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설 장만하는 금요일 저녁에 어머니와 아이들그리고 아내와 함께 윷놀이를 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너무나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주시고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하시고, 그안에서 자라는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 어떤곳인지 가정을 통해 알게 하십니다.
본문설명
사무엘상 21장에 다윗은 놉으로 피신하는 도중에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사울왕으로부터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다윗과 부하들이 먹지 못해 피곤하고 배고팠습니다.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 먹을것과 칼을 있으면 달라고 요구하자 제사장이 여호와의 성소에 물려낸 거룩한 떡인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다윗에게 줍니다.(21:1-9)
이 같은 사실을 에돔사람 도엑을 알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피신합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자신의 신분이 발각되어 미친 사람으로 행세를 한후에 겨우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그리고 아둘람 굴로 피합니다.
아둘람의 뜻은 은신처, 피난처라는 뜻입니다. 남 유다땅에 있는 지역이고, 가드와 베들레헴 사이에 위치한 지역입니다.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이곳 근처의 석회암 동굴에 피신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있는 아둘람굴로 피신한 사람들은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고난과 인내를 통해 마침내 유다땅 헤브론에 거하게 되면서 기쁨과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둘람 굴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1. 아둘람 굴이 주는 의미 : ‘다 그에게로 모였고‘ - 교회공동체가 암울한 이 시대의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로 왔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의 가족들과 연합하게 되고, 사울왕을 통치하에 여러 가지로 억압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듭니다. 그 수가 400명입니다.
삼상22: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울왕을 통치하에서 여러 가지 핍박과 억압을 받았던 자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 다윗이 있는 아둘람의 굴로 모이게 됩니다.
거기에 온 사람은 첫 번째는 2절 환난 당한 모든 자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약한자들입니다. 사울왕의 핍박과 억압에 고통받을 받았다가 못이겨서 도망친 자들이었습니다. 둘째는 빚진 모든자 들입니다. 고리대금업자는 뜻으로 그들에게 빚을 지고 종살이를 하다가 도망한자들입니다. 셋째는 마음이 원통한자입니다. 고생의 쓴맛을 보고 마음이 분통한자들입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자들로써 가난한고 소외된 계층의 부류들입니다. 이들이 다윗이 있는 아둘람 굴로 모였던 것은 다윗만이 자신을 알아주고 안식처와 피난처가 되어줄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모였던것입니다.
다윗은 사람들을 자기의 공동체에 받아들일 때 선별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면 누구든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삼았습니다. 아둘람의 공동체는 오직 다윗을 중심으로 다윗에 대한 믿음 하나로 결속된 믿음의 공동체였습니다. 아둘람 공동체는 다윗에 대한 신뢰 이외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었습니다.
행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포합니다
교회는 오직 한분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하나로 결속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외에는 그 어떠한 조건도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가 안식과 평안을 얻는곳도 예수그리스도가 주인되신 교회이어야 합니다. 외로움과 상처를 싸매어 주어야하는곳이 교회이어야하고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너무나 연약합니다. 그래서 종교를 찾는데 신을 찾는 것은 인간은 육으로만 되었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에는 신 의식이 있습니다. 신을 찾고자하는 마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사는데 너무나 바빠서 밤하늘에 별 한번 보지 못하고 여유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안계신지 내가 왜 태어났고, 왜,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할 틈도 없이 살다가 그냥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간은 언젠가 늙고 병들고 죽을 몸인데도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천년만년 살것같이 인생에서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온 우주를 만드시 하나님,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순종하면서 살아갈때에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고, 참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려움과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아둘람 굴에 왔던 세 부류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소망도 없는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가만 안식과 보호하심을 받을것이라는 마음 때문에 그곳이 자신들의 유일한 피난처라고 생각했던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서 빠지든지
3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이 시의 배경은 히스기야왕때 앗수르 산헤립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이 곧 함락되는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히스기야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잠깐 예루살렘이 구원을 받았을때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고 시인합니다. 피난처는 우리가 도망가야할 장소입니다. 희망,보호소, 라는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희망이고, 보호하시는 분임을 시인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멸망할 수밖에 없는 성 앞에서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도우십니다.
시인은 환난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께서 환난이나 어려운일에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자이심을 확신하는 고백입니다.
땅이변하든지, 산이 흔들리든지, 바다가 빠지든지 솟아나든지등 지진이나 폭풍를 통한 자연재해를 비유하면서 강력한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성에 쳐들어왔던 것을 은유적으로 해석하여 이런 환난에서 건져내실분은 하나님 뿐임을 시인은 고백합니다.
