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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0.11.22.

채인기목사

 

성경본문: 마태복음 54

제목: 애통하는 자의 복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을 발견했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행복한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이 아닌 것은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사는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물고기를 산에서 찾으면 영원히 찾지 못합니다. 물고기를 찾을려면 바다로 가서 찾아야 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추구하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행복에 도달할수 있을까 하는 것을 찾지만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땅에서는 영원히 행복할수 없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할수 있습니다. 참된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된 행복의 주체이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창조하신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할까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에 대한 정답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행복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해결됩니다.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내인생의 행복을 빼앗는 영적인 도둑이 있습니다 그는 사탄이요 마귀입니다. 그들은 내 인생을 도둑질합니다. 그리고 내영혼을 죽이고 불못으로 집어 넣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내게 생명을 주시고, 풍성한 삶, 삶의 만족을 주는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보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복받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에 팔복은 역설적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천국을 볼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생각할 때 심령이 가난하면 오히려 힘들고, 어렵고, 괴로울텐데 예수님은 오히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예수님의 가치?

세상사람들은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애통하는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 이런 복의 차이가 있을까?

세상 사람들자기 중심적, 자기 사고방식의 관점에서 복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하나님 중심적 관점에서 복이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세상사람들소유의 관점즉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서 복을 찾지만 / 예수님인간의 본질적인 존재의 관점에서 복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 시편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행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떠나면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영원히 행복을 발견하지못하고 행복을 얻지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가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사모하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은 순차성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고 말씀하십니다. 즉 저와 여러분이 심령이 가난하지 않으면 애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서 마음이 완악한자는 절대로 하나님앞에서 무릎을 끊지 않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지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함이 무엇입니까? / 프토코스 (절대적 빈곤, 즉 하나님이 없이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하루하루 공급하시지 않으면 살아가루 없는 절대적 가난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사람은 영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만 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안에 있는 찌꺼기 죄에서 민간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가져야 다음 두 번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주간 심령의 가난함을 가지고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까? 마음속에서 한번마음이라도 전 주님이 없이시는 살수 없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것에 감사하며 살았습니까? 삶속에서 자신안에 죄가 올때마다 그 죄를 미워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를 했습니까? 하셨다면 그렇다면 여러분은 심령이 가난함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팔복의 두 번째 : 애통하는 사람

5: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것임이요.

. 애통하는 자 : / 펜둔테스 : 심히 근심하여 고통스럽게 슬퍼한다는 것

애통은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갈라놓은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 위로를 받을 것 : / 파라클레데손타이

: 곁으로 / ’자기 곁으로부터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애통하는 자를 찾아오셔서 위로하며 그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5:4 애통하는자는 본문의 원래 의미는 이사야 61:2-3 슬픔에서 찾습니다.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애통하는 사람들은 슬픔을 안겨다 준 고통의 세월을 보낸 70년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사람들입니다. 왜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앞에서 너무나 심각한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는 이웃강대국 나라 바벨론을 들어 70년이라는 세월동안 포로로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로 생활을 끝내고 위로하십니다. 그것은 포로생활을 끝내고 다시 조국땅으로 돌아오게 하는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오셔서 각 성읍과 마을을 단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어떤 분이신지를 알면서 예수님께로 나옵니다.

4: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000년전 모습이나 지금 현대들의 모습은 별별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들은 각종병에 걸려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심각한 병이 무엇입니까? 정신적인 병 : 우울증, 조울증등이 자살로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2019년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대한민국의 자살률 평가를 했습니다.

자살률 세계 5/ 1년사망자 13,799/ 인구 10만명당 26.9/ 더 심각한 것은 자살률이 해마다 늘어난다는것입니다. /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 전국에서 자살률이 충남이 높습니다.

 

육체적 장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 장애입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심각하지 않을까요?

현대인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육체적으로 건강하다고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병든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시면서 무리들을 향하여 그들의 상태를 보시면서 산상수훈의 팔복을 말씀하셨습니다.

