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14.
채인기 목사
성경: 시편 1편 1-6절
제목: 행복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의 특징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은 창세기를 읽다가 영감을 얻어 마취제를 발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우시듯, 심프슨은 환자를 잠재워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수술을 끝낼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1847년 마침내 심프슨은 클로로포픔이 안전한 마취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그는 여러 가지를 발견합니다. 마취제는 정말 획기적인 발견이었습니다. 많은 환자가 고통없이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프슨이 노년이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많은 발견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마취제라고 대답할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심프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아주 위대한 발견을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또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자신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의 행복을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정말 행복하게 살고싶다 이 땅을 떠날 때 행복한 소풍이었다고 큰 소리로 웃으면서 가고 싶다”것이 모든 사람의 공통된 소원일것입니다.
저는 “나는 자연이다”라는 프로를 종종 봅니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산으로 혼자 가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다 사연이있습니다. 크게 두가지입니다. 한 부류는 사람이 싫어서는 산으로 간사람, 또 부류는 자신의 몸이 좋지않아서 건강 때문에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산에서 살아서 행복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 그분에게서 행복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산으로 올라와서 혼자사니 행복하다는 것밖에 들릴지 않았습니다.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행복에 대한 바른 지식이 필요합니다.
참된 행복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속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의 행복에 대한 정답을 알고계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설계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행복을 주실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며, 행복의 길을 가르쳐 주려고 오신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내 안에 스며들어 존재하는 잘못된 행복에 관한 사고와 관점을 버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 8가지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십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이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이 말씀에서도 행복을 찾을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실패자를 낙오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패자라고 말하지않고 복된자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사람들은 부자가 성공했고,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 사람들은 많이 소유의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존재의 관점에서 행복을 말씀합니다. // 사람들은 외모에 관심을 두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봅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세상은 사람 중심이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내 안에 스며들어 존재하는 잘못된 행복에 관한 사고와 관점을 버려야 한다는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중심의 삶은 바로 행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행복의 원천이고 근원이 내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할 때 참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자연에서 여행에서 소유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예수님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이때부터 진짜 행복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말씀하신것처럼(마13:44). 행복을 예수님에게서 발견한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성경에 히브리어를 영어로 그리고 한국어 번역하는 부분에서 원어의 뜻을 전하는데 약할 수 있습니다. 1절 ‘복있는 사람은’ 원어적 의미는 “행복이 그 사람에게 있다 ”라는말씀입니다. 다시말해서 “오~ 참으로 얼마나 행복한가?” “그 사람이 행복이다” 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 아쉬레 하이쉬 라는 의미는 “똑바른 길로 나아가라” “곧바로 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한 말씀을 가지고 똑바로 걸어가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말씀대로 걸어가는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고 행복한 삶을 맛볼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제시한 길을 가지않는 사람이 악인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행복의 기준은 가느냐? 가지않느냐? 선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삶에서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을 세상이 말하는 소유 즉 많이 가진것에서 찾지 마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께 두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행복의 시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제시한 말씀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사람에게 행복이 있다는 것을 시편 1편 1절에서 시작합니다.
시편1편은 복있는사람과 악인을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1.2절 복있는 사람의 특징과 악한 사람의 특징을 대조시켜서 보여줍니다. 1.2절에서는 의인과 악한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대조하면서 말씀합니다. 1절 악인들의 특징은 악인들의 꾀를 따른다. 죄인들의 길에 선다. 오만한자들의 자리에 앉는다. 의인들의 특징은 2절에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3.4절에서 대조하는 것은 복있는 사람과 악인의 실상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형통한 삶이고, 악인들은 실상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는 것을 대조해줍니다
5.6절에서 대조하는 것은 악인들의 운명과 의인들의 운명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악인들의 운명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못하고, 악인들의 길에서 망한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것을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악인들은 3가지 특징이지만 의인인 복있는 사람은 단 한가지의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시편기자는 의인과 악인을 대조해서 이 말씀을 보여줄까요? 빛이 밝게 빛나는 효과를 보기위해서는 반드시 어둠이 캄캄해야 합니다. 밤이 깊을수록 빛은 밝게 빛납니다.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면서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복있는 사람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고,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참된 행복에 대해 의미를 모르게 되면 우리는 오해하고 착각할수 있게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수 있습니다. 2절에 오직 여호와를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라고했을 때 이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어떤 사람이 성경 100독을 하고, 기도를 하루에 4시간 이상씩하고, 성경 필사를 3독을 하게되면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할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절 말씀이 이 사람들이 신앙생활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성경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루에 기도를 3번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금식하고, 헌금생활을 누구보다 잘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신앙을 따라갈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외식하는자들아,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인간적으로 신앙적으로 볼 때 완벽한 사람인데 왜! 책망하겠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삶이 “형식과 외식”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그안에 “내용”인 예수그리스도가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형식에 치우쳐 있으니 인간에 보여줄때에는 이보다 더 완벽할수 없는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외식이라는 형식보다 내용이라는 진짜 신앙생활인 예수를 알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형식에 치우친 신자가 하루도 빠지지않고 기도하고, 성경을 날마다 묵상하고, 헌금생활도 잘하는데도 행복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신앙생활에 형식과 외식에 사람에게 보여주고자하는 착각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
행복을 찾아라! 성경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1.2절 의인과 악인들의 특징에 대해 말하는데 악인들의 특징은 3가지 의인들의 특징은 한가지를 말씀합니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우리가 바꾸어서 복있는 사람에 반대인 복없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습니다.
