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8.
채인기 목사
성경 : 마가복음 14:1-9절
제목 : 거룩한 신자: ’허비‘라고 말하는 사람, ’헌신으로 보답‘하는 사람
서울에 랜드마크라고 할수 있는 두 개의 큰 건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63빌딩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123층의 롯데타워입니다.
저는 63빌딩을 지을 때 지하는 어떻게 될까를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63빌딩 지하는 3층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123층의 롯데타워의 지하는 지하 6층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하 6층이라고 해서 아파트 1층 2층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건물을 높이 지을수록 땅도 더 깊이 파야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신자가 성숙할수록 하나님과 만남의 깊이는 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깊은 바다로 가야 큰 고기를 잡듯이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더 깊어지고 깊어져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견고한 주님의 진실한 신자가 되었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6:56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6:53절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의 삶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인자의 살과 피는 무엇을 의미하냐면 – 성만찬의 두 요소인 살과 피를 의미하는데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것을 말씀합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 하나됨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지않으면 우리에게는 생명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의 지식이나 윤리나 도덕적인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너희가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에 달려있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순간 그 말씀은 우리안에서 역사합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이 살아있고 힘과 능력이 있어서 양쪽의 어떤 칼보다 더 날카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속에 들어가게 되면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생명이 꿈틀거린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힘있고 활력이 있으니까? 희망이 보이고 소망이 보이고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꿈꾸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니까? 사랑하게 되고, 용서할수 없을것같은 사람도 용서하겠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왜죠?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면 생명이 살아움직이니까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기쁨을 받고 싶어서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나가게 됩니다 어느 날부터 이분이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변화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뭔지 모르지만 인격이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행동도 ,말도, 생각하는것도 변화된 것을 알게 됩니다. 변화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은 그분이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예수님을 만난 신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12제자들도 있었고, 많은 군중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군중들에게 내가 전하는 말은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중에 나를 믿지 않는자가 있을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요6:64.65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고 떠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요6:67. 예수께서 열두제자에게 이르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필요가 채워지니까 예수님을 떠납니다.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예수님께 있는데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중 한사람을 그를 주목하여 말씀합니다.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예수님을 팔 사람으로 지목을 받은 가룟유다는 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지 못했을까요?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 온전한 헌신을 하지 못했을까요? 온전한 헌신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가룟유다를 나무라하고 잘못된 제자라고 지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룟유다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될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떠나시겠습니까’? 라고 질문하면 ‘아니요’ 라고 대답할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죄악성이 있었서 얼마든지 자기의 목적과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때는 예수님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내몸을 드려 헌신하겠다는 고백은 찢어진 고무신처럼 얼마든지 쉽게 버릴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늘 새로운 마음으로 날마다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본문은 두 부류의 사람을 봅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께 자신에게서 가장 비싼 나드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아낌없이 부은 한 여인 또 다른 한 사람은 여인의 행위를 보고 화를 내면서 계산적인 방법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계산적인 사람 : 배신의 아이콘 가룟 유다
한 여인이 예수님께 매우 값진 향유 순전한 나드를 머리에 붓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는 제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가룟유다라고 표현합니다. 제자들은 여인의 행동을 보면서 영적으로 무지하여 제자들은 예수의 머리에 부어진 향유가 아무런 쓸모도 없이 아깝게 버려진 것이라고 판단했을 정도로 세속적 가치관에 젖어 있었어 여인의 행위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여인을 보고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막14:4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유다는 왜!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300데라니온에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라고 말을 하면서 여자를 향하여 흥분하면서 화를 냅니다
왜! 이렇게 흥분하면서 예수님앞에서 화를 내면서 말합니까?
제자들과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드린 향유 옥합 나드를 허비로 생각한 것이다. 유다의 말이 그럴싸하죠! 어떻게 보면 가장 현명하게 말한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는 보이지않는 가룟유다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것입니다. 유다는 마리아를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을 생각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에안에는 유다의 철저하게 계산된 목적과 유익을 위해 말한것입니다.
나드 향유를 300데나리온이라고 계산할정도로 그는 돈에 대한 굉장히 집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요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사도 요한이 가룟유다를 어떻게 표현합니까? 가난한자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그는 도둑놈이다.
