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4.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레2:1-10절
제목 : 고운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붓고
바르게 산 흔적
한상동 목사님이 일제 강점기때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입니다. 한목사 앞으로 마산에서 김두석이란 여학교 교사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편지 내용은 신사참배 문제로 몹시 고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목사님은 마산으로 가서 김두석 교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처녀로 어머니와 오빠의 생활비를 부담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만일 그녀가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나선다면 교직에서 즉시 물러나야 하는데 그러면 세사람의 생활 문제가 막연하였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물었습니다. 한목사님은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나서는 참 신자를 굶기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주께 맡기십시오. 지금 당장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노력하면 그냥 살아가게 됩니다.
먼 훗날, 번 돈은 남을 것이 없어도 바르게 산 흔적은 남게 됩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김두석교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부터 학교를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김교사님이 말합니다. 한 목사님은 김 선생의 가족을 위해 밤이 늦도록 기도하였습니다 . 그 후 김교사님의 가정은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김두석 선생님은 2년간 옥고를 치르었고, 어머니와 오빠는 극심한 굶주림과 괴로움을 당하였다. 그러나 주를 사랑하는 신앙으로 그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나갔습니다.
한상동목사님은 일제하에서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었고, 해방후에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하고, 교회를 쇄신하려고 했던 영적쇄신운동의 중신인물이습니다
김두석 선생님은 일제의 식민정책에 대해 비난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당당한 여성독립운동가였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안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쯤 여러분의 연세나 나이가 되시면 내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볼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은 크게 번돈은 없어도, 하나님앞에서 자식들앞에서 그리고 사람들앞에서 인생의 바르게 산 흔적은 남기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살고 계신다면 인간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인정하실것입니다.
본문설명
구약의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는 5가지가 있습니다. 1.번제 2.소제 3.화목제 4.속죄제 5.속건제입니다. 제사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소제의 제사의 의미와 소제가 주는 복음의 능력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소제의 제사는 소제는 히/민하 ‘민하’는 ‘선물’또는 ‘공물’이라는 뜻입니다. 종이 주인에게 드리는 공물과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뜻으로 드리는 예물의 성격입니다
소제는 5대제사중 다른 제사들과 달리 땅의 소산물로 드리는 제사이고 피흘림이없는 곡식제사입니다. 소제의 대표적인 제물은 곡식가루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통상적으로 곡식가루, 기름, 유향, 소금의 4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제는 동물로 드릴수 없는 제사에 가난한 사람들이 드릴수 있는 소제의 제사즉 곡식제사입니다.
소제를 드리는 방식에는 첫째는 곡식을 요리를 하지않고 고운가루로 드리는 방식이 있습니다. 둘째 화덕에 굽거나(4절) 철판에 붙이거나 (5-6절) 솥이나 냄비에 튀기는 (7절) 3가지 방식으로 드릴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첫 열매의 곡식을 볶고 찧어서 드리는 방식이 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드리는 소제들은 일부만 제단에서 태워지고 나머지는 제사장들의 양식으로 주어졌습니다.
소제에 넣어서는 안되는것과 되는 것 : 안되는 것: 누룩과 꿀입니다. 되는 것: 기름과, 유향, 소금입니다.
소제가 주는 의미 : 1. 고운가루를 드리는 의미는 하나님앞에서 충성된 신자의 삶을 보여줍니다.(1절)
1.기름과 유향을 사용하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과 기도로 살아가는 신자의 삶을 보여줍니다. (1절)
소제는번제와 화목제를 병행해서는 드리기때문에 하나님의 구원과 관계의 회복을 바라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또한 유향은 기도를 의미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귀한 것으로써 하나님앞에 나아갈때에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3.소금을 소제에 사용됩니다.(13절) 소금은 변질을 방지합니다. 신자는 이세상이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도 역시 변질되지않아야 합니다. 변질된 신앙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는 소제의 제사를 통하여 성도가 하나님앞에서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아야하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제사의 방식입니다.
소제에 넣지 말것
하나님께서 소제에 재료에 넣을것과 넣치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소제에 넣어서는 안되는 것은 무엇일까?
11절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서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말씀합니다. 1.누룩과 2.꿀을 소제에 넣어서는 안됨을 말씀합니다 왜 안되는가? 제물에 변질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첫째. 누룩은 성경에서 “죄”를 상징합니다. 누룩은 빵을 맛있게 만들고 크게 만드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먹는 빵을 만들때는 누룩을넣습니다. 그런데 소제의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할때의 누룩은 누룩의 부풀게 하는 특성이 삶을 부패하고, 오염시키는 죄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 즉 그들의 가름을 조심하라고 경고를 여러번 말씀하십니다.