그러면 행복하지 않는 이유 첫째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1절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꾀란 국어사전에 자신의 닥친 문제의 해결이나 일의 진행을 위해 생각해 낸 교묘한 방법이나 제안을 꾀라고 합니다. 꾀는 지혜와 다릅니다. 지혜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기준이 되어 자기만 생각하지않고 남을 배려하는 기준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갈려고할 때 옳은 길로 가도록 유도하고 만드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없고 꾀만 있습니다. 지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옳은 것을 옳게 만들어가는 것에 능력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다른 사람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중심적 사람이 될수 없고, 하나님의 중심적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악인이 아닌 의인의 삶의 태도와 방식은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희 큰애와 둘째아이가 초등학교때 구몬학습지를 한적이 있습니다. 구몬선생님이 오셔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구몬 선생님이 숙제를 두아이에게 내 줍니다. 그리고 부모인 우리들도 가끔씩 잘하고 있는지 점검도했습니다.
저는 제아이들을 아주 성실하게 구몬을 잘 한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치 않다는 것을 고등학생이 될 때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구몬숙제가 너무 많아서 꾀를 썼는데 구몬학습지를 중간을 뜯어서 찍어가지고 변기통에 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약 휴지통에 버리면 부모가 알면 혼날까봐? 아무도 모르게 완전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꾀를 써서 변기통에 버렸서 물을 내려버리면 완전범죄가 되어 부모님이 모를것이라는 어린마음에 잔 꾀를 쓴것입니다.
꾀의 특징은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위해서 자기들이 너무나 힘들어서 쓴것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자기가 갖고싶어하는 것을 얻기위해 ,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 꾀입니다.
더 깊이 말하면 꾀를 부리는 사람은 ‘삶의 중심의 태도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적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두지않기 때문에 이 사람을 ‘악인’이라고 하고, 행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행복한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행복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중심적 삶을 살려고 애쓴는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어리석은 것같아도 묵묵히 인내하면서 세상이 주는 방식을 거부하고, 끝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묵상하고 적용할려고 씨름하면서 똑바로 걸어갈려고 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결과가 행복입니다.
나는 행복을 발견한 사람인가?
여러분의 행복한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행복을 발견했습니까? 아니면 “나는 행복히지 않는 것 같아?” “나는 불행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약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나는 꾀를 부르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 다시 말해서 내 중심적으로 무엇을 갖고 싶어서 그것을 쟁취하기위해서 나 중심적으로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옳은길로 갈수 있도록 태도와 방향을 가르쳐주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하나님 중심적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2. 행복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 두 번째는 죄인들의 길에 선다는 것입니다.
1.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길’이라는 것은 방향성을 나타냅니다. 어느 길을 가든지 반드시 방향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죄라는 의미는 “빗나간다” 화살을 쏠 때 과녁에서 빗나간 것을 죄라고 합니다. 삶의 방향과 길이 빗나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제시한 길을 가지않고 곁길로 가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죄인들에 길에 섰다는 것은 삶의 방향과 목적이 하나님이 없고 자신의 선택한 길을 가는 사람을 성경은 “악인”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유혹을 합니다. /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합니다.
“육신의 정욕”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은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인간의 본능을 키우는 행위입니다. 자꾸 욕구가 많아지게 만듭니다. 욕구가 자신을 지배하게 만든다. 세상은 계속해서 더 센 자극, 더 지나친 욕망 주머니를 던집니다 마지막에는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 그게 안목의 정욕이다.