 

, 현대인들에게 이런 일들이 옵니까? 바로 죄의 타락에서 온것입니다.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어둠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회개하므로 고백하기 때문에 치유받게 되고 회복됩니다. 죄는 이렇게 우리를 심령을 좀먹게 합니다. 부패하게하고, 더럽게 하므로써 죄의 불못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애통한자는의미는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애통은 자신이 가장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할 때, 자신의 욕망의 불충족으로 오는 슬픔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산이나, 애인을 잃어버린 것에서 오는 슬픔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애통은 죄에 대한 슬픔을 말씀하십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갈라놓은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을 말씀하신것입니다.

철저한 회개와 죄에 대한 슬픔이 없이는 천국을 소유할수 없다는 역설적인 말씀입니다.

 

다윗의 철저한 죄에 대한 슬픔

사무엘하 11장 다윗왕이 자신의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무도 모를것이라고 하면서 부하인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나단선지자를 보냅니다. 그리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구약 : 다윗

다윗이 우리아를 범한 후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죄의 괴로움심정을 시편을 통해 고백합니다.

시편 6: 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다윗왕은 남의 아내를 빼앗은 밧세바사건을 통하여 그가 얼마나 자기존재를 험오하면서 울었던지 6절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셨다고 고백합니다.

또 어떻습니까? 내가 수척했다 / 나의 뼈가 떨린다 / 내 영혼 매우 떨고 있다 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앞에서 철저한 죄의 회개입니다 / 다윗의 이런 가난한 모습때문에 다윗은 진실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다윗을 용서해주십니다. 벌레같은 자신을 본 다윗,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보는 다윗왕을 보면서. 우리역시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신약: 베드로

26:69-75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을 잡을려고 온 로마군사들이 예수님을 잡을 때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뜰에 심문을 받고 있었습니다.이때 베드로는 멀찍이 서서 예수님을 보고 있을 때 주변에 여자와 사람들이 베드로를 보면서 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자 베드로가 3번을 부인합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다 떠나도 자신은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큰소리로 외쳤던 베드로입니다. 그러나 이젠 자신을 죽일까봐

사람들앞에서 나는 그사람을 알지 못한다. / 나는 네가 무슨말을 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사람을 알지못한다고 / 3번을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 이때 새벽닭이 웁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너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생각이 나서 심히 통곡합니다.

26:75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더라 베드로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찢으면서 고통스러운 번민을안고 통곡합니다.

 

애통하는자는 복있나니 위로를 받을것임이요 .. 말씀은 / 자신이 완벽하고 죄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절대로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린 연약하기 때문에 주님의 긍휼를 구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윗왕처럼, 베드로처럼 자신의 모습을 주님앞에서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이 도우심이 분명히 있습니다. - 지금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해하고 회개하고 치유받기를 원하십니다.

예화)유기성목사님시무하시는 교회 남자집사님이 유목사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분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부탁 하더랍니다. 그것은 자신이 음란을 끊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했답니다. 그것도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유목사님이 진심으로 기도해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집사님이 음란의 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그 고백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제발 이길힘을 주십시오.“

그리고 그 뒤 집사님은 잘 이겨나갔고 정말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직접 도우셨다는 사실을 간증했습니다.

한번은 자기도 모르게 음란한 물건을 파는 가게 앞까지 갔는데 그날따라 가게가 휴업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거기서 정신을 번쩍 들었답니다. ”하나님이 나를 막으시는구나!“

어느날은 유흥가쪽으로 가다가 길에서 교회 장로님을 만나 얼떨결에 새가족 심방에 동행하기로 했답니다.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울 사람을 보내주시고 자신이 그 죄에서 짓지 않도록 죄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이 집사님은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 죄지으러 가는 나를 성령님이 붙잡아주시는구나! 내가 회개하고 그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원했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시는구나!!!

하루는 직장이로 어쩔수 없이 술집에 가게 되었답니다. 그때는 진짜 포기하는 마음이 들어다고 합니다.

오늘만큼은 하나님도 이해해주시겠지. 이러지 않으면 직장에서 사표를 써야 하잖아!!!