그는 자신이 제자들의 돈을 맡고있는 사람으로써 돈궤를 훔쳐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허비이고, 예수님께로 드리는 물질도 허비라고 생각하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든 것들이 허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이 마음에 없는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온통 그의 생각과 마음은 무엇을 가득찼습니까? 세속화된 자아상입니다
저에게는 전도할 때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주는 약간의 울렁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전도훈련을 시키기 시작합니다. 3년간 코로나로 쉬었던 전도를 너희 노회소속된 교회 목사님 일곱분이 뜻을 모아 매주 금요일 낮에는 목사님들 일곱분과 함께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주변에 전도를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둘씩 짝지어 하당에 있는 교회에 가서 주변인 장미의 거리, 우성아파트 등 주위를 단니면서 전도지를 나누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전도 훈련시키기 위해서 가장 귀한 시간을 드려 옥합을깨트린 심정으로 참여하면서 적극적으로 전했습니다. 반응은 좋았습니다. 전하는데 담대하게 되고, 예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지 한 장을 주면서 교회나가시냐고 물을때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데 그런데 얼마나 마음이 완악하고 양심에 화인맞으면 3년이나 예수님과 함께 자고 식사하고 전도하러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그가 예수님을 위해 하는 모든 것이 허비로 생각할까? 무엇이 가룟유다를 배반의 아이콘으로
계산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저는 가룟유다에게는 다른 제자들과 다른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헌신이란 의미는 ‘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과 마음을 예수님께 바치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것입니다. 이 차이가 한 여인의 마리아와 가룟 유다의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해서 무엇이라고 평가합니까?
9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복음이 전파되는 세상의 모든곳에 이 마리아의 행동을 기억하고 말을 할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룟유다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평가합니까?
마26:24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태어나지 말아야 존재가 바로 가룟유다였습니다. 여러분! 이 엇갈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삶을 살게했을까요?
우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생활이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종교행위로만 그친다면 언젠가는 우리는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주일날 정해진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시간의 허비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허비라는 것은 쓸데없는 일에 쓰여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을 허비라고 합니다 주를 위해 드리는 시간은 허비가 아닙니다.
천국문에 이르게하는 투자입니다. 아주 값진 구원의 투자의 시간입니다. 자신의 일상에서 구별하여 예배하는 것,
전도하는 것, 말씀전하는 것, 성도들과 시간을 내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교제의 시간이 허비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예수님을 위한 투자는 결코 무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 헌신하고 투자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창고에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영광의 관을 얻게 될것입니다
벧전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베드로는 주님오실 때 영광의 관을 얻을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님! 누가 영광의 관을 받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드렸던 시간을 아낌없이 드렸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헌신했던 많은 사람들중에 예수님께 이 여인을 평가하는데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여자가 행한일을 말할것이고 기억할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여인은 마르다 동생 마리아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헌신도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버린받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신 예수님께 찾아온 한 여자 마리아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있는 시몬이라는 나병환자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불결하고 부정한 사람의 집에 찾아오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의 집에 머물면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한 여자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로 비싼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드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한 여인에게 주목합니다. 이 여인은 마태복음에서는 한 여인으로 소개하고, 요한복음에서는 나사로의 누이로서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로 소개합니다.
이 여인은 왜! 가장 값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를 예수님께 드렸을까? 요11장은 아빠처럼 의지했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으니 얼마나 슬퍼했겠습니까? 슬픔뿐인 자매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오라버니 나사로가 예수님 때문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가장 값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향유옥합을 깨트려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여인의 마리아에서 보여주는 헌신의 특징 :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예수님께 헌신합니다
매우 값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를 예수님께 부어 드리는 여인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녀가 이 향유 값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팔거나 엄청난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이처럼 귀한 향유를 어떻게 선뜻 주께 드릴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 자신이 주께 받은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자기 가정과 자기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주님께 헌신적으로 봉사하게 마련입니다.
순전한 나드 향유의 값은 300데나리온입니다. 그 당신 노동자의 하루 품값이 1데나리온인 것을 생각한다면 300데나리온은 1년을 벌어야 살수 있는 아주 큰돈입니다. 이 향유는 히말라야와 인도의 산지에서 자생하는 감송향 뿌리에서 재취하는 고급향유인데 아낌없이 사랑하는 예수님께 드린 이 여인의 행동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일도 말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의 헌신의 첫 번째는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를 알았기에 값없이 아낌없이 예수님께 드릴수 있었습니다.
은혜를 알았기 때문에 헌신적으로 드릴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혜를 깨달으면 합니다. 어떤 은혜일까요? 한 여인인 마리아는 죽은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리신것에 감사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고 부르심으로 구원을 받았다는것에 감사요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엠 2 :8).라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둘째는 이렇게 부족한데도 결코 떠나지않으시고 언제나 나를 보호하시고 함께 해주신것에 은혜입니다.
