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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3.12.17.

채인기 목사

 

성경본문 : 사도행전 20:21-24

제목: 회개와 믿음이 사라진 신자 (회심)

 

어느 목사님이 지방의 교회의 초청을 받아 가게되었습니다. 굉장히 큰 교회였습니다. 목사님을 초청했던 그 교회 부목사님이 자신이 섬기는교회가 얼마나 급속히 성장하고 그 도시에서 얼마나 큰 주목을 받고 있는지를 열심히 자랑하더랍니다 목사님은 부목사에게 당신이 맡고 있는 교구에 몇 명의 성도가 있냐고 물으니까? 80명쯤 된다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부목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성도중에 몇 명이나 구원받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습니다. 이때 부목사가 자신의 양심으로 20-30%만이 구원받을 것 같다고 말을하더랍니다

이때 초청목사님이 부목사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맡고 있는 양떼 중 20-30%만이 구원받았다고 하면 나머지는 무엇입니까? 나머지는 구원받지못해 천국에 이르지 못한 버린 사람들입니까? 그런데 제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부목사님에게 양떼들의 회심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도록 정중히 충고했답니다.

우리가 자랑해야할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크기와 숫자일까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숫자일까요? 아닙니다.

진짜 자랑해것은 한영혼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교회와 성도가 있음을 자랑하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의 눈물의 기도가 절실히 필요때입니다 양떼를 지키고 양육하는 목사인 제가 설교의 강단에서 주님의 피묻은 십자가 자랑 외에는 그 어떤것도 자랑치 않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은 한국교회와 성도들 저를 비롯하여 여기에 계신 성도님들이 아직도 주님께로 돌아오지않는 가족들, 자녀들, 지인들의 영혼들을 가슴아파하며 애끓는 심정으로 눈물을 잃어버린것에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개혁파 정통주의자였던 청교도 존 오웬 목사님의 충고는 목회의 본질은 죄인들이 회심에 이르게 하고, 그 회심으 은혜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한주간 회심이라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온통 제 머릿속에서는 회심 즉 회개와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기위해 계속 생각으로 묵상했습니다. 여러권의 책과 영상을 들을 때 성령께서 저에게 새벽마다 은혜를 주셔서 회심을 묵상할때마다 눈물을 주셨고, 저에게 맡겨진 영혼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이 영혼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지 못한다면 어떨까? 날마다 말씀도 읽고, 보고, 기도도 몇시간씩하고, 이런 삶을 살고 있지만 과연 구원받을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 모습읇 보면서 율법적인 회개가 아니라, 겉치레만 하는 회개가 아니라, 심령 깊숙한곳에서 진심으로 자기의 죄를 탄식하고 예수님밖에 없다고 믿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주님! 저를 비롯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회개와 믿음을 통해 눈물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설교가 시간을 주어진것에 버려진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가슴에 아련한 기억으로마 남아 자신이 하나님앞에 나와 서있는 거룩한 신자가 되고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리를 아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안에 주님의 피 값으로 세워 이루신 십자가가 없는 사랑은 헛된것임을 알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알고 있는 지식의 수준으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그리스도가 마음에 와 닿습니까?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믿어지십니까? 그리고 나를 위해 죽으신 큰 사랑에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적이 있으십니까? 나의 더러운 죄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하고 이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싶다는 간절하게 회개를 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이 아니면 구원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우리는 반드시 대답할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십자가앞에 서야할 죄인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바울은 자신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신자는 자신안에 있는 욕심과 탐욕을 십자가에 못박야한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날마다 죽어야합니까? 우리안에있는 자아입니다. 인간의 본성안에는 오래된 묵은 땅이 있습니다. 이 묵은 마음의 땅을 기경할려고 하지않습니다. 오래되어 굳어버린 내 마음의 밭을 갈아엎을려고 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은 갈아엎으지 않으면서 자꾸 외적인것만 꾸미고 바꾸고 치장하고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는 것입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잘 만들어진 근육도 운동을 하지않고 시간이 지나면 운동하기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인간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생의 문제가 마6:31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입니다. 이것을 갖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해답을 찾느라 평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3가지는 인간이 해결해야할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잘못은 그들이 육신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돌보는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관심과 염려로 육신에 마음을 빼앗기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이 원래 있어야 할 위치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만든다는데 있는것입니다.

