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롬12:1-2절
제목 : 예배는 삶이다.
우리는 3년전 코로나를 겪었습니다. 코로나 시국때 교회마다 어려운점이 많았습니다. 가장 어려웠던점은 예배를 못드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드리더라도 5명으로 제한을 하거나 교인의 10%만 드리라고 정부지침이 있었습니다. 저는 전에 은성교회를 섬기는 담임목사로써 주일 예배만큼은 절대로 정부나 목포시지침을 따를수 없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된 절기를 지키라고 했는데 마음대로 바꾸어버림으로써 왕과 백성들이 타락해 버렸고 결국 한 나라가 멸망했던 사건이 바로 솔로몬이후 여로보암시대때 있지않았습니까?
저는 목회자로써 정부의 지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일은 하나님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에 의미는 주님의 날입니다. The LORD day입니다.
코로나 엄청나게 심할때에 뒷개에 한 게임방에서 코로나가 터졌다고 해서 주일아침에 시공무원들이 3-4명씩 와서 교회를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며 교회 주변에 있는 교회는 다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못할때에 저희 교회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공무원들이 와서 말을해도 주일예배만큼 타협할수 없고 벌금을 물더라도 예배를 지키겠다고 마음을 먹을정도로 예배를 지켰습니다. 시공무원이 다음주에는 절대로 예배를 드려서는 안된다고 하자 예배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도를 하면서 지혜를 구할 때에 다음주는 주일11시에 못드리게 한다면 시간을 변경해서 주일은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해서 제가 주일새벽 6시에 주일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성도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주일 새벽6시에 예배를 드렸는데 모든 성도가 참석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코로나때도 한번도 예배를 못드린적이 없습니다.
저에게서 예배는 저의 목숨이고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된 말씀입니다. 존맥아더 목사님은 예배를 말할때에 ‘예배를 드리므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예배는 생명과 같은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목숨을 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지금 우리는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에서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며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하는데에 있어서 이런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개혁과 부흥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것입니다.
개혁 은 종교개혁을 생각하면 되는데, 개혁 (Reformation)과 부흥 (Revival)에서 먼저 개혁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개혁’은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예배를 다시 원래의 정신으로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아가자는 것이 개혁입니다. 원래의 예배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부흥’은 교회성장을 말하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흥을 말할때에 부흥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부흥은 성도들안에 교회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것 ” 주님의 첫사랑이 회복하는 것,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잃어버렸던 감사가 다시 감사로 넘쳐나는 것을 진정한 부흥이라는 것입니다.
내 신앙은 실전 영역에서 싸움
사도바울은 롬12장 1.2절에 참된 예배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롬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배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과 절대로 나뉠수 없습니다 성경은 공적인 예배도 하나님께 드려야하지만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사람 아담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드리는 것’과 ‘그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분리하여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 두사람의 제사중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두 사람이 믿음의 삶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은 것을 분하게 여기고 동생을 죽이는 살인까지 행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제사를 드리지않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사를 드리는 마음과 태도와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마음이 어떠했는가에 촛점이 있습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도 제사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믿음의 삶을 충실하게 살지 않으면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열납 하지 않으신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처음부터 예배와 삶을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거부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삶이 예배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자는 공적으로 예배를 하는 행위뿐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사실상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선을행하지 않으면서 다시말해서 믿음의 삶을 살지 않으면서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지않으면서 자기 멋대로 살면서 모양만 그럴 듯 하게 드리는 예배를 기쁘시게 받으실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삶의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하는지 모범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롬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바울은 이 말씀에서 예배가 주일날 드리는 공적인 예배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삶의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빈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영적 예배의 시작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을 때 살아있는 제물로 받으신다고 합니까?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가입니다. 첫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인 생활이 있고 세상적인 생활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들도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육체를 갖고 세상속에서 세상의 일을 해나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등 삶의 영역을 주셨습니다. 이 삶의 터전에서 우리는 해야하고 지켜야 할 것을 싸움히는 것입니다. 이 영역에서 믿음의 훈련, 신앙의 훈련도 이루어지고 사탄으로부터 공격과 시험을 받고, 사람으로부터 공격을 받습니다.
이런 영적 전쟁속에서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이세대가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온전하지 본받을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지 못하도록 한다는것입니다.