셋째는 육신이 비록 약하여 몸이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불편한 몸으로 주님께 나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면서 찬양할수 있고 말씀을 들을수 있다는것에 은혜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지나온 세월을 지켜주신 것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마음에서 삶이 팍팍하게 힘들게 느껴지고 여겨진것뿐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약간만 바꾸시면 고통스러운 시간이 은혜로 바꾸어질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삶의 무게는 환경만 다를뿐 똑같습니다.
한 여인의 마리아에서 보여주는 헌신의 특징 :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기로 예수님께 헌신합니다
8.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해 물질인 향유 옥합 나드뿐만 아니라 여인의 마음까지도 함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 자신에게 힘을 다하여 향유를 부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힘을 다하여“ 라는 의미는 마리아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향하여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질과 마음의 헌신이 예수님을 향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12:3 마라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가 힘을 다하여 예수님께 향유를 부을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값비싼 향유 나드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을수 있을까요? 그것은 끝까지 예수님을 버리지 마세요. 꼭 붙잡고 놓치마세요. 우리는 거룩해야할 내 마음의 밭을 세상것에 뺏겨서 예수님을 자꾸 버립니다. 우리는 가장 힘있고 능력있고 고귀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써먹지도 않고 자꾸 버립니다.
이번주 수요일날 벧엘노인복지센타에 다니시는 서장로님이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이분은 중견기업에 상무이사로 26년을 근무하시고 은퇴하셨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꽃동산교회라고 한국에 알아주는 교회 장로로 계시다가 은퇴하시고 목포에 내려오셨습니다. 이분은 개척교회를 많이 섬기셨고, 세웠다고 합니다.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이분에게 많은 물질의 복을 주셨고, 말련에는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이분이 청계에서 소를 키웠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서울과 목포에 있고 교회에 나갑니다.
서장로님에게서 문제가 무엇이냐면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이 자신을 채워주지 않는다는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 한다는것입니다. 청계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말씀에 은혜를 받지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서 설교를 하러 매주 수요일마다 가서전하는데 부족한 저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있다는것입니다.
장로님의 말씀이 교회를 옮기고 싶어도 정 때문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채워주지 못하니까? 영적으로 채워주지 못하니까? 너무나 힘들다고 말씀합니다. 서장로님은 우선 수요일날 나와서 수요예배를 드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변치않도록 계속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텅빈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줄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도님! 헌신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교회에서 봉사를 해도, 직장에서 일을 해도, 가정에서도 어디에서도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드러난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찼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공급하신 힘으로 살아간다는것입니다. 헌신하는 사람들의 기본 자세를 제가 생각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두고 살고 있는가? 나는 주님께 무엇을 드리고 싶어하는가?
2. 나는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기위해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예배, 성도와 교제, 기도시간, 전도, 성경공부등
3. 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4.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가?
5. 불신자들 가운데서 ’나‘라는 존재는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는가? 찐 그리스도인가? 가면을 쓴 그리스도인가?
6. 나는 물질도 내 마음도 온전히 주님께 드려지고 있는가?
나는 헌신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진짜 헌신한 사람은 관계가 ’자발적‘입니다. 허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예수님이 기뻐하신일에 자발적으로 드러냅니다. 교회봉사도 섬기는것도,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그러나 가짜 헌신자는 관계가 ’계산적‘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두지 않습니다.
교회는 연약한 사람들이 모였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사랑으로 치유하시고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 치유되었습니다. 맹인도, 귀신들린자도, 앉은뱅이도, 나병환자도, 중풍병자도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버려버렸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치유하시고 회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헌신을 보시고 칭친하십니다.
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의 헌신의 행동이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현장마다 전하게 될것이고 이 여인을 기억할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행위가 모든 사람들에게 간증이 될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은성교회 성도님들이 마리아의 헌신된 행위를 통하여 삶의 간증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예수님을 드러낼 때 자녀들이 변화되고, 주변사람들이 변화되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너희들도 예수님을 믿으면 이렇게 된단다 라고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의 헌신된 모습, 섬기는 모습을보면서 예수 믿는 맛을 알겠다고 소문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잊지마세요!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헌신했던 모든 시간은 허비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귀하고 값진 시간을 투자한 것입니다. 두 번 다시 오지않을 귀한 시간입니다. 마리아는 은혜를 알았기 때문에 헌신했고, 가룟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시간도 허비, 예수님께 드린 것도 허비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버렸습니다.
성도님! 앞으로 예수님께 드려야할 시간을 헌신할려고 준비하며 사시겠습니까? 마리아가 가장 귀한 향유옥합 나드를 예수님께 가지고 와서 깨서 예수님께 부은것처럼 이 한주간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