여러분!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우리의 피난처는 누구십니까? 오직 예수님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에 계시의 종교가 됩니다. 신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것을 구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을 빼고, 세상의 모든 종교와 신은 인간이 신을 찾아야합니다. 열심히 찾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알지못하기 때문에 귀신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깁니다. 귀신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한 구원은 예수님외에는 없다는 것을 말씀하셔씁니다.
성경의 기록된 요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게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성자에게 구원자로 세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자 예수님께로 성취하도록 하셨고, 성자는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태어나셨습니다.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예수그리스도이신데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말씀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안식과 평안을 주신지 모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한 마디 한마디는 희망과 아픔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소망을 줍니다. 그뿐 아니라, 국가가 기독교를 국권을 삼고 있는 나라마다 사람들이 인격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경제적인면, 정치적인면도 성숙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주는 참된 복음의 의미를 알고 그분안에서 삶을 영위해 가야합니다. 예수그리스도와 나의 삶이 동떨어져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성도는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힘이되고, 피난처가 되고 환난가운데 건지시는 분이라고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신앙이 성숙하다는 것은 절대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의존하고 신뢰하고 믿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2. 아둘람 굴이 주는 의미 :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끝까지 함께하는 공동체입니다.
400명의 환난당한자, 빚진 모든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악한 사울왕에 있을때는 환난과 핍박이었지만 그러나 다윗에게 있을때에는 회복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를 선택하느냐? 누구의 편에 서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함께 고난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다윗은 끝까지 함께 하는 공동체를 세워 마침내 그들은 유다땅 헤브론 성읍에서 살게 되면서 다윗을 통해 기쁨과 영광을 얻습니다.
삼하 2:1-3 1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2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3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아둘람의 굴의 공동체는 비롯 연약하지만 다윗은 이들을 끝까지 함께 합니다.
아둘람의 굴에 왔다고 해서 어려움과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견디게 될 때에 소망을 보게 됩니다. 가족과 추종자들은 다윗을 통해 유다땅 헤브론 성읍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은 가족과 추종자들에게는 그동안 사울왕에 핍박과 환난에서 보상을 받는 기쁨과 영광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민일보가 2023년 1월 31일 조사전문기관 피앰아이와 공동으로 실시한 “외로움 척도 지수와 종교 상관 관계”에서도 우리나라 국민의 외로움 정도가 높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조사결과 4명중 1명꼴로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1인 가구 증가’입니다. 취업, 주거문제, 고령화, 개인주의 확산, 혼인율 저하로 원인을 찾습니다. 철저하게 자기방식과 자기 위주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시대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복음입니다. 은혜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알려주는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고, 존재하는 이유가 되고, 교회의 본질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고후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써 권한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방해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육체의 할례를 강조하며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을 믿지않고 방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사야선지자를 바벨론 포로에서 놓여 회복시킨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바울은 너무나 강하게 말합니다. 보라 지금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때이다. 이미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서 다 이루었다 하셨으니 믿는자들에게 은혜를 받게 될것이고 구원을 받을때임을 말합니다. 그러면 언제입니까? 지금이다. 지금은 우리가 생존하는 있는 때 또 지금은 바로 이 순간을 말합니다.
아둘람굴에 있는 가족들과 400명의 추종자들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신지를 알게 되었을것입니다. 다윗과 함께하는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도우심을 바라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에 도우심이 없이는 불안과 염려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때이고,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피묻은 주님의 십자가앞으로 서야할 이유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고 우리를 의롭다고 증거하시기위해 예수님은 부활하셨던것입니다 이 진리가 퇴색되지 않도록 교회는 아둘람굴에 모인 사람들에게 다윗을 통해 알게 되었고,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마다 교회는 어두움을 밝혔습니다. 때로는 교회답지 못한 곳도 있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교회는 세상의 빛이고 등대이고 진리를 드러내는 거룩한 성소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는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묻는다 그리고 순종한다
하나님의 편에 있는 다윗은 선지자 갓의 말에 순종합니다.그러나 오직 다윗을 죽이기위해 탐욕에 사로잡힌 사울왕은 죄없는 제사장 아히멜렉과 제사장들을 죽입니다.
다윗은 아둘람굴에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지자 두려움을 느껴서 이방땅 모압왕에 도움을 청하고 부모를 데리고 모압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머물때에 하나님의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다시 유다땅으로 돌아가는 말을듣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다윗을 통해 우리는 그가 항상 깨어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1.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깨어있다는 증거: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3절)
22: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다윗이 사울의 위협을 피해 도망가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될 때까지 모압 왕에게 자신의 부모를 의탁하겠다는 뜻이다. 동시에 본문은 다윗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알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자기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때까지 자신의 부모님을 안전한 모압의 왕에게 위탁하겠다는 것입니다. - 성도님! 다윗은 자신도 하나님께 묻지않는 실수를 하여 블레셋땅에 들어가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곧장 깨닫고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 알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앙이 성숙해야합니다. 깨어있는 신자의 하나님의 뜻을 알기까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해야 합니다.