내심 자신에게 변명까지 늘어놓으면서 술집으로 들어가는데 여자들이 들어와 한 사람씩 옆자리에 앉았다는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옆에 앉은 여자가 술을 따르면서 귓속말로 이 남자집사에게 말을 하더랍니다./

사장님, 교회 다니시나봐요 그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줄 상상도 못했는데 그때 집사님은 눈이 확 열리면서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은 직장에서 쫓겨나더라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김을 주시더니 이제는예전에는 왜 그렇게 음란에 매여 있었을까?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 만큼 완전히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이집사님은 음란에서 끊을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죄의 허물을 하나님께 드러내었다는 것입니다. 죄를 끊을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애통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것입니다자신의 죄를 보고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으면 절대로 주님은 만지지 않습니다. 그냥 립서비스의 고백은 언제든지 다시 그 죄아래로 가게 됩니다.

 

진정한 애통한자의 모습 :

애통이 무엇입니까? 서두에서 말씀한것처럼 . 애통하는 자 : / 펜툰테스 : 심히 근심하여 고통스럽게 슬퍼한다는 것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진정한 애통함은 무엇을 요구할까요?

1. 진정한 애통한자의 모습 첫 번째 : 나 자신을 보면서 애통해야 함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단니면서 믿지않는 사람과 똑같거나 오히려 불신자보다 더 못하다고 말을 들을까요?

그것은 변화되지 않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산상수훈에 첫 번째는는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에 것이요 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심령이 가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필요없고, 자신의 힘이나 노력으로 해보겠다는 것에서 오는것입니다. 그래서 애통할수 없는 것은 죄에대한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것입니다. 우린 나 자신을 위해 애통하고 슬퍼해야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애통함이 있어야합니다. 내가 죄에

민감하지 않는것에 애통해야 합니다.” - 주님! 도우소서 제가 절대자이신 주님을 의지할수 있도록 도우소서 라는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진심어린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님! 우리가 예수님이 없는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진정한 애통한자의 모습은 두 번째 : 타인을 위해 애통해야 함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신의 몸을 드려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의 피값으로 치러진 잔치는 온인류의 모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이라는 참된 구원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울어보셨을것입니다. 지금도 울고 계신분도 있을것입니다. 죄에 사로잡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보면서 저분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생각을 할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성도님! 가장 많이 울때가 누구때문입니까? 아마 믿지 않는 남편, 자식 그리고 부모님 때문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면 반드시 언젠가 이루어질줄 믿습니다.

 

3.진정한 애통한자의 모습은 세 번째 : 하나님을 위해 애통해야 함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실까를 알아야 합니다.

삼상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에게 아말렉을 한사람도 동물도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고 명했는데 사울왕은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것만 죽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선지자가 밖에서 양들과 소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왜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까? 하자. 사울왕은 핑계를 되면서 거짓말 합니다 . 좋은 것을 취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예배를 드리겠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왕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앞에서 다른 죄사를 드린들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단한번의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 진정한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은 심령이 가난한 마음으로 애통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렇다면 애통한자에게 예수님은 위로를 주십니다. 애통함이 주는 복 : 예수님의 위로

! 예수님께서는 죄에 대해 애통하는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것입니까? 그 이유는 죄에 대해 애통하는자를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위로 : / 파라클레데손타이 / 자기 곁으로부터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애통하는 자를 찾아오셔서 위로하며 그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의 참된 의미는 : 1.우리를 구원(61:2), 2. 치유와 회복(57:18), 3.구속(31:13), 4.나의 죄를 용서(40:1-2), 5.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자유하심(49:13), 6.우리의 인생에서 돌보십니다.(66:13)으로 이것이 예수님의 위로이십니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사람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복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성도님!

죄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으면 마음이 둔해집니다. 그러면서 화인맞은 사람처럼 죄에 무감각에 빠져 그것이 죄인줄 모릅니다. 완전히 하나님과 아무상관없는 삶을 삽니다. 교회는 형식주의로 삽니다. 평생 죄에 사로잡혀 행복도 삶의 즐겁움도 모르고 살다가 자신의 삶을 끝냅니다. 성도님! 자신의 죄에서 민감하시고 깨닫는 순간 애통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흰눈처럼 깨끗하게 하시고 치유하십니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성도님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한주간 자신의 죄에 애통하면서 늘깨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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