마16:6-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히라 하시니 ..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사도바울 역시 육적,영적 음행을 누룩으로 표현합니다. 교회의 일원중 이런일을 행하는 자들은 누룩처럼 온 교회공동체를 변질시킬수 있으며 파문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갈5: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줄을 주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대표적인 이단 우리가 잘알고 있는 신천지 지금 계속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하나는 전능신교입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이단입니다. 한국에 피해를 입은 가정과 가족이 너무나 심각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교리에 빠져 교묘하게 미혹되
어버립니다. 이단들의 특성은 가정이 파괴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꿀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꿀은 달콤합니다. 그래서 꿀이 주는 의미는 세상이 추구하는 쾌락이나 달콤함을 사랑함을 의미합니다. 잠언 25:27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자랑하지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것이라. (요일2:15.16)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만약 신자가 세상을 사랑하게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신자안에 없다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3가지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안에 있는 탐심의 마음과 눈에 보이는 욕심 즉 안목의 정욕그리고 이 땅에것을 목표로 하고 가질려는 끝없는 욕망인 이생의 자랑이 믿는 사람이나 믿지않는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3가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온 것은 하나님과 반대되는것들입니다.
잠시 잠깐 있다가 안개처럼 사라질 세상의 물질과 육체의 욕심에 마음을 쏟고 있지않습니까? 세상의 것들만 추앙하고 산다면 죽기전에 경험할 것은 실망하고 낙심하고 절망할일이 많아질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드리려는 소제제사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로써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야함을 함께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제의 예물을 하나님앞에 드리려거든..
1. 소제의 예물은 고운가루를 드려라
.2: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가루로 예물 삼아
봉헌자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고운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넣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제사장은 한움큼의 소제를 기념물로 드려서 제단위에 불사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화제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거룩한 회막에 뜰에서 먹습니다.
고운가루는 히/솔레트 “밀알을 찧어서 만든 밀가루”를 의미합니다. 봉헌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의 예물은 곡식의 덩어리째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알맹이를 순백한 고운가루를 만들어서 드려야 했습니다. 손으로 만져도 알맹이가 잡히지않는 순백의 고운가루 말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인류의 구원역사에 대속사역을 예표합니다. 특별히 소제의 제사는 예수그리스도의 온전함과 순결한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불순물로 들어가 있지않는 순수한 신앙의 성품을 가지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지만 삶가운데서 어떤 죄의 모양도 없으시고 허물도 가지고 계시지 않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만 죽지않으면 한알은 그대로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사랑을 받은것처럼 우리의 자아가 죽을 때 우리를 통하여 구원받아야할 영혼들이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운가루가 되기 위해서:
내 자아와 선한 싸움을 싸우는 충성된 신자
고운가루가 되기해서는 반드시 싸워야할 첫 번째는 내 자아와 싸움입니다.
딤전6: 4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진리를 잃어 버려서 경건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현상은 다툼입니다. 다툼에서 비롯되는 것은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생각으로 사로잡혀 마음이 부패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자아가 부패해지는 이유는 진리를 잃어버렸거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마음이 부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이 부패한채로 하나님께 고운가루로 드릴수 없습니다. 거칠고 부딪히는 성품으로는 하나님앞에 드릴수 없습니다. 덩어리를 갈아서 가는체에 걸려서 손에 잡혀도 덩어리가 잡히지않고 다른 일체의 불순물도 섞여있지않은 순백의 가루가 될 때까지 갈아서 고운가루가 될 때에 하나님께 드려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집스러운 거친성품, 정직하지 못한 성품, 욕심과 탐심으로 가득찬 거친성품, 모든 것이 내중심적 사고로 잡혀있는 까칠한성품, 자신의 헌신과 희생이 죽기보다 싫은 나의 교만의 까칠한 성품이 우리안에서 깨지지 않는채 살아갑니다. 우린 이런 자신안에 자아의 성품을 볼때마다 괴로워해야 합니다. 괴로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지 못한 못된자아를 십자가앞에 끌고와서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고통이 따르지않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십자가앞에 엎드리는 성도는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의 긍휼이 있을 때 우리는 은혜를 알게되고 내 자아의 성품이 조금씩 깍아지고 깨지고 부서지는 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제 아내가 저를 위해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어느날부터 그 기도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기도할때마다 그것을 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뭔지 모르는 꼭 그렇게 된것처럼 힘있는 기도가 됩니다.
우리 심성이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순백의 가루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순백한 고운가루가 되기위해서는 맷돌에 갈리고 빻아지는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고통이 따르지만 반드시 좋은결과를 가지게 될것입니다.
2 .세상과 선한 싸움을 싸우는 충성된 신자
고운가루가 되기위해서는 반드시 싸워야할 두 번째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육체의 정욕과 비유되거나 비교됩니다.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이유는 영생을 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이 세대를 향하는 신자들에게 경고장을 날립니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 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재물에 소망을 두게 되면 생명의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두라고 말씀하신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나를 드릴 때 고운가루로 드릴수 있습니다.
소제의 예물을 하나님앞에 드리려거든..
2.기름과 유향을 넣어야 합니다.
