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0. 종려주일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눅23:26-38 / 고후1:5-7절
제목: 십자가상에 말씀하신 일곱말씀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부활절을 한주간 앞둔 주일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은 수많은 군중들이 종려나무가지와 옷을 깔아 왕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호산나를 외치면 맞이합니다.
내일 월요일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절기. 곧,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이 길가에서 종려가지를 흔들며 그분을 환영했던 날로부터 부활하시기 직전까지의 1주간을 지키는 절기인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한 의로운 인간의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워진 구속(救贖)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 구속주가 당하신 전 우주적 고난이었습니다
본문설명
누가복음 23장 26-38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언덕으로 가시는 모습과 그 골고다현장에 예수님을 포함하여 두 행악자들의 모습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일곱말씀인 가상칠언의 첫 말씀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저는 한주간 김남준목사님의 ”십자가“라는 책한권을 읽었습니다. 읽은내내 십자가앞에 서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한숨을 짖거나 엉엉울면서 회심을 했습니다. 십자가앞에서 나의 모습을 비출 때 얼마나 선명하게 나의 모습을 비추어주는지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죄많은 저를 사랑하시고,십자가의 내어 죽기까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여러분들도 느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전달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수난은 우리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잔인한 방법의 십자가의 처형
여러분! 십자가처형은 극악 무도한 죄인을 죽이기 위한 형집행 방법입니다. 이 사형제도는 너무나 잔인하여 로마인들에게는 적용되지않고, 지배 민족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빌라도법정에서 로마군인들로부터 수많은 채찍을 맞으십니다. 그런데 이 채찍은 가죽채찍입니다. 날카로운 쇠부치나 짐승의 뼈를 깍아 만든 뽀족한 물체들이 몸에 찍힐대 살점이 찢어지고 떨어져나갑니다. 매를 맞다가 죽은 죄수들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채찍을 맞으면서 피가 낭자하여 피로 얼룩진 모습이었을것입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약150kg입니다. 성인몸무게 두배정도로 무거웠습니다. 그 십자가를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십자가 형벌의 또하나의 잔인함은 매달린 죄수가 곧 죽지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고통을 느낄 기력이 남아있는 한 모든 고통을 다 받게하는 사형제도라는데 이 십자가의 형벌의 잔인함입니다. 손과 발못에 대 못이 박혀있습니다.
온몸의 체중을 지탱하고 있는 고통도 극심하지만 출혈로 인한 체내의 통증은 가히 살인적인것입니다.
이런 고통의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는 일곱마디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여 울라
예수님께서는 모진 채찍질과 고통가운데서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한발짝 한발짝 걸어가십니다. 이때 뒤에 따라오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면서 따라오십니다. 한때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고, 예수님께로부터 죄를 용서를 받았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향하여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너와너의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28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은 장차 자신을 따라오며 우는 자들이 가지게 될 더 큰 슬픔을 보셨습니다. 지금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자
신의 죽음보다 예수님을 구주로 알지 못한 채 맞이하게 될 심판 때의 엄청난 슬픔을 미리 보셨던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AD70년때 로마의 의해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해 버립니다. 여인들은 자신이 받게 될 영원한 형벌의 심판을 알지 못한 채 예수님의 죽음만을 슬퍼하는 여인들을 향하여 울지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장차 주님이 오실 때 받을 심판을 더 크게 봅니다. 천국의 심판의 나팔소리가 들릴 때 우리는 이땅에서 쌓아온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될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위하여 울고 계십니까? 자신이 받아야할 심판을 모른채 이땅에서 사는 것을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고난주간에 반드시 알아야할 것은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바로 서지못하고, 세상에서 방황하고 유린 당한 백성들처럼 헤매이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슬퍼하고 울어야합니다. 또하나는 지금도 구원을 받아야
할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슬퍼하고 울어야 할때입니다.