가꾸어야할 내 마음의 밭은 영혼입니다. 내 영혼이 성령에 다스림을 받지않고 병들어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영적 다운,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신앙도 갈망도 모든 것이 싫증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분은 이것을 영적 번아웃이라고 합니다.

가꾸지않는 내 마음의 밭은 잡초로 무성하게 될것입니다. 잡초가 무성하면 엉겅퀴나 가시와 찔레나무로 덮어버리게 될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몸과 마음을 경작하지않으면 사탄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마음과 몸을 경작하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시 굳어져버리고 오래된 묵은 땅 내마음을 기경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기경하는 방법과 도구는 단 하나 회개와 믿음입니다. 두단어를 하나로 합쳐서 회심이라고 합니다.

 

회개와 믿음을 복음으로 전했다. (회심)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도하는데 전파한내용이 두가지였음을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둘째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을 합쳐서 회심이라고 합니다. 좀더 정확하게 의미를 말한다면

회심이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거룩한 하나님앞에서 심령 깊숙한곳에 깊이 깨닫고,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는것이 회개이고, 나의 죄를 사하시고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며 예수님을 온마음 다하여 믿는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회심이라고 말합니다. 회심의 기초에는 거듭남입니다. 거듭남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죽어있던 나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입니다.

회심(Conversion)은 헬/에피스트로페 즉 삶을 돌이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안에 있는 지성,감정,의지가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회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평생동안 진실한 신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구원에 이르도록 회심할뿐 아니라 회개와 믿음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이루어져가야합니다. 우리안에 죄에 대한 회개가 나타나는 반응이 무엇일까요?

조나단 에드워즈목사님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크게 두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중심적 사고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회개로 나타나는 반응 첫째. 죄에 대한 민감한 반응입니다. 즉 회개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전에 몰랐던 자신안에 있는 죄들이 보여지게되고 그 죄가 미워지게 되면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육신은 그대로일지라도 영혼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혼이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육신은 거룩한 반응을 할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마음안에 있는 죄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7: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후 보여진 것이 바로 죄아래 있는 자신, 죄에 종노릇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는 겄입니다. 죄 아래에 팔려서 선을 행하고 싶지만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하는 자신을 보게된것입니다. 행하는 것은 내 몸이지만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자신안에있는 죄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죄는 악을저지르게 하는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깨닫습니다. 누가 이 사망의 법에서 죄의 법에서 건져낼 사람이 누구일까? 탄식합니다. 오직 주님밖에 없다고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7: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모든 사람의 마음은 곤고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들은 다 사망의 그늘아래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사합니다. 이 사망의 법, 죄아래에서 하나님께 심판받아야하는 자신을 건져내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역시 감사해야하는것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고 있다는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회개할 때 나타나는 둘째 반응은 자신이 인격적인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인 두 마음이 싸움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난 후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지적인 요소 또 죄를 범할 때 자신안에 마음이 슬퍼하는 감정인 요소 그리고 죄를 짓고 난 다음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은 의지적인 요소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에서 도덕적인 변화가 뒤따르게 됩니다.

! 죄를 미워할까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위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자신이 지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바로 자기를 용서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 때문에 회개하며 죄를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죄를 멀리하고 죄를 짓더라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서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이번 김장을 할때에 식구들이 모였는데 불신 남편이 믿는아내를 인정하더라는것입니다. 예수님를 믿으면서 너무나 많이 변했다고 식구들에게 자랑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면 인격적인 반응이 나타납니다.

