모두 모아 다시 녹아 버리실 것을 선언합니다. 20절에 녹아버리시겠다는 표현은 예루살렘에 범죄한 백성들을 모으고 바벨론 군대의 침공를 받게 하여 벌하실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은이 용광로 속에서 녹듯이 하나님의 진노의 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서운 심판으로 쏟아질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남유다백성들에게 찌거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시대에 성이 무너진 데를 막을 사람이 없다

진정한 유다의 패망의 근본적 원인 유다의 패망의 원인이 또 다른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선지자들, 제사장들,고관들, 백성들이 타락하는데 유다땅에 진실로 회개하며 도고 기도(intercession prayer)하는 사람이 단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볼려는 의인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22:30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내가 분노를 그들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땅을 위해 성벽을 쌓고 성벽의 무너진곳을 지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고 두루 찾아보았습니다. 만약 찾으면 이 성을 멸망시키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분노를 유다백성들에게 쏟아부어 불같은 진노로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합니다. 이들이 저지른 악한짓을 갚겠다는것입니다.

 

여러분! 남유다 백성들이 왜! 이렇게 타락해 버렸을까요? 무엇이 이들의 영적으로 육적으로 타락의 길로 가게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율법을 주시고 죄를 깨닫게하시고 규율을 주셔서 지키도록 하셨고, 십계명을 주셔서 법을 정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심판을 받을수 받게 없었을까요?

첫째는 교회와 지도자의 타락입니다. 둘째는 성도들의 타락입니다.

22:8 너는 나의 성물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렵혔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 교회와 지도자와 성도들이 타락합니까?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겼기 때문입니다. 업신여긴다는 말이 무슨뜻인줄 아십니까? 교만한 마음으로 낮추어보거나 하찮게 본다는 뜻입니다.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낮추어보고 하찮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안식일을 거룩하라는 말씀을 하찮게 여기고 더렵혔다는것입니다.

어쩌면 이 성은 우리의 몸인 성전이 타락하여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썩어지고 냄새나는 몸과 마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가득찬 우리의 마음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부패했다는 것은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이 사라졌다는것이고, 설교의 강단에 회심의 십자가가 사라지므로써 성도들이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상실해 버리는 결과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통하여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보고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예수는 좋은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싫다고 말합니다. 이말을 바꾸면 예수님 전한 복음은 참 복음인데 그 복음을 가지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삯군 목사이고 거짓 신자, 외식하는 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싫다는것입니다. 먼이야기의 말씀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있는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고 찾아서 무너진 성을 지키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가없고 하나님을 찾는자도 없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업신여기지는 않습니까? 저를 비롯하여 여러분의 삶의 모습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어떤 마음과 태도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 도덕과 윤리의 양심은 살아있습니까? 도덕의 수준이 영적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성도들은 교회의 성도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를 구성하는 국민이기도 합니다. 만약 사회가 타락하고 부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교회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으로 소금으로 역할을 하지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법이 있는데, 세상의 법으로 해결할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도 사람의 말에 좌지우지하는 실상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고 지도자들의 모습이고 성도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양 옆으로 서있던 강도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욕하다가 어느 한 사람이 갑자기 변화가 일어나면서 다른 쪽 한사람을 향하여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죄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죽을일을 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린것이고 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는데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교만한지 모릅니다. 자신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도 양심의 화인맞은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두려워하지않는 태도로 예배를 드리고, 삶의 자리에서도 선한양심은 사라지고 예수님이 이땅에 신자들에게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말씀하시는데 거룩함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살아갑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영혼은 살아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진실로 두려워하십니까?

혹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있다면 반드시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시간 마치 구약에서 맑은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칠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벌을내리실것이라고 두려운 마음을 가진 구약의 백성들처럼 우리 영혼이 진리의 말씀의 천둥소리로 들려야 합니다. 그래서 온통 내 마음이 하나님께만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영적인 삶을 관리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아라!”

에스겔 시대 남유다의 4부류의 사람들의 타락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재물과 보물에 관심을 둡니다.( 25) /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못함, 부정함과 정함을 사람이 구별하지못함(26) 불의한 이익을 얻기 위해 사람을 핍박합니다 ( 27) 포악해서 남을 속이고, 훔칩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학대합니다 (2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유익과 배불림을 위해 타락하게 되었다는것입니다.

자신들의 영적인 삶을 관리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는 것이 보입니까? 아니요. 하나도 보이지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마치 교회안에 성도들과 같은 것입니다.

온통 어디에 관심을 둡니까? 온통 자기입니다. 자신들의 배불림과 욕심에 관심을 둔 남유다안에 4부류의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썩어가고 타락하고 부패해 가는데 아무도 남유다를 위하여 기도를 해주는 의인이 없었다는것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볼려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딤전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도고기도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의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하나는 말씀대로 살아보겠다는 하나님의 앞에서 다짐하는 간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소그룹을 하고, 제자훈련을 하더라도 변화가 잃어나지않고 회심하지 않는 것은 성경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지않고 살아보지 않겠다는 의식없는 행동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이제는 예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에 실패했던 삶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짐과 씨름을 해야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삶을 관리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합니다.

