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15.
성경 : 여호수아 3장 1-13절
제목 : 말씀과 거룩은 변화의 서막을 여는 것이다
여호수아 1.2장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가나안 정복을 위해 여리고 성읍을 정탐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에 있는 여리고를 점령하기 하기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에서 떠나 요단강 근처에 유숙합니다.
여리고 두 정탐꾼의 신앙적 이야글 듣고 힘을 얻은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입성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준비합니다. 그 준비는 1절에서는 요단 강가에서 진을 칩니다. 3일후에 관리들이 행진하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2-4절)
여호수아는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성결케하도록 지시를 내립니다. (5절) 그리하여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을 기다려 온 가나안 정복의 서막을 열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한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지나가게 될것이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이한 일들을 행하실것인지를 가르쳐줄것이고, 약속하던대로 가나안땅에 살고 있는 일곱족속들을 반드시 쫓아내게 하실것이라고 약속을 하십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야 한다는 의미
3:1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여호수아는 여리고 정탐꾼이 돌아온 다음날 일찍부터 요단을 건너가 위한 준비하여 싯딤에서 출발하여 요단 강가에 이르게 됩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던것처럼 여호수아도 요단강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가게 할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에 진을 치고라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여시기 직전의 결정적 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단강을 단순한 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마지막 관문이자,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상징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까지 살아온 방식과 다른 방식을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강은 광야와 가나안을 나누는 경계선, 즉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분기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은 애굽의 살아왔던 방식 그리고 모세와 광야의 40년동안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시던 그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개척하고 쟁취하고 싸워서 가져야할 삶의 방식입니다.
예전에는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셨다면 요단강을 건넌후에는 믿음의 결단을 가지고 땅을 쟁취하여 취해할 변화를 해야만 하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후에 사내산에서 언약하신 율법과 십계명을 주시므로써 이 율법을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체결할때에 언약은 결혼과 비유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랑으로 표현하고 신부를 이스라엘 백성 또는 우리를 말씀하십니다. 신랑과 신부는 부부로써 반드시 2가지를 지켜야합니다. 부부에게는 의무와 책임이 뒤따르게 됩니다.
신랑은 오직 한 신부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부도 오로지 결혼한 신랑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데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신랑은 신부만 사랑하고, 신부도 신랑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무와 책임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으로 체결되었습니다.
오늘날 신부인 우리 역시 오직 신랑이신 하나님만 사랑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부인 우리가 해야할 책임과 의무를 반드시 실행햐야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새로운 땅, 새 시대를 여시기 직전에 요단강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
첫째. 언약궤를 보고 뒤 따르라 ( 작은 변화를 주의 깊게 들고 따르라 )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여호수아의 행정관리들이 백성들을 안에 다니면서 말을 합니다. 레위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볼때에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고 전합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는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과 만나를 담은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있는 언약궤를 메고 갈때에 백성들은 뒤를 따라가 가라는 것입니다.
뒤 따라가라는 것은 지난 광야 40년간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름과 기둥으로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고 요단강을 건너가라는 것입니다. 언약궤가 주는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또 말씀을 의미합니다. 뒤따라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우리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이땅에서 살아갈때에 과거의 행동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은 자기 방식으로 살면 죽습니다. 이미 그곳은 만만치 않는 일곱족속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족속들은 싸워서 물리치고 정복해서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민21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에돔땅을 우회할려고 할때에 모세에게 원망합니다.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물도 없다하면서 우리는 하찮은 음식을 싫어한다고 원망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갑자기 불뱀들을 일으켜 이스라엘 백성들이 뱀에 물리자 죽게됩니다. 이때 백성들이 두려워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과 당신에게 원망하여 범죄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라 물린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라고 말씀하시자 모세가 놋뱀을 마들어 장대위에 뱀에게 물린자가 놋뱀을 쳐다보자 모두 살게됩니다.
민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예수님께서는 요3:14.15절에서 구약의 민수기 놋뱀 사건을 인용하면서 인자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자신을 보고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게된다는 구원의 말씀을 하십니다.
요3: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뱀에 물려 죽음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놋뱀을 보면 살 듯이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면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행위나 착한 행실이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바라보는 믿음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놋뱀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약속을 믿고 바라볼때에 믿음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믿음으로 바로보는 자에게만 구원이 주어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00만명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일 범람하고 깊이 있는 요단강을 건널갈때에 반드시 해야할 것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보고 뒤따르면서 따라가야 합니다. 내일이라는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오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훈련되지 않으면 내일은 아니 그다음 달도 의미없는 삶이 될것입니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내게 의미가 있기위해서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전 종교개혁자들은 마틴 루터와 칼빈이 종교개혁 5대 강령을 외쳤습니다. 그것은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의 핵심적인 기초를 라틴어로 솔라(sola)라 시작했습니다,. 솔라는 ‘오직’이라는 교리를 외쳤습니다. 첫쩨. 솔라 스크립투라 로서 오직 성경을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성도가 오직 성경 : 솔라 스크립투라 / 오직 그리스도 : 솔라 크리스투스 , / 오직 은혜로: 솔라 그라치아 /
오직 믿음으로 : 솔라 피테 /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솔라 글로리아 이 5섯가지가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교리였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성도님들이 오직 성경이라는 마음에 없다면 신앙은 기초가 흔들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은 지진에 견디는 끄덕없이 버티는 건물이 있는가 하면 어떤 건물은 약간의 지진에 무너진 건물이 있습니다. 흔들린 건물은 기초가 약하다는것입니다. 신앙의 기초가 무엇이냐 오직 성경을 기반으로 해야합니다,.