가슴에 담아야합니다. 고난주간가운데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가지고 대충때우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하는 목마름으로 기도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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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5-7절 “그리스도의 고난”은 두가지 의미하고 있습니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첫째. 하나님의 진노아래있는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5절)
둘째. 복음을 전하는 우리도 받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7절)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이고 유업을 받을 상속자이기 때문에 영광을 받기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는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으로 끝난다면 소망도 없고, 낙담하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낙담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 세상에서 성도에게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도 함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5절에 그리스도의 고난 뒤에 성도의 ‘위로’가 있는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것도 위로와 구원을 받게하려는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위로가 우리가운데 역사하셔서 고난을 견디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따르게 되면 그분이 주시는 구원과 축복뿐만 아니라,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고난과 핍박도 아울러 받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셨고, 심지어는 극악무도한 채찍질과 십자의 형틀에 고통을 당하셨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따른다면 우리는 이땅에서 환난이나 고난을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것입니다.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성도가 고난과 떼어놓고 생각할수 없는일임을 분명히 우리는 인식해야합니다.
바울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위로: 파라클레시스 : 초청하다. 곁으로 부르다 의미합니다.
낙심한 상태에있거나 고난가운데 있는 성도를 격력하고 용기를 주고, 그리고 건져내어 주신다는 것을 위로라고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견디고 버티는 것은 영광과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끝까지 버티고 견디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의 경주라고 부릅니다. 운동선수는 자신이 운동장에서 뛰면서 희망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고난주간 나도 함께 예수님의 고난을 참여한다는 상징적인 생각으로 동참할 때 성령님의 위로가
있을줄 믿습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을 반드시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오늘 드려지는 예배가운데 다 채워지지 못할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안에 단 한사람만이라도 예수님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남기고 살아가신다면 그 사람은 십자가앞에 서있는 신자일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언덕에 끌려가실 때 두 행악자들도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를 형틀에 서있다는 것은 사회에서 살인을 저질러거나, 큰 죄악을 저질렀을것입니다. 십자가는 그렇게 두죄인과 함께 예수님은 골고다언덕에 세워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상에서 첫말씀을 하십니다.
십자가위에 말씀하신 가상칠언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법정에서 죄 없으신 몸으로 사형언도를 받으십니다. 십자가밑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백성들은 서서 구경하고 있습니다. 관리들은 비웃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통으로 된 한 벌인 예수님의 옷을 벗겨서 옷을 가지고 제비를 뽑고 있습니다. 그러면 희롱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자신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계시는데 이 무지한 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채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웃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5절) 외치며 예수님을 능욕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첫 번째 말씀을 하시기 위하여 입을 여십니다.
눅23: 34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늘을 우러러 드리는 간절한 탄원의 기도는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용서를 구하는 사죄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첫 번째 말씀은 우리에게 평범한 기독교의 진리를 알게 해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떠난 인간에게있어서 죄사함을 받은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죄인이 용서를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첫 번째 희망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사함의 간구가 십자가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인이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수 있는 우리를 죄를 담당하시고 유일한 한 길은 “십자가”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해결할 문제 : 나를 비롯하여 믿지않는 영혼들을 위한 죄사함이 해결되어함.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는 눈물을 흘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죄사함을 받지 못한 이 세상에서 버려진 영혼들을 위하여 갈급한 마음이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여러분은 가슴이 무엇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한때는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나 감사해 눈물을 흘리면서 영원히 주님을 떠나지않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한 기억은 나십니까?
벧엘의 하나님을 만났던 감격은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한 마음의 언덕이 되었습니까? 싸늘한 시신처럼 식어 냉랭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생활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은 영적인 무감각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들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면 마땅히 죄사함을 받지 못한 영혼들에게 미칠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의 심판을 어떻게 주목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내 남편, 내아내, 내 사랑하는 자식들, 부모님들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냉냉한 가슴에 언제쯤 저 구원받지 영혼들을 향하여 눈물로 기도할수 있을까요? 언제쯤 십자가를 붙잡고 울면서 기도할수 있을까요? 그날이 빨리 오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십자가 밑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못박혀 죽으시는 예수그리스도, 그분의 몸에 떨어지고 있는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우리 영혼에 잠기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수 한 사람이 고백을 통하여 그와함께 낙원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2. 가상칠언 두 번째 말씀 : 네가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가 3개 있었습니다. 가운데는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하나씩 죄인들이 십자가에 달려있습니다. 두죄인들이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어느 한쪽에 죄수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죄수는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고 다른 죄수를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이 죄수는 아주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즉 “우리가 행한 것은 상당한 보응을 받는다 그러나 이 분은 행한 것이 옳지 않는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즉 우리는 죽을 죄를 지었지만 가운데 계신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인정합니다.