2.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깨어있다는 증거: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 -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갓의 말에 순종함.
22: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선지자 갓은 다윗이 모압이라는 요새에 머무르지 말고 그곳을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선지자 ‘갓’ 의 지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갈 길을 알리신 것입니다. 이러한 지시는 3절에서 다윗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 알기 원했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응답에 다윗은 즉각 순종하여 유다 땅 헤렛 수플로 들어갔고,이때 다윗의 부모들도 다윗과 동행합니다.
다윗은 선지자의 갓의 말이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라고 생각을 했을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즉각 순종하여 유다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순종할려는 자세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깨어있다는 증거: 나의 탓이다.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 - 생명을 지켜주겠다.
22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23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모든 것을 자신의 불찰로 여기며 다윗을 도운자의 아들을 자신이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다.
사울왕은 에돔 사람 도엑에 의하여 제사장 아비멜렉이 다윗에 성전에 드렸던 진설병과 골리앗이 죽을 때 가지고있던 칼을 다윗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제사장 아비멜렉은 사울왕앞에서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바른소리를 합니다.
22:14절부터 16절 아비멜렉은 사울왕에게 다윗이 당신에게 얼마나 충실한 자입니까? 다윗은 당신에게 장인이고 왕의 사위가 아닙니까? 그리고 왕의 호위대장이 아닙니까? 왕실에서 얼마나 존귀한 사람이 아닙니까? 하고 바른소리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왕은 아비멜렉을 죽이겠다고 하자 왕의 신하들이 제사장 아비멜렉을 아무도 죽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에돔사람 도엑이 죽여버립니다.
이때 아비멜렉의 아들이 도망쳐 다윗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자 다윗은 아비멜렉의 아들에게 안전을 약속을 합니다.,
다윗은 제사장 아비멜렉이 죽은 이유가 다윗의 불찰때문이라고 자책합니다.
다윗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자였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아히멜렉의 집의 모든 생명이 죽임을 당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걸고 아비아달의 생명을 지켜주기로 약속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은혜를 입었던 것을 잊지않고 제사장의 아들을 자신이 안전하게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생명이 되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숨기십니다.
사울왕이 시퍼런 눈을 떠서 다윗을 잡아 죽일려고 해도 잡을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다윗을 숨기시기 때문입니다.
23: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사울이 매일 다윗을 죽일려고 찾습니다. 광야에서 산골에서도 다윗이 머물렀던곳은 찾아가지만 찾을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찾지만 손에 잡힐듯 하지만 잡히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다윗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기에 사울은 매앨같이 다윗을 죽일려고 찾아다녀도 잡을수가 없었던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결국 의인을 이길수 없습니다. 꾀를 써서 잠깐은 이길수 있을련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뜻에 살아가고자 하는 신자는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보호하십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뜨리고 파괴할려고 할려고 시도하지만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사울왕은 결국에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함을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개입하시면 어떤자도 막을수 없습니다. 세상의 막강한 힘을 가진자라도 절대로 이길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찾아온 가족들과 400명의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아둘람 굴은 하나님의 영향권에 미치는 공동체였습니다.
밖은 온통 사울왕의 득세에 못이겨 두려움에 사로잡혀 기세가 등등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있는 아둘람 굴은 외형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내면에서는 평안을 얻습니다.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사울왕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영향권에 둘러는 것이고, 다윗은 하나님의 영향권에 둘러는것 때문입니다.
세상은 사탄의 영향력에 둘러고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는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시편1편에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한다고 말합니다.
시편1: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저는 설날 명절아침에 저희 가족이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자녀들에게 성경은 두가지의 길을 가르친다. 하나는 의인들의 길, 또하나는 악인들의 길이다. 하나님의 영향권에 있는 의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향권 밖에 있는 악인들은 반드시 망한다고 설교를 나누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의인의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자꾸 악인들의 길로 가게 하여 망하도록 주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가 피할곳은 다윗이 있는 아둘람 굴입니다. 다시말해서 교회가 성도들의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난당한자, 빚진자, 마음이 원통한자 그런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을 때 이들이 교회로와서 치유되고 회복될 때 하나님은 교회를 향해 , 성도를 향해 기뻐하실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중심입니다. 여러분이 삶의 중심입니다.
이한주간도 여러분이 다윗처럼 아둘람 굴로 올때에 피난처가 되어주고, 생명이 되어주고, 끝까지 함께하는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으로 일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