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6
요한복음 10장 7-18절
제목: 목자의 심정을 가진 자
어느 젊은 목사가 성 어거스틴에게 다급한 편지를 썼습니다.
이 젊은 목사님은 자신이 지금 굉장한 어려운 처이이고, 죽을수 있는 처지임을 편지로 썼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모르겠으니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 목사님은 편지에 ” 제가 맡고 있는 목회지에 고트족이라는 족속이 침입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그냥 머물러 있으면 예수를 반대하는 고트족은 분명 목사인 절 죽일것이 뻔합니다.
그러니 제가 차라리 안전한 곳으로 멀리 피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어거스틴은 편지를 읽은 후 즉시 젊은 목사에게 답장을 띄웠습니다.
“ 목자는 그의 양을 떠날 권리가 없다네. 목자는 항상 양과 함께 하며,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린다네.
자네는 목자가 아니었나?” 이는 진정한 선한 목자가 어떠한 성품과 인격을 가져야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는 선한목자와 삯군목자를 말씀하십니다.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특별히 교회에 중직을 맡고 있는 여러분은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내게 맡겨진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돌보며 섬기고 있습니까?
선한목자이신 예수님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영적 맹인으로 그들은 이 백성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며 진리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삯군 목자로서 절도자이고 강도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선한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목자는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한목자이신 에수님과 삯군 목자인 종교지도자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1. 천국의 문을 들어가느냐? 천국의 문을 닫느냐는 것입니다.
천국의 문을 닫는자들 :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칼빈은 양의 우리라는 말씀을 오늘날 “교회”나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도래하신 “하나님의 나라”로 보았습니다
삯군 목자들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을 교회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강도요 절도자로써 양들을 헤치고 진리를 왜곡하여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문을 들어가도록 선한 목자 :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양들을 안전한 문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선한 목자들입니다. 선한 목자는 천국의 문을 들어가도록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안전한 문으로 들어갈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살아가고 있느냐입니다. 내게 맡겨진 양들을 구원의 문으로 인도하고 그 길만 참된 길이요 진리라고 전하고 있는지, 또 나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을 지키는 목자의 심정은 푸른풀밭에 놀고 있던 양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저녁이 되면 양의 문으로 들어갈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입니다. 그는 양에게 눈을 뗄수 없수없습니다. 선한목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돌보는 일에 최우선을 둡니다.
2. 선한목자와 삯군목자의 차이 두 번째 :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냐? 양을 돌보지 않고 도망가느냐는 것입니다.
삯군 목자는 10: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삯군 목자는 자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없습니다. 양을 잃어버려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양을 방심하게 놔두므로써 양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무서운 맹수들에게 잡혀 먹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삯군목자는 양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양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위험이 있을 때 도망가버립니다.
반대로 선한 목자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선한목자는 양들을 지키기 위하여 무서운 맹수와 맞서 싸우며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오셔서 죄많은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탄의 권세와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그리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맛보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바리새인들, 서기관, 대제사장들은 자신들의 배만 부르기위해 백성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씌우고, 자신들에게 맡겨진 의무는 행치않는 악한 목자였습니다.
우리가 양떼들을 돌아보아야 할 신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땅에 사는 죄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못한채 신앙을 가지게 되면 주님께서 이땅에서 자신의 피값으로 세우신 교회의 본질과 성도들이 해야할 사명을 잃어버리게 된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이 내게 맡기신 부름에 상을 포기한다면 다시말해서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에 포기한다면 어미 닭에서 떨어져 나온 병아리들이 독수리나 솔개에 낚아채여 죽음을 맞이하는것처럼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잠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에 소홀히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문제가 될 때에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끼리만 좋아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발짝만 다가가서 그들에게 전도지 한 장이라도 준다면 우리는 죄악의 감옥에 갇혀있다면 감옥의 문을 열어줄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말이나 전도지 한자의 극히 작은것으로도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낼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적도 맞설수 없는 말의 지혜와 능력을 현장에서 주실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서 많은 의무를 수행할때에 이 일이 누구로부터 온것인가를 생각할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불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요나선지자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과 사명에 불복하여 자신의 길을 갈때에 하나님이 세우신 뜻을 이루시기위해 바닷물에 빠져 물고기 뱃속에서 있던 요나가 회개하므로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니느웨라는 나라에 가서 “여러분! 니느웨성에 있는 여러분!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멸망합니다. 니느웨는 멸망합니다. 외칠때에 니느웨성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던것처럼 아무리 강팍한 사람일지라도,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사람의 심령을 쪼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선한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오늘 우리가 어떤 자세와 태도로 주님의 교회를 바로 세워 내게 맡겨진 지체들을 돌보것인가를 정확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선한목자이기에 제자들과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선한 목자의 길을 가기를 그리고 따르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선한 목자를 따라가는 선한 양들인가? 그리고 이 양들을 위하여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가를 상고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롤 모델이십니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양들은 넘어지지 않을것입니다. 그리고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를것입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양의 목자이십니다. 양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을 부르시고 참된 문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선한 목자라는 것을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비유로 알아들을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는 목자의 심정으로 양을 돌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져야 할 목자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목자의 심정의 자세
첫째.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알고 부른다.
10: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규모가 작은 목장에서는 밤동안 양을 문을 목자가 지킵니다. 그러나 규모가 큰 경우는 문지기를 세워서 지키게 합니다.