자동차나 비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는 엔진입니다. 성도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우리는 다시 예배란 무엇인가에서 성경의 답을 찾고 성도는 하나님께 어떤 예배자로 삶을 예배를 드려야하는가를 알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를 간단히 정의한다면 “예배는 최상의 존재이신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배하는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예배를 나타내는 단어는 첫째. 프로스쿠네오 (proskuneo) 인데 ‘ 입맞추려고 나아가다. 손에 입맞추다 또는 엎드리다’
라는 의미입니다. 프로스쿠네오는 겸손한 예배를 나타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둘째. 라트류오(laltreo) 인데, 이는 공경하거나 경의를 표할때는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 프로스쿠네오 와 라트류오 두 용어는 모든 “드림” 에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또는 그분의 최고의 가치를 말로 표현하고 긍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셔야 한다는것에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참된 예배의 본질은 인간이 최상의 존재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시도록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드립니까? 우리 자신의 전인격을 드리고, 우리의 태도를 드리고, 우리의 소유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예배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예배
예수님께서는 막12:29-30절에서 구약에서 신명기 6장 4-5절 인용하십니다.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이 말씀은 우리를 예배로 부르심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모든 계명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것인데 우리의 마음을, 목숨을,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모든백성들이 가지는 마음의 태도가 최우선임을 말씀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출애굽하는 과정가운데 성막 중심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성막 중심은 오직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22절 하나님께서 성소를 짓는 이유는 너와 내가 만나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을 예배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중대한 신성 모독으로 간주했습니다. 성막 안에는 앉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앉거나 보살핌을 받기 위해 그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또 즐거움을 얻기 위해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 성막에 갔습니다. 성막 옆에는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성막에서 조금 떨어진곳에는 레위인들이 있엇습니다. 그들은 성막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떨어진 곳에는 12종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에배를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백성들은 철저하게 예배의 중심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성막이라는 오늘날에는 교회라는 모형으로 우리에게 예배의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
모세는 율법은 예배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를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하는지를 자세하게 말합니다.
출30:34-36절에서 향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에배를 상징합니다. 참된 에배가 하나님께 올라가듯, 그 향을 통해 향기가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향을 제조하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37.38절은 향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말씀하십니다.
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가져다가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같은 분량으로 하고
36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37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38냄새를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향품을 제조하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이 향품은 하나님께 쓰이는 향품입니다.
36절은 하나님께서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특별한 향처럼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37절에서 향을 만들 때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배가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를 준비해야지, 너희를 위하여 예배를 준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미없는 예배, 향기가 없는 예배를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38절 자신이 맡을려고 향을 만들지 말라는것입니다. 어떤 인위적인 예배를 만들어서 하나님보다는 인간을 기쁨을 주기위해서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인위적인 에배를 만들고 드린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38절에 그 백성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즉 자기가 맡고싶어서 향을 만들어 제조를 하면 목숨을 잃게되고,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하는 방법대로 하지않으면 또한 죽게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하는지 말씀하고 보여주고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기억하고 준비하는것입니다. 인간에게만 기쁨을 주고, 보여주기식 예배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미없는 예배를 절대로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일이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어쩔수 없이, 부모님이 가라고해서, 갈때가 없어서 그런식의 마음의 태도로 예배를 준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에배가 잘못됐을 때 죽임을당함
실제로 하나님께 잘못된 예배를 드림으로써 죽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레10장에 아론의 두아들은 제사장으로써 하나님의 성막안에서 거룩한 제사 행위를 해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두 아들이 잘못된 예배를 드림으로써 죽임을 당하는 말씀입니다./
레10:1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나답과 아비후가 향로를 가지고 성막안에 들어갈때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을 담아서 분향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불이 두 아들을 삼키므로써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슬퍼하는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8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10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두아들이 어떻게 위반했는지를 정확하게 나와 있지않지만 하나님이 정하시지 않는 공인되지 않는 불을 사용했거나, 어쩌면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뒤에 향을 피우러 가다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으로서 명령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에배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와 무관하게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두사람을 즉시 죽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향이 거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은 그 향처럼 거룩하고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예배를 삶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이 예배와 분리된다면 주님께서는 예배를 열납하지 않으시고 기도도 듣지 않으십니다. 이는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그것은 실제로 역사속에서 예배와 삶이 분리되는 일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크게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작게는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 , 일터 그리고 가정에서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로써 모습과 밖에서 살아가는 삶의 예배가 나뉘고 분리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과 직장과 일터 그리고 가정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교회가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거듭난 신자가 없이 그저 마당만 밟다가 가는 종교인으로만 가득채워진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조심해야할 예배의 자세중 하나는 자기 위안을 삼는 예배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아모스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암5: 21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지 않고 번제와 소제인 제사의 행위를 받지않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화목제사도 받지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파소리인 찬양의 소리를 해도 듣지않겠다는 것입니다.
왜! 받지 않으신다는것입니까?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예배에서 정의와 공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백성들은 종교적 행위는 제사에는 열심히 있었으나 삶은 죄악으로 가득했고,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제사를 드리는 행위가 자기가 위안을 삼기위해서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안드리면 찝찝하고해서 주일날 마지못해 나와서 드리는 자기 위안을 삼는 종교적 행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성실히 주일만 지키고 예배만 출석하면 됐으니까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공적예배와 삶의 예배가 무엇일까?