만약 교회와 성도들님들이 오직 성경이 아닌 물질, 자녀, 건강문제 해결에만 관심을 갖고 몰두하거나 내면의 치유에 관심을 갖게 되면 신앙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교리가 없기 때문에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질수 없고, 건강한 신앙을 가질수 없습니다.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분의 삶이 흔들리지 않고, 성경의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분이라면 그분을 성경의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때에 심오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심오하지만 하나님의 깊은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성령께서는 듣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심오함을 반드시 가르쳐주시고 인도하실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가까이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고, 구원을 주고 삶의 지혜와 능력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때에 마귀의 시험이 올 때 구약 성경으로 맞서 이기셨습니다.
마 4:1-11절에 3차례에 걸쳐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첫째 사탄이 돌을 떡덩이가 되게하라, 예수님은 신명기 8:3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면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말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신 6:16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고 말씀을 하십니다.
셋째. 사탄이 내게 엎드리면 천하만국을 주겠다고 말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신 6:13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3가지 시험을 성경으로 대답으로 대답해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고 가야합니다. 우리의 내면의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순종할때입니다.
지금 교회와 성도들이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오직 성경을 믿지 않거나 무너뜨리고 있는 사람들이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너무나 물질만능주의로 신비적인 체험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것에 좋아허거나 심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참된 교회는 오직 성경의 바탕위에 서는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지켜야할 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위해서는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널때에 첫째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보면서 뒤따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새로운 땅, 새 시대를 여시기 직전에 요단강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
둘째.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 작은 변화는 거룩하라는 것)
수3:4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전하는 말은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전에 언약궤멘 제사장들과 백성들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 거리는 이천 규빗 약 913m 입니다 1km 정도 되는 거리를 두게 했습니다.
이것은 200만명이라는 12지파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볼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뒤따라가게 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고 가르쳐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나안땅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기위해서 그리고 요단강에 건널려고 할때에 자신을 성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결은 “ 히/ 카다쉬입니다. 거룩하게 구별함. 씻다입니다.
이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과거의 광야의 삶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이라는 새 시대를 맞이하기 전에 백성들의 내면의 세계를 정화하고 깨끗해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백성들은 모든 마음은 광야의 시대를 걸쳐올때에 그들은 내면의 모습은 온통 불평, 불만, 원망의 말이었고, 마음이었습니다. 너희들은 이땅을 한번도 가보지 않은땅이고 보지 못한 땅이기 때문에 거룩함을 요구합니다.
가나안땅이 어떤 곳입니까? 3: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가나안땅에는 이미 일곱족속이 살고 있습니다. 이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실제적인 민족이자,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삶을 위협하는 세상적인 사람들입니다.
일곱족속들은 상징하는 바는 무질서하고, 타락, 교만, 세속적 가치와 탐욕, 육체적 쾌락과 정욕에 빠지게 하고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게하는 족속들입니다.
어느 민족하나 거룩함이 없는 족속들입니다. 그러나 창35장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이라 하지않고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스라엘 이름의 뜻은 ”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또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싸우신다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새 이름이자 새 삶의 방향을 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사람을 속이고, 거짓과 술수를 써서 살았던 야곱이라면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민족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하고 거룩하지 못한 백성들과의 함께 존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땅인데 먼저 너희가 성결즉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출19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하나님게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데 백성들에게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성결하게 하고, 준비하여 셋째날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시내산에세 강림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출1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11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너희들은 옷을 빨라는 것은 너희 삶의 행동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기위한 거룩한 준비입니다. 하나님 임재하실때에 무방비 상채로 있을경우에는 반드시 죽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식하고 준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치 않으면 백성들이 죽기 때문입니다.
세상이라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성결함 삶, 거룩한 삶이 되지 않으면 가나안족속들의 온갖 더러운 것으로 더럽힘을 갖게 되고, 너희 신앙또한 버리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함게하셨고 가나안땅이 이제는 이스라엘 땅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백성들은 거룩했을까요? 하나님은 신랑이기 때문에 약속과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간에 낀 상태로 한쪽마음에서는 우상을 강하게 섬기고 또 한쪽 마음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희미하게 믿는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가나안땅 신 바알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상 18: 21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섬기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 언제까지 중간에 끼여서 머뭇머뭇 거리느냐고 책망합니다.
신앙생활을 믿는것도 아니고, 그럲다고 안믿는것도 아닌 정말 중간에 낀 어정쩡한 신앙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여호와가 하나님이 절대자이시고, 구원자라고 믿으시면 세속적인 것들을 청산해야 합니다.