2: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봉헌자가 소제의 예물을 드릴 때 고운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넣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성도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왕,제사장,선지자에게는 기름을 부어서 거룩하게 구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소제에 기름과 유향과 첨가한 것처럼 성령충만하시면서 기도로 삶을 사시면서 거룩한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열두제자를 뽑으실 때 변화산에서 십자가를앞에 두고 겟세마넷 동산에서 늘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신자는 성령의 힘입고 살아갑니다. 신자에게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육에속한 사람들 즉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않는이유가 그분안에 신령함을 사모함이 없는 성령이 내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유익을 가져다 주는지 모릅니다.
저는 기도가 얼마나 얼마나 큰 능력이 있고 중요한 알기에 골방의 기도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좀 힘들때면 예배당에 나와 강단에 엎드립니다. VIP영혼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고, 올해 하반기 사역을 어떻게 할것인가? 또 어디에 집중할것인가?를 놓고 기도하고 은성교회와 성도님들을 반드시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을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답답했던 마음들, 근심과 염려가 되었던것들 하나님앞에 엎드려 고백을 하게되면 언제그래냐듯이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힘을 주십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제 힘으로 할수 없는 영역의 변곡점을 찍을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은 기도외에는 없음을 알기에 기도로 엎드립니다.
인생의 광야에 서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막과 같은 인생의 광야로 이끌어 내십니다. 광야를 히/미브바르입니다.“사림이 없는 땅, 씨뿌리지 못하는 불모의 땅으로서 황폐”의 비유로 널리 사용합니다. 사람이 살지못하는 저주 받은 땅인 광야가 선지자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신비의 장소였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만나고 3년동안 아라비아 광야에서 철저한 훈련을 받습니다.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40년을 훈련받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황폐한 땅이 주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소,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아주 중요한 시기에 이런 광야의 경험을 해야합니다. 아니 반드시 해야합니다.
이유는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잡한 일상에서 끄집어내셔서 잔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장소로 이끌어가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얽힌 삶가운데서 하나님뜻을 알게 하고, 사명의 부르심에 다시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
3.광야는 세상의 더러운 욕망을 걷어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할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4.광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기 편한 도구로 만들어가고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광야로 불러내어 무엇인지 모르지만 외롭고 자신이 홀로 있는 것 같은 시간이고 자신의 내면에서 기도를 해야하는 마음이 들게 되었다면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광야로 부르신것입니다.
광야에서 여러분이 세상의 소리를 듣지않고 주님과의 1:1 관계를 통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길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기도합니까?
1.내 인생의 길을 주님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2.나보다 나를 더 잘아시기때문
시139:1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나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분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 우리의 기도의 모범자이십니다. 그분은 성부하나님께 언제든지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질병이 떠나면 귀신이 떠났습니다.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까? 1.주님의 자녀의 특권이 기도이기 때문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2.예수님의 이름에 생명이 있기 때문 3.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 “주님의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바로 ”의인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정욕을 쫓아 자기의 마음대로 하는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즉 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 점쟁이나 주술과 같은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려고 할때에 내 마음에서 성령님과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이때 성령의 사람이 되어 세상의 소리를 듣지 않고, 세상의 귀를 막고, 세상의 말을 하지않고 말씀의 중심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제 유향을 넣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관계는 너무나 중요하고 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소제의 예물을 하나님앞에 드리려거든..
3. 소금을 치라
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소금의 언약이라고 말을 하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금은 부패와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불변성과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시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자를 향하여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기위해서 변질되는 것을 막기위해서는 소금이 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소금이 제 역할을 하기위해서는 녹아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희생이 없는 소금은 맛을 내지 못하고 썩는 것을 막지 못하며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금같은 신앙으로 녹아 없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전도할 VIP영혼들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집사님이 새로운 전도할 발굴자를 만나고 전화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으실것입니다.
전도는 논리 정연하게 복음을 설명하는것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사실 교회에 등록한 사람들을 보면 복음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듣고 감동해서 나온 사람은 극속수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섬김 즉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인도할 때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말로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전도대상자와 관계를 세우고 사랑으로 섬기며 그들의 필요를 찾아 채워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불신자와 VIP영혼을 7번정도 전도를 위한 만남을 가졌을 때 마음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듯 전도대사장를 위해 기도하며 관계를 세우고 사랑으로 섬기고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때 전도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전도는 일회성이 아닙니다. 은성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을것입니다.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전도의 자리에 한영혼을 품에 안고 기도하고 가서 만나고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서 그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행복을 찾아갈수 있도록 우리가 힘써 섬겨야겠습니다.
고운가루, 기름과 유향, 소금같은 성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고 의미합니다.
다시 거친 자신의 성품을 깨고 부셔서 주님앞에 고운가루를 예물로 드리는 마음으로 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기를 원하며, 성령의 충만함과 기도의 열정으로 다시 일어나며, 전도의 자리에 서서 소금같은 성도가 되어가는 거룩한 신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