첫째. 같은 성도를 세심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롬14: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는 말씀입니다.
이말씀은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말고, 도리어 서로 부딪칠것이나 거칠것이 있는 말이나 행동을 같은 성도들에게 상처가 되지않도록 세심하게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거칠것이 있다면 형제앞에 놓치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상처를 잘 받습니다 가장 큰 상처는 말로 인한 상처입니다. 연약한자나 믿음이 있다는 신자에게도 말로 인한 상처가 있으면 교회를 떠나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우리가 공적인예배와 삶의 예배에서 이 말씀을 기억해서 서로 비판에 자리에 서지말고, 서로 부딪힐수 있는 꺼리 가 있지않도록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심하게 생각해 보아야할것중에도 성도가 병원에 있으면 전화한통이라도 해서 안부를 물어보는것도 세심한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삶의 예배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려움을 있고 기도제목이 있다면 공동체에서 함께 기도하고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주님안에서 살 소망을 주는 것이 삶의 예배라는 것입니다.
무관심은 교회를 무너뜨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삶의 예배의 적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공적예배와 삶의예배가 무엇일까? 태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것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롬15: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예수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제물이 되었다는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이 성령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제물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도 역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중에 하나라는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방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제물로 세워지고 그 사람이 참된 예배자로서 성숙함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태신자를 참된 예배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공적예배와 삶의 예배가 무엇일까? 구제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빌4:18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물질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도와준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말합니다. 즉 받으실할만한 예배가 무엇인가? 어려운 자를 도와주는 것 즉 구제를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구제사역을 하는 것 어려운 성도들을 돌아보고, 함께 나누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함께 도우는것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 또한 예배의 행위이며 그것은 우리의 자신의 삶속에서 효과를 나타냅니다.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받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한다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의 특징은 무엇일까?
1, 삶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싸워라.
12: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
이 말씀은 성도가 삶의 예배를 어떻게 살것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위환경에 따라 몸의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 같아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주일날 공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반드시 의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분명한 태도와 모습에서 이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을 의식하는것처럼 삶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자신을 돌아볼뿐만 아니라,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향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때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삶으로 돌아가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정욕을 따라 죄를 지으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악을 행하는자의 예배는 받지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의식하고 거룩함을 지키라는 분명한 의미는 예배드리는 자의 삶의 내용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라는것입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구별입니다. 무엇과의 구별입니까? 세상이 요구하는것에 대한 구별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것입니다. 이 세대가 하는 행위가 무엇입니까?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중 예수 그리스도의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세대가 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하는데 음란하지 않고, 정욕대로 살지않고,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살지않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않고, 호색하지 않고 다투거나 시기하지않는것입니다. 세상이 이런것에 치우쳐 있으니까? 하나님을 의식하는 신자는 무늬만 신자가 아니라, 진실함과 공의와 정의로 진짜 거룩함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과의 싸움은 거룩입니다. 내몸도 거룩하고, 내 영도 거룩해야합니다.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렇게 피터지게 싸워서 예배를 드리는 신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때에 그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식하고 지키고 싸웠기 때문에 그 충직함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주의할점은 – 하나님께서 거룩한 삶이 없는자의 예배를 열납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삶이 엉망인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려도 소용없으니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식으로 받지 않도록 유의해야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로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세우기 위한 바른 목적과 의도라는 것을 말을하고 있는것입니다. 삶과 예배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앞에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겠다고 회개하시면서 또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면서 싸워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시작하고 하면서 하나님을 알게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자로 준비하고 공적인 예배와 삶의 예배를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의 특징은 무엇일까? 삶의 기준이 ‘말씀’이라고 믿고 분별된 삶을 살라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합니다. 신자가 무엇으로 분별할수 있나요? 여기서 분별은 헬/도키마조
자신을 살피다, 검사, 시험하여 증거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수 있습니다. 바울은 정확하게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수 있는 기준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분별할수 있고, 그 말씀에서 삶의 지혜와 지식을 얻게되고 진리와 비진리 ,옳고 그름을 분별할수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에 노출되어 살아갑니다. 말씀을 듣는 시간보다, 말씀을 보는 시간보다 세상의 소리, 세상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더 노출되어 관심있게 봅니다. 그래서 어쩔때는 우리는 분별할수 없도록 세상의 가치와 논리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반드시 인식하고 기억해야하는 것은 내 삶의 기준은 말씀이다
예배자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
주일예배를 드린후 삶의 예배에서 잊지말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라 그리고 내 삶의 기준은 오직 말씀이다 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가슴에 새겨서 살아갈때에 삶의 예배를 통하여 공적인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받으실만한 예배자가 될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한주간 거룩한 삶을 위해 싸우고, 말씀의 기준으로 다시 예배를 준비하고 드리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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