 

성도님! 우리의 영혼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나를 위해 죽으신 그 귀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느껴지십니까? 자신의 죄에대해 무감각하여 이것이 죄인지 모른채 살아가고 있다면 진심어린 눈물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메말라 버린 자신의 영혼을 보면서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자신을 보면서 회개해야합니다. 성령이 계속적으로 자신에게 말씀하고 있는데도 귀로 막고 마음이 닫아버려 영적맹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보면서 회개야합니다.

하나님! 저는 왜! 진실한 회개를 하지 못합니까? 하는 탄식의 기도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주님의 여러분의 마음을 만지심이 느껴질것입니다. 눈물이 없으면 상한 마음을 치유받을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영혼인지 아십니까? 하루하루 상한 갈대의 연약함으로 그리고 꺼져가는 등불처럼 연기를 내며, 그 심지를 꺽지않고 끄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긍휼을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절감합니다.

 

바울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믿음이 여러 가지 정의를 내릴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끝까지 쳐다본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쳐다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쳐다 본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쳐다본다는 것입니. 쳐다보는것으로만 부족합니다. 믿음은 절대 의존적 행위가 따라야합니다. 즉 예수님만 의지하는 행위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조차도 아까워하지 않고 주님이 부르신 사명을 위해 예루살렘 한곳을 쳐다보고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20: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환난과 고통과 시련이 자신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위협이 되는 생명조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련 시련이 온줄 알았습니다. 제자들도 빌립의 딸들도 예루살렘으로 가지말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 갑니까? 사명 즉 복음을 증거해야하는 사명 때문에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가는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에게 준 사명 때문에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가는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구원에 관한 예수님의 선언을 말씀합니다.

3: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들려주신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민수기21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호르산에서 홍해를 돌아 에돔땅으로 가는 길을 하나님게서 가르쳐주셨는데 그 여정이 매우 험난해서 이 스라엘 백성들이 불평을하고, 원망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셔서 불 뱀을 보내셨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양에서 모두 죽게 된 상황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는데 놋 뱀을 만들어 장대 끝에 달아서 높이 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놋뱀을 바라보는자는 산다는것입니다.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뱀이 물려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 시대를 비롯해서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죽어가는 백성들을 나타냅니다. 또한 장대에 매달려서 높이 들린 뱀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9절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보시고 예수님은 쳐다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 그분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까요? 여러분이 지금 불 뱀에 물렸습니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독이 퍼져 몸이 굳어져가고 움직일수 없습니다. 죽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동자는 움직일수 있습니다. 마지막 힘을 내서 고개를 돌려 놋뱀이 있는 장대를 향하여 눈을 맞추어야합니다.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여러분이 살려고 고개를 비틀어서 장대위에 있는 놋뱀 즉 십자가위에 달리신 예수님께 눈을 맞출려고 간절한 눈빛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믿음은 바로 그것입니다. 간절한 눈빛으로 예수님을 보는것입니다. 그리고 보지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몸을 비트는 절대적 의존하는 행위을 뒤따르게 됩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 산다는 믿음말입니다.

이것이 회심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그것은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영리를 전하면서 마지막 영접기도를 하는데 마음에 없는 기도를 따라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기독교 종교는 절대로 값싼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여러분들의 구원을 위해 죽으신 것은 너무나 귀하고 고귀한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하는 구원의 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사셨으며, 그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이시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을 얻을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내 마음대로 살고, 내 뜻과 목적대로 살아왔다면 예수님을 진실로 만나 신자는 자신의 돌아보고 돌이킵니다. 이것이 회심입니다. 예전에 삶을 살고 싶지않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고, 에전에 죄성가운데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마음을 회개하면서 다시 삶을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는 모습과 행위가 나타나는 신자가 바로 회심했다는 것입니다.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바울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거룩한 하나님앞에서 깊이 깨닫고, 회개하고,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며 예수님을 온마음 다하여 믿는 것을 한마디로 회심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님! 끝까지 여러분의 평생의 삶에서 나의 구원자되신 예수님을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불뱀을 물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볼때에 우리는 삽니다. 그런 간절한 눈빛과 예수님밖에 구원이 없다는 절대의존적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 말씀의 사실이 이미 구약에 이사야를 통해 예언되었고, 신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성취되었다 사실입니다.