아직도 미련이 있어서 머뭇머뭇거린다면 우리는 절대로 가나안땅을 주어도 또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될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이 거룩은 이 성결은 우리안에 내면의 거룩함을 말씀합니다
오늘을 준비할때 내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새로운 땅, 새 시대를 여실 때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는 제2의 홍해를 보여주시는데 그것은 요단강 물이 끊어지고 한곳에 쌓이게 됩니다. 불투명한 내일일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변화는 삶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 내일은 오늘이라는 시간안에 충실함을 통해서 쌓여져가는것입니다.
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기이한 일들을 행하신다는 여호수아의 말은 내일 일어날지라도 그 기적은 오늘의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들에게 보여주었던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출애굽 2세대들에게 요단강이 갈라지는 사건을 보게 될것임을 암시적으로 믿으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기이한일이 무엇일까?
3:11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13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오늘 성결한 삶을 준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언약궤가 제일 앞에서 요단강 물을 밟고 멈출때에 흐르던 요단 물이 끊어지게 되고, 그 물이 한곳에 쌓이게 될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열두 제사장을 택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물에 발을 담그자 흐르던 물이 멈추고 더 이상 흐르지 않게 하셨을까?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 약속의 성취 / 둘째 후대에 하나님의 믿음을 전수하는 것
출애굽할때에 애굽에 나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목적이었습니다.
수1장1절에 모세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1: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가나안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직 들어가지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땅을 주는 그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속의 성취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으신다면 우리를 알수 없지만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가운데 있습니다.
둘째는 후손에게 하나님의 믿음을 전수하여 가르쳐주라는 것입니다.
4:6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시간이 지나 후손들이 물어볼때에 이 표징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거든 요단강에 물이 끊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일인 것을 후대에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 자녀들에게 물려줄 자산은 오직 성경이고 하나님어야 합니다.
말씀과 거룩은 변화의 서막이다.
변질된 복음에 속하서는 안됩니다. 변질된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않고 순종하지않고 거짓된 변화를 말합니다. 얼마든지 사람을 속일수 있습니다.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습니다. 사랑, 은혜, 용서, 긍휼,등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을 얾마든지 가진것처럼 하여 변질시켜 포장해서 신앙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변질된 복음에 속하서도 안되지만 무감각해서도 안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내 삶에서 쇼윈도우에 장식된 모조품이 아니라, 살아있고 숨쉬는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는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언약궤를 바라보고 따라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따라가고 있으면 세상의 유혹과 미혹이 나를 엄습하게 할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에 눈을 두지않고, 성결한 마음으로 거룩한 마음으로 주님이 하실 것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갈때에 내일을 기대할수 있는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모조품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룩하라는 말씀은 있습니다.
에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성공이라는 유혹의 케이스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변화된 삶을 살때에 너희들의 삶이 얼마나 윤택한 삶인지를 말슴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신자가 바라는 것을 꿈꾸고 생각함으로써 원하는 바를 소유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중심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말씀하고 있스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를 꿈꾸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중심이 예수그리스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바라는 존재보다 에수님 때문에 변화된 나의 모습에서 다른사람에게 빛으로 드러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의 내면은 변화되었습니까?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아직도 1년전과 똑같은 신앙의 태도를 가지고 있고, 변화되지 않았고 10년전의 모습이 여전히 나의 모습이라면 지금 난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이 요단강물이 멈추고 가나안땅에 들어갈려면 오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바라보고, 뒤따라는것이고, 오늘 성결한 삶을 살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변화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한주간 오늘과 내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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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 2025.5.11. 네 부모를 공경하라 | 채인기 | 2025.05.15 | 21 |
240 | 2025.5.4 내 자녀를 사랑.교육.행동.변화 | 채인기 | 2025.05.08 | 28 |
239 | 2025.4.27 전도하며 성장하는 교회 | 채인기 | 2025.05.03 | 23 |
238 | 2025.4.20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 채인기 | 2025.04.25 | 19 |
237 | 2025.4.13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 채인기 | 2025.04.17 | 24 |
236 | 2025.4. 6 말이 아니라, 오직 복음의 능력이다. | 채인기 | 2025.04.17 | 21 |
235 | 2025.3.23 기도하는 성전,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 채인기 | 2025.03.25 | 63 |
234 | 2025.3.16 목자의 심정을 가진 자 | 채인기 | 2025.03.20 | 41 |
233 | 2025.3.9 나의 모든 필요을 아시는 주님 | 채인기 | 2025.03.12 | 53 |
232 | 2023.3.2 갈등, 단숨에 해결 | 채인기 | 2025.03.04 | 36 |
231 | 2025.2.23 기준을 세워 살아가는 신자 | 채인기 | 2025.02.25 | 43 |
230 | 2025.2.16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들자 | 채인기 | 2025.02.19 | 51 |
229 | 2025.2.9 누가복음 7:11-17 | 채인기 | 2025.02.15 | 46 |
228 | 2025년 2월 2일 내가보낸 증거 : 안식 | 채인기 | 2025.02.15 | 288 |
227 | 2025.1.26 자녀들아 말씀을 지키라 | 채인기 | 2025.01.28 | 52 |