이 죄수는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죄수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해결해야할 가장 큰 문제 : 죽음이후의 구원의 문제
예수님은 버림 받은 이 영혼의 구원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의 강단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인생이 다만 이 세상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요 부활도 없고, 낙원도 없다면 주를 섬기는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불쌍할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우리가 이땅에서 고난을 견디고 인내할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바라고 고백하면서 위로를 받기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땅에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고, 한숨의 계곡에서 인내의 밤을 지낸다할지라도 우리는 견딜수 있는 것은 이땅이 우리의 본향이 아니고 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잠시후에 끝날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신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인생의 시간들을 무엇을 위하여 쓰시고 있습니까? 우린 언젠가는 잠시 후면 인생의 무대에는 휘장이 내리게 될것입니다. 아직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입니다” 오늘이 여러분의 기회이고, 마지막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속에서 아픔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 그곳을 갈수 있는 마지막 티켓을 가질수 있는 기회는 오늘이기 때문입니다..오늘 누구와 함께 낙원에 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 오늘 예수님을 영접하셔야 합니다. / 예수님을 진실로 믿어야 합니다.
가상칠언의 네 번째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5 45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성경에 제육시부터 온땅에 어두움이 제구시까지 계속됩니다. 제육시 정오 낮12시 / 제구시 :오후 3시 3시간동안 이 절규에서 어두움이 이땅에 진흑같이 흐리고 있었습니다. 하루중에 가장 밝은 시간에 이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엘리에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씀은 히브리어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뜻입니다. 예수님의 그 외침은 십자가상에서 주님이 당신이 극도의 고통으로 인한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엘리 엘리를 부르실때에 십자가 밑에 있는 죄인들은 예수님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이 무지한 사람들은 저 예수라는 사람이 십자가를 진다고 올라가더니 자기의 능력으로는 안되니까 구약의 엘리야를 부르는구나 그래, 어디 엘리야가 오나 보자. 우리가 한번 구경해 보자 “ 이 모습이 십자가밑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반응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짖음은 누구때문입니까? 십자가라는 끔찍한 저주가 바로 자기들 죄악 때문에 온줄을 세상은 아직도 모릅니다. 무지몽매한 자들입니다. 오늘 이들의 반응이 우리의 반응이 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진노의 잔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땅에 예수님의 절규의 목소리를 외면하셨을까? 그것은 “죄인인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주님이 버림을 받고, 고통을 당하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사랑하시지만 인류의 모든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단 한사람도 구원받지 못함이 없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의 절규의 소리에도 침묵하셨던것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희생의 제물으로 바치신것입니다.
우리가 죄가 아니면 주님은 버림을 받을 이유도 고통도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사53:6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위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해결해야할 가장 큰 문제 : 나를 위한 십자가의 사랑이 다시 회복되어야 함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의 말씀도 듣고, 고통의 소리를 듣고 계시면서도 아무런 반응도 갖지 않는다면 그분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참된 의미를 알지도 소유하지못한채 다른것에서 정신팔려 살게되면 그것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절규의 목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오직 자기자신만을 위해 기쁨과 안일함에 행복을 찾고 있고, 삶의 의미를 두고 쫓아가신다면 그분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골로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계신 것을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천국의 문앞에 설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상칠언의 여섯번째 말씀: 다 이루었다
요19: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말씀은 여섯 번째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다 이루신 것이 무엇입니까? 1.하나님의 진노를 만족케 한 십자가이고 2. 구약의 율법을 다 이루었습니다.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아래있는 죄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롬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방해하고 심하면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간관계속에서 무너지고 실패하고 한 이유는 우리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관계를 끊어버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단절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진노아래에서 해방되었던것입니다.
롬 8: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바울은 깊이있게 고백합니다.
- 우리가 해결해야할 가장 큰 문제 : 구원의 확신, 믿음의확신을 가지고 사시길 바람
죄와사망에 해방된 우리는 여기서 사랑과 회개가 필요합니다. /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은 죄인들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은 우리들도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앞에서 진실된 모습으로 서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보여주셨고,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크고 넓으신 사랑을잘 모릅니다. 자신이 고통의 십자가에서 내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다 이루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부르심에 외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행위를 보고 구원을 말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행위를 보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입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신후 진실로 믿는것입니다. 나의 구원자는 예수님이시고,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있는것도 오직 예수님입니다. 라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오늘 다시 예수님을 믿고 시작하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내마음대로 사는것에 주님앞에 회개해야합니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 해야합니다.