선한 목자는 문을 열어놓고 양을 불러 우리안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안다는 것입니다. 목자도 양을 알고, 양들도 목자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다’ ‘알고’라는 헬/ 기네스코 로서 지식을 ”얻게 되다,“라는 의미와/ 마음이나 생각으로 ”깨닫다“는 말이고, / 신체 감각 기관을 통해 ”분별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인디’는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 하나 양의 개별적인 접촉을 통해 그 특징을 모두 파악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이름을 각각 불렀다고 말씀하시고 그를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고 표현하면서 얼마만큼 정확하게 아는지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139: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에수님께서 우리를 아시는데 내 삶을 살펴보시는데 일상생활에서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나의 생각을 아시고, 나의 모든 행위를 아시고, 내가 혀로 말하는 것을 알고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인생에 들어오셔서 나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구원의 문을 허락하신 삯개오 집에 유하여 구원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예수님께서는 삯개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눅19: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삭개오야 나무에서 속히 내려오너라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예수님께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가까이 하지 않고 죄인취급을 하고 있는 세리장 삭개오집에 머물겠다고 하니 얼마나 기뻐겠습니까?
더 큰 기쁨과 감격은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돈으로 문제를 회개할때에 만약 제가 남을 속여서 번돈이 있다면 4배로 갚겠다고 진심어린 회개를 하자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온 것은 구원을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서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대해 우리의 목자장이라고 말을 합니다.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분은 선한 목자이시고 참된 목자이십니다.
그러면 교회안에 중직자들과 리더들은 연약한 성도님들의 무엇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1. 예수님과 친밀한 영적 상태를 이루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
중직자들과 리더들은 먼저 자신의 영적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지 그분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목자에게 달려갈수 있는 마음의 상태인지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이름을 부르는데도 대답을 하지 않고 돌아보지않고, 목자에게로 가지않는다면 분명 이 양은 길을 잃어버리게 될것입니다. 이 양은 잃어버린 양이 되어 위험한 길, 험한산령으로 헤매고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늘 하나님앞에 영적 체크를 하셔서
나를 속이고 감추고 있는 사탄의 세력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상황과 환경에 있는 내 느낌아나 내 감정에 속지말고, 주변 사람들의 말에 속지 말고, 늘 주님앞에 기도의 자리에 나오셔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 연약한자들 믿음이 부족한자들을 하나님의 자리로 이끌수 있는 함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목자를 쓴 성 어거스틴의 말에서 그는 이렇게 오늘을 사는 믿음있는 사람들에게 피력합니다.
1. 우리는 예수님과의 영혼의 깊은 영적인 교통함이 있어야합니다.
2. 말씀이 나를 사로잡고, 말씀이 나를 통해 역사하도록 하야 교회안에 믿음이 없고, 연약한자들을 이해하고,
사랑과 애정을 가지되 우리의 진리의 빛이 성령으로 불붙을수 있도록 그리고 어두움에 갇혀 있는 마음을 덮어
빛으로 나올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3. 말씀의 지성, 이성, 감정이 나를 사로잡아 세상의 이성의 논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믿음이 없고, 연약한자들에게 옳은 진리의 말씀으로 훈계하며, 가르치며, 깨닫게 하고, 알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진리의 말씀에 굴복을 당할수 있도록 해야한다는것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중직자와 리더 여러분! 양의 이름을 알고 부른다는 것은 그 양에 특징과 기질 과 성품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맡겨진 양들을 성도들을 우리가 알고 관심을 가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둘째. 목자의 심정의 자세 : 양을 인도한다
10: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안에 들어있는 자들도 구원하지만 16절에 우리안에 들지 않는 양들 즉 장차 예수님을 믿게 될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될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에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를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인도하여“라는 의미는
붙들다, 끌어가다, 데려오다 란뜻을 가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되 그냥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양들에게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고, 어떤 가운데서도 품에 안고 무릎쓰고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우리는 말씀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마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는 세리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취급받고 외면당하는 마태를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주님의 제자로 삼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영혼을 부르시고 인도하십니다.
눅23: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에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음앞에 있는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통해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죄인 한 사람에게 내가 진실로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영혼은 지옥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거하는 아름다운 천국에 있게 됩니다.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영혼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십니다.
행9:15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였던 바울을 선택하셔서 예수그리스도를위해 세상의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주님의 택한 그릇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주님을 위해 고난의 길, 순교의 길을 가는데 인도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자로 세우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형편없는 나약하고 부족하고 우매한 자들을 선택하셔서 우리를 푸른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목자의 심정을 가져야하는데 중요한 자세는 예수님께서 나를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매우 어렵고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내민 손을 절대로 뿌리치지 않습니다. 한번 잡은 손은 절대로 놓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절대로 연약한자들이 내민 손을 뿌리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교회안에 우리가 도와야할 영혼들이 있지않습니까? 그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말을 존중해줍니다. 그리고 가난한 마음으로 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교회공동체안에 일어나고 있어야 합니다.
셋째. 목자의 심정의 자세 : 양을 위해 목숨까지 버립니다.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숨은 생명입니다. 에수님께서 천하보다 소중한 단 한사람뿐인 생명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보혈의 값을 주고 사실정도로 우리를 너무나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씻으시는 위한 희생제사였습니다. 구약의 희생제사는 죄와 허물이많은 인간 제사장이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장막에서 인간의 양심에서 진 죄를 씻을 수 없는 짐승의 피로 드린 제사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연약하고 무익하고 흠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죄와 허물을 완전히 용서 하시고 양심의 죄악을완전히 씻을수 있는 참되고 영원한 희생 제사를 준비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제사장, 성막, 제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사건이 구약 제사의 3가지 요소를 온전하게 성취하고 완성한 사건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