교회는 변함없이 끊임없이 십자가의 복음의 정신에 젖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항상 십자가와 함께하는 성령에 압도 되어 있어야 합니다. 찬양도, 기도도, 말씀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합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형식이나 외식에 그친것처럼 간절함이 없다면 반드시 회개하는 회심이 있어야 합니다. 가슴을 치면서 왜! 나에게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이 없는지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성도님!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쇼! 여러분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앞에 설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보지않으면 영적인 나태함과 매너리즘에 빠져 신자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현실적인 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피묻은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이지만 그 고난을 통하여 주님을 더 깊이 알기 때문에 이것이 은혜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최종 목표 : 미래와 소망을 이루는 회복

유다가 바벨론에서 70년이라는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을 두시려고 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오히려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기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70년 포로생활이 어떻게 재앙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는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까? 분명 유대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은 미해에 희망도 소망도 없는것처럼 보이는데 말입니다.

미래와 소망은 70년 포로생활이 끝나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것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포로생활에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끌려가기 전까지 자신이 쌓았던 재물과 보물 그리고 속된것과 거룩한것도 구별했던 완악한 마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슴치않고 사람을 학대했던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포로 생활가운데 있을지라도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을 기도를 들을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것이요 나를 만나기를 간청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만나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로생활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고 결단의 기회로 삼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고 소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다백성들에게 미래와 소망은 하나님과의 잃어버렸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포로생활이 유다백성들은 수치이고 아픔이고 괴로움이고 힘든 생활일수 있지만 결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미래와 소망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소홀한 부분이 있습니까? 말씀을 읽고 있습니까? 묵상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기도하고 있습니까? 말씀과 기도가 같이 가야합니다.

여러분들이 삶을 사실 때 특별히 직장이나 사업장 그리고 학교생활에서도 이 말씀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은 항상 자신의 복음을 전하는 종,노예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음을전할 때 어떤 위협을 무릎을쓰더라도 자신의 형편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존경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데 존경받고 싶어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데 내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따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하루하루 살아갈때에 이 말씀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날마다 예수의 흔적을 남기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힘인줄 알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삶의 능력은 어디에서 옵니까? 예수의 흔적을 삶에서 남기겠다고 하는 신자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외워보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힘이 있고 능력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뭔지 모르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흔적을 꼭 남기고싶은 열망과 갈망이 샘솟듯이 일어나게 됩니다.

 

피묻은 십자가를 놓친 교회가 되지않도록...

교회가 무너지면 안됩니다. 교회는 피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는 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몸의 성전을 거룩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무너지게 될 때에는 세상의 가치와 문화가 교회안으로 들어올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값으로 세우신 교회이고, 내 교회 즉 예수님의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영적인 눈이 떠야 합니다. 세례요한같은 믿음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교만하지않고 예수님만 드러내는 신자말입니다.

 

세례요한이 많은 사람들부터 물로 세례를 받으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유대땅에서 세례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가지않고, 예수님께로 가서 세례를 받습니다. 이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에게 와서 보고를 합니다.

3: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저편에 있던 그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레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여기서 선생님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다 받으러 갑니다. 하고 보고를하자 세례요한은 이렇게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27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세례요한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와 사명을 잘 알았습니다. 28절 나는 예수그리스도 아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세례를 주고 칭송을 받았던 세례요한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있어야 할 자리를 사명을 아는 겸손한자였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신랑이 아니고 신랑의 친구이며, 신랑이신 예수님만이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쇠하여야 한다는 것은 자신은 죄인이고 나는 오직 주의 길을 예비하는 한 사람의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다른 이를 시기하지 않고 신랑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을 쉬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분은 점점 더 위대해질것이고, 나는 점점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아멘 세례요한은 모든관심은 자신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높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이땅을 위해 성벽을 쌓고 성벽의 무너진곳을 지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고 두루 찾아볼것입니다. 만약 찾으면 이 성(무너져 멸망받아야할 성)을 멸망시키지 않으려 할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그런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이 성이 필요없기 때문에 찌꺼기로 여기게 될것입니다.

은성교회 거룩한지, 여러분이 몸의 성전이 거룩한지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만약 거룩함을 훼손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찌거기로 생각하여 뜨거운 용광로 집어넣어 다시 녹일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은성교회와 성도님들이 피묻은 십자가를 놓친 교회와 성도가 되지않도록 삶에서 예수님만이 나의절대적 주권자로 고백하면서 예수님만 높여지도록 하는 은성교회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말씀의 실천과 간청의 기도로 세워지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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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2024.3.17 십자가 2 : 한 강도가 십자가에서 회심 채인기 2024.03.19 22
190 2024.3.10 십자가 1 :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의미 채인기 2024.03.12 26
189 2024.3.3 불안한 세상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기 채인기 2024.03.04 26
188 2024.2.28 주님보다 앞서지 않겠습니다 채인기 2024.02.28 23
187 2024.2.18 주님의 교회를 세우라 채인기 2024.02.21 16
186 수요 / 마가복음 강해 10:32- 52절 채인기 2024.02.21 18
185 2024.2.11 아둘람의 굴의 교회공동체 채인기 2024.02.12 20
184 2024.2.7 수/ 9장33-50절 마가복음 강해 채인기 2024.02.08 22
183 2024.2.4 예수님을 증거하는 맹인의 믿음 채인기 2024.02.05 22
182 2024.1.28 다시 십자가를 생각하며 울라 채인기 2024.01.29 20
181 2024.1.21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실 것이다. 채인기 2024.01.23 22
» 2024.1.14 누가 성(城) 무너진 데를 막을 것인가? 채인기 2024.01.1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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