“이생의 자랑”은 영향이 밖으로 까지 미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목적이다. 보란 듯이 산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웃을 분노케 하고, 이웃을 절망하게 만들면서 시기와 질투를 사람을 파괴시킵니다. 이것이 이생의 자랑입니다.
왜!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됩니까? 이 3가지가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중독에빠지게 하고, 시기와 질투를 통해 사람들을 파괴시키는 것을 하는사람이 악인입니다.,
3. 행복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 세 번째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습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한 무슨뜻일까? 입을 삐쭉거린다. 조롱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는데 입을 삐쭉거리고 조롱한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태도와 방식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가는 삶을 살라고 말하여도 비웃고 조롱한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오만한 자리에 앉은다는 것입니다. 앉는다는 것은 마음을 오만한자리에서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말씀을 따르지않습니다.
입을삐죽거리고, 조롱한다는 말은 왕하 18장에 이방나라의 앗수르왕 랍사게가 유다의 하나님을 말씀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히스기야왕의 나라에 쳐들어 왔습니다.
이때 랍사게가 하나님을 조롱하고 히스기야왕을 조롱하는 말을 합니다.
18: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지하라 함을 듣지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나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앗수르와의 신하 랍사게가 하는 말이 무슨말입니까? 히스기야왕이 백성들에게 절대로 이 나라는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나라에서 건져내실 것이다. 라는 왕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앗수르나라에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입을삐죽거린다. 조롱한다는 것은 랍사게처럼 하나님의 말씀하는 것을 믿지 못하게하고 자신들을 믿게 만드는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오만한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미혹당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살아보니 오히려 더 힘들고 지치게 한다는 것을 안 사람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진짜 진리이다 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련없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묵묵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제 목회를 하면서 크게 깨달은것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목회 초기 솔직히 제 힘대로 제 방식대로 제 열심히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 이룰수 있을것같은 확신이 들었습니다. 또 그렇게 열심을 내면 하나님이 도우실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 목회연수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결국은 나의 생각을 깨고, 나의 사고 방식을 깨고, 나의 모든 정통을 깨야만 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순리를 조금씩 배워나고 있습니다.
제가 내려놓음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은성교회를 더 분명한 방향과 목표를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준비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몸소 체득하면서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좋은 만남을 갖게 되었고, 교육과 훈련을 하게 되면서 목회의 방향과 목표를 재 정립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려고 할때에 하나님은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행복을 찾다! 의인을 특징에서 찾았다. 행복한 사람의 특징은 단 하나에서 답을 찾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2절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우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묵상이라는 것은 되새김질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계속 되새겨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따른 생각을 안한다는것입니다. 묵상하지 않으면 되새김질 하지않으면 자꾸 악인들의 생각을 하게 되고, 죄인들의 길에 설려고 하고, 오만한자들의 자리에 앉을려는 모습이 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그 늪에 빠지지 않을려고 계속 되새김질 한다는것입니다.
내가 기도하지않으면 내 생각이 앞서고,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사람의 생각으로 사로잡혀서 미워지고 분노가 나오고, 싫어지고 결국은 사람까지 죽일수 있는 마음까지 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않을려고 주야로 묵상한다는것입니다. 내가 나를 너무나 잘알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묵상을 통해 복된 하나님께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지않으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될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지않고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될수 없습니다. 행복한 삶에서 멀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는 사람은 차이가 있을까요? 다시말해서 악인들 즉 하나님이 제시한 말씀의 길로 가지않고 자기방식대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과 의인들 하나님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믿고 말씀을 주야로 마음에 새겨서 묵상하는 사람과는 인생을 살아가는 길에서 차이가 있는가 없는가를 말합니다. 성경은 실상도 다르고, 끝도 다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실상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고, 형통하게 되는 행복한 삶을 산다는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실상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않는 것은 생명수의 물이 나무에게 계속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말씀을 마음의 뿌리에 내렸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계속 공급을 받기 때문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라는 말씀은 말씀에 뿌리를 두지 않기 때문에 바람에 날린 겨처럼 바람이 불면 날라가버린다는 것입니다. 허망한 삶 외로운 삶을 사는것입니다.
악인들은 결국 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생의 길로 인도하시지 않기 때문에 보호도 받지못하고 인도하심도 받지 못하고 모든 인생의 염려와 근심과 불안을 혼자 안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힘든 삶입니다.
성도님! 행복을 발견한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밖에 없다고 사는 사람입니다. 행복의 시작과끝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는것입니다. 예수님안에서 참된 행복을 찾는자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멀리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누리는 삶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행복의 시작은 감사이고, 행복의 끝은 은혜입니다. 작음것에 감사하시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은혜라고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