죄된 나의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가운데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실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사명을 잃어버린채 갈릴릴로 가서 어부생활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셔서 갈릴리에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자신의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육적인 고정관념으로는 이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비로소 그들은 2가지 사실을 말할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죽음이 예수님 자신의 죄로 인한 저주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것이라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시라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미 예언된것이고 성경에 약속된 것임을 말씀하셨고, 그 일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매달아서 죽였습니다.

신명기 21:22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유대인들에게서 수치스러움과 잔인한 죽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무 십자가에 달려죽는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죽은 사람들은 사형수, 강도, 노예등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무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12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예수님이 왜!

나무 십자가에 달려죽으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것입니다.

그런데 제3일만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확신할수 있었습니. 제자들은 확신할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다. 다시말해서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에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또 다시 의문이 들었을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왜! 예수님이 죽으셨을까 하는 의문이 풀어졌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로 죽지않았다면 죄가 없으신분이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을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의 사역때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자들은 깨달은 것은 죄없으신 분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셔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신 제물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나의 죄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기에 주님은 영생의 길을 여셨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무지한 죄 때문에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은 제자들과 사도 바울에게 다시 새롭게 했습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예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실수 있는 구원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고백합니다. 4:12 다른이로써는 구원을 받을수 없나니 천하 사람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인간은 예수님을 가장 치욕스러운 방법으로 나무 십자가에 달려죽였지만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위에 올려놓으십니다. 2:8 사람으로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베드로와 사도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더러운 죄로는 구원받을수 없다. 그냥 종교생활만 하는 사람은 구원받을수 없다.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사람은 구원받을수 없다. 회개와믿음이 없이 회심하지 않는 영혼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진실한 신자들은 예수님밖에 보이지 않는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내 몸과 영혼은 주님의 것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여러분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2:2내가 너희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피값으로 여러분을 구원하시기에 대신 죽으신 대속의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피값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산것입니다. 즉 대신 죽으신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힌것외에는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은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결코 싼값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내 몸을 함부로 한 것을 회개해야합니다. 내 육신이 거룩하지 못한것에 쓰고있는것에 회개해야 합니다.

저는 저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훈육한다는 이유로 셋아이를 자주 화를 내거나 때렸습니다. 그들은 아빠라는 존재가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을것입니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엄마가 나가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을 훈육할 때 참 엄하게 했던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했을때입니다.

어느날 제가 밖에서 들어오는데 제 큰 딸이 동생들에게 화를 내면서 말을 하는데 제 목소리와 똑같이 화를 내면서 동생을 잡는것이었습니다. 저는 들어오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아이의 모습이 아빠의 모습이었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충격받은 사실을 말하고 셋아이에게 모여놓고 말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빠가 화를 내지 않고 너희들을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목회를 하게되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않고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기도해주면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권면하고 도와주는 아빠가 되어줄려고 했습니다. 물론 학교 성적도 중요하지만 저희 부부는 매일성경 QT를 강조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이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이 약속은 제가 생각할때에는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기도하는 내용중 하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 회심했습니까? 회심한 사람은 삶의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 변화는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그리고 일가운데서도 철저히 자신의 죄를 하나님앞에 고백하고, 오직 주님밖에 구원자가 없음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회심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마음의 변화,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 회심해야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이땅에서 세우시고자 했던 것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이땅이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들이 되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기쁘시게 해드리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회개하지 않으면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우리가 믿는 구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가면 그곳에는 환난과 박해뿐 아니라 목숨까지 위협을 당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을 갑니다. 사명 때문입니다.

복음을 증거해야할 사명말입니다. 그는 주님만 보고 갑니다.

 

여러분! 삶에서 죄를 미워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구원자이신 예수님밖에 없음을 늘 고백하면서 십자가위에 달리신 에수님을 바라보면서 다시 영혼이 살아나는 거룩한 신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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