회개하시면 우린 죄사함을 받습니다. 주님은 그것까지 다 이루었습니다.
7. 가상칠언의 일곱번째 말씀: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눅23: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의 최후말씀을 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온 세상은 죄로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주가 이땅에 임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피조물이 탄식이 나옵니다. 하늘의 별도, 땅도 바다와 새들도 짐승과 풀포기와 예루살렘 거리에 널려진 돌맹이조차도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이제 새하늘과 새땅을 향한 여명이 밝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죄인들이 살아나고 죄인들이 살아나는것과 함께 이 세상도 하나님의 완전한 소망가운데 바라며 기다릴수 있게 되었던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위로하십니다. 갓난아기가 엄마품에 성장하듯이 우리역시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서 성장할 때 그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됩니다. 그분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앞에 섰던 믿음의 선배님들은 자신이 죄인중에 괴수임을 고백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예수님을 바라보았기에 천국의 소망을 기다리면서 살았고 또한 순교를 했습니다.
- 우리가 해결해야할 가장 큰 문제 : 내영혼을 주님께 의탁하는 삶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위하여 살고 예수님만 위하여 드리는 것이 되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 마지막에 어떻게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기대와 간절함으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오늘 앞을 내다볼수 없는 칠흑같이 상황가운데서도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내 영혼이 아버지께 의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은성교회 성도님! 이번주부터 고난주간입니다. 그 어떤 때보다 학생들은 미디어 금식, 인터넷이나 SNS. 유튜브를 줄이시길 바랍니다. 어른들은 좋아하는 것들을 줄이시고, 함께 고난에 참여하므로써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생각하는 한주간 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참된 고난을 참여하고난 후 부활의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시는 한주간이 되시길 원합니다.
먼훗날 우리 인생의 노을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우리를 오라고 부르시는 천국의 종 소리를 들어야 하는 그때가 올때에 우리의 입술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주님의 손에 부탁합니다”라고 말할수 있는 그날까지 주님앞에서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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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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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 2022.8.7 전도,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의 증표 | 채인기 | 2022.08.08 | 62 |
97 | 2022.7.31 : 준비, 기회. 깨어 있으라 | 채인기 | 2022.08.03 | 50 |
96 | 2022.7.24 마음의 죄를 죽이라 | 채인기 | 2022.07.26 | 58 |
95 | 20222.7.17 성도가 감당해야 할 해산의 수고 | 채인기 | 2022.07.19 | 52 |
94 | 2022.7.10 진리를 수호, 첫 사랑 회복 | 채인기 | 2022.07.12 | 56 |
93 | 2022.7.3 맥추절 하나님을 앎으로 감사가 나옵니다 | 채인기 | 2022.07.04 | 57 |
92 | 2022.6.26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로 사는 사람의 차이 | 채인기 | 2022.06.27 | 62 |
91 | 2022.6.19 성령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때 | 채인기 | 2022.06.19 | 49 |
90 | 2022.6.12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 | 채인기 | 2022.06.13 | 51 |
89 | 2022.6.5 같은말 같은마음 같은뜻 | 채인기 | 2022.06.05 | 58 |
88 | 2022.5.29 성령에 따라 사는 신자는 포기란 없다 | 채인기 | 2022.05.29 | 49 |
87 | 2022.5.22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 채인기 | 2022.05.22 | 49 |
86 | 2022.5.15 다윗 : 여쭤보는 자 | 채인기 | 2022.05.15 | 47 |
85 | 2022.5.8 네 부모님을 공경하라 | 채인기 | 2022.05.09 | 51 |
84 | 2022.5.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채인기 | 2022.05.03 | 53 |
83 | 2022.4.24 여호와를 앙망하는자 새힘을 얻는다 | 채인기 | 2022.04.25 | 48 |
82 | 2022.4.17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그가 살아나셨다 | 채인기 | 2022.04.17 | 50 |
» | 2022.4.10 십자가상에 말씀하신 일곱말씀 | 채인기 | 2022.04.11 | 46 |
80 | 2022.4.3 나는 무엇을 가까이 하는가? | 채인기 | 2022.04.07 | 54 |
79 | 2022.3.27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 채인기 | 2022.03.28 | 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